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줄이고 결과로 입증합니다.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70대 초반의 사업가 한 분이 오랜 고민 끝에 상담실을 찾아오셨습니다. 자녀가 셋인데, 사업을 함께 운영해 온 둘째 아들에게 핵심 자산을 집중적으로 물려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유언장을 작성하면 나머지 자녀들이 유류분(법이 보장하는 최소 상속분)을 청구할 것이 분명하니,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유류분 문제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지가 가장 큰 질문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유언대용신탁은 유류분 분쟁을 '원천 차단'하는 만능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올바르게 설계하면 분쟁 가능성을 상당 부분 낮추고, 자산의 이전 시기와 방법을 훨씬 유연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됩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재산을 맡기는 사람)가 생전에 신탁회사나 수탁자에게 재산을 이전하고,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스스로 수익을 받다가 사망 시 미리 지정한 사람(귀속권리자)에게 신탁재산이 돌아가도록 설계하는 구조입니다. 신탁법 제59조에 근거를 둡니다.
핵심 구조
위탁자(피상속인) → 수탁자(신탁회사 등)에게 재산 이전 → 위탁자 생존 중 수익 향유 → 사망 시 지정된 귀속권리자에게 재산 귀속
일반 유언과 비교하면, 유언은 사망 시점에 비로소 효력이 발생하는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 이미 재산의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이전된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이 때문에 "이미 내 소유가 아닌 재산에 대해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는가"라는 법적 논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가장 많이 오해되는 영역입니다. 현재 법원의 태도와 학계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결국 유언대용신탁은 "유류분을 무력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상속 설계의 유연성과 실행 확실성을 높이는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유류분 회피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유언대용신탁은 일반 유언이나 증여로는 불가능한 고유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산의 단계적 이전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사망 후 배우자에게 매월 300만 원씩 생활비를 지급하고, 배우자 사후에 잔여 재산을 자녀에게 귀속시킨다"는 설계가 가능합니다. 일반 유언으로는 이런 조건부, 단계적 이전이 어렵습니다.
검인 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자필증서 유언은 사망 후 가정법원의 검인을 거쳐야 효력을 주장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수개월이 소요되고 다른 상속인에게 유언 내용이 공개됩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 사망 즉시 수탁자가 계약에 따라 집행하므로 시간적 공백이 없습니다.
유언의 철회, 변조 위험이 없습니다. 유언장은 위탁자 사후 분실되거나 다른 상속인이 존재를 부인하는 분쟁이 빈번합니다. 신탁계약은 수탁자(금융기관 등)가 관리하므로 이런 위험이 구조적으로 차단됩니다.
치매 등 판단능력 상실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위탁자가 인지능력이 떨어지더라도 이미 체결된 신탁계약에 따라 재산이 관리되므로, 후견 개시 전 공백기를 메울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유언대용신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대부분 설계 단계의 부주의에서 비롯됩니다. 아래 사항을 반드시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잘 설계하면 상속인 간의 분쟁 가능성을 줄이고, 위탁자의 의사를 가장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다만 그 효과는 신탁계약의 구조와 세부 조항에 달려 있으므로, 상속재산의 규모와 가족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특히 유류분 쟁점은 아직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가 부재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향후 판례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여유를 두고 설계하는 것이 현명한 접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