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상조 상품에 가입했는데, 다음 날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이미 계약했는데 취소할 수 있을까요? 녹취도 안 했는데 증거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얼마 전 직장인 한 분이 이런 사연을 들고 상담을 오셨습니다. 퇴근길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지금만 특별 혜택"이라는 말에 얼떨결에 건강보조식품 1년 정기 구독을 약정하셨다고 합니다. 통장에서 첫 결제가 빠져나간 뒤에야 정신이 들었다는 거죠.
이처럼 상대방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가입을 권유하는 거래를 전화권유판매(전화로 재화나 서비스를 권유해 계약을 체결하는 특수 판매)라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화권유판매로 체결한 계약은 일정 기간 안에 청약철회(소비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방법과 증거 확보 요령을 사연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화권유판매로 계약한 소비자는 계약서를 받은 날 또는 재화를 공급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상조처럼 계약서 교부 시점이 기준이 되는 경우도 있어, 단순히 "7일"이라고만 알고 계시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렇습니다.
이 기간 안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단순 변심만으로 취소가 가능하고,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을 물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결제한 금액은 사업자가 환급을 지연하면 지연배상금까지 청구할 수 있습니다.
앞서 그 직장인분은 계약 다음 날 바로 상담을 오셨으니, 철회 기간이 넉넉히 남아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취소 의사를 전달하느냐"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14일이 이미 지났다면 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보면 철회 기간을 넘겼더라도 취소가 인정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첫째, 사업자가 청약철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안 날부터 다시 기간이 진행됩니다. 둘째, 계약서 자체를 교부받지 못했다면 교부받은 날부터 기산되므로 사실상 기간이 지나지 않은 셈이 됩니다. 셋째, 통화 과정에서 허위·과장 설명이 있었다면 기망에 의한 계약 취소나 손해배상을 별도로 다툴 수 있습니다.
즉 "며칠 지났으니 포기하자"고 섣불리 단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업자가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사연 속 직장인분의 가장 큰 걱정은 "녹취를 못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통화 녹음이 없더라도 확보할 수 있는 증거는 많습니다. 핵심은 취소 의사를 명확히, 날짜가 남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업자가 연락을 피하거나 환급을 거부한다면, 소비자상담센터(1372)나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전화권유판매업자가 등록 사업자라면 관할 지자체에 신고하는 것도 압박 수단이 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소비자분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구두로만 취소를 통보하는 것입니다. 전화로 "취소해달라"고 말했다가 사업자가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발뺌하면, 정작 철회 기간은 흘러가 버립니다.
따라서 취소 의사는 반드시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발송 사실 자체를 증거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그 직장인분은 상담 당일 내용증명을 발송했고, 며칠 뒤 전액을 환급받으셨습니다. 핵심은 빠른 대응과 기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