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줄이고 결과로 입증합니다.
낯선 나라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가 이혼이라는 벽 앞에 서게 된 이민자 배우자분들을 상담 현장에서 자주 만납니다. 가장 먼저 토로하시는 어려움은 재산 분할이나 양육권 문제가 아니라 "제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어요"라는 언어의 벽입니다. 오늘은 국제이혼 소송에서 언어 장벽에 놓인 이주 배우자가 활용할 수 있는 지원 제도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의 사연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 씨(가명, 34세)는 한국인 남편과 8년 전 결혼해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한 공장 근처에서 생활하던 중 남편의 지속적인 폭언과 생활비 미지급으로 이혼을 결심했지만, 한국어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이 있어 소장조차 어떻게 접수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마리아 씨처럼 일상 대화는 가능해도 법률 문서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혼 소장, 준비서면, 조정기일 통지서 같은 서류들은 한국인에게도 낯선 용어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 법제도는 이런 분들을 위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재판 과정에서 한국어에 능통하지 않은 당사자에게는 통역인이 지원됩니다. 법정에서 진행되는 심문이나 조정 과정에서 모국어 통역을 요청할 수 있고, 이 비용은 원칙적으로 국가가 부담합니다.
"통역을 신청하면 재판부에 불리하게 보이지 않을까요?"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통역 지원은 당사자의 정당한 권리이며, 자신의 입장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오히려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다만 통역인 지정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소송 초기 단계에서 통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판부에 명확히 밝히고 신청해야 합니다. 마리아 씨의 경우, 첫 변론기일 전에 타갈로그어 통역 신청서를 제출하여 조정 과정 전반에서 통역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민자 배우자분들이 두 번째로 걱정하시는 것이 바로 비용입니다. 변호사 선임료와 인지대(소송 서류에 붙이는 수수료), 송달료가 부담스러워 소송 자체를 포기하시는 경우를 실무에서 안타깝게 지켜봅니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두 가지입니다.
마리아 씨는 결혼이민자이자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법률구조공단의 지원을 받아 변호사 비용 부담 없이 소송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도를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실제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민자 배우자의 국제이혼에서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체류 자격입니다. 혼인을 근거로 국내에 체류하던 분들은 이혼 시 체류 자격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참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출입국관리 실무상, 배우자의 귀책사유(폭행, 유기 등)로 혼인이 파탄된 경우나 국내에서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혼 후에도 체류 자격을 유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마리아 씨처럼 자녀를 양육하는 상황이라면, 양육권 확보가 곧 안정적인 체류와도 직결됩니다.
양육권 판단에서 부모의 국적이나 언어 능력은 결정적 기준이 아닙니다. 법원은 그동안 누가 주로 아이를 돌봤는지, 자녀의 복리에 무엇이 가장 부합하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따라서 평소 자녀의 등하교, 병원 진료, 학교 상담을 누가 담당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를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언어의 벽 앞에서 소송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통역 지원, 법률구조, 소송구조라는 세 가지 제도만 잘 활용해도 이민자 배우자가 홀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각 제도는 신청 시기와 요건이 정해져 있어, 소송 초기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가정폭력이 얽혀 있다면 증거 확보와 체류 자격 문제를 동시에 챙겨야 하므로, 관련 서류와 대화 기록을 시간 순으로 모아 두시는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