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32세 A씨는 지난해 11월, 방 두 칸짜리 빌라 한 채를 전세보증금 1억 8,000만 원에 계약했습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까지 꼼꼼히 마쳤고, 잔금을 치르고 입주한 날은 12월 1일이었습니다. 두 달 뒤, A씨 집 현관문 앞에 낯선 남성이 서 있었습니다. 28세 프리랜서 B씨였습니다.
B씨는 같은 집에 대해 보증금 1억 5,000만 원짜리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며, 자신도 입주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임대인 C씨(57세, 건물주)가 두 사람에게 동일한 주택을 이중으로 계약한 것입니다. C씨는 이미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습니다. 두 세입자 모두 합법적인 계약서를 들고 있었고, 보증금 합계 3억 3,000만 원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중복 계약 임대 분쟁은 최근 전세사기 유형 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보고되는 사례입니다. 이 상황에서 A씨와 B씨 중 누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피해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에 따르면, 임차인이 주택의 인도(실제 입주)와 주민등록(전입신고)을 마치면 그 다음 날부터 제3자에 대해 대항력(임대차 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여기에 확정일자까지 받으면 보증금에 대한 우선변제권(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돈을 돌려받을 권리)도 생깁니다.
A씨와 B씨의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씨 : 2023년 12월 1일 입주 + 전입신고 + 확정일자 완료
B씨 : 2024년 1월 28일 계약 체결, 아직 입주 전
대항력의 성립 시점은 '입주와 전입신고가 모두 완료된 날의 다음 날 오전 0시'입니다. A씨는 12월 2일 0시부터 대항력을 확보한 반면, B씨는 아직 입주조차 하지 못했으므로 대항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같은 주택을 두고 다투는 경우, 먼저 대항요건을 갖춘 A씨가 법적으로 우선 보호됩니다.
다만 이것은 A씨의 거주 권리에 대한 이야기이고, B씨 역시 C씨를 상대로 한 계약은 유효하므로 보증금 반환 청구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C씨에게 돌려줄 돈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임대인 C씨가 동일 주택에 대해 복수의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은 행위는 형법상 사기죄(형법 제347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처음부터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 없이 계약을 체결했다면 편취(속여서 재물을 빼앗는 행위)의 고의가 인정됩니다.
또한 2023년 6월 시행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되면 경매 유예, 긴급 주거 지원, 보증금 우선 변제 등의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특별법의 적용을 받으려면 피해자로서의 요건(다수 피해 발생, 임대인의 기망 행위 등)을 충족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의 피해지원위원회에 신청해야 합니다.
형사 절차 : 경찰서에 사기죄로 고소장 접수
민사 절차 : 보증금 반환 소송 + 가압류 신청
특별법 구제 :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신청 (관할 지자체)
실무에서는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병행하는 것이 보증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형사 절차가 진행되면 임대인 측에서 합의를 위해 변제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B씨처럼 잔금을 치르기 전에 이중 계약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즉시 취해야 할 조치들이 있습니다. 실무에서 권하는 대응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건에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점은, B씨가 계약 전에 등기부등본만 확인하고 선순위 임차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등기부등본에는 전세권 설정이 기재되지만, 확정일자부 임차인의 정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2023년 4월부터 시행된 '전월세 신고제'에 따라 관할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 부여 현황을 열람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계약 전 반드시 이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돌아와서, A씨의 입장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C씨의 재산 상태가 악화되어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면, A씨도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해 두었다면 보증기관으로부터 보증금을 대위변제(대신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가입 여부에 따라 피해 규모가 크게 달라지므로, 전세 계약 시 보증보험 가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복 계약 임대 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임대인의 재산이 은닉되거나 분산될 수 있어, 피해 사실을 인지한 즉시 법적 조치에 착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증거 확보와 가압류가 하루 늦어질수록 회수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집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