* 본 법률정보는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하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나 조언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동일해 보이는 상황이라도 사실관계나 시점 등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변호사와 상담을 권장합니다.
[서울고등법원 2024. 4. 24. 선고 2023나2046426 판결]
회생채무자 ○○○ 주식회사의 관리인 △△△의 소송수계인 ○○○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담당변호사 노현철 외 1인)
□□□ 유한책임회사(◇◇◇ GmbH)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철원 외 1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9. 13. 선고 2022가합500814 판결
2024. 3. 13.
1.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2.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한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유럽연합 통화 2,528,080유로(이하에 적힌 ‘유로’는 유럽연합 통화를 의미한다)와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이 송달된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셈한 돈을 지급하라.
1. 인정되는 사실
가. 당사자들의 지위
1) 원고는 대한민국법에 따라 설립된 강관 제조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다. 원고는 2015. 10. 23.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가 2016. 7. 13.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받았으나 2018. 1. 5. 다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2) 피고는 독일연방공화국(다음부터 ‘독일’이라 한다)법에 따라 설립된 금속가공기계 제작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다. 피고는 2021. 12. 20. 독일법에 따라 설립된 ☆☆☆ 유한책임회사(▽▽▽ GmbH, 다음부터 ‘☆☆☆’라 한다)를 흡수합병하였다.
나. 물품공급계약의 체결
1) 원고는 2012. 9. 19. ☆☆☆와, 공급자는 ‘☆☆☆’, 수요자는 ‘원고’, 공급물품은 ‘강관 스레딩 설비(Steel Pipe Threading Machine) 2기’, 물품대금은 ‘2,800,000유로’로 한 공급계약(다음부터 ‘이 사건 공급계약’이라 하고, 그 계약서를 ‘이 사건 공급계약서’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2) 이 사건 공급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다음부터 그중 제8항을 ‘이 사건 조항’이라 한다)이 포함되어 있다.
8. 통제 법률(Arbitration) 본 합의는 한국법률이나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All disputes, controversies, Claims or Difference arising out of, or in relation to this agreement, or a breath주1) hereof, shall be finally settled by Korean Law or in accordance with the Commercial Arbitration committee of International Commercial Law.12. 기타사항(Others) 12.3) 본 합의서는 양측의 서명 또는 날인하여 국문(영문) 총 2부를 유효본으로 하며, 수요자, 공급자 각각 1부씩 보관한다. This agreement is signed or sealed by both sides with a total of two copies of valid in Korean(English). And Buyer and Supplier, each retaining one copy.
다. 소송절차 수계
△△△은 2022. 1. 5. 당시 회생 절차가 진행 중이던 원고의 관리인으로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원고에 대한 회생절차는 2022. 1. 27. 종결되었고, 원고는 제1심의 변론이 진행 중이던 2023. 7. 18. 이 사건 소송절차를 수계하였다.
[인정 근거] 기록상 명백하거나 다툼 없음, 갑 제1, 4, 5호증(가지번호가 있는 서증은 가지번호를 포함한다)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쟁점과 판단
가. 쟁점
원고는 ☆☆☆에 이 사건 공급계약에 따른 물품대금 등의 명목으로 합계 2,528,080유로를 지급하였으나 ☆☆☆의 채무불이행으로 말미암아 이 사건 공급계약이 해제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를 흡수합병한 피고를 상대로 원상회복의무의 이행으로써 2,528,080유로와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본안에 관한 변론을 보류한 채, 원고와 ☆☆☆는 이 사건 조항을 이 사건 공급계약서에 포함시킴으로써 이 사건 공급계약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분쟁을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기로 하는 전속적 중재합의를 하였으므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여 각하되어야 한다는 본안 전 항변을 한다.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소가 중재합의에 위반하였는지 여부이고, 이는 이 사건 조항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 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 판단
1) 전속적 중재합의의 존재 여부
가)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당사자의 의사 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계약의 형식과 내용, 계약이 체결된 동기와 경위, 계약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거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법리는 계약서가 두 개의 언어본으로 작성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두 언어본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당사자의 의사가 어느 한쪽을 따르기로 일치한 때에는 그에 따르고, 그렇지 않은 때에는 앞서 본 계약 해석 방법에 따라 그 내용을 확정해야 한다(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8다275017 판결 등 참조). 한편, 계약 당사자 사이에 중재합의의 존재 여부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중재합의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측에 그 증명책임이 있다.
나) 앞서 인정한 사실과 설시한 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정을 종합할 때,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공급계약서의 작성으로써 원고와 ☆☆☆ 사이에 전속적 중재합의가 성립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전속적 중재합의의 존재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1) 피고는 이 사건 조항이 이 사건 공급계약서에 삽입된 구체적인 경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원고는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하기를 주장하였고, ☆☆☆는 이를 수용하는 대신 이 사건 공급계약과 관련된 분쟁이 대한민국 법원에서 해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재조항을 포함하는 것을 제안하여 이 사건 조항이 삽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의 주장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전혀 없고, 그 밖에 이 사건 조항을 두게 된 동기와 경위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도 제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를 새김에 있어서는 이 사건 조항의 문언이 갖는 통상적 의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하고, 문언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내용에 관하여 당사자들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인정함에는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2) 이 사건 공급계약서는 하나의 문서에 국문과 영문을 병기하는 방법으로 작성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 공급계약서 제12조 제3항에서는 국문본과 영문본 모두가 유효하다고 명시하고 있고, 국문본과 영문본이 불일치하는 경우 그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를 정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를 새김에 있어서는 그 국문본과 영문본을 대등한 지위에 놓고 양자가 서로 최대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영문본이 국문본에 우선한다거나 계약 당사자의 실질적인 의사가 영문본에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의 주장대로라면 원고와 ☆☆☆가 이 사건 공급계약서에 국문을 병기하고 국문본과 영문본이 모두 유효하다는 조항을 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가 들고 있는 여러 사정이나 증거만으로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3) 국문으로 작성된 이 사건 조항 중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의 통제"라는 문구는 "한국법률이나"라는 문구 뒤에 바로 이어져 있다. 이는 결국 "한국법률의 통제(다음부터 ‘국문 ① 부분’이라 한다) 또는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의 통제(다음부터 ‘국문 ② 부분’이라 한다)"라고 규정한 셈이 된다. 그리고 영문으로 작성된 이 사건 조항도 "by Korean Law(다음부터 ‘영문 ① 부분’이라 한다)"라는 문구와 "in accordance with the Commercial Arbitration committee of International Commercial Law(다음부터 ‘영문 ② 부분’이라 한다)"라는 문구가 "or"라는 접속사에 의해 이어져 있다. 즉 이 사건 조항은 국문 ① 부분과 국문 ② 부분을, 그리고 영문 ① 부분과 영문 ② 부분을 각각 선택적으로 나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국문 ② 부분 및 영문 ② 부분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를 새긴다. 국문으로 작성된 이 사건 조항의 제목은 "통제 법률"이고, 이는 통상적으로 준거법을 의미한다고 봄이 자연스럽다. 또 "통제"가 갖는 사전적 의미는 분쟁 해결과 다소 다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국문 ② 부분이 과연 중재에 의한 분쟁 해결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문언만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영문으로 작성된 이 사건 조항의 제목은 중재를 의미하는 "Arbitration"이고, 영문 ② 부분은 중재에 의한 분쟁 해결을 의미함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비록 국문본의 제목에서 중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라는 중재기관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국문 ② 부분은 중재에 의한 분쟁 해결을 의미한다고 새기는 것이 옳다. 다만 이 사건 조항의 문언만으로는 국문 ② 부분 및 영문 ② 부분에 따라 중재절차가 진행될 경우 적용되어야 할 준거법에 관하여 원고와 ☆☆☆ 사이에 합의가 성립하였는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오히려 중재기관 이외의 사항에 관해서는 따로 합의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원고는 이 사건 조항이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피고 역시 중재절차가 진행될 경우 준거법이 대한민국법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그와 같이 새기기로 한다.
다음으로 국문 ① 부분 및 영문 ① 부분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를 새긴다. 국문 ① 부분의 경우 "통제"가 갖는 사전적 의미를 감안할 때,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영문 ① 부분의 바로 앞에는 "settled"가 있고, "settle"은 일반적으로 분쟁 해결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된다. 또 이 사건 조항 중 국문의 "이나" 부분과 영문의 "or" 부분이 오기에 해당한다거나 원고와 ☆☆☆의 의사와 무관하게 삽입되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따라서 국문 ① 부분 및 영문 ① 부분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는 이와 병렬적으로 규정된 국문 ② 부분 및 영문 ② 부분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와 다르지 않다고 봄이 자연스럽다. 한편, 원고와 ☆☆☆는 존재하지도 않는 중재기관을 명시할 정도로 중재절차에 관하여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국문 ② 부분 및 영문 ② 부분을 둔 것으로 보이고, 이는 분쟁 해결 수단이 오로지 중재로 한정된다고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일 개연성이 높다. 나아가 원고와 ☆☆☆가 이 사건 공급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각각 다른 당사자와 국제거래를 함에 있어서(원고와 ☆☆☆는 이 사건 공급계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서로 거래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항상 전속적 중재합의를 하여 왔다거나 이에 따라 오로지 중재에 의하여 분쟁을 해결하여 왔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그렇다면 원고와 ☆☆☆는 국문 ① 부분 및 영문 ① 부분을 통하여 준거법에 관하여만 합의한 것이 아니라(준거법에 관하여 합의하였다는 점에 관하여는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 대한민국법에 따른 분쟁 해결 수단을 수용하는 데 합의하였고, 분쟁 해결의 수단으로써 재판 청구를 배제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지 않은 이상 여기에는 대한민국법에 따른 재판 청구도 포함된다고 판단된다.
결국 이 사건 조항은 준거법에 관한 조항이면서 선택적 중재조항에 해당한다.
2) 중재합의로서 효력 여부
선택적 중재조항은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중재절차를 선택하여 그 절차에 따라 분쟁해결을 요구하고 이에 대하여 상대방이 별다른 이의 없이 중재절차에 임하였을 때에 비로소 중재합의로서 효력이 있다(대법원 2004. 11. 11. 선고 2004다42166 판결 등 참조).
1)항에서 판단한 대로, 이 사건 조항은 준거법에 관한 조항이면서 선택적 중재조항에 해당한다. 그런데 원고는 피고 주장과 같은 중재합의의 존재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 이 사건 소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이 중재합의로서 효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3. 결론
피고의 본안 전 항변은 이유 없고, 그 밖에 직권으로 보더라도 이 사건 소가 부적법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원고 청구의 당부에 관한 판단에 나아가지 않은 채 이 사건 소가 부적법하다고 보아 이를 각하한 제1심 판결은 부당하다. 한편, 이 사건의 경우 제1심에서 본안판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리가 되지 않았고, 항소 법원의 본안 판단에 관하여 당사자들의 동의도 없었다. 따라서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민사소송법 제418조 본문에 따라 이 사건을 제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환송한다.
판사 황승태(재판장) 김유경 손철우
* 본 법률정보는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하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나 조언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동일해 보이는 상황이라도 사실관계나 시점 등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변호사와 상담을 권장합니다.
[서울고등법원 2024. 4. 24. 선고 2023나2046426 판결]
회생채무자 ○○○ 주식회사의 관리인 △△△의 소송수계인 ○○○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담당변호사 노현철 외 1인)
□□□ 유한책임회사(◇◇◇ GmbH)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철원 외 1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9. 13. 선고 2022가합500814 판결
2024. 3. 13.
1.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2.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한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유럽연합 통화 2,528,080유로(이하에 적힌 ‘유로’는 유럽연합 통화를 의미한다)와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이 송달된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셈한 돈을 지급하라.
1. 인정되는 사실
가. 당사자들의 지위
1) 원고는 대한민국법에 따라 설립된 강관 제조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다. 원고는 2015. 10. 23.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가 2016. 7. 13.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받았으나 2018. 1. 5. 다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2) 피고는 독일연방공화국(다음부터 ‘독일’이라 한다)법에 따라 설립된 금속가공기계 제작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다. 피고는 2021. 12. 20. 독일법에 따라 설립된 ☆☆☆ 유한책임회사(▽▽▽ GmbH, 다음부터 ‘☆☆☆’라 한다)를 흡수합병하였다.
나. 물품공급계약의 체결
1) 원고는 2012. 9. 19. ☆☆☆와, 공급자는 ‘☆☆☆’, 수요자는 ‘원고’, 공급물품은 ‘강관 스레딩 설비(Steel Pipe Threading Machine) 2기’, 물품대금은 ‘2,800,000유로’로 한 공급계약(다음부터 ‘이 사건 공급계약’이라 하고, 그 계약서를 ‘이 사건 공급계약서’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2) 이 사건 공급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다음부터 그중 제8항을 ‘이 사건 조항’이라 한다)이 포함되어 있다.
8. 통제 법률(Arbitration) 본 합의는 한국법률이나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All disputes, controversies, Claims or Difference arising out of, or in relation to this agreement, or a breath주1) hereof, shall be finally settled by Korean Law or in accordance with the Commercial Arbitration committee of International Commercial Law.12. 기타사항(Others) 12.3) 본 합의서는 양측의 서명 또는 날인하여 국문(영문) 총 2부를 유효본으로 하며, 수요자, 공급자 각각 1부씩 보관한다. This agreement is signed or sealed by both sides with a total of two copies of valid in Korean(English). And Buyer and Supplier, each retaining one copy.
다. 소송절차 수계
△△△은 2022. 1. 5. 당시 회생 절차가 진행 중이던 원고의 관리인으로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원고에 대한 회생절차는 2022. 1. 27. 종결되었고, 원고는 제1심의 변론이 진행 중이던 2023. 7. 18. 이 사건 소송절차를 수계하였다.
[인정 근거] 기록상 명백하거나 다툼 없음, 갑 제1, 4, 5호증(가지번호가 있는 서증은 가지번호를 포함한다)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쟁점과 판단
가. 쟁점
원고는 ☆☆☆에 이 사건 공급계약에 따른 물품대금 등의 명목으로 합계 2,528,080유로를 지급하였으나 ☆☆☆의 채무불이행으로 말미암아 이 사건 공급계약이 해제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를 흡수합병한 피고를 상대로 원상회복의무의 이행으로써 2,528,080유로와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본안에 관한 변론을 보류한 채, 원고와 ☆☆☆는 이 사건 조항을 이 사건 공급계약서에 포함시킴으로써 이 사건 공급계약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분쟁을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기로 하는 전속적 중재합의를 하였으므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여 각하되어야 한다는 본안 전 항변을 한다.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소가 중재합의에 위반하였는지 여부이고, 이는 이 사건 조항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 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 판단
1) 전속적 중재합의의 존재 여부
가)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당사자의 의사 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계약의 형식과 내용, 계약이 체결된 동기와 경위, 계약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거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법리는 계약서가 두 개의 언어본으로 작성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두 언어본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당사자의 의사가 어느 한쪽을 따르기로 일치한 때에는 그에 따르고, 그렇지 않은 때에는 앞서 본 계약 해석 방법에 따라 그 내용을 확정해야 한다(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8다275017 판결 등 참조). 한편, 계약 당사자 사이에 중재합의의 존재 여부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중재합의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측에 그 증명책임이 있다.
나) 앞서 인정한 사실과 설시한 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정을 종합할 때,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공급계약서의 작성으로써 원고와 ☆☆☆ 사이에 전속적 중재합의가 성립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전속적 중재합의의 존재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1) 피고는 이 사건 조항이 이 사건 공급계약서에 삽입된 구체적인 경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원고는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하기를 주장하였고, ☆☆☆는 이를 수용하는 대신 이 사건 공급계약과 관련된 분쟁이 대한민국 법원에서 해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재조항을 포함하는 것을 제안하여 이 사건 조항이 삽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의 주장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전혀 없고, 그 밖에 이 사건 조항을 두게 된 동기와 경위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도 제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를 새김에 있어서는 이 사건 조항의 문언이 갖는 통상적 의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하고, 문언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내용에 관하여 당사자들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인정함에는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2) 이 사건 공급계약서는 하나의 문서에 국문과 영문을 병기하는 방법으로 작성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 공급계약서 제12조 제3항에서는 국문본과 영문본 모두가 유효하다고 명시하고 있고, 국문본과 영문본이 불일치하는 경우 그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를 정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를 새김에 있어서는 그 국문본과 영문본을 대등한 지위에 놓고 양자가 서로 최대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영문본이 국문본에 우선한다거나 계약 당사자의 실질적인 의사가 영문본에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의 주장대로라면 원고와 ☆☆☆가 이 사건 공급계약서에 국문을 병기하고 국문본과 영문본이 모두 유효하다는 조항을 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가 들고 있는 여러 사정이나 증거만으로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3) 국문으로 작성된 이 사건 조항 중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의 통제"라는 문구는 "한국법률이나"라는 문구 뒤에 바로 이어져 있다. 이는 결국 "한국법률의 통제(다음부터 ‘국문 ① 부분’이라 한다) 또는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의 통제(다음부터 ‘국문 ② 부분’이라 한다)"라고 규정한 셈이 된다. 그리고 영문으로 작성된 이 사건 조항도 "by Korean Law(다음부터 ‘영문 ① 부분’이라 한다)"라는 문구와 "in accordance with the Commercial Arbitration committee of International Commercial Law(다음부터 ‘영문 ② 부분’이라 한다)"라는 문구가 "or"라는 접속사에 의해 이어져 있다. 즉 이 사건 조항은 국문 ① 부분과 국문 ② 부분을, 그리고 영문 ① 부분과 영문 ② 부분을 각각 선택적으로 나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국문 ② 부분 및 영문 ② 부분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를 새긴다. 국문으로 작성된 이 사건 조항의 제목은 "통제 법률"이고, 이는 통상적으로 준거법을 의미한다고 봄이 자연스럽다. 또 "통제"가 갖는 사전적 의미는 분쟁 해결과 다소 다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국문 ② 부분이 과연 중재에 의한 분쟁 해결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문언만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영문으로 작성된 이 사건 조항의 제목은 중재를 의미하는 "Arbitration"이고, 영문 ② 부분은 중재에 의한 분쟁 해결을 의미함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비록 국문본의 제목에서 중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라는 중재기관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국문 ② 부분은 중재에 의한 분쟁 해결을 의미한다고 새기는 것이 옳다. 다만 이 사건 조항의 문언만으로는 국문 ② 부분 및 영문 ② 부분에 따라 중재절차가 진행될 경우 적용되어야 할 준거법에 관하여 원고와 ☆☆☆ 사이에 합의가 성립하였는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오히려 중재기관 이외의 사항에 관해서는 따로 합의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원고는 이 사건 조항이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피고 역시 중재절차가 진행될 경우 준거법이 대한민국법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그와 같이 새기기로 한다.
다음으로 국문 ① 부분 및 영문 ① 부분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를 새긴다. 국문 ① 부분의 경우 "통제"가 갖는 사전적 의미를 감안할 때,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영문 ① 부분의 바로 앞에는 "settled"가 있고, "settle"은 일반적으로 분쟁 해결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된다. 또 이 사건 조항 중 국문의 "이나" 부분과 영문의 "or" 부분이 오기에 해당한다거나 원고와 ☆☆☆의 의사와 무관하게 삽입되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따라서 국문 ① 부분 및 영문 ① 부분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는 이와 병렬적으로 규정된 국문 ② 부분 및 영문 ② 부분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와 다르지 않다고 봄이 자연스럽다. 한편, 원고와 ☆☆☆는 존재하지도 않는 중재기관을 명시할 정도로 중재절차에 관하여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국문 ② 부분 및 영문 ② 부분을 둔 것으로 보이고, 이는 분쟁 해결 수단이 오로지 중재로 한정된다고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일 개연성이 높다. 나아가 원고와 ☆☆☆가 이 사건 공급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각각 다른 당사자와 국제거래를 함에 있어서(원고와 ☆☆☆는 이 사건 공급계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서로 거래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항상 전속적 중재합의를 하여 왔다거나 이에 따라 오로지 중재에 의하여 분쟁을 해결하여 왔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그렇다면 원고와 ☆☆☆는 국문 ① 부분 및 영문 ① 부분을 통하여 준거법에 관하여만 합의한 것이 아니라(준거법에 관하여 합의하였다는 점에 관하여는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 대한민국법에 따른 분쟁 해결 수단을 수용하는 데 합의하였고, 분쟁 해결의 수단으로써 재판 청구를 배제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지 않은 이상 여기에는 대한민국법에 따른 재판 청구도 포함된다고 판단된다.
결국 이 사건 조항은 준거법에 관한 조항이면서 선택적 중재조항에 해당한다.
2) 중재합의로서 효력 여부
선택적 중재조항은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중재절차를 선택하여 그 절차에 따라 분쟁해결을 요구하고 이에 대하여 상대방이 별다른 이의 없이 중재절차에 임하였을 때에 비로소 중재합의로서 효력이 있다(대법원 2004. 11. 11. 선고 2004다42166 판결 등 참조).
1)항에서 판단한 대로, 이 사건 조항은 준거법에 관한 조항이면서 선택적 중재조항에 해당한다. 그런데 원고는 피고 주장과 같은 중재합의의 존재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 이 사건 소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이 중재합의로서 효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3. 결론
피고의 본안 전 항변은 이유 없고, 그 밖에 직권으로 보더라도 이 사건 소가 부적법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원고 청구의 당부에 관한 판단에 나아가지 않은 채 이 사건 소가 부적법하다고 보아 이를 각하한 제1심 판결은 부당하다. 한편, 이 사건의 경우 제1심에서 본안판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리가 되지 않았고, 항소 법원의 본안 판단에 관하여 당사자들의 동의도 없었다. 따라서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민사소송법 제418조 본문에 따라 이 사건을 제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환송한다.
판사 황승태(재판장) 김유경 손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