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민사전문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제조업 현장에서 자주 문제되는 제조공정 영업비밀의 역설계(리버스 엔지니어링) 허용 범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완제품을 분해하고 분석해 그 제조 방법을 알아내는 행위가 어디까지 적법한지, 반대로 어느 지점부터 영업비밀 침해가 되는지는 실무에서 판단이 쉽지 않은 영역입니다. 구체적인 가상 사례를 통해 법적 쟁점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경기도 화성에서 정밀부품을 제조하는 중견기업 대성정공(가칭)의 연구소장 A씨(48세)는 경쟁사 한빛머트리얼(가칭)이 시장에 출시한 고내열성 코팅부품에 주목했습니다. 대성정공은 이 제품을 정상적인 유통 경로로 30개를 구매한 뒤, 자사 연구팀을 동원해 성분 분석, 단면 촬영, 열처리 조건 측정 등을 진행했습니다.
약 8개월 뒤 대성정공은 유사한 성능의 부품을 출시했고, 한빛머트리얼은 "우리 고유의 제조공정을 베꼈다"며 영업비밀 침해로 A씨와 대성정공을 상대로 손해배상과 제조·판매 금지를 청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대성정공 개발팀에는 6개월 전 한빛머트리얼에서 이직한 연구원 B씨(35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성정공의 행위가 적법한 역설계인지, 아니면 영업비밀 침해인지가 쟁점이 됩니다. 순수한 역설계와 부정 취득이 뒤섞인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짚어야 할 것은 역설계 자체의 적법성입니다. 정당하게 취득한 제품을 분해·분석해 기술을 알아내는 행위(역설계)는 원칙적으로 영업비밀 침해가 아닙니다. 이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이 규정하는 '부정한 수단'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3호는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절취, 기망, 협박 그 밖의 부정한 수단으로 영업비밀을 취득하는 행위" 등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시중에서 정상적으로 구매한 제품을 분석하는 것은 이러한 부정한 수단에 포섭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제품 구매 시 계약으로 역설계를 금지했거나, 라이선스 조건에 리버스 엔지니어링 금지 조항(No Reverse Engineering)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역설계는 계약 위반이 될 수 있으므로, 구매 계약서와 이용약관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로, 이 사건의 실질적 승부처는 이직 연구원 B씨의 존재입니다. 순수한 역설계였다면 적법했겠지만, 전 직장의 영업비밀을 알고 있는 인력이 개발 과정에 개입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부정경쟁방지법상 근로자는 재직 중 알게 된 영업비밀을 퇴직 후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B씨가 한빛머트리얼에서 알게 된 구체적 열처리 조건, 배합 비율, 공정 파라미터 등을 대성정공의 개발에 사용했다면, 이는 명백한 영업비밀 침해에 해당합니다.
실무에서는 이를 판단하기 위해 다음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합니다.
즉 대성정공이 "우리는 순수하게 역설계만 했다"고 주장하려면, 8개월간의 실험 데이터와 시행착오 기록을 통해 독자적으로 기술을 도출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발 이력이 부실하거나 결과물에 역설계로 알 수 없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면, 침해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로 살펴볼 것은 입증책임입니다. 원칙적으로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하는 한빛머트리얼이 침해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결과물의 유사성이 매우 높고 이직자가 개입한 정황이 있으면, 사실상 침해하지 않았음을 개발사가 소명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따라서 정당한 역설계를 통해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이라면, 처음부터 다음과 같은 방어 자료를 체계적으로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정리하면, 제조공정 역설계의 허용 여부는 '역설계를 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정보를, 어떤 경로로 활용했는가'에 따라 갈립니다. 순수한 분석은 적법하지만, 이직자를 통한 내부 정보 유입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전체 개발이 침해로 평가될 위험이 커집니다. 특히 경쟁사 출신 인력을 채용한 상태에서 유사 제품을 개발할 때는, 개발 초기부터 정보 분리와 이력 관리를 철저히 해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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