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법률정보는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하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나 조언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9. 10. 선고 2019나54629 판결]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우리하나로 담당변호사 최정원)
대한민국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9. 3. 선고 2019가단5041498 판결
2020. 8. 13.
1.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2. 피고는 원고에게 118,904,800원 및 이에 대하여 2020. 8. 13.부터 2020. 9. 10.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3.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4. 소송총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5. 제2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12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1. 기초사실
가. 대통령 긴급조치 발령
1) 1975. 5. 13. 구 대한민국 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이라 한다) 제53조에 따라 국가안전과 공공질서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1975. 5. 13.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로 제정되고, 1979. 12. 7. 대통령공고 제67호로 해제된 것, 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 한다)가 발령되었다.
2)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다음 각 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 집회·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전파수단이나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다. 학교당국의 지도, 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의례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관여행위. 라.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2. 제1에 위반한 내용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배포·판매·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한다.3. 재산을 도피시킬 목적으로,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을 국외에 이동하거나 국내에 반입될 재산을 국외에 은익 또는 처분하는 행위를 금한다.4. 관계서류의 허위기재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해외이주의 허가를 받거나 국외에 도피하는 행위를 금한다.5. 주무부장관은 이 조치위반자·범행당시의 그 소속 학교, 단체나 사업체 또는 그 대표자나 장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명령이나 조치를 할 수 있다. 가. 대표자나 장에 대한 소속임직원·교직원 또는 학생의 해임이나 제적의 명령. 나. 대표자나 장·소속 임직원·교직원이나 학생의 해임 또는 제적의 조치. 다. 방송·보도·제작·판매 또는 배포의 금지조치. 라. 휴업·휴교·정간·폐간·해산 또는 폐쇄의 조치. 마. 승인·등록·인가·허가 또는 면허의 취소조치.6.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은 이 조치에 저촉되더라도 처벌하지 아니한다. 다만, 그 발언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한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7.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 또는 음모한 자도 또한 같다.8.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9. 이 조치 시행 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2조(賂物罪의 加重處罰)의 죄를 범한 공무원이나 정부관리기업체의 간부직원 또는 동법 제5조(國庫損失)의 죄를 범한 회계관계직원 등에 대하여는, 동법 각조에 정한 형에, 수뢰액 또는 국고손실액의 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병과한다.10. 이 조치위반의 죄는 일반법원에서 심판한다.11. 이 조치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주무부장관이 정한다.12. 국방부장관은 서울특별시장·부산시장 또는 도지사로부터 치안질서 유지를 위한 병력출동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이에 응하여 지원할 수 있다.13. 이 조치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나. 원고에 대한 수사 및 재판
1) 원고는 육군 하사로 근무하던 중 1976. 3. 10.경 중앙정보부 부산분실 지하실로 연행되어 구금된 상태로 조사를 받은 뒤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의 공소사실로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76보군형공 제25호)에 기소되었다. 공소사실의 요지는 ‘원고는 유언비어 표현물인 「오적」을 유포하였다.’는 것이다.
2)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는 1976. 3. 31. 원고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원고에게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하였다. 이에 원고가 항소하였고, 항소심인 육군고등군법회의(76년 고군형항 제466호)는 1976. 6. 23. 이를 파기하고, 제1심인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로 환송하였으며, 이를 환송받은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76보군형공 제77호)는 1976. 10. 5. 원고에게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였다.
3) 원고는 위 판결에 다시 불복하여 육군고등군법회의(76고군형항 제1217호)에 항소하였고, 위 군법회의는 1977. 2. 16. 항소심에서 공소장변경허가를 하였다는 사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한 후 원고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였으며, 위 판결(이하 ‘이 사건 군법회의판결’이라 한다)은 그 무렵 확정되었다.
4) 이에 따라 원고는 1977. 3. 10. 형 집행 완료로 석방될 때까지 366일간 구금되었다.
다.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생활지원금의 지급
원고는 2005. 9. 12. 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2015. 5. 18. 법률 제1328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에 따라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및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받고, 위 지급결정에 동의하여 2005. 9. 27. 생활지원금 14,500,380원을 지급받았다.
라. 긴급조치의 위헌성에 관한 대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
대법원은 2013. 4. 18. 2011초기689호로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하였고, 헌법재판소는 2013. 3. 21. 선고 2010헌바70, 132, 170호로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마. 원고의 형사 판결에 관한 재심판결 확정
원고는 2013. 3. 11. 부산고등법원(창원) 2013재노1호로 이 사건 군법회의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였고, 재심법원은 2013. 4. 26. 재심개시결정을 한 후 2013. 7. 26. 긴급조치 제9호는 당초부터 위헌·무효이어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서 정한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원고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으며, 위 판결은 2013. 8. 3. 확정되었다.
바. 원고의 선행 손해배상청구소송
1) 원고는 2013. 9. 13.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가합542960호로 피고 소속 공무원이 위헌적 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원고를 구금하고 가혹행위를 하였음을 이유로 피고에 대하여 정신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이하 ‘이 사건 선행소송’이라 한다)를 제기하였다.
2) 이 사건 선행소송에서 법원은 ‘원고가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함으로써,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원고가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원고의 소는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소를 각하하였다.
3) 이에 원고가 서울고등법원 2015나2068452호로 항소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2018. 2. 7.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고, 대법원은 2018. 5. 15. 위 판결에 대한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위 판결이 확정되었다.
사. 민주화보상법 재판상화해 규정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
헌법재판소는 2018. 8. 30. 구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 등에는 적극적·소극적 손해에 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뿐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고, 이처럼 정신적 손해에 대해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적극적·소극적 손해에 상응하는 배상이 이루어졌다는 사정만으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마저 금지하는 것은 해당 손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졌음을 전제로 하여 국가배상청구권 행사를 제한하려 한 민주화보상법의 입법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 제2문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으로서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한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에 해당하여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유족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80 등 결정 참조, 이하 ‘이 사건 위헌결정’이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3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본안전 항변에 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원고는,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체포되어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유죄판결을 받는 등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에 대하여 위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구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가 동일한 내용으로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선행소송을 제기하여 각하판결이 확정된 바 있으므로 이 사건 소는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1) 원고가 위헌적인 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에 대하여 정신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선행소송을 제기한 사실, 이 사건 선행소송에서 원고가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함으로써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보아 권리보호이익이 없음을 이유로 소 각하판결이 확정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리고 이 사건 소의 청구원인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고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체포되어 가혹행위를 당하고 유죄판결을 받아 구금되는 등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입은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것으로써 이 사건 선행소송의 청구원인과 사실상 동일하다.
그러므로 이 사건 소가 이미 확정된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의 기판력에 의하여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한 것인지 여부를 살펴본다.
2) 소송판결의 기판력은 그 판결에서 확정한 소송요건의 흠결에 관하여 미치는 것이고, 당사자가 그러한 소송요건의 흠결을 보완하여 다시 소를 제기한 경우에는 그 기판력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대법원 2003. 4. 8. 선고 2002다70181 판결).
3)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은 소송요건 흠결로 소 제기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내용의 소송판결에 해당하므로,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른 재판상 화해 성립으로 원고에게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점에 관한 기판력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 확정 후 헌법재판소가 2018. 8. 30.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서 재판상 화해의 대상인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의 이 사건 위헌결정을 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법 제47조에 따라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2018. 8. 30. 효력을 상실하고, 이 사건 위헌결정은 법원을 기속한다. 그러므로 원고가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하더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원고의 정신적 손해 부분에 관하여는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하지 아니하여 권리보호이익이 존재한다.
4) 이에 대하여 피고는, 법률의 해석기준을 제시하는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은 법원에 전속되어 있는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에 대하여 기속력을 가질 수 없는데, 이 사건 위헌결정은 한정위헌결정에 해당하므로 법원에 대한 기속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이 사건 위헌결정은 법원이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적용함을 전제로 위와 같은 법원의 해석·적용으로 그 집행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진 위 법률조항 중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으로써 이른바 양적 일부위헌결정에 해당할 뿐 법률의 해석기준을 제시하는 한정위헌결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5) 따라서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이 사건 선행소송의 소송요건 흠결이 치유되어 이 사건 소는 이 사건 선행소송 중 원고의 정신적 손해 부분 소송요건 흠결에 관한 기판력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므로, 피고의 위 본안전 항변은 이유 없다.
3. 본안에 관한 판단
가. 원고의 주장
1) 대통령은 당시 유신헌법에 규정된 긴급조치권의 발령요건을 명백히 결여하였음에도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였고, 수사기관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실로 원고를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여 수사·기소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원고는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법관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여 수형생활을 하게 하였는바, 이는 모두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총체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2) 위와 같은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므로, 피고는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
1)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 방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 이를 수습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행사되는 국가긴급권에 관한 대통령의 결단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나, 이 같은 국가긴급권은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하였을 때 그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제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최소의 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것으로써, 국가긴급권을 규정한 헌법상의 발동 요건 및 한계에 부합하여야 하고, 이 점에서 유신헌법 제53조에 규정된 긴급조치권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유신헌법도 제53조 제1항, 제2항에서 긴급조치권 행사에 관하여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 극복을 위한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2) 그러나 이에 근거하여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유신헌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전면 금지하거나 이른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여 긴급조치권의 목적상의 한계를 벗어난다. 뿐만 아니라 긴급조치 제9호가 발령될 당시의 국내외 정치상황 및 사회상황이 긴급조치권 발동의 대상이 되는 비상사태로서 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 내지 국가적 안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국내외 정치상황 및 사회상황에서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 제53조가 규정하고 있는 요건 자체를 결여한 것이다.
3) 또한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 내지 신체의 자유와 헌법상 보장된 청원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써, 국가로 하여금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도록 한 유신헌법 제8조(현행 헌법 제10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유신헌법 제18조(현행 헌법 제21조)가 규정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함으로써 법치국가원리를 부인하여 유신헌법 제10조(현행 헌법 제12조)가 규정하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유신헌법 제14조(현행 헌법 제16조)가 규정한 주거의 자유를 제한하며, 명시적으로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하는 행위를 금지시킴으로써 유신헌법 제23조(현행 헌법 제26조)가 규정한 청원권 등을 제한한 것이다. 더욱이 긴급조치 제9호는 허가받지 않은 학생의 모든 집회·시위와 정치관여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는 주무부장관이 학생의 제적을 명하고 소속 학교의 휴업, 휴교, 폐쇄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유신헌법 제19조(현행 헌법 제22조)가 규정하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하는 한편, 현행 헌법 제31조 제4항이 규정하는 대학의 자율성도 제한한 것이다.
4) 이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이는 유신헌법에 위반되어 위헌·무효이고, 나아가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침해된 기본권들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무효이다(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판결, 대법원 2013. 4. 18.자 2011초기689 결정, 대법원 2013. 4. 18.자 2010모363 결정 참조).
다.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1)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의하면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국가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2) 원고가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연행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구금된 사실 및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임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대통령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고, 국가기관이 이를 집행하기 위하여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을 이유로 원고를 연행하여 조사한 후 유죄판결을 선고하고 구금한 행위는 공무원이 직무집행을 하면서 원고에게 불법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
가) 국회의원의 입법행위는 그 입법 내용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반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굳이 당해 입법을 한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위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데(대법원 1997. 6. 13. 선고 96다56115 판결 참조),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행위 역시 실질적으로 입법행위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통령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반됨에도 굳이 긴급조치 발령행위를 한 경우에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위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나) 긴급조치 제9호는 일정한 행위의 금지 및 그 위반자에 대한 강제수사, 형벌규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국가기관을 통한 수사와 재판 그리고 형의 집행이라는 일련의 절차를 자연스럽게 예정하고 있고, 그 위헌성이 수사 내지 재판 및 형의 집행 단계에서 이를 적용·집행한 공무원의 직무행위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민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 집행으로 인한 손해를 주장하면서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반드시 그 집행과정에서 이루어진 공무원의 개별적 직무집행행위를 특정하여 그 행위의 법령위반 여부만을 따져야 할 필요는 없다.
다) 국가배상법상 법령위반이라 함은 엄격한 의미의 법령위반뿐만 아니라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의 위반도 포함되어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긴급조치 제9호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성을 가진 명령에 해당하므로, 이를 그대로 집행하고 적용한 일련의 공무집행행위들은 모두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의 원칙을 위반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고 판단되고 결국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위법하다고 평가되어야 한다.
라)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이 명백하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 정도가 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원고를 체포하여 수사하고, 형사판결을 선고하는 등 직무를 집행한 공무원들도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 및 이로 인한 원고의 기본권 침해 결과를 인식하면서 묵인하였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위 공무원들의 고의 또는 과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비록 위 공무원들에게 형식적 법령을 집행할 권한만 있고 그 법령의 위헌성 여부를 심사할 권한이 없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의 집행 거부를 기대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위 공무원들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없음은 별론으로 하고, 이를 이유로 국가인 피고의 책임이 면제된다고 할 수 없다.
3) 그리고 위와 같은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원고가 1976. 3. 10. 연행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형 집행을 완료한 1977. 3. 10.까지 구금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라. 손해배상의 범위
1) 손해액 산정
가) 법원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 피해자의 연령, 직업, 사회적 지위, 재산 및 생활상태, 피해로 입은 고통의 정도, 피해자의 과실 정도 등 피해자 측의 사정에 가해자의 고의, 과실의 정도, 가해행위의 동기, 원인, 가해자의 재산상태, 불법행위 후의 가해자의 태도 등 가해자 측의 사정까지 함께 참작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손해배상의 원칙에 부합한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7다77149 판결 등 참조).
한편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사실심 변론종결일부터 기산된다고 보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그 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즉시 지급함이 적절하다고 보이는 액수의 위자료에 대한 배상이 변론종결 시까지 장기간 지연된 사정을 참작하여 변론종결 시의 위자료 원금을 적절히 증액 산정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 사건과 같이 피고 소속 공무원들에 의하여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가 자행된 경우에는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 등도 그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중요한 참작사유로 고려되어야 한다(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38325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의 반인권적 특수성과 그 불법의 중대함, 원고에 대한 선고형의 경중 및 복역기간,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가 개시된 때로부터 4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통화가치에 상당한 변화가 있으므로 예외적으로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연손해금의 기산점을 이 사건 당심 변론종결일로 보아야 하는 점, 장기간 배상이 지연된 점, 유사한 국가배상판결에서의 위자료 인정금액과 형평성, 가족의 수 등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들을 참작하여,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할 위자료의 액수를 190,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2) 공제
가)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하 ‘형사보상법’이라 한다) 제6조 제3항은 ‘다른 법률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을 자가 같은 원인에 대하여 이 법에 따른 보상을 받았을 때에는 그 보상금의 액수를 빼고 손해배상의 액수를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위 관련 규정에 의하여 먼저 받은 형사보상금을 공제할 때에는 이를 손해배상채무의 변제액 공제에 준하여 민법에서 정한 변제충당의 일반 원칙에 따라 형사보상금을 지급받을 당시 손해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과 원본 순서로 충당하여 공제하는 것이 타당하고, 형사보상금을 곧바로 손해배상액 원본에서 공제할 것은 아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사실심 변론종결일부터 기산되는 경우 형사보상금 수령일을 기준으로 지연손해금이 발생하지 아니한 위자료 원본 액수가 이미 수령한 형사보상금 액수 이상인 때에는 계산의 번잡을 피하기 위하여 이미 지급받은 형사보상금을 위자료 원본에서 우선 공제하여도 무방하다(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38325 판결 참조).
나) 갑 제3호증의 1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가 부산고등법원(창원) 2013코2호로 형사보상법에 따른 형사보상청구를 하여 위 법원이 2013. 9. 10. 원고에게 구금에 대한 보상으로 69,595,200원, 비용에 대한 보상으로 1,500,000원 합계 71,095,200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였고, 위 결정이 2013. 10. 9. 확정된 사실, 이에 따라 원고가 위 형사보상금을 수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의 손해배상액에서 원고가 수령한 형사보상금을 공제하여야 하는데, 원고의 위자료 액수가 위 형사보상금 액수 이상이므로, 위 법리에 따라 원고의 위자료 원본에서 위 형사보상금을 공제하기로 한다.
따라서 원고의 위자료 채권은 118,904,800원(= 190,000,000원 - 71,095,200원)이 된다.
3) 지연손해금의 기산점
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별도의 이행 최고가 없더라도 그 채무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함으로써 위자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변론종결시의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 등의 사정이 불법행위시에 비하여 상당한 정도로 변동한 결과 그에 따라 이를 반영하는 위자료 액수 또한 현저한 증액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변론종결 당일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38325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의 경우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 시점부터 이 사건 당심 변론종결일까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물가, 통화가치와 국민소득 수준 등이 크게 변동되었고, 이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지급할 위자료의 액수를 새로이 정하게 되었으므로,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이 사건 당심 변론종결일인 2020. 8. 13.부터 발생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4)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118,904,8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당심 변론종결일인 2020. 8. 13.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재여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당심 판결선고일인 2020. 9. 10.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마. 피고의 주장에 관한 판단
1) 불법행위 불성립
가) 피고는, 긴급조치 제9호에 기초하여 원고에 대하여 수사가 개시되어 공소 제기 및 유죄판결이 선고되고, 이후 형벌에 관한 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가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여 재심절차에서 이를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는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재심대상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된 경우라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에 대한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이 곧바로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 살피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국가기관이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을 이유로 원고를 연행하여 조사한 후 유죄판결을 선고하고 구금한 행위 자체가 공무원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이상 이후 재심절차에서 원고가 무죄판결을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받았는지 후단에 의하여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국가의 불법행위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고 할 수 없다.
다) 설령 국가기관이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을 이유로 원고를 연행하여 조사한 후 유죄판결을 선고하고 구금한 행위 자체가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재심절차에서 원고에게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판결이 확정되어서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재심대상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된 경우라고 볼 수 없다 하더라도,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위법행위를 하였는지 및 그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별도로 심리하여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의 내용, 유죄를 인정할 증거의 유무, 재심개시결정의 이유, 사건 관련자가 재심무죄판결을 받게 된 경위 및 그 이유 등을 종합하여,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무효 등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있었음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증명이 이루어진 때에는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에 대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참조).
그런데, 갑 제3 내지 6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육군 하사로 근무하던 중 1976. 3. 10. 중앙정보부에 의하여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된 사실, 이후 원고는 수사기관에서 구타 및 욕설과 강요에 의하여 진술서 및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사실, 원고는 중앙정보부에서 육군보안대를 거쳐 헌병대로 이첩되어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은 사실, 위 재판이 시작될 때까지 원고는 공소사실 내용 및 국선변호인 선임을 몰랐던 사실, 원고는 위 재판에서 1976. 3. 31. 징역 1년 6월의 형을 선고받고 이른바 ‘남한산성’이라 불리는 육군교도소 재생동으로 이감되어 1977. 2. 16. 이 사건 군법회의판결이 선고될 때가지 헌병들로부터 잦은 구타와 폭행을 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과 이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비록 원고가 재심절차에서 긴급조치 제9호 위반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더라도, 위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의 무죄사유인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무죄를 선고받았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원고의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에 대하여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
① 수사 과정에서 국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및 헌법상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수사기관의 공무원들이 원고를 수사함에 있어서 불법체포·구금, 폭행, 불리한 진술 강요 등의 인권 침해행위를 하였다.
② 위와 같은 인권 침해행위로 인한 심리적 압박 상태가 수사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법정에까지 계속되어 범죄사실에 부합하는 원고의 진술은 임의성이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
③ 재심대상판결인 이 사건 군법회의판결에서 원고의 진술을 제외할 경우 남는 유죄의 증거는 김선도의 진술조서 및 진술서와 압수물인데, 위 증거들도 불법적으로 수집되었을 개연성이 있어 위 증거들만으로 원고의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부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2) 소멸시효 완성
가) 당사자의 주장
피고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여야 하는데, 원고가 구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지급받은 2005. 9. 27.에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음에도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3. 9. 13. 이 사건 선행소송을, 2019. 2. 22. 이 사건 소를 각 제기하였으므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하여 소멸하였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1) 채무자의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시효완성 전에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어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권자가 그러한 장애가 해소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등 참조).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 등으로 수집한 증거 등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의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재심사유의 존재 사실이 뒤늦게 밝혀짐에 따라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후 국가기관의 위법행위 등을 원인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채권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채무자인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다만 채권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장애가 해소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는 6개월의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 하고, 그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는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다.
한편 재심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채권자로서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에 앞서, 그보다 간이한 절차라고 할 수 있는 형사보상법에 따른 형사보상을 먼저 청구할 수 있으므로, 채권자가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지는 아니하였더라도 그 기간 내에 형사보상법에 따른 형사보상청구를 한 경우에는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는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이를 연장할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할 것이고, 그때는 형사보상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기간은 권리행사의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객관적으로 소멸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다201844 판결 참조).
(2)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을 보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는 영장 없이 체포되어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기소되었으며, 이어진 형사재판 과정에서는 긴급조치 제9호가 유효하다는 전제 하에 유죄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었다. 이처럼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그 효력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심을 통해 과거의 유죄판결이 잘못되었다는 법원의 공권적 판단을 받기 전까지는 과거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전제로 부당하게 구금당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아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원고는 원고에 대한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2013. 8. 3.까지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리고 원고의 형사보상법에 따른 형사보상청구로 이루어진 원고에 대한 형사보상금 지급 결정이 2013. 10. 9. 확정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이 사건 소는 재심무죄판결 확정일인 2013. 8. 3.로부터 3년 및 위 형사보상결정 확정일인 2013. 10. 9.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9. 2. 22.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소가 제기된 아래와 같은 경위에 비추어보면, 권리행사의 장애사유가 해소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원고가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하였는지 여부는 이 사건 소 제기일이 아닌 이 사건 선행소송 제기일을 기준으로 판단함이 타당하다.
① 이 사건 선행소송의 청구원인과 이 사건 소의 청구원인은 모두 국가기관의 위법행위 등을 원인으로 하여 국가인 피고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로써 동일하다.
② 이 사건 선행소송에서는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원고와 피고 사이에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보아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소를 각하하는 판결이 났고, 위 판결이 2018. 5. 15. 확정됨으로써 본안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
③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 확정 이후인 2018. 8. 30.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효력이 상실됨으로써 이 사건 선행소송의 소송요건 흠결이 치유되었고, 원고는 그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지 않은 2019. 2. 22.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④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은 재심무죄판결 확정일인 2013. 8. 3. 및 형사보상판결 확정일인 2013. 10. 9.로부터 3년이 지난 2018. 5. 15. 확정되었고, 원고에게 위 판결 확정 이전에 다시 소멸시효 중단만을 위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⑤ 이 사건 선행소송이 본안 판단 없이 소송요건 흠결을 이유로 각하된 후 소송요건 흠결이 치유되어 본안 판단이 가능해짐에 따라 원고가 본안 판단을 받기 위하여 다시 이 사건 소를 제기한 것이므로, 이 사건 소는 실질적으로 이 사건 선행소송과 동일한 소이다.
(3) 그런데 이 사건 선행소송이 재심무죄판결 확정일인 2013. 8. 3.로부터 6개월 이내이자 형사보상결정 확정일인 2013. 10. 9. 이전인 2013. 9. 13. 제기되었으므로, 청구원인이 동일한 이 사건 소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해소된 때로부터 신의칙상 상당한 기간 내에 제기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4) 따라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으므로, 이를 지적하는 원고의 재항변은 이유 있고, 결국 피고의 위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소는 적법하고,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며,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여야 한다.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이 사건 소를 각하한 제1심 판결은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취소하되, 제1심에서 본안 판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리가 되었다고 인정되므로 제1심 법원으로 환송하지 아니하고 본안 판결을 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황정수(재판장) 최호식 이종채
* 본 법률정보는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9. 10. 선고 2019나54629 판결]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우리하나로 담당변호사 최정원)
대한민국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9. 3. 선고 2019가단5041498 판결
2020. 8. 13.
1.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2. 피고는 원고에게 118,904,800원 및 이에 대하여 2020. 8. 13.부터 2020. 9. 10.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3.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4. 소송총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5. 제2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12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1. 기초사실
가. 대통령 긴급조치 발령
1) 1975. 5. 13. 구 대한민국 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이라 한다) 제53조에 따라 국가안전과 공공질서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1975. 5. 13.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로 제정되고, 1979. 12. 7. 대통령공고 제67호로 해제된 것, 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 한다)가 발령되었다.
2)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다음 각 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 집회·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전파수단이나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다. 학교당국의 지도, 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의례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관여행위. 라.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2. 제1에 위반한 내용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배포·판매·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한다.3. 재산을 도피시킬 목적으로,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을 국외에 이동하거나 국내에 반입될 재산을 국외에 은익 또는 처분하는 행위를 금한다.4. 관계서류의 허위기재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해외이주의 허가를 받거나 국외에 도피하는 행위를 금한다.5. 주무부장관은 이 조치위반자·범행당시의 그 소속 학교, 단체나 사업체 또는 그 대표자나 장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명령이나 조치를 할 수 있다. 가. 대표자나 장에 대한 소속임직원·교직원 또는 학생의 해임이나 제적의 명령. 나. 대표자나 장·소속 임직원·교직원이나 학생의 해임 또는 제적의 조치. 다. 방송·보도·제작·판매 또는 배포의 금지조치. 라. 휴업·휴교·정간·폐간·해산 또는 폐쇄의 조치. 마. 승인·등록·인가·허가 또는 면허의 취소조치.6.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은 이 조치에 저촉되더라도 처벌하지 아니한다. 다만, 그 발언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한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7.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 또는 음모한 자도 또한 같다.8.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9. 이 조치 시행 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2조(賂物罪의 加重處罰)의 죄를 범한 공무원이나 정부관리기업체의 간부직원 또는 동법 제5조(國庫損失)의 죄를 범한 회계관계직원 등에 대하여는, 동법 각조에 정한 형에, 수뢰액 또는 국고손실액의 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병과한다.10. 이 조치위반의 죄는 일반법원에서 심판한다.11. 이 조치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주무부장관이 정한다.12. 국방부장관은 서울특별시장·부산시장 또는 도지사로부터 치안질서 유지를 위한 병력출동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이에 응하여 지원할 수 있다.13. 이 조치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나. 원고에 대한 수사 및 재판
1) 원고는 육군 하사로 근무하던 중 1976. 3. 10.경 중앙정보부 부산분실 지하실로 연행되어 구금된 상태로 조사를 받은 뒤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의 공소사실로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76보군형공 제25호)에 기소되었다. 공소사실의 요지는 ‘원고는 유언비어 표현물인 「오적」을 유포하였다.’는 것이다.
2)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는 1976. 3. 31. 원고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원고에게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하였다. 이에 원고가 항소하였고, 항소심인 육군고등군법회의(76년 고군형항 제466호)는 1976. 6. 23. 이를 파기하고, 제1심인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로 환송하였으며, 이를 환송받은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76보군형공 제77호)는 1976. 10. 5. 원고에게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였다.
3) 원고는 위 판결에 다시 불복하여 육군고등군법회의(76고군형항 제1217호)에 항소하였고, 위 군법회의는 1977. 2. 16. 항소심에서 공소장변경허가를 하였다는 사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한 후 원고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였으며, 위 판결(이하 ‘이 사건 군법회의판결’이라 한다)은 그 무렵 확정되었다.
4) 이에 따라 원고는 1977. 3. 10. 형 집행 완료로 석방될 때까지 366일간 구금되었다.
다.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생활지원금의 지급
원고는 2005. 9. 12. 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2015. 5. 18. 법률 제1328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에 따라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및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받고, 위 지급결정에 동의하여 2005. 9. 27. 생활지원금 14,500,380원을 지급받았다.
라. 긴급조치의 위헌성에 관한 대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
대법원은 2013. 4. 18. 2011초기689호로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하였고, 헌법재판소는 2013. 3. 21. 선고 2010헌바70, 132, 170호로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마. 원고의 형사 판결에 관한 재심판결 확정
원고는 2013. 3. 11. 부산고등법원(창원) 2013재노1호로 이 사건 군법회의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였고, 재심법원은 2013. 4. 26. 재심개시결정을 한 후 2013. 7. 26. 긴급조치 제9호는 당초부터 위헌·무효이어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서 정한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원고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으며, 위 판결은 2013. 8. 3. 확정되었다.
바. 원고의 선행 손해배상청구소송
1) 원고는 2013. 9. 13.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가합542960호로 피고 소속 공무원이 위헌적 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원고를 구금하고 가혹행위를 하였음을 이유로 피고에 대하여 정신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이하 ‘이 사건 선행소송’이라 한다)를 제기하였다.
2) 이 사건 선행소송에서 법원은 ‘원고가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함으로써,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원고가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원고의 소는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소를 각하하였다.
3) 이에 원고가 서울고등법원 2015나2068452호로 항소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2018. 2. 7.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고, 대법원은 2018. 5. 15. 위 판결에 대한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위 판결이 확정되었다.
사. 민주화보상법 재판상화해 규정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
헌법재판소는 2018. 8. 30. 구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 등에는 적극적·소극적 손해에 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뿐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고, 이처럼 정신적 손해에 대해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적극적·소극적 손해에 상응하는 배상이 이루어졌다는 사정만으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마저 금지하는 것은 해당 손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졌음을 전제로 하여 국가배상청구권 행사를 제한하려 한 민주화보상법의 입법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 제2문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으로서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한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에 해당하여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유족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80 등 결정 참조, 이하 ‘이 사건 위헌결정’이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3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본안전 항변에 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원고는,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체포되어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유죄판결을 받는 등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에 대하여 위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구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가 동일한 내용으로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선행소송을 제기하여 각하판결이 확정된 바 있으므로 이 사건 소는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1) 원고가 위헌적인 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에 대하여 정신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선행소송을 제기한 사실, 이 사건 선행소송에서 원고가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함으로써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보아 권리보호이익이 없음을 이유로 소 각하판결이 확정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리고 이 사건 소의 청구원인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고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체포되어 가혹행위를 당하고 유죄판결을 받아 구금되는 등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입은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것으로써 이 사건 선행소송의 청구원인과 사실상 동일하다.
그러므로 이 사건 소가 이미 확정된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의 기판력에 의하여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한 것인지 여부를 살펴본다.
2) 소송판결의 기판력은 그 판결에서 확정한 소송요건의 흠결에 관하여 미치는 것이고, 당사자가 그러한 소송요건의 흠결을 보완하여 다시 소를 제기한 경우에는 그 기판력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대법원 2003. 4. 8. 선고 2002다70181 판결).
3)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은 소송요건 흠결로 소 제기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내용의 소송판결에 해당하므로,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른 재판상 화해 성립으로 원고에게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점에 관한 기판력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 확정 후 헌법재판소가 2018. 8. 30.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서 재판상 화해의 대상인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의 이 사건 위헌결정을 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법 제47조에 따라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2018. 8. 30. 효력을 상실하고, 이 사건 위헌결정은 법원을 기속한다. 그러므로 원고가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하더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원고의 정신적 손해 부분에 관하여는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하지 아니하여 권리보호이익이 존재한다.
4) 이에 대하여 피고는, 법률의 해석기준을 제시하는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은 법원에 전속되어 있는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에 대하여 기속력을 가질 수 없는데, 이 사건 위헌결정은 한정위헌결정에 해당하므로 법원에 대한 기속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이 사건 위헌결정은 법원이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적용함을 전제로 위와 같은 법원의 해석·적용으로 그 집행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진 위 법률조항 중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으로써 이른바 양적 일부위헌결정에 해당할 뿐 법률의 해석기준을 제시하는 한정위헌결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5) 따라서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이 사건 선행소송의 소송요건 흠결이 치유되어 이 사건 소는 이 사건 선행소송 중 원고의 정신적 손해 부분 소송요건 흠결에 관한 기판력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므로, 피고의 위 본안전 항변은 이유 없다.
3. 본안에 관한 판단
가. 원고의 주장
1) 대통령은 당시 유신헌법에 규정된 긴급조치권의 발령요건을 명백히 결여하였음에도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였고, 수사기관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실로 원고를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여 수사·기소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원고는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법관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여 수형생활을 하게 하였는바, 이는 모두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총체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2) 위와 같은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므로, 피고는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
1)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 방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 이를 수습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행사되는 국가긴급권에 관한 대통령의 결단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나, 이 같은 국가긴급권은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하였을 때 그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제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최소의 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것으로써, 국가긴급권을 규정한 헌법상의 발동 요건 및 한계에 부합하여야 하고, 이 점에서 유신헌법 제53조에 규정된 긴급조치권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유신헌법도 제53조 제1항, 제2항에서 긴급조치권 행사에 관하여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 극복을 위한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2) 그러나 이에 근거하여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유신헌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전면 금지하거나 이른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여 긴급조치권의 목적상의 한계를 벗어난다. 뿐만 아니라 긴급조치 제9호가 발령될 당시의 국내외 정치상황 및 사회상황이 긴급조치권 발동의 대상이 되는 비상사태로서 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 내지 국가적 안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국내외 정치상황 및 사회상황에서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 제53조가 규정하고 있는 요건 자체를 결여한 것이다.
3) 또한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 내지 신체의 자유와 헌법상 보장된 청원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써, 국가로 하여금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도록 한 유신헌법 제8조(현행 헌법 제10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유신헌법 제18조(현행 헌법 제21조)가 규정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함으로써 법치국가원리를 부인하여 유신헌법 제10조(현행 헌법 제12조)가 규정하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유신헌법 제14조(현행 헌법 제16조)가 규정한 주거의 자유를 제한하며, 명시적으로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하는 행위를 금지시킴으로써 유신헌법 제23조(현행 헌법 제26조)가 규정한 청원권 등을 제한한 것이다. 더욱이 긴급조치 제9호는 허가받지 않은 학생의 모든 집회·시위와 정치관여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는 주무부장관이 학생의 제적을 명하고 소속 학교의 휴업, 휴교, 폐쇄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유신헌법 제19조(현행 헌법 제22조)가 규정하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하는 한편, 현행 헌법 제31조 제4항이 규정하는 대학의 자율성도 제한한 것이다.
4) 이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이는 유신헌법에 위반되어 위헌·무효이고, 나아가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침해된 기본권들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무효이다(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판결, 대법원 2013. 4. 18.자 2011초기689 결정, 대법원 2013. 4. 18.자 2010모363 결정 참조).
다.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1)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의하면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국가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2) 원고가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연행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구금된 사실 및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임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대통령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고, 국가기관이 이를 집행하기 위하여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을 이유로 원고를 연행하여 조사한 후 유죄판결을 선고하고 구금한 행위는 공무원이 직무집행을 하면서 원고에게 불법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
가) 국회의원의 입법행위는 그 입법 내용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반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굳이 당해 입법을 한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위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데(대법원 1997. 6. 13. 선고 96다56115 판결 참조),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행위 역시 실질적으로 입법행위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통령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반됨에도 굳이 긴급조치 발령행위를 한 경우에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위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나) 긴급조치 제9호는 일정한 행위의 금지 및 그 위반자에 대한 강제수사, 형벌규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국가기관을 통한 수사와 재판 그리고 형의 집행이라는 일련의 절차를 자연스럽게 예정하고 있고, 그 위헌성이 수사 내지 재판 및 형의 집행 단계에서 이를 적용·집행한 공무원의 직무행위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민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 집행으로 인한 손해를 주장하면서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반드시 그 집행과정에서 이루어진 공무원의 개별적 직무집행행위를 특정하여 그 행위의 법령위반 여부만을 따져야 할 필요는 없다.
다) 국가배상법상 법령위반이라 함은 엄격한 의미의 법령위반뿐만 아니라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의 위반도 포함되어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긴급조치 제9호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성을 가진 명령에 해당하므로, 이를 그대로 집행하고 적용한 일련의 공무집행행위들은 모두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의 원칙을 위반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고 판단되고 결국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위법하다고 평가되어야 한다.
라)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이 명백하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 정도가 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원고를 체포하여 수사하고, 형사판결을 선고하는 등 직무를 집행한 공무원들도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 및 이로 인한 원고의 기본권 침해 결과를 인식하면서 묵인하였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위 공무원들의 고의 또는 과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비록 위 공무원들에게 형식적 법령을 집행할 권한만 있고 그 법령의 위헌성 여부를 심사할 권한이 없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의 집행 거부를 기대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위 공무원들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없음은 별론으로 하고, 이를 이유로 국가인 피고의 책임이 면제된다고 할 수 없다.
3) 그리고 위와 같은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원고가 1976. 3. 10. 연행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형 집행을 완료한 1977. 3. 10.까지 구금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라. 손해배상의 범위
1) 손해액 산정
가) 법원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 피해자의 연령, 직업, 사회적 지위, 재산 및 생활상태, 피해로 입은 고통의 정도, 피해자의 과실 정도 등 피해자 측의 사정에 가해자의 고의, 과실의 정도, 가해행위의 동기, 원인, 가해자의 재산상태, 불법행위 후의 가해자의 태도 등 가해자 측의 사정까지 함께 참작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손해배상의 원칙에 부합한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7다77149 판결 등 참조).
한편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사실심 변론종결일부터 기산된다고 보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그 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즉시 지급함이 적절하다고 보이는 액수의 위자료에 대한 배상이 변론종결 시까지 장기간 지연된 사정을 참작하여 변론종결 시의 위자료 원금을 적절히 증액 산정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 사건과 같이 피고 소속 공무원들에 의하여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가 자행된 경우에는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 등도 그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중요한 참작사유로 고려되어야 한다(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38325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의 반인권적 특수성과 그 불법의 중대함, 원고에 대한 선고형의 경중 및 복역기간,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가 개시된 때로부터 4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통화가치에 상당한 변화가 있으므로 예외적으로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연손해금의 기산점을 이 사건 당심 변론종결일로 보아야 하는 점, 장기간 배상이 지연된 점, 유사한 국가배상판결에서의 위자료 인정금액과 형평성, 가족의 수 등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들을 참작하여,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할 위자료의 액수를 190,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2) 공제
가)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하 ‘형사보상법’이라 한다) 제6조 제3항은 ‘다른 법률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을 자가 같은 원인에 대하여 이 법에 따른 보상을 받았을 때에는 그 보상금의 액수를 빼고 손해배상의 액수를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위 관련 규정에 의하여 먼저 받은 형사보상금을 공제할 때에는 이를 손해배상채무의 변제액 공제에 준하여 민법에서 정한 변제충당의 일반 원칙에 따라 형사보상금을 지급받을 당시 손해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과 원본 순서로 충당하여 공제하는 것이 타당하고, 형사보상금을 곧바로 손해배상액 원본에서 공제할 것은 아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사실심 변론종결일부터 기산되는 경우 형사보상금 수령일을 기준으로 지연손해금이 발생하지 아니한 위자료 원본 액수가 이미 수령한 형사보상금 액수 이상인 때에는 계산의 번잡을 피하기 위하여 이미 지급받은 형사보상금을 위자료 원본에서 우선 공제하여도 무방하다(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38325 판결 참조).
나) 갑 제3호증의 1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가 부산고등법원(창원) 2013코2호로 형사보상법에 따른 형사보상청구를 하여 위 법원이 2013. 9. 10. 원고에게 구금에 대한 보상으로 69,595,200원, 비용에 대한 보상으로 1,500,000원 합계 71,095,200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였고, 위 결정이 2013. 10. 9. 확정된 사실, 이에 따라 원고가 위 형사보상금을 수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의 손해배상액에서 원고가 수령한 형사보상금을 공제하여야 하는데, 원고의 위자료 액수가 위 형사보상금 액수 이상이므로, 위 법리에 따라 원고의 위자료 원본에서 위 형사보상금을 공제하기로 한다.
따라서 원고의 위자료 채권은 118,904,800원(= 190,000,000원 - 71,095,200원)이 된다.
3) 지연손해금의 기산점
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별도의 이행 최고가 없더라도 그 채무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함으로써 위자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변론종결시의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 등의 사정이 불법행위시에 비하여 상당한 정도로 변동한 결과 그에 따라 이를 반영하는 위자료 액수 또한 현저한 증액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변론종결 당일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38325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의 경우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 시점부터 이 사건 당심 변론종결일까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물가, 통화가치와 국민소득 수준 등이 크게 변동되었고, 이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지급할 위자료의 액수를 새로이 정하게 되었으므로,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이 사건 당심 변론종결일인 2020. 8. 13.부터 발생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4)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118,904,8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당심 변론종결일인 2020. 8. 13.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재여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당심 판결선고일인 2020. 9. 10.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마. 피고의 주장에 관한 판단
1) 불법행위 불성립
가) 피고는, 긴급조치 제9호에 기초하여 원고에 대하여 수사가 개시되어 공소 제기 및 유죄판결이 선고되고, 이후 형벌에 관한 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가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여 재심절차에서 이를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는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재심대상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된 경우라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에 대한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이 곧바로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 살피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국가기관이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을 이유로 원고를 연행하여 조사한 후 유죄판결을 선고하고 구금한 행위 자체가 공무원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이상 이후 재심절차에서 원고가 무죄판결을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받았는지 후단에 의하여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국가의 불법행위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고 할 수 없다.
다) 설령 국가기관이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을 이유로 원고를 연행하여 조사한 후 유죄판결을 선고하고 구금한 행위 자체가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재심절차에서 원고에게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판결이 확정되어서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재심대상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된 경우라고 볼 수 없다 하더라도,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위법행위를 하였는지 및 그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별도로 심리하여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의 내용, 유죄를 인정할 증거의 유무, 재심개시결정의 이유, 사건 관련자가 재심무죄판결을 받게 된 경위 및 그 이유 등을 종합하여,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무효 등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있었음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증명이 이루어진 때에는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에 대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참조).
그런데, 갑 제3 내지 6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육군 하사로 근무하던 중 1976. 3. 10. 중앙정보부에 의하여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된 사실, 이후 원고는 수사기관에서 구타 및 욕설과 강요에 의하여 진술서 및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사실, 원고는 중앙정보부에서 육군보안대를 거쳐 헌병대로 이첩되어 군수사령부보통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은 사실, 위 재판이 시작될 때까지 원고는 공소사실 내용 및 국선변호인 선임을 몰랐던 사실, 원고는 위 재판에서 1976. 3. 31. 징역 1년 6월의 형을 선고받고 이른바 ‘남한산성’이라 불리는 육군교도소 재생동으로 이감되어 1977. 2. 16. 이 사건 군법회의판결이 선고될 때가지 헌병들로부터 잦은 구타와 폭행을 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과 이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비록 원고가 재심절차에서 긴급조치 제9호 위반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더라도, 위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의 무죄사유인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무죄를 선고받았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원고의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에 대하여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
① 수사 과정에서 국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및 헌법상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수사기관의 공무원들이 원고를 수사함에 있어서 불법체포·구금, 폭행, 불리한 진술 강요 등의 인권 침해행위를 하였다.
② 위와 같은 인권 침해행위로 인한 심리적 압박 상태가 수사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법정에까지 계속되어 범죄사실에 부합하는 원고의 진술은 임의성이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
③ 재심대상판결인 이 사건 군법회의판결에서 원고의 진술을 제외할 경우 남는 유죄의 증거는 김선도의 진술조서 및 진술서와 압수물인데, 위 증거들도 불법적으로 수집되었을 개연성이 있어 위 증거들만으로 원고의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부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2) 소멸시효 완성
가) 당사자의 주장
피고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여야 하는데, 원고가 구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지급받은 2005. 9. 27.에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음에도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3. 9. 13. 이 사건 선행소송을, 2019. 2. 22. 이 사건 소를 각 제기하였으므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하여 소멸하였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1) 채무자의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시효완성 전에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어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권자가 그러한 장애가 해소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등 참조).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 등으로 수집한 증거 등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의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재심사유의 존재 사실이 뒤늦게 밝혀짐에 따라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후 국가기관의 위법행위 등을 원인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채권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채무자인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다만 채권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장애가 해소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는 6개월의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 하고, 그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는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다.
한편 재심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채권자로서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에 앞서, 그보다 간이한 절차라고 할 수 있는 형사보상법에 따른 형사보상을 먼저 청구할 수 있으므로, 채권자가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지는 아니하였더라도 그 기간 내에 형사보상법에 따른 형사보상청구를 한 경우에는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는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이를 연장할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할 것이고, 그때는 형사보상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기간은 권리행사의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객관적으로 소멸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다201844 판결 참조).
(2)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을 보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는 영장 없이 체포되어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기소되었으며, 이어진 형사재판 과정에서는 긴급조치 제9호가 유효하다는 전제 하에 유죄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었다. 이처럼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그 효력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심을 통해 과거의 유죄판결이 잘못되었다는 법원의 공권적 판단을 받기 전까지는 과거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전제로 부당하게 구금당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아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원고는 원고에 대한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2013. 8. 3.까지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리고 원고의 형사보상법에 따른 형사보상청구로 이루어진 원고에 대한 형사보상금 지급 결정이 2013. 10. 9. 확정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이 사건 소는 재심무죄판결 확정일인 2013. 8. 3.로부터 3년 및 위 형사보상결정 확정일인 2013. 10. 9.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9. 2. 22.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소가 제기된 아래와 같은 경위에 비추어보면, 권리행사의 장애사유가 해소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원고가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하였는지 여부는 이 사건 소 제기일이 아닌 이 사건 선행소송 제기일을 기준으로 판단함이 타당하다.
① 이 사건 선행소송의 청구원인과 이 사건 소의 청구원인은 모두 국가기관의 위법행위 등을 원인으로 하여 국가인 피고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로써 동일하다.
② 이 사건 선행소송에서는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원고와 피고 사이에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보아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소를 각하하는 판결이 났고, 위 판결이 2018. 5. 15. 확정됨으로써 본안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
③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 확정 이후인 2018. 8. 30.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효력이 상실됨으로써 이 사건 선행소송의 소송요건 흠결이 치유되었고, 원고는 그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지 않은 2019. 2. 22.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④ 이 사건 선행소송 판결은 재심무죄판결 확정일인 2013. 8. 3. 및 형사보상판결 확정일인 2013. 10. 9.로부터 3년이 지난 2018. 5. 15. 확정되었고, 원고에게 위 판결 확정 이전에 다시 소멸시효 중단만을 위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⑤ 이 사건 선행소송이 본안 판단 없이 소송요건 흠결을 이유로 각하된 후 소송요건 흠결이 치유되어 본안 판단이 가능해짐에 따라 원고가 본안 판단을 받기 위하여 다시 이 사건 소를 제기한 것이므로, 이 사건 소는 실질적으로 이 사건 선행소송과 동일한 소이다.
(3) 그런데 이 사건 선행소송이 재심무죄판결 확정일인 2013. 8. 3.로부터 6개월 이내이자 형사보상결정 확정일인 2013. 10. 9. 이전인 2013. 9. 13. 제기되었으므로, 청구원인이 동일한 이 사건 소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해소된 때로부터 신의칙상 상당한 기간 내에 제기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4) 따라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으므로, 이를 지적하는 원고의 재항변은 이유 있고, 결국 피고의 위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소는 적법하고,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며,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여야 한다.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이 사건 소를 각하한 제1심 판결은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취소하되, 제1심에서 본안 판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리가 되었다고 인정되므로 제1심 법원으로 환송하지 아니하고 본안 판결을 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황정수(재판장) 최호식 이종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