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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대전에 사는 김 모 씨(47세, 회사원)는 갑작스러운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쯤 지나서야 아버지가 남긴 채무가 약 1억 2,000만 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명의 부동산이나 예금은 거의 없었고, 남은 것은 카드론, 사업자 대출, 개인 간 차용증뿐이었습니다.
김 씨에게는 누나 한 명(50세), 여동생 한 명(44세), 남동생 한 명(42세)이 있었습니다. 형제 넷 모두 "아버지 빚을 떠안을 수는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지만, 문제는 상속포기를 어떻게 함께 진행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각자 다른 지역에 살고, 직장 때문에 법원에 여러 번 방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상속포기를 "가족 대표 한 명이 하면 나머지도 자동으로 처리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민법 제1041조에 따라 상속포기는 각 상속인이 개별적으로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합니다. 상속포기는 일신전속적 권리행사이므로, 한 사람의 포기가 다른 상속인에게 자동으로 효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같은 피상속인에 대한 상속포기 사건이라면, 공동상속인 전원이 하나의 신청서에 함께 기재하여 제출하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이를 흔히 "공동 신고" 또는 "일괄 신고"라고 부릅니다. 가정법원에서도 동일 피상속인의 사건은 하나의 사건번호로 묶어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핵심 정리: 상속포기의 법적 효력은 상속인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발생하지만, 절차상으로는 공동상속인이 함께 하나의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인지대와 송달료를 절감할 수 있고, 법원 방문 횟수도 줄일 수 있습니다.
김 씨 형제의 사례에서 가장 주의해야 했던 부분이 바로 상속포기 기간이었습니다. 민법 제1019조 제1항에 의하면 상속포기는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3개월의 기산점이 각 상속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 씨 본인은 아버지의 사망 당일 사망 사실을 알았으므로 사망일이 기산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거주하는 여동생은 장례 이틀 뒤에야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론상 여동생의 기산점은 이틀 뒤가 됩니다.
실무상 유의사항
공동 신고를 한다 하더라도, 기간 도과(초과) 여부는 각 상속인별로 개별 판단됩니다. 따라서 형제 중 한 명이라도 3개월 기한이 임박했다면, 그 사람을 기준으로 서둘러 신청해야 합니다. 실무에서는 가장 먼저 사망 사실을 안 사람의 기산점을 기준으로 전체 일정을 관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김 씨 형제의 경우, 아버지가 2025년 1월 15일에 사망하였고 김 씨 본인이 같은 날 알았으므로, 늦어도 2025년 4월 15일까지는 신청서가 법원에 접수되어야 했습니다. 형제들은 사망 후 약 두 달이 지난 3월 중순에야 채무 규모를 파악하고 상속포기를 결심했으므로, 시간적 여유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김 씨 형제 4명이 실제로 밟은 절차를 단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동 신고 시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편 접수 및 전자소송도 가능합니다. 김 씨의 여동생처럼 타 지역이나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 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ecfs.scourt.go.kr)을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동 신고의 경우 전자소송에서는 대표 청구인 1명의 전자서명으로 접수하되, 나머지 청구인들의 위임장(인감증명서 첨부)이 별도로 필요할 수 있어 미리 법원에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김 씨 형제 4명은 공동 신청서를 작성한 뒤, 대전가정법원에 우편으로 접수하였습니다. 접수 약 3주 후 상속포기 심판이 인용되었고, 4명 모두 아버지의 채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상속포기를 하면 그 상속인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봅니다(민법 제1042조). 이는 곧 다음 순위 상속인에게 상속권이 넘어간다는 의미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 김 씨 형제(1순위 자녀 전원)가 모두 포기하면, 상속권은 아버지의 부모(2순위 직계존속)에게 넘어갑니다. 만약 조부모도 생존해 계시다면, 조부모 역시 상속포기를 하지 않으면 1억 2,000만 원의 채무를 떠안게 됩니다. 실무에서는 이 부분을 간과하여 고령의 조부모가 예기치 않게 채무를 승계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김 씨의 경우에도 80대 할머니가 생존해 계셨기 때문에, 형제들의 상속포기 심판이 확정된 직후 할머니의 상속포기 신청도 별도로 진행하였습니다. 할머니의 기산점은 "자신이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안 날"이므로, 1순위 전원의 포기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이 기한이 됩니다.
그 이후 3순위인 아버지의 형제자매에게까지 상속이 넘어갈 수 있으므로, 가능하다면 해당 친족들에게도 미리 알려 각자 상속포기를 진행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상속포기는 한 세대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연쇄적 대응이 필요한 절차라는 점을 김 씨 형제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