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진단과 분석, 결과로 증명합니다.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20대 취업준비생 A씨는 구직 사이트에서 '단순 서류 수거 및 전달, 일당 15만원'이라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하는 일은 지정된 장소에서 봉투를 받아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 것. 며칠 뒤 A씨는 경찰에 긴급체포되었습니다. 자신이 전달한 봉투 속 현금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었던 것입니다. A씨는 "나는 그게 사기 돈인 줄 전혀 몰랐다"고 호소했지만, 수사기관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최근 몇 년간 보이스피싱 범죄는 조직화·분업화되면서, A씨 같은 이른바 '현금 수거책' 또는 '전달책'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범죄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보이스피싱 전달책의 사기 고의 인정 여부를 둘러싼 법적 쟁점과, 고의가 부정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을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오해부터 바로잡겠습니다. "나는 전화도 안 걸었고, 돈을 직접 편취하지도 않았다"는 항변은 그 자체로는 면책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형법상 사기죄는 직접 피해자를 속인 사람뿐 아니라, 그 범행을 도운 사람(방조범)이나 역할을 분담한 사람(공동정범)도 함께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즉 현금을 수거해 조직에 전달하는 행위는 범죄 실현에 기여한 '분업'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평가의 전제가 되는 고의(故意, 범죄를 저지른다는 인식과 의사)가 있었느냐입니다.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개념이 바로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입니다. 쉽게 말해 "이게 범죄일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알면서도, 그래도 상관없다고 받아들이고 행동한 경우"를 뜻합니다. 확실히 알지 못했더라도, 정황상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는데 눈을 감았다면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다음과 같은 정황을 종합해 미필적 고의를 판단합니다.
이 중 하나라도 뚜렷하면 "몰랐다"는 주장만으로는 고의 부정이 어려워집니다. 특히 일당 수준은 거의 모든 사건에서 가장 먼저 지적되는 정황입니다.
반대로, 전달책이 실제로 범죄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평가될 여지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고의가 없으면 사기죄도 사기방조죄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고의 부정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다음과 같은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가 처음 공고를 접한 경위, 지급받기로 한 급여의 성격, 업무 지시 방식을 구체적으로 소명하고, 의심이 생긴 시점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객관적 자료(채팅 기록, 공고 캡처, 통화 내역 등)로 뒷받침하면 고의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전달 행위라도 정황에 따라 결론이 엇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짚을 점이 있습니다. 설령 사기 고의가 부정되더라도, 자신 명의의 계좌나 체크카드를 넘긴 경우에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 별도로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 법은 접근매체(통장·카드·비밀번호 등) 양도·대여만으로도 처벌하기 때문에, 고의 인정 기준이 사기죄보다 느슨합니다. 즉 "돈을 받지 않았다"거나 "사기인 줄 몰랐다"는 항변이 사기죄에는 통해도 전자금융거래법에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의 분업화는 더욱 교묘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상적인 구인으로 위장한 모집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선량한 구직자가 자신도 모르게 범죄에 연루될 위험도 커집니다. 전달책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면, 초기 진술 단계에서 고의 유무를 판단하는 핵심 정황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떤 자료로 뒷받침하느냐가 사건의 방향을 가릅니다. 한 번 고착된 진술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