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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범죄 · 디지털/통신 범죄(해킹·보이스피싱 등) 2026.08.01 조회 35

보이스피싱 계좌 명의자, 몰랐다면 처벌 면할 수 있을까

조희경 변호사
법무법인 솔 · 서울특별시 서초구

얼마 전 이런 사연을 접했습니다. 지방에서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후반의 한 청년이, 온라인 구인 사이트에서 '재택 회계 보조, 일당 12만 원'이라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채용 담당자라는 사람은 '거래 대금을 대신 받아 다른 계좌로 이체해주기만 하면 된다'며 통장과 체크카드를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넘긴 계좌로 사흘 만에 3천만 원이 넘는 돈이 오갔고, 청년은 어느 날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쓰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이런 사례가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 통장만 빌려줬을 뿐인데, 왜 처벌 대상이 되는지 억울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보이스피싱 계좌 명의자가 정말로 처벌을 면할 수 있는지, 어떤 경우에 책임이 갈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통장만 빌려줬는데 왜 처벌받을까

보이스피싱 계좌 명의자가 마주하는 법적 위험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사기죄의 공범(방조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입니다.

먼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부터 보겠습니다. 이 법 제6조는 대가를 받거나 받기로 하고 통장·체크카드 등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대여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합니다. 즉 돈이 실제로 오갔는지,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했는지와 무관하게, 통장을 넘긴 행위 그 자체가 처벌 대상이 됩니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냥 아르바이트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이 실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항변입니다. 그러나 몰랐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핵심은 고의(범죄를 저지르려는 의사)의 정도입니다. 통장이 범죄에 쓰일 것을 알았거나, 최소한 그럴 가능성을 짐작하면서도 이를 감수했다면(미필적 고의), 사기방조죄까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사기방조가 인정되면 형량은 훨씬 무거워집니다.

처벌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단순히 속은 피해자'로 인정되고, 어떤 경우에 '공범'으로 취급될까요. 수사기관과 법원은 대체로 다음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봅니다.

  • 1대가 수령 여부 — 통장을 넘기고 돈을 받았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의 고의가 인정되기 쉽습니다.
  • 2거래의 비정상성 인식 — 통상적인 채용이라면 통장과 비밀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요구가 이상하다고 느낄 만한 정황이 있었는지가 중요합니다.
  • 3범행 관여 정도 — 단순히 계좌만 넘겼는지, 아니면 인출·전달 등 적극적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책임이 크게 달라집니다.
  • 4과거 유사 경력 —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통장을 빌려준 이력이 있다면 '몰랐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실무에서 보면, 아무런 대가 없이 지인의 부탁으로 잠깐 계좌를 빌려준 경우와, 고액 일당에 이끌려 여러 개의 통장을 넘긴 경우는 결론이 확연히 갈립니다. 후자로 갈수록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사기방조까지 문제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형사 책임 외에 잊지 말아야 할 민사·행정 책임

계좌 명의자가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형사처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민사상 손해배상 — 피해자들이 계좌 명의자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실제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명의자에게 청구가 집중되곤 합니다.

계좌 지급정지 및 금융거래 제한 —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계좌는 즉시 지급정지되고, 일정 기간 신규 계좌 개설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금융생활에 상당한 불편이 따릅니다.

결국 '몰랐으니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은 고의만 있으면 성립하고, 사기방조는 미필적 고의로도 가능하며, 여기에 민사 책임까지 겹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물론 진정으로 속아서 계좌를 넘긴 경우, 방어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범죄를 인식하지 못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초기에 확보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채용 공고 화면, 상대방과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통장을 넘기게 된 경위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이런 증거가 있으면 사기방조의 고의가 없었다는 점을 소명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다만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은 대가를 받고 통장을 넘긴 사실 자체로 성립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까지 완전히 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는 초범 여부, 반성 정도, 피해 회복 노력 등을 바탕으로 처분 수위를 낮추는 방향의 대응이 현실적입니다.

보이스피싱 계좌 문제는 초기 수사 단계에서 어떤 진술을 하고 어떤 자료를 제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단순히 속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스스로만 알고 있는 것과, 이를 법적으로 정리해 소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조희경
조희경 변호사의 코멘트
법무법인 솔 · 서울특별시 서초구
이 분야를 다루면서 느낀 점은, 계좌 명의자 대부분이 정말로 속은 피해자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초기 경찰 조사에서 진술이 정리되지 않으면 오히려 불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사 전 반드시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전문가와 대응 방향을 정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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