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민사전문 변호사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AI 어노테이터(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에 라벨을 붙이는 작업자)도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단지 계약서에 '프리랜서'라고 쓰여 있다고 해서 근로자성이 부정되지 않습니다. 핵심은 계약 형식이 아니라 실제 일하는 방식입니다.
최근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데이터 라벨링·검수·평가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이 국내에만 수만 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업무위탁계약서' 한 장을 쓰고 일을 시작합니다. 시간당 정산, 건당 정산 방식이 많고, 4대 보험은 가입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 라벨링 시장은 2020년 약 750억 원 규모에서 2024년 기준 5,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됩니다. 종사자 수도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지조차 모르고 일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패턴은 이렇습니다. 회사는 자체 플랫폼을 통해 작업을 배분하고, 작업 가이드라인을 매우 구체적으로 지정합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완료해야 하고, 오류율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작업 배정이 끊깁니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도급' 또는 '업무위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사용종속관계'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합니다. 계약서 명칭이 아니라 실질을 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따집니다.
첫째,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둘째, 취업규칙·복무규정의 적용을 받는지. 셋째, 사용자가 구체적·개별적인 업무 지시를 하는지. 넷째, 근무시간과 장소가 지정되고 구속받는지. 다섯째, 노무 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를 부담하는지. 여섯째, 보수가 근로 자체의 대가인지. 일곱째,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져 있는지. 여덟째,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지. 아홉째, 근로 제공 관계가 계속적이고 전속적인지.
어노테이터의 근로자성을 뒷받침하는 정황
• 회사 전용 플랫폼에서만 작업 가능
• 상세한 작업 매뉴얼·가이드라인 강제
• 일일 또는 주간 할당량 부여
• 정확도·속도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 일정 기준 미달 시 작업 배정 중단·계약 해지
• 다른 회사 업무 병행 제한(전속성)
• 시간당 정산 또는 고정 보수 지급
많은 회사가 '재택으로 자유롭게 일하니까 프리랜서'라는 논리를 폅니다. 명확히 말씀드립니다. 근무 장소가 자유로운 것과 근로자성은 별개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대법원과 노동위원회도 장소의 자유보다 업무 통제의 실질을 더 중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플랫폼을 통한 원격 작업은 회사가 모든 키 입력, 작업 시간, 정확도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 전통적인 사무실 근무보다 통제의 강도가 더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디지털 감시 환경은 근로자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그동안 받지 못했던 권리를 소급해 청구할 수 있습니다. 핵심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주휴수당(주 15시간 이상 근무 시)
연차유급휴가 또는 미사용 연차수당
최저임금 미달분(건당 정산이 시간당 환산 시 최저임금 미달인 경우 다수)
연장·야간·휴일 가산수당
퇴직금(1년 이상 근무 시)
4대 보험 소급 가입 및 산재·실업급여 수급권
부당해고 구제신청 자격
특히 건당 단가가 낮은 라벨링 업무의 경우, 실제 작업 시간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최대 3년치 임금 차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설령 전형적인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나 플랫폼 종사자로 분류되어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023년부터 산재보험 적용 직종이 대폭 확대되었고, 정부도 AI 어노테이션을 포함한 디지털 플랫폼 노동에 대한 보호 입법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결국 어떤 지위로 분류되느냐에 따라 권리의 범위가 달라지므로, 자신의 계약 실태를 정확히 진단받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AI 산업이 커질수록 어노테이터의 근로자성 분쟁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케냐, 미국, 독일 등에서 데이터 라벨러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노동위원회에 근로자성 인정 진정이 접수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증거 확보입니다. 작업 지시 메시지, 가이드라인, 평가 기준, 단가표, 작업 내역, 정산 기록을 모두 보관해야 합니다. 둘째, 시점입니다. 임금채권은 3년, 퇴직금도 3년의 소멸시효가 있으므로 권리 행사를 미루면 안 됩니다.
계약서에 적힌 한 줄이 여러분의 권리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결정하는 것은 실제로 어떻게 일했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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