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줄이고 결과로 입증합니다.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70대 어머니의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된 장남 C씨(52세, 회사원)가 어머니 명의 예금 3,000만 원을 동생의 결혼자금으로 증여하려다 은행 창구에서 거절당했습니다. 어머니도 평소 "동생 결혼할 때 보태주고 싶다"고 말씀하셨기에, C씨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후견인이 피후견인 재산을 가족에게 증여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핵심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며,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더라도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성년후견인은 민법 제949조에 따라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그 재산에 관한 법률행위에 대해 대리권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 권한은 피후견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사해야 합니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관리자"이지 "소유자"가 아닌 것입니다.
민법 제947조의2 제1항은 "피성년후견인의 복리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후견 사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증여란 대가 없이 재산을 이전하는 행위이므로, 피후견인의 복리(이익)와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핵심 원칙: 후견인이 피후견인 재산으로 증여하는 것은 피후견인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이므로,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설령 피후견인이 과거에 "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더라도, 의사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표현만으로는 유효한 의사로 보기 어렵습니다.
민법 제950조는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대리하여 영업을 하거나, 차금(빌린 돈) 또는 보증을 하거나, 부동산 또는 중요한 재산에 관한 권리의 득실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할 때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증여는 "중요한 재산에 관한 권리의 득실변경"에 해당하므로, 반드시 가정법원의 사전 허가가 필요합니다. 허가 없이 이루어진 증여는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가정법원이 후견인의 증여 허가 신청을 심사할 때 고려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실무에서 보면 가정법원은 매우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피후견인에게 수억 원의 재산이 있더라도 수천만 원 단위의 증여 허가가 기각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절대로 증여가 허용되지 않는 것일까요? 완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외적 상황에서는 법원이 허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허가 가능성이 높은 경우:
- 피후견인이 의사능력이 온전하던 시기에 공증된 문서나 유언장 등으로 증여 의사를 명확히 남긴 경우
- 증여 금액이 피후견인 전체 재산의 극히 일부(통상 5% 이내)이고, 피후견인의 향후 생활에 전혀 영향이 없는 경우
- 명절 용돈, 경조사비 등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소액의 관례적 지출에 해당하는 경우
반면, 후견인 자신이나 후견인의 직계가족이 수증자(증여를 받는 사람)인 경우에는 이해충돌(민법 제949조의3)의 문제가 추가로 발생합니다. 이 경우 후견감독인이 피후견인을 대리하거나, 후견감독인이 없다면 가정법원이 특별대리인을 선임하여 그 특별대리인이 피후견인을 대리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C씨의 사례에서, C씨는 후견인이면서 동시에 수증자(동생)의 형제입니다. 이러한 경우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으므로, C씨가 단독으로 증여를 대리하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견인이 법원 허가 없이 피후견인 재산을 가족 등에게 이전한 경우, 단순한 민사상 무효에 그치지 않습니다. 후견인으로서의 해임 사유(민법 제940조)가 될 수 있고, 횡령이나 배임 등 형사 책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금융기관에서는 후견 등기사항이 공유되어 있어, 후견인의 이체나 출금 요청 시 용도를 확인하는 절차가 강화되어 있습니다. C씨가 은행 창구에서 거절당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후견인으로서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증여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다음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후견인의 증여 제한은 피후견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가족 간의 정이나 과거의 약속이 있더라도,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후견인 본인에게 심각한 법적 책임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증여뿐 아니라 피후견인 재산에 관한 중요한 처분 행위를 고려하고 있다면, 사전에 법적 검토를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