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사 겸 변호사 서창완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수급인(시공사)이 부도, 회생, 파산 등으로 도산하면 발주자 입장에서는 공사가 멈추는 것은 물론, 기성금 정산, 하수급인 보호, 공사 속행 주체 선정 등 복잡한 법적 문제가 동시에 발생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상황에서 발주자가 어떤 절차를 거쳐 공사를 속행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체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사례 개요
경기 화성시에서 지상 12층 규모 오피스텔 신축 공사를 발주한 시행사 대표 A씨(52세)는 시공사 B건설과 총 공사대금 78억 원에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기성금 약 41억 원을 이미 지급한 상태였습니다. 공정률이 약 53%에 이른 시점에서 B건설이 법원에 회생신청을 하며 현장 인력이 철수했고, 하수급인 C사(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체)에게도 약 3억 2,000만 원의 하도급대금이 미지급된 상황입니다. A씨는 2025년 9월 준공 일정을 지켜야 분양 계약 위약금을 피할 수 있어,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재개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첫째, 수급인이 도산한 경우 발주자가 기존 도급계약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됩니다.
민법 제674조는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에 도급인(발주자)이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조항은 도급인의 임의 해제에 관한 것이므로, 수급인의 채무불이행(공사 중단)을 이유로 한 해제는 민법 제544조(이행지체에 의한 해제)를 근거로 합니다.
실무상 유의점: 수급인이 법원에 회생신청을 한 경우,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회생법') 제119조에 따라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은 관리인이 이행 또는 해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발주자가 일방적으로 해제하기 전에, 회생 관리인의 선택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관리인이 상당 기간 내에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해제된 것으로 봅니다.
A씨가 이미 지급한 41억 원과 실제 공사 진행분(기성 부분) 사이의 차이가 문제됩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산이 이루어집니다.
기성고 감정: 법원 감정 또는 양 당사자 합의로 선임한 감정인이 실제 시공된 부분의 가치를 산정합니다. 공정률 53%라고 해서 78억 원의 53%(약 41.3억 원)가 기성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재 단가, 실제 투입 인력, 시공 품질 등을 종합하여 별도로 평가됩니다.
선급금 초과 지급분: 기성 감정 결과 기지급 금액이 실제 기성고를 초과한 경우, 초과분은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급인이 회생 절차에 있다면, 이 반환 청구권은 회생채권으로 신고해야 합니다.
하자 부분 공제: 기시공 부분에 하자가 있다면 하자보수비용 상당액을 기성금에서 공제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후속 시공사 선정 시 중요한 비용 요소가 됩니다.
둘째, 미지급 하도급대금이 있는 하수급인 C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가 문제됩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제14조 제1항은 원사업자(수급인)가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경우, 발주자가 하수급인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음 사유에 해당하면 직접지급 의무가 발생합니다.
원사업자의 지급정지, 파산,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사유가 있는 경우
발주자가 하도급대금을 직접 하수급인에게 지급하기로 발주자, 원사업자, 하수급인 3자가 합의한 경우
원사업자가 하도급대금 지급을 2회 이상 지연한 경우
A씨 사례 적용: B건설이 회생신청을 하였으므로 '파산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사유'에 해당합니다. A씨는 C사에 대해 잔여 공사대금 범위 내에서 하도급대금 3억 2,000만 원을 직접 지급할 의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기지급 기성금이 실제 기성고를 초과한 경우에는 직접지급 범위가 제한될 수 있으므로, 정확한 기성고 산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다투어지는 쟁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수급인이 회생 절차에 들어간 후에도 발주자의 직접지급 의무가 유지되는지에 관하여, 판례는 직접지급 청구권이 이미 발생한 경우에는 회생채권이 아니라 공익채권 또는 별도의 독립적 청구권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므로, 법률 전문가의 검토가 필수적입니다.
셋째,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서 공사를 실제로 속행하기 위해 발주자가 밟아야 할 절차를 정리하겠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후속 시공에 따른 추가 비용입니다. 일반적으로 공사 도중 시공사가 교체되면, 기존 시공 부분과의 접합 비용, 공사 중단 기간 동안의 현장 관리 비용, 후속 시공사의 리스크 프리미엄 등이 추가로 발생합니다. 실무 경험상 잔여 공사 금액 대비 15~30% 정도의 추가 비용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A씨 사례 결론: A씨는 (1) 회생 관리인에게 계약 이행 여부 최고 후, 해제 확정 시 즉시 기성고 감정을 진행하고, (2) C사 등 기존 하수급인과 직접 계약 전환을 협의하여 공사 연속성을 확보하며, (3) 계약이행보증금 약 7.8억 원을 청구하여 추가 공사 비용에 충당하는 전략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아울러 하도급법에 따른 직접지급 의무를 이행하여 C사의 미지급 하도급대금 3억 2,000만 원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합니다. 다만 이 모든 절차는 각 단계마다 법적 리스크가 수반되므로, 초기 단계에서부터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는 길입니다.
수급인 도산 시 공사 속행 문제는 도급계약법, 회생법, 하도급법, 건설산업기본법 등 여러 법률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분야입니다. 개별 사안마다 계약 조건, 기성금 지급 현황, 보증 가입 여부, 하수급인 관계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으므로, 획일적인 해법보다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기반한 맞춤형 전략 수립이 필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