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민사전문 변호사입니다
겨울철 전기장판 발화 사고는 매년 반복되는 대표적인 제조물 관련 분쟁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순히 "전기장판이 불났으니 제조사 책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용 연한, 사용 방식, 표시·경고 의무 이행 여부에 따라 책임이 제조사·판매자·사용자 사이에서 나뉘어 분배됩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가상 사례를 통해 책임 분배의 기준을 짚어보겠습니다.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A씨(54세, 자영업자)는 2024년 1월, 인쇄소 한쪽 휴게공간에 깔아둔 전기장판에서 불이 나 작업장 일부와 인쇄용지 약 4,200만 원 상당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해당 전기장판은 4년 전 동네 가전매장에서 구입한 제품으로, A씨는 휴게공간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외출한 사이 화재가 발생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발열선 일부 절연 피복의 노후 손상으로 인한 단락이 발화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한편 전기장판 위에는 두꺼운 라텍스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고, 제품 라벨과 사용설명서에는 "라텍스·메모리폼 위 사용 금지" 경고가 인쇄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A씨는 제조사 B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제조물책임법 제2조는 결함을 제조상 결함, 설계상 결함, 표시상 결함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이 사건에서 A씨가 입증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전기장판에 결함이 있었는가"입니다.
발화 원인이 발열선 절연 피복의 노후 손상이라는 점에서 제조상 결함을 다투기는 쉽지 않습니다. 핵심은 예상 사용 연한입니다. 한국소비자원이 권고하는 전기장판 권장 사용기간은 통상 3~5년이며, 이 사건 제품은 4년이 경과한 상태였습니다. 제조사가 사용설명서에 권장 교체주기를 명시했다면, 단순한 노후 손상은 결함이 아닌 자연 마모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을 결여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4년 사용한 전기장판이 정상적인 사용 조건에서도 발화하는 정도의 절연 성능을 갖췄다면, 이는 설계상 결함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동일 모델의 다른 화재 사례, 리콜 이력, 안전인증(KC) 기준 적합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합니다.
핵심 쟁점
제조사가 제품에 "라텍스·메모리폼 위 사용 금지"를 명시했음에도 사용자가 이를 위반한 경우, 그 자체로 면책 사유가 될 수 있는가?
라텍스와 메모리폼은 열을 가두는 성질이 강해 전기장판 발열선 위에서 사용하면 국부 과열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이는 업계에서 공지된 화재 위험 요인이며, 대부분의 제조사가 라벨과 설명서에 경고 문구를 게재합니다.
제조사가 표시·경고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경우, 사용자가 이를 무시하고 라텍스 위에 깔아 사용했다면 이는 명확한 사용자 과실입니다. 실무에서 보면 이러한 사용 방식이 발화의 직접 원인 또는 기여 원인으로 인정될 경우, 제조사 책임은 30~50% 수준으로 제한되고 나머지는 사용자 과실로 상계됩니다.
다만 경고 문구의 표시 방식이 형식적이거나, 일반 소비자가 인지하기 어려운 위치·크기로 기재된 경우라면 표시상 결함이 추가로 인정되어 제조사 책임이 다시 가중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라벨과 설명서 사진, 구매 당시 포장 상태 등을 증거로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판매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제조물책임법 제3조 제3항은 제조업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한해 공급업자(판매자)에게 보충적 책임을 지웁니다. 이 사건처럼 제조사가 명확한 경우에는 판매자에게 직접 제조물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다만 민법상 하자담보책임이나 판매 과정의 설명 의무 위반을 따로 다툴 여지는 있습니다. 예컨대 판매자가 "라텍스 위에 깔아도 된다"고 잘못된 설명을 한 정황이 있다면 별도 책임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한편 A씨 사건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영업용 사용이라는 점입니다. 인쇄소 휴게공간에서 사용한 제품은 가정용 전기장판의 통상적 사용 환경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손해 항목 중 인쇄용지 4,200만 원은 제조물 외의 재산 손해로서 제조물책임법상 배상 대상이지만, 영업 손실의 인과관계 입증은 별도로 요구됩니다.
이 사례를 종합하면, 법원이 채택할 가능성이 높은 책임 분배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화재 현장의 잔해, 특히 전기장판 본체와 컨트롤러를 절대 폐기하지 마십시오. 국과수 감정과 사설 감정의 핵심 증거입니다. 둘째, 소방서에서 발급하는 화재증명원과 화재조사보고서를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셋째, 구매 영수증, 제품 사진, 사용설명서 라벨 사진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둡니다. 넷째, 동일 모델의 리콜 이력이나 한국소비자원 위해정보를 조회해 다른 사고 사례를 확인합니다.
반대로 제조사 입장이라면 권장 사용기간 표시, 경고 문구의 가독성, KC 안전인증 적합성, 동일 로트 제품의 사고 통계가 핵심 방어 자료입니다. 사용자 과실로 인한 면책 또는 책임 제한은 결국 "제조사가 어떤 경고를 어떻게 했는가"의 입증 싸움으로 귀결됩니다.
전기장판 화재 분쟁은 감정 결과 하나로 결론이 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결함의 종류, 사용 연한, 사용 방식, 경고의 적정성이 얽혀 있어 초기 증거 보전과 쟁점 정리가 사건의 8할을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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