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2024년 기준 가정법원에 접수된 상속포기 신고 건수는 약 23만 건에 달합니다. 피상속인의 채무가 자산을 초과하는 이른바 '빚 상속'을 피하기 위해 상속포기를 선택하는 사례가 해마다 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무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상속을 포기한 사람의 자녀가 대습상속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상속포기와 대습상속은 발생 원인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양자가 교차하는 국면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채무 승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습상속이란, 상속인이 될 사람이 상속개시 전에 사망하거나 결격 사유가 발생한 경우 그 직계비속 또는 배우자가 그 사람의 순위에 갈음하여 상속인이 되는 제도입니다(민법 제1001조). 핵심 요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습상속의 3가지 요건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민법이 대습상속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사망'과 '결격' 두 가지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상속포기는 대습원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혼동이 발생하는 상황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각 유형의 법적 결론은 확연히 다르므로 구분이 필요합니다.
피상속인 甲이 사망하고, 甲의 자녀 乙이 상속포기를 한 경우, 乙의 자녀 丙이 대습상속으로 甲의 재산(또는 채무)을 물려받는지가 문제됩니다.
결론: 대습상속 불가
상속포기는 민법 제1001조가 정한 대습원인(사망 또는 결격)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乙이 상속을 포기하더라도 丙이 乙을 대습하여 甲의 상속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도 같은 취지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乙이 포기하면 乙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고(민법 제1042조), 상속분은 나머지 동순위 상속인에게 귀속됩니다. 동순위 상속인이 모두 포기하면 후순위 상속인에게 상속권이 넘어갑니다. 이 경우 丙은 '대습상속인'이 아니라, 후순위 또는 다른 경로를 통한 '고유의 상속인'으로서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실무상 중요합니다.
甲 사망 전에 이미 乙이 사망한 경우, 丙은 대습상속인의 지위를 취득합니다. 이때 丙이 甲의 채무를 승계받고 싶지 않다면, 丙 자신이 별도로 상속포기를 신고하면 됩니다.
결론: 대습상속 발생 후 별도 포기 가능
대습상속인도 일반 상속인과 동일하게 상속포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속개시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합니다(민법 제1019조 제1항).
이 유형은 상속 관계가 다른 별개의 사건이므로 혼동을 피해야 합니다. 乙이 다른 피상속인(예: 乙의 배우자)에 대한 상속을 포기한 사실은, 甲의 상속에서 乙의 상속인 자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상속포기의 효력은 해당 상속 건에만 한정되기 때문입니다.
실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연쇄적 상속포기입니다. 1순위 상속인(직계비속) 전원이 포기하면 2순위(직계존속), 2순위도 전부 포기하면 3순위(형제자매), 그리고 4순위(4촌 이내의 방계혈족)까지 상속권이 순차적으로 이전됩니다.
예시 상황
피상속인 甲의 채무가 2억 원이고, 1순위 상속인인 자녀 3명 전원이 상속포기를 하였습니다. 이 경우 甲의 부모(2순위)가 상속인이 됩니다. 부모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3개월의 숙려기간을 도과하면, 2억 원의 채무를 그대로 승계하게 됩니다.
이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후순위 상속인에게 개별적으로 통지하는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 후순위 상속인에게 해당 사실을 직접 알려 대응할 시간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상속포기 대신 한정승인을 선택하는 경우, 대습상속과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한정승인은 상속을 받되 상속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피상속인의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의사표시입니다(민법 제1028조).
한정승인을 한 사람은 여전히 상속인의 지위를 유지합니다. 따라서 한정승인은 대습상속과 충돌하는 문제가 구조적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습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하려는 경우에는 피대습자(먼저 사망한 사람)가 아닌 피상속인에 대한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한정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상속포기와 대습상속의 관계를 둘러싼 분쟁은 가족 구성원 간 소통 부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법적 리스크가 집중됩니다.
최근 법원은 상속채무와 관련하여 상속인 보호의 방향으로 해석 범위를 넓혀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상속포기 사실의 후순위 상속인 통지 의무가 없는 한, 당사자 스스로의 주의가 가장 확실한 보호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속 관계가 복잡하거나 채무 규모가 큰 경우에는 포기 전 상속재산 조회(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등)를 통해 전체 재산과 채무 현황을 파악하고, 가족 구성원 전체의 상속 순위를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분쟁 예방의 핵심입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