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오근 변호사 입니다.
벤처 투자를 유치할 때 가장 먼저 접하는 문서가 투자조건합의서(Term Sheet)입니다. 핵심만 말씀드리면, Term Sheet의 각 조항이 이후 투자계약서의 뼈대가 되므로 이 단계에서 쟁점을 놓치면 수억 원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실제 상담 현장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유형의 사례를 바탕으로, 핵심 쟁점 3가지를 분석합니다.
사건 개요
서울 강남에서 AI 기반 물류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A씨(37세, 대표이사)는 시리즈A 투자를 위해 벤처캐피탈 B사로부터 30억 원 규모의 Term Sheet을 수령했습니다. A씨는 투자금이 급한 나머지 Term Sheet의 세부 조건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서명했습니다. 이후 본계약 단계에서 B사는 Term Sheet에 명시된 청산우선권(Liquidation Preference), 희석방지(Anti-Dilution) 조항, 그리고 독점교섭권(Exclusivity) 위반을 근거로 A씨에게 위약금 3억 원을 청구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Term Sheet 자체는 원칙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예비적 합의입니다. 다만 이것은 "전체"에 대한 이야기이고, 개별 조항별로 구속력 여부가 달라집니다.
구속력 없는 조항 (Non-binding)
투자금액, 기업가치 평가(Valuation), 주식 종류, 이사회 구성 등 투자의 핵심 경제적 조건은 대부분 non-binding으로 작성됩니다. 본계약 체결 전까지 변경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구속력 있는 조항 (Binding)
독점교섭권(Exclusivity), 비밀유지의무(Confidentiality), 비용부담(Expense) 조항은 통상 binding으로 설정됩니다. A씨의 사례에서 B사가 위약금을 청구한 근거가 바로 이 독점교섭권 조항의 위반이었습니다.
A씨는 Term Sheet 서명 후 다른 VC C사와도 투자 협상을 병행했는데, B사가 설정한 60일간의 독점교섭 기간을 위반한 것입니다. 실무에서는 Term Sheet에 "본 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라는 문구가 있더라도, 독점교섭 조항만큼은 별도로 "binding"이라고 명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A씨처럼 위약금 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B사의 Term Sheet에는 청산우선권(Liquidation Preference) 2배 참가형(Participating)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청산우선권이란 회사가 매각(M&A)되거나 청산될 때, 투자자가 보통주주(창업자)보다 먼저 투자금의 일정 배수를 회수하는 권리입니다.
시뮬레이션: 회사가 80억 원에 매각될 경우
결국 80억 원 매각에서 창업자 몫은 15억 원에 불과합니다. 만약 청산우선권이 1배 비참가형(Non-Participating)이었다면, B사는 30억 원 회수 후 잔여 분배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A씨의 몫은 37.5억 원이 됩니다. 이처럼 배율과 참가형 여부에 따라 창업자의 수령액이 2배 이상 차이 납니다.
실무에서 시리즈A 수준에서 2배 참가형은 투자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으로 평가됩니다. 국내 벤처 투자 시장에서는 1배 비참가형 또는 1배 참가형이 일반적인 수준입니다. A씨는 이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서명한 것입니다.
B사의 Term Sheet에는 완전래칫(Full Ratchet) 방식의 희석방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희석방지(Anti-Dilution) 조항은 후속 투자 라운드에서 기업가치가 하락(다운라운드)할 경우, 기존 투자자의 전환가격을 조정하여 지분 희석을 방지하는 장치입니다.
Full Ratchet vs. Weighted Average 비교
완전래칫(Full Ratchet): 다운라운드 시 기존 전환가격을 새로운 낮은 가격으로 일괄 변경합니다. 투자자에게 가장 유리하고 창업자에게 가장 불리한 방식입니다.
가중평균(Weighted Average): 기존 발행주식 수와 신규 발행주식 수를 가중평균하여 전환가격을 조정합니다. 창업자의 지분 희석이 상대적으로 완화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B사가 시리즈A에서 주당 10,000원에 30만 주를 인수했는데, 시리즈B에서 기업가치가 하락하여 주당 5,000원에 신규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가정합니다.
Full Ratchet은 다운라운드가 발생하면 창업자의 지분이 급격히 희석됩니다. 국내 벤처 투자 실무에서 Full Ratchet은 시드 단계나 브릿지 투자처럼 소규모 라운드에서 간혹 사용되며, 시리즈A 이상에서는 가중평균 방식이 표준으로 통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