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민사전문 변호사입니다
가족 간의 관계는 세월에 따라 변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작성해둔 유언장이 지금의 마음과 달라져 고민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한번 작성한 유언은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 민법은 유언자가 언제든지 유언을 철회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철회 방법과 그에 따른 법적 효과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중에 상속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사례 개요
서울에서 35년간 섬유 무역업을 운영해 온 A씨(72세, 남성)는 5년 전 공정증서 유언으로 "사업 자금을 함께 운용해 온 장남 B(47세)에게 서울 서초구 아파트(시가 약 14억 원)와 예금 3억 원을 상속한다"는 내용의 유언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장남 B가 별다른 상의 없이 사업 자금 중 상당액을 개인 투자에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반면 둘째 딸 C(44세)는 A씨의 투병 기간 내내 곁에서 간병을 해왔습니다. A씨는 기존 유언을 철회하고, 재산을 C에게 더 많이 배분하는 새 유언을 작성하고 싶어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증까지 받은 유언도 바꿀 수 있나요?"라고 질문하십니다. 민법 제1108조는 "유언자는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써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유언 철회의 3대 원칙
1. 철회의 자유 - 유언자는 사망 시까지 횟수 제한 없이 철회 가능
2. 이유 불요 - 철회에 아무런 이유나 사유가 필요하지 않음
3. 철회권 포기 불가 - 미리 "철회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도 법적으로 무효
A씨의 경우 공정증서로 유언을 작성하셨지만, 공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철회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지는 않습니다. 실무에서도 공정증서 유언을 새로운 유언으로 대체하는 사례는 상당히 빈번합니다.
유언을 철회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각각의 요건이 다르므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새로운 유언으로 철회하는 방법입니다. 민법 제1109조에 따르면, 전후의 유언이 서로 저촉되는 경우에는 저촉되는 부분에 한하여 전(前) 유언이 철회된 것으로 봅니다. A씨가 새로운 공정증서 유언이나 자필증서 유언을 작성하여 "서초구 아파트와 예금 3억 원을 C에게 상속한다"고 기재하면, 기존 유언 중 동일한 재산에 관한 부분은 자동으로 철회됩니다.
실무에서는 새 유언서에 "이전에 작성한 0000년 0월 0일자 유언은 전부 철회한다"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기재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렇게 하면 저촉 여부를 둘러싼 다툼의 소지가 크게 줄어듭니다.
둘째, 유언과 저촉되는 생전행위로 철회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A씨가 서초구 아파트를 생전에 C에게 증여해 소유권을 이전하면, 해당 아파트에 대한 기존 유언은 철회된 것으로 봅니다(민법 제1109조 제2항). 다만 이 방법은 증여세 부담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세무 측면에서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셋째, 유언장 자체를 파기(파훼)하는 방법입니다. 민법 제1110조에 따르면, 유언자가 고의로 유언장을 파기한 때에는 그 파기한 부분에 대하여 유언이 철회된 것으로 봅니다. 자필증서 유언의 경우 원본을 찢거나 소각하면 비교적 간단합니다. 다만 A씨처럼 공정증서 유언을 하신 경우에는 원본이 공증인 사무소에 보관되어 있으므로, 유언자가 보관하고 있는 정본만 파기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새로운 유언을 작성하여 철회하는 방법이 가장 안전합니다.
A씨가 새 유언으로 C에게 대부분의 재산을 남기더라도, 장남 B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민법은 법정상속인에게 유류분(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1112조에 의하면 직계비속의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입니다. A씨의 총 상속재산이 아파트 14억 원과 예금 3억 원, 합계 17억 원이고, 배우자가 이미 사망하여 B와 C 둘만 상속인이라고 가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류분 산정 예시
B의 법정상속분: 17억 원 x 1/2 = 8억 5,000만 원
B의 유류분: 8억 5,000만 원 x 1/2 = 4억 2,500만 원
따라서 A씨가 C에게 전부를 유증하더라도, B는 최소 4억 2,500만 원 상당의 유류분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이 부분을 간과하셨다가 나중에 유류분 소송으로 가족 간 갈등이 더 깊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유언을 철회하고 새로운 유언을 작성하실 때에는,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을 미리 반영하여 현실적인 배분 비율을 설정하시는 것이 분쟁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A씨의 사례를 바탕으로, 유언 철회를 고려하시는 분들께 실무적으로 중요한 사항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새 유언은 법정 방식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민법이 정한 유언의 방식(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을 갖추지 않으면 새 유언 자체가 무효가 되어, 결국 기존 유언이 그대로 효력을 유지하게 됩니다. 특히 자필증서 유언의 경우 전문(전체 내용), 작성일자, 주소, 성명을 모두 자필로 기재하고 날인해야 합니다.
2. 철회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십시오. "이전 유언 전부를 철회한다"는 문구를 새 유언서에 포함하면, 후일 해석상 다툼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3. 유류분을 고려한 배분 설계가 필요합니다. 유언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유류분을 침해하는 유언은 상속 개시 후 유류분반환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가급적 전문가와 함께 전체 상속재산의 규모와 상속인 구성을 파악한 뒤 배분 비율을 결정하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4. 유언 철회와 증여의 세무적 차이를 확인하십시오. 생전 증여로 사실상 유언을 철회하는 경우, 증여세와 상속세의 세율 차이, 합산 과세 기간(상속 개시 전 10년 이내 증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예상치 못한 세금 부담을 피할 수 있습니다.
가족 사이의 일이기에 더 마음이 무거우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언은 살아계신 동안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고, 현재의 상황과 마음에 맞게 다시 정리하는 것은 오히려 남은 가족들을 위한 배려가 될 수 있습니다. 법이 정한 절차를 정확히 밟으시면, 유언 철회 자체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민사전문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