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얼마 전 이런 사연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20대 초반 여성 C씨는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VIP룸에 배정된 C씨는 만취한 손님 D씨로부터 심각한 성추행 피해를 입었습니다. C씨는 당시 업소 내 CCTV 사각지대에서 혼자 응대하고 있었고, 비상벨이나 호출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가해자 D씨를 형사 고소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C씨에게는 또 다른 의문이 남았습니다. 종업원이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사업주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지, 그 부분이 가장 억울했다고 합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유흥업소 등 접객업소 내 성범죄 신고 건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약 2,800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신고하지 못한 피해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수치가 줄지 않는 이유는 구조적입니다.
밀폐된 공간, 음주가 동반되는 업태 특성, 종업원이 손님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위계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문제는 이런 위험이 명백히 예측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주가 실질적인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가해자의 형사책임과 별개로, 유흥업소 사업주의 책임은 크게 세 가지 법적 근거에서 검토할 수 있습니다.
법원에서 사업주 책임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예견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입니다. 쉽게 말해, 사업주가 종업원에 대한 성범죄 위험을 알 수 있었는지, 그리고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않았는지를 따진다는 뜻입니다.
C씨의 사례로 돌아가면, 업소 측은 VIP룸이라는 밀폐 공간에 여성 종업원을 단독 배치하면서도 비상벨이나 CCTV를 설치하지 않았고, 종업원이 위험을 느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떤 체계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업주의 보호의무 위반이 상당히 무겁게 인정될 수 있습니다.
사업주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인정받을 수 있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많은 유흥업소 종업원이 정식 근로계약 없이 일하거나, 프리랜서 형태로 위장 계약을 맺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업주 측은 이를 근거로 "근로자가 아니므로 보호의무가 없다"고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계약의 형식보다 실질적인 지휘·감독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업무 지시를 받았다면 근로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많은 피해자가 사업주의 회유나 압박에 의해 신고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대응한다면 가해자뿐 아니라 사업주에게도 정당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가해자 개인만 처벌하는 것으로는 이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업주가 종업원의 안전에 투자할 유인이 없는 한, 동일한 피해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상벨 하나, CCTV 한 대, 2인 이상 배치 원칙 하나만으로도 예방할 수 있었던 피해가 사업주의 비용 절감 논리 앞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법원의 흐름을 보면, 접객업소 사업주의 안전배려의무를 점차 넓게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업종 특성상 성범죄 위험이 높다는 점이 명백한 유흥업소의 경우, 사업주가 적극적인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과실 비율이 상당히 높게 인정됩니다.
C씨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C씨는 가해자 형사 고소와 함께 사업주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고, 사업주의 보호의무 위반이 인정되어 위자료를 포함한 배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피해를 입었을 때, 가해자만이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 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방치한 사업주의 책임 역시 반드시 짚어야 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정확히 아는 것, 그것이 피해를 넘어서는 첫걸음이 됩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