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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경기도에서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40대 남성 김 대표는 오랜 지인에게 급하다는 부탁을 받고 3,200만 원을 계좌로 송금했습니다. 각서나 차용증은 쓰지 않았습니다. "믿는 사이인데 종이 한 장 요구하기가 미안했다"는 것이 김 대표의 말이었습니다. 2년 뒤 관계가 틀어졌고, 지인은 "그 돈은 함께하던 사업 자금이었지 빌린 돈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첫 번째 갈림길이 바로 대여금 청구로 갈 것인가, 부당이득 반환 청구로 갈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같은 돈을 돌려받는 소송인데도 어떤 법적 성질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입증 책임의 무게, 소멸시효, 이자 계산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문제이지만,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 두 청구의 차이를 모르고 소장을 접수했다가 곤란을 겪습니다. 오늘은 두 청구권이 어떻게 다르고,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여금 청구는 소비대차 계약(돈을 빌려주고 돌려받기로 한 약정)을 근거로 합니다. 즉 "돈을 건넸고, 갚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두 가지를 원고가 증명해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한 송금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의 확립된 태도에 따르면, 돈이 오간 사실만으로는 그것이 '빌려준 돈'인지 '증여'인지 '투자'인지 '용역 대금'인지 자동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환 약정, 즉 갚기로 했다는 합의가 있었음을 원고가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차용증, 각서, 이자 지급 내역, "언제까지 갚겠다"는 문자·카카오톡 대화, 통화 녹취 등이 있으면 대여금 청구의 승소 가능성이 크게 올라갑니다.
앞선 김 대표 사례처럼 차용증이 없더라도, 계좌이체 메모에 '대여금'이라고 남겼거나 상대방이 일부라도 갚은 이력이 있다면 강력한 정황 증거가 됩니다.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10년이며, 약정한 이자가 없더라도 청구 시점부터 지연이자(연 5% 또는 상사채권의 경우 연 6%)를 붙일 수 있습니다.
부당이득 반환 청구는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민법 제741조는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의 재산으로 이익을 얻고 그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쉽게 말해 정당한 이유 없이 남의 돈을 가지고 있다면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청구의 장점은 '빌려줬다는 약정'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김 대표가 지인에게 돈을 보낸 것이 대여인지 투자인지 애매하고, 반환 약정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면, "어떤 이유로 돈을 줬는데 그 이유가 소멸했거나 애초에 없었으므로 부당이득으로 돌려달라"는 구성이 가능합니다.
다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판례상 부당이득 반환 청구에서도 '법률상 원인이 없다'는 점은 원칙적으로 반환을 구하는 원고가 주장·증명해야 합니다. 또한 소멸시효가 10년이긴 하지만, 상행위로 인한 부당이득이라면 5년이 적용될 여지가 있어 사안별 판단이 필요합니다.
두 청구의 핵심 차이
· 대여금: '갚기로 한 약정'을 증명 → 증거가 있으면 강력
· 부당이득: '정당한 원인이 없음'을 증명 → 약정 입증이 어려울 때 대안
그렇다면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할까요? 실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증거 관계가 애매한 사건에서는 대여금 청구를 주위적(1순위) 청구로, 부당이득 반환 청구를 예비적(2순위) 청구로 함께 제기하는 전략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렇게 하면 재판부가 대여 약정을 인정하면 대여금으로 승소하고, 약정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더라도 부당이득으로 판단해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열립니다. 하나의 소송에서 두 개의 안전장치를 두는 셈입니다.
김 대표 사건에서도 결국 이 방식이 유효하게 작동했습니다. 차용증은 없었지만 지인이 과거 300만 원을 갚은 이체 내역과 "나머지는 사정 좋아지면 갚을게"라는 문자가 발견되면서, 주위적 청구인 대여금이 인정되었습니다. 만약 그 증거마저 없었다면 예비적 부당이득 청구가 최후의 방어선이 되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돈을 돌려받는 소송의 성패는 단순히 '얼마를 언제 보냈나'가 아니라 그 돈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구성하고 증명하느냐에서 갈립니다. 송금할 때 이체 메모 한 줄, 차용증 한 장, 대화 한 마디가 몇 년 뒤 소송의 결과를 바꾼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