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학 졸업, 경찰 출신 변호사입니다.
"부모님이 남기신 유언장이 정말 법적으로 유효한 걸까?" 상속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이 질문을 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실무에서 보면 자필증서 유언의 약 30~40%가 형식적 요건 하나를 빠뜨려 무효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중한 유언이 휴지 조각이 되지 않도록, 작성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핵심 사항들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입니다. 컴퓨터로 작성한 뒤 서명만 손으로 한 경우, 타인이 대신 작성한 경우 모두 무효입니다. 유언의 전문(내용 전체)을 유언자 본인이 직접 손으로 써야 합니다. 볼펜, 만년필, 붓펜 등 도구는 상관없지만, 반드시 본인의 필체여야 합니다.
"2024년 봄" 또는 "2024년 3월 중순"처럼 모호하게 적으면 무효가 됩니다. 반드시 "2024년 3월 15일"처럼 연, 월, 일을 특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날짜에 여러 유언이 존재할 경우 선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날짜 기재 누락은 실무에서 유언 무효 사유 1순위에 해당합니다.
의외로 빠뜨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민법은 자필증서 유언에 유언자의 주소 기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상 주소와 완전히 일치할 필요는 없지만, 유언자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OO, OOO동 OOO호"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유언자의 이름도 반드시 본인이 직접 적어야 합니다. 도장만 찍고 이름을 적지 않거나, 이니셜이나 호(號)만 적은 경우에는 요건 충족 여부에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주민등록상 성명을 정자체로 또렷하게 기재하시길 권합니다.
서명이 아니라 날인입니다. 민법상 자필증서 유언에는 도장을 찍거나 손도장(무인)을 남겨야 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서명만으로는 날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인감도장이 아니더라도 괜찮고, 막도장이나 손도장도 유효하지만, 반드시 날인 행위 자체는 있어야 합니다.
"재산은 알아서 나눠 가져라"처럼 모호한 표현은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어떤 재산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주는지 구체적으로 적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구 역삼동 OO아파트 101동 1001호를 장남 홍길동에게 유증한다"처럼 재산의 표시와 수증자를 명확히 해야 나중에 해석 다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자필증서 유언을 작성한 뒤 내용을 고치고 싶을 때도 정해진 방식이 있습니다. 민법 제1066조 제2항에 따라, 변경한 곳에 자필로 그 내용을 부기(덧붙여 적기)하고 서명해야 합니다. 줄을 긋고 위에 덮어쓰기만 한 경우, 변경 부분이 무효가 될 수 있으니 가능하면 새로 작성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자필증서 유언장을 발견하셨다면, 기쁜 마음 반 걱정 반이실 겁니다. 유언장을 보관하고 계신 분 또는 발견하신 분은 지체 없이 가정법원에 검인을 청구해야 합니다(민법 제1091조).
검인이란, 법원이 유언서의 현재 상태(형상, 내용)를 확인하고 보존하는 절차입니다. 유언의 유효·무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유언서가 위조·변조되지 않도록 증거 보전의 성격을 가집니다.
검인기일에는 법원이 상속인 전원에게 통지하고, 출석한 상속인들 앞에서 유언서를 개봉하여 상태를 확인합니다. 참석하지 않은 상속인이 있더라도 절차는 진행됩니다.
여기서 꼭 기억하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검인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유언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검인 없이는 부동산 등기 이전 등 실제 집행이 어려울 수 있고, 유언서를 은닉하거나 훼손하면 상속 결격 사유(민법 제1004조 제4호)에 해당하여 상속권 자체를 잃게 될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자필증서 유언이 형식적으로 완벽하게 유효하더라도, 그 내용이 특정 상속인의 유류분(법이 보장하는 최소 상속분)을 침해한다면 별도의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입니다(민법 제1112조).
예를 들어, 자녀가 두 명인데 유언으로 재산 전부를 한 자녀에게 남겼다면, 나머지 자녀는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유류분 반환 청구의 소멸시효는 상속의 개시와 유류분 침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상속이 개시된 때로부터 10년입니다.
자필증서 유언을 작성하실 때에는 유류분까지 미리 고려하셔야 나중에 가족 간 분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재산 목록을 정리하고, 각 상속인의 유류분을 계산해 본 뒤 유언 내용을 결정하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