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민사전문 변호사입니다
총판 계약은 제조사와 유통업자가 장기간 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하는 구조이지만, 정작 분쟁의 80% 이상은 독점권 범위 설계의 모호함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지역·품목·기간·고객군 중 어느 하나라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계약 이행 단계에서 양측 모두에게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사례를 통해 총판 계약 독점권 조항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경기 성남에서 산업용 부품 유통업을 운영하는 A씨(48세)는 2023년 초 일본계 정밀기기 제조사 B사와 5년간의 국내 총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서에는 "A씨에게 대한민국 내 독점 판매권을 부여한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고, 계약금 2억 8천만 원과 연간 최소구매수량(MOQ) 12억 원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약 2년 차에 B사가 국내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직접 입점하면서 동일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업체 C사에게 "의료기기용 동일 모델"이라는 명목으로 별도 공급을 시작했습니다. A씨는 독점권 침해를 주장하며 계약 해지와 손해배상 3억 5천만 원을 청구했지만, B사는 "온라인 채널과 의료기기 시장은 독점권 범위 밖"이라고 반박했습니다.
A씨와 B사의 분쟁에서 가장 먼저 부각된 쟁점은 "대한민국 내 독점 판매권"이라는 문구의 해석이었습니다. A씨는 이를 모든 채널을 포함한 전속적 권리로 해석한 반면, B사는 오프라인 B2B 채널에 한정된 권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실무에서 보면, 단순히 "대한민국 내"라는 지역 표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온라인몰·오픈마켓·홈쇼핑·해외 직구를 통한 역수입 등 판매 채널이 다층화된 현대 유통 구조에서는 지역과 채널을 별도로 명시해야 합니다.
독점권 범위 설계 시 명시할 항목
특히 제조사가 자사 온라인몰을 운영하는 경우, "제조사의 D2C(소비자 직접 판매) 채널은 본 독점권에서 제외한다"는 식의 단서를 넣을지, 아니면 "제조사 역시 동일 지역 내 직접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절대적 독점(exclusive dealing)으로 설계할지 처음부터 분명히 합의해야 합니다.
두 번째 쟁점은 B사가 "의료기기용"이라는 명목으로 C사에게 동일 모델을 공급한 행위였습니다. B사는 "산업용과 의료기기용은 인증 체계와 시장이 다르므로 별개 제품"이라고 주장했고, A씨는 "하드웨어 스펙이 동일하므로 동일 제품"이라고 맞섰습니다.
이 분쟁의 본질은 제품 범위(product scope)를 모델명 기준으로 정의했는지, 용도 기준으로 정의했는지에 있습니다. 실무 상담 현장에서 보면, 총판 계약서의 약 60% 이상이 단순히 "B사가 제조·판매하는 X 제품군 일체"라고만 기재해 두는데, 이는 사후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제품 범위는 다음과 같이 다층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첫째, 계약 체결 시점의 모델 리스트를 별지(Schedule)로 첨부합니다. 둘째, 계약 기간 중 출시되는 신모델·후속모델·파생모델의 자동 포함 여부를 정합니다. 셋째, 동일 제조사가 다른 브랜드명·OEM 형태로 공급하는 경우의 처리를 정합니다. 넷째, 용도가 다른 시장(의료·군수·자동차 등)으로 확장될 경우의 우선협상권 또는 별도 협의 의무를 정합니다.
세 번째로 검토할 쟁점은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A씨 사건에서 B사는 "A씨가 2년 차 MOQ 12억 원을 달성하지 못해 사실상 독점권을 유지할 자격을 상실했다"는 항변도 함께 했습니다.
실제로 다수의 총판 계약에는 MOQ 미달 시 독점권이 비독점(non-exclusive)으로 자동 전환되거나, 제조사가 일정 절차를 거쳐 독점권을 해제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 조항이 모호하게 작성되면 양측 모두에게 불리합니다. 총판 입장에서는 단기적 경기 변동만으로 독점권을 박탈당할 위험이 있고, 제조사 입장에서는 명확한 해제 절차가 없어 권리 행사가 어렵습니다.
MOQ-독점권 연동 조항 설계 포인트
1. MOQ 산정 기준: 매출액 기준인가 수량 기준인가, 부가세 포함 여부, 반품 차감 여부를 명시합니다.
2. 미달 시 처리: 즉시 독점권 해제가 아닌 "3개월 시정기간 + 서면 통지" 등 단계적 절차를 둡니다.
3. 불가항력 면책: 제조사의 공급 지연, 인증 지연, 천재지변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미달은 면책 사유로 규정합니다.
4. 연도별 점진적 상향: 시장 확장 속도를 고려해 1년 차 80%, 2년 차 100%, 3년 차 120% 식으로 단계화합니다.
A씨 사건은 1심에서 일부 인용 판결이 나왔으나, 양측 모두 항소하여 결국 조정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핵심은 "독점"이라는 단어 하나에 의존한 계약서가 수억 원대 분쟁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총판 계약 독점권 범위 설계는 단순히 한 줄 조항이 아니라, 지역·채널·제품·용도·기간·MOQ·해제 조건이라는 여섯 가지 축을 입체적으로 조합한 설계도여야 합니다.
또한 한 가지 더 유의할 점은, 독점권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나 거래상 지위 남용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제조사가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은 외국 기업이고 총판이 영세한 경우, 독점권 부여 자체가 경쟁제한적 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 체결 단계에서 공정거래법 검토를 병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총판 계약은 한 번 체결되면 통상 3~10년간 유지되는 장기 계약입니다. 처음 설계 단계에서 모호하게 둔 한 문장이 수년간의 분쟁과 거래관계 파탄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표준 양식에 의존하지 말고 사업 모델에 맞춘 맞춤형 조항으로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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