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분쟁해결 조항을 작성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했습니다. 핵심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분쟁해결 조항은 계약서 맨 뒤에 관행적으로 복붙하는 조항이 아닙니다. 실제 분쟁이 터지면 이 조항 한 줄이 수천만 원의 비용 차이, 수년의 시간 차이를 만듭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문제입니다. 분쟁해결 조항이 부실하면 본안 소송 전에 "어디서 싸울 것인가"부터 다투게 됩니다. 관할 합의 무효 다툼만으로 6개월 이상 소모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관할은 "어느 법원에서 재판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중재는 "법원 대신 중재기관에서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둘은 양립하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중재 조항을 넣으면 법원 소송이 원칙적으로 차단되고, 관할 조항을 넣으면 법원에서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이 차이를 모르고 관행적으로 조항을 넣으면 나중에 후회합니다. 아래 7가지 항목을 하나씩 점검하십시오.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분쟁 발생 시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로 해결하되, 관할 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한다." 이렇게 쓰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방은 중재합의 무효를 주장하고, 내 쪽은 중재를 주장하며 절차부터 다툽니다. 반드시 둘 중 하나만 선택하십시오.
관할 합의를 할 때 "전속적 관할"과 "부가적 관할"의 차이가 큽니다. 전속적 합의는 오직 그 법원에서만 소송이 가능하고, 부가적 합의는 법정 관할 법원에 추가로 합의 법원을 더하는 것입니다. 민사소송법 제29조에 따라, 합의서에 "전속적"이라는 문구가 없으면 부가적 합의로 해석되는 것이 판례 실무입니다. 의도한 바를 명확히 적으십시오.
피해야 할 표현
"본 계약에 관한 소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한다."
권장 표현
"본 계약에 관한 일체의 분쟁에 대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전속적 합의관할 법원으로 한다."
관할 법원을 내 사무실 앞 법원으로 잡으면 좋겠지만, 상대가 이를 수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교섭력이 약한 쪽이라면 상대방 소재지 관할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제 거래에서는 피고지주의(피고 소재지 법원 관할)를 기본으로 하되, 제3국 중재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협상 전략상 유리할 수 있습니다.
"분쟁은 중재로 해결한다."라고만 쓰면 어느 기관에서, 어떤 규칙으로, 몇 명의 중재인이 진행하는지 모호합니다. 중재합의의 유효성 자체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최소한 다음 4가지는 명시해야 합니다.
(1) 중재기관명 (대한상사중재원, ICC, SIAC 등)
(2) 적용 중재규칙
(3) 중재인 수 (1인 또는 3인)
(4) 중재지 (도시명까지)
중재인 수는 비용과 직결됩니다. 계약 금액이 5억 원 미만이면 단독 중재인, 그 이상이면 3인 합의체가 실무 기준입니다. 3인 중재의 경우 중재비용만 수천만 원이 들 수 있으므로 계약 규모에 맞게 설계하십시오.
준거법(어느 나라 법을 적용할 것인가)과 분쟁해결(어디서 다툴 것인가)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서울에서 중재하되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고, 실제로 국제 거래에서 흔합니다. 두 조항을 하나로 합쳐 쓰면 혼동이 생깁니다. 반드시 별도 항으로 분리하십시오.
바로 소송이나 중재로 가기 전에 "30일간 성실히 협의한다" 또는 "조정 절차를 먼저 거친다"는 전치 조항을 넣는 것이 실무상 유리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실제로 많은 분쟁이 이 단계에서 해결됩니다. 둘째, 이 전치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 자체가 성실 교섭 증거가 됩니다. 다만 협의 기간은 30일에서 최대 60일 사이로 한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간을 정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무한정 시간을 끄는 수단으로 악용합니다.
중재 합의를 했더라도, 긴급하게 법원의 가처분(가압류, 처분금지 등)이 필요한 상황은 반드시 옵니다. 중재 절차는 개시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중재합의에도 불구하고, 각 당사자는 관할 법원에 보전처분을 신청할 수 있다"는 문구를 반드시 넣으십시오. 이 한 줄이 없으면 긴급 상황에서 상대방 재산을 동결하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위 7가지를 모두 반영한 분쟁해결 조항의 골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재 방식 선택 시
제00조 (분쟁해결)
1. 본 계약의 해석 및 이행에 관하여 분쟁이 발생한 경우, 양 당사자는 분쟁 발생일로부터 30일간 성실히 협의한다.
2. 전항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 해당 분쟁은 대한상사중재원의 국내중재규칙에 따라 서울에서 단독 중재인에 의한 중재로 최종 해결한다.
3. 전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각 당사자는 긴급한 권리 보전을 위하여 관할 법원에 보전처분을 신청할 수 있다.
법원 관할 방식 선택 시
제00조 (관할법원)
1. 본 계약에 관한 일체의 분쟁에 대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제1심의 전속적 합의관할 법원으로 한다.
정리하겠습니다. 분쟁해결 조항은 계약서에서 가장 덜 주목받지만, 분쟁이 현실이 되는 순간 가장 먼저 문제되는 조항입니다. 관할을 잘못 잡으면 원거리 법원을 오가며 수백만 원의 출장비와 시간을 소모하고, 중재 조항이 부실하면 중재합의 유효성 공방에만 1년을 허비합니다. 계약 체결 단계에서 10분만 더 투자하면 나중에 수천만 원을 아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