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칼럼 ›민사·계약 ›하자·제조물책임(PL)
민사·계약 · 하자·제조물책임(PL) 2026.04.19 조회 26

제조물 설계상 결함, 소비자가 입증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

이희태 변호사
법무법인 엘리트로 · 경기도 평택시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40대 자영업자 C씨는 새로 구입한 전동 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던 중 핸들 조향장치가 갑자기 잠기면서 도로 위에서 넘어졌습니다. 팔목 골절과 안면부 열상으로 수술비만 800만 원이 넘었고, 3주 넘게 가게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제조사에 배상을 요구하자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사용자의 과실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C씨처럼 제품 결함으로 피해를 입고도 책임 소재를 밝히지 못해 포기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제조물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연간 3,000건을 넘지만 실제 소송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1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가장 큰 장벽은 단 하나, "설계상 결함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입니다.

설계상 결함이란 무엇인가

제조물 책임법(이하 PL법) 제2조는 결함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제조상 결함, 설계상 결함, 표시상 결함이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설계상 결함은 "합리적 대체설계(Reasonable Alternative Design)를 채용했더라면 피해를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아니한 결과 해당 제조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를 말합니다.

제조상 결함이 공장에서 발생하는 일탈적 불량이라면, 설계상 결함은 설계도면 자체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라인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이 동일한 위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피해 범위가 훨씬 넓어질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설계상 결함 유형

- 안전장치(과열 차단, 자동 잠금 해제 등) 미설치

- 충격 흡수 구조 미비로 통상적 사용 중 파손 발생

- 인체공학적 고려 부족으로 오작동 유발 가능성이 높은 조작부 배치

소비자의 입증 범위가 완화된 배경

PL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소비자가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에 따라 제조사의 "과실"을 직접 증명해야 했습니다. 설계 도면을 입수하고, 내부 테스트 보고서를 확보하고, 제조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떤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는지를 소비자 스스로 밝혀야 했던 셈입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PL법 제3조 제1항은 이를 뒤집었습니다. 제조업자가 결함 있는 제조물을 공급한 사실, 그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소비자가 증명하면,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제조업자에게 배상책임이 발생합니다. 이른바 "무과실책임"입니다.

더 나아가, 2017년 PL법 개정으로 신설된 제3조의2(결함 등의 추정)는 소비자의 부담을 한층 덜어주었습니다. 아래 세 가지 사실이 증명되면 결함의 존재 자체가 "추정"됩니다.

1
제조업자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영역에서 손해가 발생 소비자가 제품을 임의로 분해하거나 개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났다는 점을 보여주면 됩니다.
2
해당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 지배 영역에 속하는 원인으로부터 초래 통상적인 사용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비정상적 사용이었다면 추정이 깨질 수 있습니다.
3
해당 손해가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제품이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경험칙에 해당합니다.

이 세 요건을 충족하면 결함의 존재가 추정되므로, 제조사 쪽에서 "결함이 없었다"는 반증을 해야 합니다. 입증의 무게추가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비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

법이 입증 부담을 줄여주었다고 해서, 소비자가 아무 준비 없이 소송에 임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승소 가능성을 가르는 분수령은 결국 "초기 증거 확보"에 있습니다.

1
사고 현장 보존 및 사진 촬영 제품의 파손 부위, 주변 환경, 부상 부위를 시간 순서대로 촬영해 두어야 합니다. 스마트폰 사진의 메타데이터(촬영 일시, 위치)가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2
제품 원형 유지 수리하거나 폐기하면 감정이 불가능해집니다. 사고 제품은 수리 전 상태 그대로 보관해야 합니다.
3
사용 이력 정리 구매 영수증, 사용 기간, 충전 또는 관리 이력 등을 정리하면 "통상적 사용"이었음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4
동종 피해 사례 수집 같은 제품에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었다면, 설계상 결함이 개별적 불량이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정황증거가 됩니다. 소비자원 피해구제 사례, 리콜 이력, 온라인 커뮤니티 후기 등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합리적 대체설계, 실무에서의 쟁점

설계상 결함 소송의 핵심 공방은 결국 "합리적 대체설계가 존재했느냐"로 귀결됩니다. 소비자 측은 "이러이러한 안전장치를 추가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제조사 측은 "그 대체설계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비용 대비 효과가 없었다"고 반박합니다.

실무에서는 다음 네 가지 요소가 종합적으로 고려됩니다.

합리적 대체설계 판단 시 고려 요소

1. 대체설계의 기술적 실현 가능성

2. 대체설계 채용 시 추가되는 비용과 제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

3. 대체설계를 채용한 경우의 제품 효용 변화

4.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않아 소비자가 부담하는 위험의 크기와 빈도

소비자가 이 모든 요소를 기술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앞서 설명한 결함 추정 규정(제3조의2) 덕분에, 사고 경위와 통상적 사용 사실만 잘 입증하면 결함 추정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후 제조사가 대체설계의 불합리성을 항변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제조사의 면책 항변과 소비자의 대응

PL법 제4조는 제조사에게 몇 가지 면책 사유를 부여합니다. 실무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항변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개발위험의 항변입니다. "제조물을 공급한 당시의 과학 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항변이 인정되려면, 사고 당시가 아니라 "공급 당시"의 기술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제품 출시 이후 기술이 발전하여 결함이 밝혀진 경우라면, 제조사의 면책이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둘째, 소비자 과실 항변입니다. 제품 설명서에 명시된 사용법을 위반했거나, 제품을 임의로 개조한 경우 등이 해당됩니다. 다만, 소비자에게 일부 과실이 있더라도 전액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며, 과실비율에 따른 과실상계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멸시효와 제척기간, 놓치면 안 되는 기한

PL법 제7조에 따르면, 제조물 책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와 그 배상의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해야 합니다. 또한, 제조업자가 해당 제조물을 공급한 날로부터 10년 이내여야 합니다.

사고 직후에는 치료와 회복에만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흘러갑니다. 특히 설계상 결함 소송은 감정 절차, 전문가 자문, 유사 사례 조사 등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가능한 한 초기에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C씨의 사연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C씨는 사고 직후 킥보드를 수리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관했고, 사고 현장과 부상 부위를 빠짐없이 촬영했습니다. 이후 같은 모델에서 조향장치 잠김 현상이 반복된다는 온라인 후기를 다수 확보했고, 제품 안전 시험 기관에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감정 결과 조향축 연결부의 설계 구조가 일정 진동 조건에서 고착되는 결함이 확인되었고, 이를 근거로 소를 제기하여 치료비와 휴업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었습니다.

설계상 결함 소송에서 소비자가 싸워야 할 상대는 자금력과 기술 인력을 갖춘 제조사입니다. 그러나 PL법은 분명히 소비자 편에서 입증 부담을 덜어주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관건은 사고 초기의 증거 확보, 그리고 법적 대응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희태
이희태 변호사의 코멘트
법무법인 엘리트로 · 경기도 평택시
설계상 결함 사건을 다루면서 느낀 점은, 사고 직후 제품을 수리하거나 폐기해 버려 감정 자체가 불가능해진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사고 제품은 반드시 원형 그대로 보관하시고, 현장 사진과 동종 피해 사례까지 함께 확보해 두시면 소송의 성패가 달라집니다. 초기 대응이 중요한 분야인 만큼, 가능한 빨리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이 분야 추천 변호사
박경수 프로필 사진
법무법인 세문
박경수 변호사 빠른응답

말은 줄이고 결과로 입증합니다.

가족·이혼·상속 부동산 민사·계약
#제조물책임 #설계상결함 #PL법 입증 #합리적대체설계 #제조물책임법 결함추정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적인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2026 알법(albu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