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런 사연을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장을 남겼고, 유언장에는 장남을 유언집행자로 지정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장남이 상속재산을 독단적으로 처분하기 시작했고,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의 뜻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재산이 흘러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럴 때 상속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바로 유언집행자 해임 청구입니다.
민법 제1098조는 유언집행자가 그 임무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가정법원에 해임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해임 사유가 인정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준비 없이 청구했다가 기각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해임 청구를 검토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핵심 사유 7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민법 제1098조 — 유언집행자가 그 임무를 태만히 하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이해관계인 또는 검사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이 이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임무 태만" 또는 "정당한 사유"라는 두 가지 요건입니다. 법원은 이를 포괄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구체적 사안에서 유언집행자의 행위가 상속인 전체의 이익이나 유언의 취지를 해치는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살핍니다. 해임 청구권자는 공동상속인, 수유자(유증을 받은 사람), 기타 이해관계인, 그리고 검사입니다.
유언집행자가 법원의 허가나 다른 상속인의 동의 없이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예금을 인출하여 개인 계좌로 이전하는 행위는 가장 대표적인 해임 사유입니다. 상속재산 목록에서 일부 재산을 빠뜨리고 신고하지 않는 은닉 행위도 동일하게 판단됩니다.
유언자가 "장녀에게 A 부동산을 유증한다"고 명시했는데, 유언집행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다른 재산으로 대체하려는 경우입니다. 유언집행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유언의 취지에 따라 충실히 집행하는 것이므로, 이를 위반하면 정당한 해임 사유가 됩니다.
유언집행자로 지정되었음에도 6개월 이상 아무런 집행 절차를 진행하지 않거나, 상속재산목록 작성 의무(민법 제1003조 준용)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실무에서는 취임 후 3개월 이상 재산목록을 작성하지 않으면 태만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언집행자가 자신이 상속인인 동시에 다른 상속인과 분쟁 중인 경우, 공정한 집행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유언집행자인 장남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재산을 분배하거나, 유류분 반환 청구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집행을 주도하는 것은 해임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유언집행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부담합니다. 관리 대상 부동산의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지 않아 공실이 장기화되거나, 건물 관리를 방치하여 시설이 훼손되는 등 재산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통상 시가 대비 10% 이상 가치가 하락하면 해임 청구의 유력한 근거가 됩니다.
상속인들이 상속재산의 현황이나 집행 경과에 대해 정보 제공을 요청했음에도 유언집행자가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허위로 보고하는 경우입니다. 실무에서는 내용증명 등으로 2회 이상 요청했음에도 응답하지 않으면 해임 사유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유언집행자가 치매 등으로 의사능력을 잃었거나,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입니다. 민법 제1099조는 미성년자와 파산선고를 받은 자를 유언집행자의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며, 지정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더라도 이후 결격사유가 발생하면 해임 청구가 가능합니다.
유언집행자 해임 청구는 가정법원에 가사비송사건으로 신청합니다. 관할은 상속이 개시된 곳(피상속인의 마지막 주소지)의 가정법원이며, 인지액은 5,000원 수준으로 비용 부담은 크지 않습니다.
준비 서류: 유언장 사본, 상속관계를 증명하는 가족관계증명서 및 제적등본, 유언집행자의 해임 사유를 소명하는 증거자료(통장 거래내역, 부동산 등기부등본, 내용증명 발송 내역 등)
특히 중요한 점은 해임 청구가 인용되기까지 통상 2~4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유언집행자가 재산을 추가로 처분할 우려가 있다면, 해임 청구와 함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병행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법원이 임시 유언집행자를 선임하거나, 기존 유언집행자의 직무 수행을 즉시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해임 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은 청구인에게 있으므로, 가능한 한 빨리 재산 처분 내역, 유언 내용과의 불일치, 연락 거부 기록 등 객관적 증거를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녹취록이나 문자 메시지도 보조 증거로 활용될 수 있으나, 금융거래내역이나 등기부등본 같은 공적 자료가 더욱 강력한 소명 자료가 됩니다.
해임이 확정되면 가정법원은 직권으로 또는 이해관계인의 청구에 의하여 새로운 유언집행자를 선임하게 됩니다(민법 제1096조). 새로 선임되는 유언집행자는 변호사나 법무사 등 제3의 전문가가 지정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보수는 상속재산에서 지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