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오근 변호사 입니다.
최근 고령 사회 진입과 함께 상속 분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법제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상속 관련 소송 건수는 2018년 대비 2023년 약 37% 증가했으며, 그 가운데 유언장 위조 또는 변조를 쟁점으로 하는 사건의 비율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유언장의 진정성립(문서가 진짜 작성자의 의사에 의해 작성되었는지 여부)이 부정되면 해당 유언은 효력을 잃게 되므로, 상속재산의 귀속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속인 사이에서 유언장 위조가 의심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방법이 필적 감정입니다. 그러나 필적 감정이 어떤 절차를 거쳐 진행되는지, 법적으로 어떠한 효력을 갖는지 정확히 아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유언장 위조 의심 상황에서의 필적 감정 절차, 감정 결과의 법적 효력, 그리고 실무상 유의해야 할 사항을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실무에서 유언장 위조 의심이 제기되는 경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유형 1. 피상속인(고인)이 치매 또는 중증 질환으로 투병 중이었음에도 정교한 필체의 자필증서유언이 발견된 경우
유형 2. 유언장의 필체가 피상속인의 평소 글씨체와 현저히 다르다고 다른 상속인이 주장하는 경우
유형 3. 유언 내용이 피상속인의 생전 의사표시와 현저하게 모순되는 경우
유형 4. 특정 상속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 작성 경위가 의심되는 경우
위 유형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면, 해당 유언장의 진정성립을 다투기 위한 법적 절차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핵심적인 증거 방법이 바로 필적 감정입니다.
필적 감정은 민사소송법 제333조 이하의 감정에 관한 규정에 근거합니다. 법원은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감정을 명할 수 있으며, 문서의 진정성립이 다투어지는 경우 필적 감정은 가장 대표적인 감정 유형에 해당합니다.
필적 감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사적 감정: 소송 전 또는 소송 외에서 당사자가 민간 감정기관에 의뢰하는 방식입니다. 비용은 통상 80만~200만 원 수준이며, 소요 기간은 2~4주입니다. 다만 사적 감정 결과는 법원에서 참고자료 수준으로만 취급되는 경우가 많아, 그 자체로 결정적 증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법원 감정(촉탁 감정): 소송 계속 중 법원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또는 법원 지정 감정기관에 감정을 촉탁하는 방식입니다. 비용은 100만~300만 원 수준이며, 소요 기간은 통상 3~6개월입니다. 법원 감정 결과는 재판부의 심증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필적 감정 결과는 법원의 자유심증주의(민사소송법 제202조)에 따라 재판부가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즉, 감정 결과가 "위조"라고 나왔다 하더라도 법원이 반드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실무상 감정 결과의 영향력
다만 실제 재판 실무에서 국과수 감정 결과는 상당히 높은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으며, 감정 결과와 반대되는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감정 결과가 명확하게 "동일인의 필적이 아님"으로 나온 경우,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피고 측이 상당한 반증을 제시해야 합니다.
반면 감정 결과가 "판단 곤란"으로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대조 필적이 부족하거나, 유언장 작성 시기의 피상속인 건강 상태(손 떨림 등)로 인해 필체 변화가 큰 경우에 발생합니다. 이 경우 법원은 필적 감정 외에 증인 진술, 의료 기록, 유언장 발견 경위 등 다른 증거를 종합하여 판단하게 됩니다.
필적 감정의 정확도는 대조 필적의 확보 수준에 크게 좌우됩니다. 유언장 작성 추정 시기 전후 1~2년 이내에 작성된 피상속인의 자필 문서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명만 있는 문서보다는 문장을 직접 기재한 문서가 감정 정확도 면에서 유리합니다.
유언장 원본이 훼손되거나 분실되면 감정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유언장 위조가 의심되는 즉시 법원에 증거보전신청(민사소송법 제375조)을 하여 원본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증거보전신청은 소송 제기 전에도 가능합니다.
유언무효확인 소송에서 위조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필적 감정 외에도 보충 증거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피상속인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의료 기록, 유언장 작성 당시 피상속인과 관계자들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유언장이 발견된 경위에 관한 진술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유언무효확인의 소 자체에는 별도의 제소 기간이 없으나, 상속재산의 분할이나 유류분 반환 청구는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유류분 반환 청구권의 경우 상속 개시와 유류분 침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상속 개시일로부터 10년 이내에 행사해야 합니다. 따라서 유언장 위조가 의심되는 경우 가능한 한 신속하게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필적 감정 방법도 점차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기반 필적 인식 기술이 감정 보조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필압 분석 장비의 정밀도도 과거와 비교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다만 법원 감정에서 이러한 신기술이 본격적으로 채택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자필증서유언의 위조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공정증서유언(민법 제1068조)을 활용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만합니다. 공정증서유언은 공증인 앞에서 유언 내용을 구수(말로 전달)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하여 작성하므로, 사후에 필적 위조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비용은 유언 대상 재산 가액에 따라 다르나, 통상 30만~100만 원 수준입니다.
상속 분쟁은 가족 간의 갈등을 수반하는 만큼, 감정적 대응보다는 객관적 증거에 기반한 체계적 법적 대응이 중요합니다. 유언장 위조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증거 확보 단계부터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분쟁의 장기화를 방지하고 최선의 결과를 얻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