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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형사범죄 명예훼손·모욕
형사범죄 · 명예훼손·모욕 2026.03.30 조회 6

사실을 말했는데 명예훼손? 진실이어도 처벌받는 법적 이유

이우덕 변호사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한 A씨(47세)는 퇴사 후 전 직장 대표의 횡령 사실을 동종업계 지인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A씨가 말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고, 실제로 해당 대표는 횡령으로 수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A씨에게 날아온 것은 명예훼손 고소장이었습니다.

"분명 사실을 말한 건데 왜 범죄가 되나요?" A씨의 당혹스러운 질문은, 실무 현장에서 놀라울 만큼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구조를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이면 괜찮다"는 위험한 상식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형법은 이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307조는 두 개의 항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구조를 보면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307조 제1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

처벌: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제307조 제2항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

처벌: 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즉, 사실이든 거짓이든 공연히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 대상입니다. 거짓말은 형량이 더 무거울 뿐, 진실을 말해도 범죄가 성립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한국 형법의 독특한 특징이며, 많은 국가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혼동이 생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왜 사실을 말해도 처벌하는 것일까

이 제도의 뿌리에는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보호하겠다는 법 철학이 있습니다. 법이 보호하는 '명예'란, 실제로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와는 별개로 사회에서 형성된 외적 평가를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과거 범죄 전력이 사실이더라도, 이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순간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는 떨어지게 됩니다. 법은 바로 이 '평가의 하락' 자체를 보호 대상으로 봅니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동네 식당을 운영하는 B씨(52세, 부산)의 과거 음주운전 전력을 이웃 C씨가 동네 단체 채팅방(회원 150명)에 공개한 일이 있었습니다. B씨의 음주운전은 엄연한 사실이었지만, C씨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회적 평판이 실제로 떨어졌고, C씨가 이를 공개할 '정당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성립 요건 3가지

수사기관과 법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다음 세 가지를 핵심적으로 살펴봅니다.

1
공연성(공개성)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발언했는지를 봅니다. 1:1 대화라도 상대방이 이를 널리 전파할 가능성(전파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다투어지는 요건이기도 합니다.
2
사실의 적시 단순한 가치 판단("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제시해야 합니다. "김 대표가 회사 자금 3,000만원을 횡령했다"처럼 시간, 장소, 금액 등이 특정되는 진술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3
명예훼손(사회적 평가 하락) 해당 발언으로 인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이라면 명예훼손이 부정될 수 있지만, 그 범위가 좁았다면 여전히 성립 가능합니다.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위법성 조각

그렇다면 사실을 말하면 무조건 처벌받는 것일까요? 다행히 형법 제310조에 중요한 예외가 있습니다.

형법 제310조 (위법성의 조각)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이 조항이 적용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적시한 사실이 진실이어야 합니다.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던 경우에도 인정될 수 있지만, 단순한 소문이나 추측에 기반한 발언이라면 이 방어가 어렵습니다.

둘째,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오로지'라는 표현이 실무에서 매우 엄격하게 해석됩니다. 개인적 감정이나 원한, 경쟁 관계에서의 비방 목적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공공의 이익이 부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판례는 '주된 동기'가 공익이면 족하다고 보고 있어, '오로지'를 문자 그대로 100%로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A씨의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약 A씨가 해당 횡령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거나, 피해를 입은 다른 직원들에게만 알렸다면 공공의 이익이 인정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A씨는 동종업계 지인들에게 두루 이야기했고, 그 과정에서 퇴사 후 불만 표출이라는 개인적 동기가 포착되면서 위법성 조각이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시대, 더욱 조심해야 하는 이유

최근 통계를 보면 명예훼손 사건의 상당수가 온라인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는 온라인 명예훼손에 대해 형법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사실적시 명예훼손: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온라인 허위사실 명예훼손: 7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 블로그 포스팅, 단체 채팅방 메시지, 유튜브 영상 등은 공연성이 쉽게 인정되고 전파 범위도 넓어 형사 책임이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겪은 사실인데 왜 못 올리냐"는 항변이 통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특히 소비자 리뷰나 직장 후기 작성 시에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식당 위생 문제를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리는 행위, 전 직장의 부당한 처우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행위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명예훼손의 성립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핵심을 정리하면

이 문제의 본질은 결국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 보호' 사이의 긴장 관계에 있습니다. 한국 법 체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명예 보호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구조를 택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처벌받는"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실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은 공연성의 범위, 공공의 이익 해당 여부, 발언의 동기와 맥락, 피해의 정도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고려됩니다. 같은 내용의 발언이라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목적으로 전달했느냐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분야입니다.

진실을 말할 권리와 타인의 명예를 존중할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실이니까 괜찮다"는 안이한 판단이 형사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인식해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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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덕 변호사의 코멘트
실제로 많은 분들이 '사실인데 왜 안 되느냐'며 억울해하시지만,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발언 전 '이 말을 하는 목적이 공익인지, 개인적 감정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시고, 이미 고소를 당하셨다면 초기 대응이 결과를 크게 좌우하므로 가능한 빨리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이 글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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