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진단과 분석, 결과로 증명합니다.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60대 운전 경력 35년의 베테랑 운전자가 주차장에서 차량을 후진하던 중, 갑자기 차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하며 콘크리트 벽을 들이받았습니다. 본인은 분명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차량 제조사는 "운전자 페달 오조작"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분은 중상을 입고도 보상을 받지 못한 채 1년 넘게 법적 공방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이처럼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하는데도, 법정에서 원인을 증명하는 일이 극도로 어렵습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접수된 급발진 의심 민원은 약 1,200건에 달하지만, 제조사의 결함이 공식 인정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그리고 피해자가 어떤 전략으로 입증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실무 관점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제조물책임법(PL법) 제3조에 따르면,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업자가 배상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 문제가 생깁니다. 같은 법 제3조의2에서 피해자에게 일정 부분 입증 부담을 완화해 주고 있지만, 급발진 사고는 그 특성상 사고 직후 차량의 전자제어장치(ECU) 데이터가 제조사에 종속되어 있어 피해자가 독자적으로 결함을 규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급발진 입증이 어려운 3가지 구조적 요인
1. 전자제어장치(ECU) 데이터의 비대칭성 - 원시 데이터는 제조사만 해독 가능
2. 사고기록장치(EDR) 기록의 한계 - 브레이크 페달 스위치 신호만 기록, 실제 답력은 미기록
3. 재현 불가능성 - 간헐적 전자 결함은 동일 조건 재현이 극히 곤란
특히 EDR(Event Data Recorder, 사고기록장치)은 사고 전후 약 5초간의 차량 상태를 기록하는데, 이 데이터에는 "브레이크 페달 스위치 ON/OFF"만 남을 뿐 운전자가 실제로 얼마만큼의 힘으로 페달을 밟았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제조사는 이 데이터를 근거로 "브레이크 작동 기록 없음 =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인식한 대법원은 제조물책임 사건에서 소비자 측 입증 부담을 상당 부분 완화하는 법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핵심은 "구체적 결함 부위를 특정하지 못하더라도, 정상적인 사용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였고 그것이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 영역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증명하면 결함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무에서는 이 법리를 활용하여 다음과 같은 간접사실의 조합으로 결함을 추정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이 4가지 요소가 모두 갖추어지면, 법원은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 영역에 속하는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여 결함 추정의 문을 열어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다만 이는 추정일 뿐이므로, 제조사가 반증에 성공하면 추정이 번복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급발진 사고의 승패는 사고 발생 직후 72시간 이내의 대응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안타까운 사례 중 하나가, 사고 차량을 보험사나 정비소에 인도한 뒤 핵심 데이터가 덮어씌워지거나 차량이 폐차 처리되는 경우입니다.
급발진 사고의 입증 곤란성은 입법적 해결 요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자동차 급발진 사고 시 제조사에 결함 부존재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수차례 발의되었습니다. 또한 2024년부터 신규 출시 차량에 대해 EDR 장착이 의무화되었고, 향후 기록 항목이 확대되면 운전자 답력(브레이크를 밟는 힘) 정보까지 저장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목할 변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2024년 1월 1일 이후 제작 차량에 EDR 장착이 의무화되었습니다. 다만 기존 운행 차량은 적용 대상이 아니며, 기록 항목의 범위도 아직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됩니다. 일부 제조사는 자체적으로 브레이크 페달의 물리적 스트로크(이동 거리)를 기록하는 센서를 추가 장착하기 시작했고,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상세 로그가 남아 급발진 여부를 판별하는 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미 사고를 당한 피해자에게는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현행법 체계 안에서 가용한 모든 증거를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간접사실의 조합을 통해 결함 추정의 법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실질적인 대응 방안입니다. 사고 발생 직후 차량 보전과 증거 확보에 착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초기 대응의 적절성이 이후 소송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