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얼마 전 한 의뢰인이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결혼 12년 차, 외형상 화목해 보였던 가정이었지만,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남편은 한 번도 손을 댄 적은 없지만, 매일 밤 인격을 짓밟는 말을 퍼붓고, 휴대폰을 검사하며, 가족과의 연락마저 막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때린 적이 없는데도 이것을 가정폭력이라고 할 수 있나요? 보호명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실무 상담 현장에서 의외로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오늘은 배우자의 정신적 학대가 가정폭력으로 인정되는 경향과, 보호명령·접근금지 청구가 받아들여지기 위한 조건을 Q&A 형식으로 풀어보겠습니다.
A.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정됩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 모두를 "가정폭력"으로 정의합니다(법 제2조 제1호). 즉, 폭행죄·상해죄만이 아니라 협박, 모욕, 명예훼손, 강요, 주거침입, 재물손괴 등도 모두 포함됩니다.
최근 법원의 보호명령 사건 경향을 보면, 신체적 폭행이 없는 사안에서도 지속적·반복적 폭언, 인격모독, 심리적 통제(가스라이팅), 고립 강요 등이 입증되면 가정폭력으로 보아 접근금지·퇴거명령을 발령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사건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네가 뭘 할 줄 아냐", "부모 잘못 만나 너 같은 게 나왔다"는 말을 수년간 반복하고, 친정 가족과의 통화를 막은 행위에 대해 법원은 모욕과 강요에 해당한다고 보아 6개월의 접근금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A. 정신적 학대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입증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다음 자료들이 결정적 증거로 활용됩니다.
첫째, 녹음 파일입니다. 본인이 대화 당사자로 참여한 녹음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며, 가장 강력한 직접 증거가 됩니다. 둘째, 카카오톡·문자 메시지의 캡처입니다. 욕설, 협박, 비하 발언이 담긴 대화 내역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정신과 진료 기록과 상담일지입니다. 우울증·불안장애·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은 피해의 정도와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넷째, 주변인의 진술서, 일기, 가계부 등 정황 증거도 종합적으로 고려됩니다.
법원은 단 한 번의 폭언만으로 가정폭력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지속성과 반복성,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자의 정신적 손상이 함께 입증될 때 인정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A. 피해자 보호명령은 형사 절차와 별개로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청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가정폭력처벌법 제55조의2). 청구할 수 있는 조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해자의 주거지·직장 등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전화·문자·SNS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주거에서의 퇴거, 친권행사 제한 등이 가능합니다. 기간은 6개월 이내이며, 2개월 단위로 연장하여 최대 2년까지 가능합니다. 긴급한 경우에는 임시보호명령을 통해 결정 전이라도 즉시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A. 가정폭력으로 인정된 사실은 이혼 사유(민법 제840조 제3호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의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또한 보호명령 결정문이나 가정폭력 사건 기록은 위자료 산정에서 가해자 책임을 가중하는 자료로 작용하며, 자녀가 있는 경우 친권·양육권 판단에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실무에서 보면, 보호명령을 먼저 받아둔 뒤 이혼소송으로 넘어가는 전략이 피해자 측에 훨씬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명령 단계에서 인정된 사실관계가 후속 소송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A. 세 가지를 우선 권해 드립니다. ①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112 또는 여성긴급전화 1366으로 즉시 연락하시고, 필요 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쉼터) 입소를 고려하십시오. ② 지금까지의 폭언·협박 내역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고, 흩어져 있는 녹음·메시지·진료기록을 한곳에 모으십시오. ③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지 않다면 가능한 빨리 진료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의 회복을 위해서도, 향후 절차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신적 학대는 보이지 않기에 더 오래 견디게 되고, 그래서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침묵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 속 작은 기록들이 모이면, 법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