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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사·계약 계약해지·위약금·계약불이행
민사·계약 · 계약해지·위약금·계약불이행 2026.07.15 조회 17

계약 이행거절 의사, 법적으로 어떻게 판단할까

손명숙 변호사
변호사 손명숙 법률사무소 · 경상남도 창원시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맡긴 A씨(42세, 자영업)는 시공업체 B사와 5,800만 원 규모의 공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착공 예정일이 열흘이나 지나도 B사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뒤늦게 "자재 수급이 어렵다"는 문자 한 통만 보내왔습니다. A씨는 B사가 계약 이행을 거절한 것으로 보고 계약을 해제한 뒤 위약금을 청구했지만, B사는 "이행을 거절한 적 없다, 단지 지연된 것뿐"이라며 맞섰습니다.

이처럼 상대방이 계약을 "안 하겠다"고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상황, 실무에서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상대방의 행동이 이행거절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단순 지체(지연)에 불과한지에 따라 법적 효과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그 판단 기준을 정확히 이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행거절과 이행지체, 무엇이 다른가

민법에서 채무자가 약속한 급부(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상황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이행지체, 이행불능, 그리고 이행거절입니다.

이행지체 - 이행기가 도래했으나 아직 이행하지 않은 상태. 채무자가 이행 의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행불능 - 물리적 또는 법률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해진 경우입니다.

이행거절 - 채무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종국적, 확정적"으로 표시한 경우입니다.

핵심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행지체의 경우 채권자(계약 상대방)는 원칙적으로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독촉)해야 하고, 그 기간이 지나야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44조). 반면 이행거절이 인정되면, 별도의 최고 절차 없이 곧바로 계약 해제가 가능합니다. 최고라는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는 점에서, 이행거절 여부의 판단은 실무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법원은 이행거절 의사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상대방이 "이 계약, 이행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행동과 정황을 통해 그 의사를 추론해야 합니다. 법원이 이행거절 의사를 판단할 때 살펴보는 주요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종국적 확정성
일시적인 이행 곤란이나 협상 과정에서의 불만 표출이 아니라, 장래에도 이행할 의사가 없음을 확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채무자의 이행거절 의사가 명백하고 확정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
명시적 거절과 묵시적 거절
"안 하겠다"는 말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이행거절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행에 필수적인 준비를 전혀 하지 않거나, 목적물을 제3자에게 처분해 버리거나, 연락 자체를 두절하는 등의 행위는 묵시적 이행거절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3
정당한 사유의 부존재
계약 내용에 대한 법적 분쟁이 있어 이행을 유보하는 경우, 또는 동시이행 항변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이행거절로 보지 않습니다. 거절에 정당한 사유가 없을 것이 전제됩니다.
4
객관적 행위와 제반 사정의 종합 고려
채무자의 말뿐 아니라 재정 상태, 이행 준비 정도, 계약 체결 후 경과 기간, 당사자 간 교섭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실무에서 이행거절이 문제 되는 대표적 상황

앞서 소개한 A씨의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B사는 착공 예정일로부터 열흘간 무응답이었고, 뒤늦게 "자재 수급이 어렵다"는 문자 한 통만 보냈습니다. 이것만으로 이행거절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안만으로는 이행거절로 인정받기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재 수급이 어렵다"는 표현은 이행 의사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 곤란을 알린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B사가 이후에도 구체적인 착공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다른 현장에 인력을 투입하는 등의 사정이 추가로 확인된다면, 묵시적 이행거절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실무에서 이행거절이 자주 다투어지는 대표적인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부동산 매매 - 매도인이 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 교부를 거부하거나 제3자에게 이중매매를 하는 경우
  • 도급계약(공사, 제작) - 수급인이 착공을 무기한 미루거나 핵심 자재 발주를 취소하는 경우
  • 물품 공급계약 - 공급자가 계약 단가의 대폭 인상을 조건으로 내세우며 기존 계약 조건으로는 공급할 수 없다고 통보하는 경우
  • 프랜차이즈 계약 - 가맹본부가 가맹점 오픈에 필수적인 교육이나 물류 지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경우

이행거절 판단이 갖는 실전적 의미

이행거절 여부의 판단은 단순한 이론적 구분이 아닙니다. 계약 해제 시점, 손해배상 범위, 위약금 청구 가능 여부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최고 없는 즉시 해제 가능 - 이행거절이 인정되면 민법 제544조의 최고(독촉)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채권자에게 상당한 이점입니다.

이행기 전이라도 해제 가능 - 약속된 이행기가 도래하기 전이라도, 채무자가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정적으로 표시하면 "이행기 전 이행거절"로 즉시 해제가 가능합니다.

전보배상 청구 - 이행거절이 확정되면 채권자는 이행에 갈음하는 전보배상(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었을 경우 얻었을 이익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실무적 포인트

계약 상대방의 이행거절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향후 법적 분쟁에 대비하려면 몇 가지 핵심 사항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1
서면 기록을 남겨라
상대방에게 이행을 촉구하는 내용증명이나 문자, 이메일을 발송하고 그 기록을 보관해야 합니다. "언제, 어떤 내용으로 독촉했고,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훗날 이행거절 의사 입증의 핵심 증거가 됩니다.
2
상당 기간을 정한 최고를 병행하라
이행거절이 명백하다고 확신하더라도, 법원에서 단순 이행지체로 판단될 위험이 있습니다. 안전장치로서 "OO일 이내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취지의 최고를 함께 해두는 것이 실무적으로 권장됩니다.
3
계약서에 이행거절 관련 조항을 넣어라
계약 체결 단계에서 "일방이 정당한 사유 없이 OO일 이상 이행에 착수하지 않으면 이행거절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포함시키면, 분쟁 발생 시 판단의 불확실성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이행거절 판단, 전문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상대방의 행위가 이행거절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단순히 "연락이 없다"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채무자의 언행, 계약 이행 준비 상황, 교섭 경위, 재정 상태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하며, 이 판단이 잘못되면 오히려 해제권을 행사한 측이 계약 위반의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행거절이 아닌 단순 지체 상황에서 최고 절차 없이 성급하게 계약을 해제하면, 그 해제 자체가 무효로 판단되어 해제 통보를 한 쪽이 위약금을 부담하는 역전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행거절 여부의 판단은 그만큼 신중하고 전문적인 검토가 요구되는 영역입니다.

손명숙
손명숙 변호사의 코멘트
변호사 손명숙 법률사무소 · 경상남도 창원시
계약 이행거절 사건을 다루면서 느낀 점은, 상대방의 거절 의사가 명확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법원의 판단은 예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행거절인지 단순 지체인지에 따라 해제의 적법성이 완전히 달라지므로, 해제 통보 전에 증거 확보와 최고 절차를 병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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