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이혼 전문변호사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국내 중견 제조업체의 기술이사로 15년을 근무한 C씨는, 퇴직 직후 경쟁사의 연구소장으로 합류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C씨가 이직한 경쟁사에서 기존 회사의 핵심 공정기술과 놀랍도록 유사한 제품을 불과 3개월 만에 출시한 것입니다. 전직 회사는 영업비밀 유출을 의심했고, 수사 과정에서 C씨의 개인 외장하드에 수천 건의 기술 도면과 원가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례처럼 임원급 인사에 의한 영업비밀 유출은, 단순한 정보 유출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가집니다. 임원은 회사의 전략적 핵심 정보에 광범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수년간 이른바 '기술 탈취' 관련 분쟁이 급증하고 있으며, 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 관련 분쟁 건수는 2019년 대비 2023년 약 2.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임원이 관여된 사건은 피해 금액이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아, 기업 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는 영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기타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로 정의합니다.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임원이 접근하는 정보는 대개 이 세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사적 원가 구조, 핵심 거래처 리스트, 미공개 신제품 설계도, 인수합병(M&A) 전략 등은 경영상 또는 기술상 영업비밀의 전형에 해당합니다. 일반 직원의 경우 자신의 업무 범위 내 정보만 접근하지만, 임원은 부서를 횡단하여 회사의 가장 민감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출 시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제1항은 영업비밀을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취득, 사용, 공개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같은 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이를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외국에서 사용될 것임을 알면서 취득, 사용, 공개한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이 대폭 가중됩니다.
실무에서 주목할 점
임원의 영업비밀 유출은 '배임' 혐의(형법 제356조, 업무상 배임)와 경합하여 기소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임원은 회사와의 위임관계에서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부담하므로, 영업비밀 유출 행위 자체가 '임무에 위배하여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업무상 배임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법이 적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습니다.
최근 수사 실무에서는 디지털 포렌식 기술의 발달로, 임원이 퇴직 전후로 USB, 클라우드, 개인 이메일 등으로 자료를 반출한 행위가 정밀하게 추적됩니다. 파일의 복사 시점, 접근 로그, 심지어 삭제 후 복구된 데이터까지 증거로 활용되는 만큼, '단순한 참고용이었다'는 해명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영업비밀을 침해당한 기업은 민사적 구제수단을 병행할 수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내지 제14조의2가 그 근거입니다.
영업비밀 보유자는 침해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으며, 침해 행위에 사용된 물건의 폐기나 시설의 제거를 함께 요구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본안 소송 전에 영업비밀 침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여, 경쟁사가 유출된 영업비밀을 즉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긴급하고 효과적인 대응입니다.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영업비밀 침해 행위로 타인의 영업상 이익을 침해하여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손해액 산정이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2는 법원이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 결과에 기초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실제 분쟁에서는 피해 기업의 매출 감소액, 기술개발 비용, 시장점유율 변동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며, 임원급 유출 사건에서는 수십억 원 단위의 손해배상이 인정된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법원은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이와 함께 영업상 신용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습니다. 정정광고나 사과문 게재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한 가지 더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영업비밀을 넘겨받은 경쟁사 역시 '전득자(轉得者)'로서 책임을 부담할 수 있습니다. 경쟁사가 해당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 함께 민형사 책임의 대상이 됩니다.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에게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무를 부과합니다. 영업비밀 유출 행위는 이 충실의무에 대한 명백한 위반입니다. 회사는 상법 제385조에 따라 주주총회 결의로 해당 임원을 해임할 수 있고,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손해배상 없이 즉시 해임이 가능합니다.
또한 상법 제399조에 의하여, 이사가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집니다. 이 경우 영업비밀 유출로 인한 매출 손실, 기술 경쟁력 저하, 소송 비용 등 포괄적인 손해가 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경쟁사(법인)도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의4(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의 대표자나 대리인, 사용인이 법인의 업무에 관하여 영업비밀 침해 행위를 한 경우, 행위자를 벌하는 것 외에 해당 법인에게도 벌금형이 부과됩니다. 다만, 법인이 위반행위 방지를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면 면책될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C씨의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수사 결과 C씨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되었고, 전직 회사는 C씨와 경쟁사를 상대로 3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함께 영업비밀 사용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C씨 개인에게는 형사 처벌과 민사 손해배상이라는 이중의 부담이, 경쟁사에게는 양벌규정에 따른 벌금과 민사 배상 책임이 동시에 부과된 것입니다.
기업 측면에서는 영업비밀 관리 체계를 사전에 구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비밀유지서약서(NDA) 체결, 접근 권한 등급화, 퇴직 시 자료 반환 절차 마련, 그리고 정기적인 보안 감사는 추후 분쟁 발생 시 '합리적 비밀관리 노력'을 입증하는 결정적 근거가 됩니다. 이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정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임원 측면에서는, 퇴직 전후 어떠한 형태로든 회사 자료를 반출하는 행위가 형사 수사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만든 자료', '내 머릿속에 있는 노하우'라는 인식은 법적으로 통용되지 않습니다. 회사의 비용과 자원을 투입하여 생성된 정보는 원칙적으로 회사에 귀속되며, 이를 무단으로 반출하면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와 업무상 배임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영업비밀 유출 사건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피해의 확산과 증거의 훼손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유출이 의심되는 시점에서 신속하게 증거를 보전하고, 법적 대응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결과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