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의 판도를 바꾸는 신의 한 수!
얼마 전 한 중소 수출기업 대표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남아시아 바이어에게 기계부품 3억 원어치를 보냈는데, 선적 후 컨테이너가 환적항에서 파손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계약서에는 FOB 부산항이라고만 적혀 있었고, 양측 모두 보험 가입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책임 소재를 두고 6개월 넘게 분쟁이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인코텀즈(Incoterms) 조건 하나가 수천만 원의 손익을 결정짓는 사례는 국제 물품매매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핵심 질문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인코텀즈 조건을 잘못 골라서 손해를 봤는데, 계약을 다시 고칠 수 있을까요?"
핵심 결론: 인코텀즈 조건은 당사자 간 합의로 정하는 계약 조항이므로 양측이 동의하면 변경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미 물품이 선적되어 위험이 이전된 뒤라면, 사후적으로 조건을 바꿔도 이미 발생한 손해의 책임 귀속을 뒤집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인코텀즈는 국제상업회의소(ICC)가 제정한 국제 무역 거래조건 해석 규칙입니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버전은 Incoterms 2020이며, 총 11가지 조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규칙은 그 자체로 법률은 아니지만, 계약서에 특정 조건을 기재하면 해당 조건이 계약의 일부가 되어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인코텀즈가 결정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핵심은 비용 부담 시점과 위험 이전 시점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차이를 간과하면 운송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 비용은 내가 냈는데 보험 청구 권한은 상대방에게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수출기업 사례는 FOB 조건이었기 때문에 본선 적재 이후의 환적항 파손은 원칙적으로 매수인 위험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매수인이 적하보험(cargo insurance)을 가입하지 않았고, 매도인도 CIF가 아닌 FOB를 선택했기에 보험 공백이 발생한 것입니다.
국제 물품매매에서는 유엔국제물품매매협약(CISG, 일명 비엔나협약)이 자동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2005년부터 CISG 체약국이며, 상대국도 체약국이면 당사자가 별도 배제하지 않는 한 CISG가 기본법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CISG 제67조는 위험 이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인코텀즈 조건과 CISG 규정이 충돌할 경우 인코텀즈가 우선 적용됩니다. 인코텀즈 조건이 당사자 간 특약에 해당하고, CISG는 특약이 없을 때 보충적으로 적용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계약서에 인코텀즈 조건을 명확히 기재하는 것이 CISG 규정만 믿는 것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인코텀즈 관련 분쟁은 대부분 위험 이전 시점의 해석과 보험 처리를 둘러싸고 발생합니다. 분쟁 해결 절차는 계약서에 중재 조항이 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중재 조항이 있는 경우: ICC 국제중재, SIAC(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 대한상사중재원(KCAB) 등 합의된 중재기관에 중재를 신청합니다. 중재판정은 뉴욕협약(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에 따라 170개국 이상에서 집행이 가능하므로, 국제거래에서는 소송보다 효율적입니다.
중재 조항이 없는 경우: 상대방 소재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한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음을 주장해야 합니다.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됩니다.
실무에서 보면 계약서에 인코텀즈 조건은 한 줄로 적어두면서도, 분쟁해결 조항이나 준거법 조항은 아예 빠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인코텀즈 조건 선택만큼이나 중재 합의, 준거법 지정, 보험 조건 특약을 함께 정비하는 것이 국제 물품매매 계약의 기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