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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계약

국가 폭력·예비검속 피해 유족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항변 인정 여부

2011나506
판결 요약
한국전쟁 직후 경찰에 구금 후 군에 의해 총살된 예비검속자의 유족이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시, 국가는 소멸시효 완성 항변을 신의성실 원칙 위반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피해 발생 경위가 은폐되고, 유족이 오랜 기간 사망·피해사실을 확인할 객관적 수단이 없어 권리행사가 불가능했다면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유족은 유해 발견·진실규명 통지일 이후 합리적 권리행사 시작이 가능합니다.
#국가폭력 #예비검속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신의성실의 원칙
질의 응답
1. 한국전쟁 예비검속 피해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에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나요?
답변
은폐·비밀리에 이루어진 가해행위로 피해 유족이 오랜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면,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근거
광주고법 2011나506 판결은 국가기관이 적법한 절차 없이 조직적으로 불법행위를 자행·은폐하여 유족이 권리행사 자체가 불가능했던 사정이 있다면 소멸시효 항변을 신의칙 위반으로 배척한다고 판시했습니다.
2. 유족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시점은 언제로 보나요?
답변
망인 유해 발견 및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통지 이후에야 유족이 손해와 가해자 인식이 가능하므로 이때부터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근거
광주고법 2011나506 판결은 유족이 오랜 기간 피해 사실·가해행위 인식이 객관적으로 곤란했고, 유해 발견 및 진실규명이 이뤄진 시점까지 권리행사 장애사유가 존재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3. 국가를 상대로 한 장기 미제기 국가폭력 피해 손해배상에서 유족의 지연 이유가 시효 완성을 막는 주요 사정이 될 수 있나요?
답변
네, 은폐·장기간 사실확인 불가 등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으면 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칙에 반해 제한됩니다.
근거
광주고법 2011나506 판결은 국가기관이 증거 은폐 등으로 피해사실 확인을 현저히 곤란하게 했을 경우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4. 국가가 손해배상청구 시 소멸시효 만료로 항변해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은 어떤 경우인가요?
답변
피해사실과 가해행위가 명확히 공개·인지되었음에도 장기간 별다른 장애 없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근거
광주고법 2011나506 판결은 객관적 장애나 국가의 은폐가 없고, 유족이 손해와 가해자 알 수 있었던 상태라면 시효 완성의 일반 원칙에 따라 국가의 항변이 인용될 수 있음을 전제합니다.

* 본 법률정보는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하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나 조언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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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전문

손해배상

 ⁠[광주고법 2012. 5. 2. 선고 ⁠(제주)2011나506 판결 : 상고]

【판시사항】

1950. 6. 25. 한국전쟁 발발 직후 상부 지시를 받고 경찰이 실시한 예비검속으로 구금되었다가 비행장에서 군에 의해 총살되어 매장된 예비검속자의 유족들이 2010. 2. 25.경 망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통지와 2010. 6. 10.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은 후에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한 사안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950. 6. 25. 한국전쟁 발발 직후 상부 지시를 받고 경찰이 실시한 예비검속으로 구금되었다가 비행장에서 군에 의해 총살되어 매장된 예비검속자의 유족들이 2010. 2. 25.경 망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통지와 2010. 6. 10.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은 후에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한 사안에서, 망인에 대한 총살 및 매장이 일반인들과 격리된 장소에서 어떠한 고지도 없이 군에 의해 비밀리에 이루어진 점, 망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통보를 받기 전까지 유족들이 망인의 사망 여부와 사망장소를 제대로 알 수 없었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기 전까지 망인의 사망원인이 위와 같은 가해행위에 의한 것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유족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를 확정하기 곤란하였던 점 등 여러 사정에 비추어 적어도 망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망인의 유해발견 통지를 받은 2010. 2. 25.경까지는 객관적으로 유족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하고, 여기에 본질적으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부담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다는 점을 더하여 보면, 국가기관이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밀행적·조직적으로 가해행위을 가한 후 매장하여 은폐까지 한 사건에서 유족들이 망인의 생사확인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유해를 발굴하는 등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다가, 가해행위로부터 약 60여 년이 지나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의해 가해행위의 구체적 진상이 밝혀지자 뒤늦게 유족들이 가해행위 전모를 어림잡아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여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민법 제2조,
제750조,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제8조, 구 회계법(1951. 9. 24. 법률 제217호 재정법 제82조로 폐지) 제32조(현행
국가재정법 제96조 참조)


【전문】

【원고, 피항소인 겸 항소인】

【피고, 항소인 겸 피항소인】

대한민국

【제1심판결】

제주지법 2011. 6. 23. 선고 2010가합3014 판결

【변론종결】

2012. 4. 18.

【주 문】

 
1.  당심에서 확장된 청구를 포함하여 제1심판결을 제2, 3항과 같이 변경한다.
 
2.  피고는 
가.  원고 1에게 22,709,857원 및 그 중 2,709,857원에 대하여는 2010. 6. 1.부터 2012. 5. 2.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20,000,000원에 대하여는 2012. 4. 18.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나.  원고 2, 3에게 각 56,806,571원 및 그 중 각 1,806,571원에 대하여 2010. 6. 1.부터 2012. 5. 2.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나머지 각 55,000,000원에 대하여는 2012. 4. 18.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각 지급하라.
 
3.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4.  소송총비용 중 원고 1과 피고 사이에서 생긴 부분은 피고가 부담하고, 나머지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서 생긴 부분 중 1/2은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5.  제2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 1에게 23,882,536원 및 그 중 3,882,536원에 대하여는 2010. 6. 1.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20,000,00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변론종결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원고 2, 3에게 각 137,588,357원 및 그 중 각 2,588,357원에 대하여는 2010. 6. 1.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나머지 각 135,000,00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변론종결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원고 2, 3은 당심에 이르러 청구취지를 확장하였다).
 
2.  항소취지 
가.  원고들
제1심판결을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 피고는 원고 1에게 23,883,536원 및 그 중 3,882,536원에 대하여는 2010. 6. 1.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20,000,00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변론종결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원고 2, 3에게 각 35,088,357원 및 그 중 2,588,357원에 대하여는 2010. 6. 1.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32,500,00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변론종결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나.  피고
제1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위 취소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이 유】

1. 인정 사실
아래의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 3, 4, 7, 8호증, 을 제1 내지 3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한국전쟁 발발 및 예비검속
 ⁠(1) 1950. 6. 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은 전국 각 도의 경찰국장에게 전국 요시찰인 등을 즉시 구속하고 형무소 경비를 강화할 것을 내용으로 한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 형무소 경비의 건’이라는 제목의 비상통첩을 경찰 무선전보로 긴급하달하였고, 제주도경찰국은 치안국의 위 비상통첩에 따라 관내 각 경찰서에 이러한 지시사항을 하달하고 조치 후 결과를 보고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예비검속(혐의자를 미리 잡아 놓는 것을 말한다)에 곧바로 착수하였다.
 ⁠(2) 그 후 제주 주둔 해병대사령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사령부를 설치, 치안을 관장함에 따라 경찰은 계엄령하에서 제주지구 계엄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게 되었는데, 제주지구 계엄사령관은 1950. 7. 6.경 ⁠‘제주지구 비상계엄사령관 통첩’의 형태로 제주도경찰국장에게 지시를 내려 제주도 전체의 예비검속자 명부를 작성하여 보고하도록 하였고, 경찰국장은 다시 각 경찰서장에게 예비검속자 명부를 양식에 의거하여 작성·보고할 것을 지시하였다.
 ⁠(3) 이에 제주도경찰국을 비롯한 관할 경찰서에서는 제주지구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예비검속을 실시한 결과(제주도경찰국은 1950. 8. 4.경을 기준으로 제주도 내의 총 820명을 예비검속하여 계엄사령관에게 이관하였다)를 계엄사령부에 보고하였는데, 당시에 작성된 ⁠‘예비검속자명부’에는 예비검속자가 4개 등급(D·C·B·A)별로 분류되어 있고, ⁠‘총살자 및 전 가족 명부’에는 총살자의 인적 사항 및 사형 일시·장소 등이 기재되어 있다.
 ⁠(4) 경찰은 예비검속 업무를 극비로 취급하여 예비검속 관련 치안국의 중요 통첩은 대부분 무선전보로 이루어졌고, 제주도경찰국 산하 경찰서 단위에서도 무선전보를 이용하였다. 경찰은 예비검속자 검거를 절대극비로 취급하였고, 다른 관공서에 대해서는 일체 연락을 취하지 않은 채 예비검속 업무를 추진하였으며, 예비검속과 관련된 공문을 작성, 보고하는 과정에서 ⁠‘극비’, ⁠‘무전필요’, ⁠‘암호무전’ 등의 표기를 하였다.
 ⁠(5) 예비검속자들에 대한 군 송치 및 학살은 1950. 7. 중하순경 및 같은 해 8. 중하순경으로 나누어 최소한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예비검속자들은 당시 해병대에 의해 총살 또는 수장의 방법으로 집단 살해되었다.
 
나.  망 소외 1이 구금, 살해된 경위
 ⁠(1) 망 소외 1(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원고 1의 남편이자, 원고 2, 3의 아버지로서, 1950. 6. 28.경 의귀출장소 경찰 등에 예비검속되어 서귀포경찰서로 이송된 다음 절간고구마창고에 구금되어 있다가 1950. 7. 29.경 군 트럭에 실려나간 후 제주읍 정뜨르비행장(현재의 제주국제공항을 말한다)에서 총살되었다.
 ⁠(2) 이후 망인의 유족들은 1950. 9. 18.경 망인과 함께 서귀포 절간고구마창고에서 구금되어 있었던 소외 2로부터 망인 등이 군 트럭에 실려 나갔다는 말을 들었고, 군 트럭에 실려나간 사람들이 총살되거나 수장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 무렵부터 망인의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으며, 1956. 10. 1.경 망인이 주소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신고하였다.
 
다.  그 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이 있기까지의 경과
 ⁠(1) 제4대 국회는 1960. 6.경 양민학살진상조사특별위원회(이하 ⁠‘양민학살특위’라 한다)를 구성하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의 실태를 조사하면서 이에 관한 신고서를 접수받기 시작하였으나, 양민학살특위는 1961년경 5·16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였다.
 ⁠(2) 원고들은 2006. 3. 29.경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이하 ⁠‘제주4·3실무위’라 한다) 위원장으로부터 제주4·3사건 희생자(행방불명)의 유족으로 결정되었음을 통지받았다.
 ⁠(3) 원고들은 2010. 2. 25.경 제주특별자치도 4·3사업소장(이하 ⁠‘4·3사업소장’이라 한다)으로부터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측지점에서 실시된 4·3희생자유해발굴사업의 DNA 분석 결과(이하 ⁠‘DNA 분석 결과’라 한다) 망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4)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라 한다)는 2005. 12. 1.부터 2006. 11. 30.까지 원고 2 등으로부터 한국전쟁 직후 제주지역에서 민간인들이 집단 희생된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신청을 접수하여, 2006. 4. 25.경부터 2007. 2. 20.경까지 사이에 총 4차례의 회의를 거쳐 위 진실규명 신청사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였다.
 ⁠(5) 그 후 과거사정리위는 원고들을 비롯한 관련자 및 목격자들의 진술과 각종 자료를 수집하는 조사과정을 거쳐, 망인이 1950. 6. 28.경 의귀출장소 경찰 등에 예비검속되어 서귀포경찰서로 이송된 다음 절간고구마창고에 구금되어 있다가 1950. 7. 29.경 군 트럭에 실려 나가 정뜨르비행장에서 군에 의해 총살되어 매장된 사실을 인정하고, 경찰에 의한 예비검속 및 군에 의한 총살(이하 ⁠‘이 사건 가해행위’라 한다)은 불법한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한 후 2010. 6. 8. 망인 외 194명의 제주예비검속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라.  원고들을 비롯한 유족들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제출한 각종 신고서의 내용
 ⁠(1) 망인의 아버지인 소외 3은 1960. 6. 5. 유족대표로 양민학살특위에 양민학살진상규명신고를 하였는데, 당시에 제출된 신고서(을 제3호증 중 일부)에는 ⁠‘학살 집행자 관직 및 성명’란에 ⁠‘ 소외 4’로, ⁠‘요망 사항’란에 ⁠‘학살한 살해 장소 및 살해 일자를 알고저 함’이라고 각 기재되어 있다.
 ⁠(2) 원고 2가 제주4·3실무위에 제출한 희생자 신고서(갑 제7호증)에는 망인이 1950. 6. 26. 예비검속된 후 행방불명되었으며 1950. 7. 21. 처형되었다는 소문만 접하였을 뿐 망인이 사망한 장소에 관한 정보를 듣거나 망인의 시신은 인수하지는 못하였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3) 또한 원고 2가 2006. 1. 9. 과거사정리위에 제출한 진실규명신청서(을 제1호증)에는 망인이 사망한 것으로 표시됨과 아울러, 망인이 1950. 6. 26. 예비검속되어 행방불명이 된 후 소문을 통해 1950. 7. 29. 바다에 수장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2.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피고 소속 경찰들과 군인들이 상부의 지시를 받고 망인을 예비검속한 후 정당한 이유 및 절차 없이 구금, 살해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망인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할 것인바, 망인 및 그 유족들인 원고들이 이로 인하여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에 따라 그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하여 망인 및 그 유족들인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3.  피고의 항변에 대한 판단 
가.  소멸시효 항변
피고는, 이 사건 소는 원고들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해당하는, 망인의 사망시점인 1950. 7. 하순경이나, 원고들이 소외 2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날인 1950. 9. 18. 또는 원고들이 연좌제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망인에 대한 허위의 사망신고를 한 1956. 10. 1.로부터 3년, 불법행위일인 망인이 사망한 날인 1950. 7. 하순경으로부터 5년이 경과하여 제기되었으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항변한다.
 
나.  판단
 ⁠(1) 살피건대 국가에 대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1921. 4. 7. 조선총독부 법률 제42호로 제정되고, 1951. 9. 24. 법률 제217호로 제정된 구 재정법 제82조에 의하여 폐지되기 전의 구 회계법 제32조)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는바,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망인 및 그 유족들인 원고들에 대한 불법행위일로서 그들에게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 날은 망인의 사망일인 1950. 7. 29.경이라고 할 것인데, 원고들의 이 사건 소가 그로부터 5년이 훨씬 경과한 2010. 11. 9. 제기되었음은 기록상 명백하다.
 ⁠(2) 그러나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위 인정 사실들을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망인은 1950. 6. 28.경 의귀출장소 경찰 등에 예비검속되어 서귀포경찰서로 이송된 다음 절간고구마창고에 구금되어 있다가 1950. 7. 29.경 군 트럭에 실려 나가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된 후 그곳에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데, 총살 및 매장은 일반인들과 격리된 장소에서 어떠한 고지도 없이 군에 의해 비밀리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는 점(정뜨르비행장에서 사체를 인수한 사람이 있기는 하나,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보이고, 군 및 경찰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희생자들이 총살이나 수장되었다는 사실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모두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② 원고들은 망인이 예비검속되어 경찰에 연행된 사실까지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망인과 함께 서귀포 절간고구마창고에서 구금되어 있었던 소외 2로부터 망인 등이 군 트럭에 실려 나갔다는 정도의 말만 들었을 뿐 4·3사업소장으로부터 DNA 검사 결과를 통보받기 전까지는 망인이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국가로부터 전혀 통지받은 바 없고, 다만 당시 소문에 비추어 망인이 사망하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기는 하였으나, 다른 한편 정뜨르비행장에서 기지로 총살을 모면하여 집으로 돌아온 사람도 있었으므로 원고들이 망인이 사망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실제로 원고 2는 제주4·3실무위 위원장에게 희생자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희생자의 신고사유란에 ⁠“사망”이 아니라 ⁠“행방불명”이라고만 기재하였다), ③ 원고들은 4·3사업소장으로부터 DNA 검사 결과를 통보받기 전까지는 망인의 사망 여부 및 사망장소를 제대로 알 수 없었고, 더욱이 과거사정리위의 진실규명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망인의 사망원인이 이 사건 가해행위에 의한 것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원고들로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를 확정하기 곤란하였는바, 따라서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할 것인 점, ④ 원고들은 1956. 10. 1.경 망인이 주소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신고하였는데, 이는 망인의 예비검속에 의한 행방불명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로부터 연좌제를 받을 우려 때문에 사망일자 및 사망장소를 허위로 기재하여 사망신고한 것으로 보일 뿐, 원고들이 그 무렵 망인이 이 사건 가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사실을 명확히 인지한 후 사망신고를 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는 점, ⑤ 앞서 본 바와 같이 비록 원고들이 2006. 3. 29.경 제주4·3실무위 위원장으로부터 희생자(행방불명)의 유족으로 결정되었음을 통지받았기는 하였으나, 위와 같은 통지내용을 망인이 이 사건 가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사실을 확정한 취지로 보기 어렵고, 그 외 원고 2를 비롯한 망인의 유족들이 제출한 각 신고서상에는 유족들이 그 당시에 망인의 사망사실을 이미 인지한 것과 같은 취지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망인의 유족들이 소문 등을 통해 전해들은 추측성 내용에 불과한 것으로서 위 각 신고서에 각기 망인이 사망한 시점이나 살해방법 등에 관한 기술이 서로 불일치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를 들어 유족들이 망인이 이 사건 가해행위로 인해 사망한 사실을 그 당시에 이미 확정적으로 인식하였다고는 보기 어려운 점, ⑥ 전쟁이나 내란 등에 의하여 조성된 위난의 시기에 개인에 대하여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한,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하에 조직적으로 자행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하여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망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망인의 유해발견 통지를 받은 2010. 2. 25.경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본질적으로 국가는 그 성립 요소인 국민을 보호할 절대적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고,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다는 점을 더하여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국가기관이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밀행적·조직적으로 이 사건 가해행위를 가한 이후에 망인을 매장하여 이를 은폐까지 한 이 사건에서, 원고들을 비롯한 망인의 유족들이 1960년경 양민학살특위에 진상규명신고를 하는 등 망인의 생사확인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피고는 피고 산하 군, 경찰 등이 보관하고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예비검속사건 관련 자료를 검토하거나 관련자들의 진술을 청취하며 유해를 발굴하는 등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다가, 이 사건 가해행위로부터 약 60여 년이 지나 과거사정리위의 진실규명결정에 의해 이 사건 가해행위의 구체적인 진상이 밝혀지게 되자, 이제 와서 뒤늦게 원고들이 이 사건 가해행위의 전모를 어림잡아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09다72599 판결 참조), 결국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받아들일 수 없다.
 
4.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가.  장례비
갑 제5호증의 1, 3, 갑 제6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원고들이 망인에 대한 장례비로 지출한 금액은 6,323,000원(= 장례식장 사용료 등 1,623,000원 + 장의사 비용 4,700,000원)으로 봄이 상당하다(원고들은 2010. 5. 29.과 같은 달 30일 2일간 망인에 대한 장례비로 총 9,059,250원을 지출하였다고 주장하나, 각종 식음료 및 물품구입대금에 관한 갑 제5호증의 2, 4, 5의 각 기재만으로는 이들이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 범위 내의 지출로서 장례비에 포함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원고들이 지출한 장례비는 원고들이 주장하는 1.5:1:1의 비율에 의한다.
 
나.  위자료
망인과 원고들이 이 사건 가해행위로 인해 겪었을 극심한 정신적 고통, 불법행위일로부터 당심 변론종결일에 이르기까지 60년 이상 오랜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의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이 크게 상승하였고, 이 사건 가해행위일로부터 당심 변론종결일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동안 배상이 지연되었음에도 그 기간에 대한 지연배상금을 가산하지 아니하는 사정, 기타 이 사건 변론을 통하여 나타난 제반 사정 등에 비추어 볼 때, 위자료는 당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등 참조), 망인에 대하여는 80,000,000원, 망인의 처인 원고 1에 대하여는 위 원고가 구하는 바와 같이 20,000,000원, 망인의 자녀인 원고 2, 3에 대하여는 15,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다.  원고들의 각 손해배상금
 ⁠(1) 원고 1: 22,709,857원 ⁠[20,000,000원(본인의 위자료) + 2,709,857원(장례비 = 6,323,000원 × 3/7, 소수점 이하 버림, 이하 같다)]
 ⁠(2) 원고 2, 3: 각 56,806,571원[40,000,000원(망인의 위자료 80,000,000원 × 상속분 1/2) + 15,000,000원(본인의 위자료) + 1,806,571원(장례비 = 6,323,000원 × 2/7)]
 
라.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이 사건 가해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으로 원고 1에게 22,709,857원 및 그 중 장례비 2,709,857원에 대하여는 망인의 장례비 지출 이후로서 원고 1이 구하는 바에 따라 2010. 6. 1.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당심판결 선고일인 2012. 5. 2.까지는 민법에서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속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연 20%의, 위자료 20,000,000원에 대하여는 당심 변론종결일인 2012. 4. 18.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원고 2, 3에게 각 56,806,571원 및 그 중 각 장례비 1,806,571원에 대하여는 망인의 장례일 이후로서 원고 2, 3이 구하는 바에 따라 2010. 6. 1.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당심판결 선고일인 2012. 5. 2.까지는 민법에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연 20%의, 각 위자료 55,000,000원에 대하여는 당심 변론종결일인 2012. 4. 18.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할 것인바, 이와 결론을 달리한 제1심판결은 부당하므로, 원고들의 항소 및 당심에서 확장된 원고 2, 3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제1심판결을 위와 같이 변경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대경(재판장) 이용우 김호석

출처 : 광주고등법원 2012. 05. 02. 선고 2011나506 판결 | 사법정보공개포털 판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