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서 10년째 분식집을 운영하던 50대 박씨는, 장마철 천장에서 빗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누수가 점점 심해져 영업에 지장이 생겼지만, 임대인은 "건물이 오래됐으니 어쩔 수 없다"며 수선을 미뤘습니다. 결국 곰팡이가 번지고 손님 발길이 끊기자 박씨는 매출의 절반 이상을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 임대인에게 법적으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상가 대규모 수선을 앞두고 있다면, 임대인의 의무 범위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임차인이 불필요한 비용을 떠안거나 영업 손실을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래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민법 제623조에 따르면,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이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를 부담합니다. 여기서 대규모 수선이란 건물의 구조적 부분, 즉 지붕·외벽·기둥·배관·방수 등 건물 자체의 안전과 기능에 관한 보수를 말합니다. 화장실 변기 교체나 전구 교환 같은 소규모 수선과는 구별됩니다. 지붕 누수, 외벽 균열, 하수관 노후 파열 등은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실무에서는 "임차인이 수선비를 부담한다"는 특약이 들어간 계약서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이러한 특약이 있더라도 건물 주요 구조 부분의 대규모 수선까지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무효로 판단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특약의 범위가 "소규모 수선"에 한정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특약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화나 구두로 수선을 요청했다면, 나중에 "그런 말을 들은 적 없다"는 반박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증명을 보내면 요청 사실과 날짜가 공식 기록으로 남습니다. 수선을 요청한 날짜는 이후 차임 감액이나 손해배상 산정의 기준 시점이 되기도 합니다. 내용증명은 우체국에서 약 3,000~5,000원에 발송할 수 있으며, 형식은 자유입니다.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상가의 일부를 사용할 수 없거나 영업에 중대한 지장이 생긴 경우, 임차인은 민법 제627조에 따라 그 비율만큼 차임(임대료) 감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수로 인해 매장의 30%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차임 감액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사용·수익이 완전히 불가능해진 경우에는 차임 전액의 지급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영업을 멈출 수 없어 임차인이 직접 수선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때 민법 제626조의 필요비 상환청구권에 따라, 임대인에게 지출한 수선비용의 즉시 상환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사 전에 사진, 견적서, 영수증 등 증거를 꼼꼼히 확보해 두는 것입니다. 증거 없이 사후에 청구하면 금액 입증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상당한 기간을 정해 수선을 최고(독촉)했음에도 임대인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임차인은 임대차계약 해지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해지 이후에도 수선 불이행 기간 동안 발생한 영업 손실, 이전 비용 등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해지 전에 최고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순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임대인이 뒤늦게 수선에 착수하더라도, 공사 기간 동안 영업이 중단되거나 매출이 감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과거 매출 자료(카드 매출 내역, 부가세 신고서 등)가 핵심 증거가 됩니다. 평소 매출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두면 유리합니다. 실무에서는 직전 3~6개월 평균 매출을 기준으로 손실액을 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소개한 박씨의 사연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박씨가 처음 누수를 발견했을 때 사진을 찍고, 임대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고, 수선 견적서를 받아두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상가 수선 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대부분 증거의 유무입니다.
상가 건물의 대규모 수선은 임차인의 영업과 생계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임대인의 의무 범위를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한 시점에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