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장례를 치르고 한숨 돌릴 무렵 낯선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고인의 자녀라고 주장하며 상속인 범위에 자신을 포함시켜 달라는 요청이지요. 이미 상속재산분할 협의까지 마친 상태라면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혼외자 인지가 상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상의 사례를 통해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회사원 A씨(42세)는 아버지가 2년 전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상속재산분할 협의를 마쳤습니다. 부동산 한 채와 예금 약 9억 원이 주요 재산이었지요. 그런데 최근 30대 여성 B씨가 "아버지의 혼외자"라며 인지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친자관계가 인정되었습니다. A씨는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상속이 다시 흔들리는 상황에 막막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혼외자(혼인 외 출생자)는 법률상 부모의 자녀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지(認知), 즉 "내 자녀임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거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인지의 방법은 두 가지인데요, 생전에 부모가 스스로 신고하는 임의인지와, 자녀가 소송으로 청구하는 강제인지(인지청구)입니다.
중요한 점은 인지의 효력은 자녀가 태어난 때로 소급한다는 것입니다(민법 제860조). 즉, B씨가 인지 판결을 받게 되면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고인의 딸이었던 것"이 되며, 당연히 다른 자녀들과 동등한 상속권을 갖습니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혼외자라는 이유로 상속분이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A씨, 그 동생, 그리고 B씨의 법정상속분은 동일하게 1대 1대 1입니다.
다만 사망 후 인지청구에는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검사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해야 합니다(민법 제864조). 이 기간을 넘기면 친자관계가 사실이더라도 법적으로 인지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이 2년이라는 기간을 놓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A씨 가족처럼 이미 상속재산분할을 마친 뒤에 혼외자가 인지된 경우,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분할 자체가 무효가 되느냐"일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미 이루어진 분할은 무효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상속인들이 인지 사실을 모르고 정당하게 분할했다면, 그 효력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대신 인지된 자녀는 다른 공동상속인들에게 자신의 상속분에 해당하는 가액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014조). 즉, 부동산이나 예금을 다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정산받는 방식입니다. 사례에서 B씨가 자신의 법정상속분(1/3)에 해당하는 가액을 A씨와 동생, 어머니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지요.
여기서 따뜻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돈을 줘야 하느냐"며 억울해하십니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법은 혼외자 역시 고인의 자녀로서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보고 있으며, 다툼이 길어질수록 가족 모두에게 정신적,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는 점을 함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가액 지급에서 가장 다툼이 큰 부분은 "언제를 기준으로 가액을 계산하느냐"입니다. 판례는 원칙적으로 가액 지급 청구 당시(사실심 변론종결 시)의 시가를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A씨가 2년 전 협의 당시 시가 6억 원으로 평가한 부동산이 현재 9억 원으로 올랐다면, B씨의 청구 시점에는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정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은 상속인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부동산을 처분했거나, 받은 예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경우 현금 마련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례의 A씨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부동산을 본인 거주용으로 쓰고 있다면, 그 시세 상승분까지 반영해 B씨에게 정산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유류분도 검토할 사항입니다. 만약 고인이 생전에 특정 자녀에게만 큰 재산을 증여했거나, 유언으로 한 명에게 몰아준 경우, 인지된 혼외자 역시 자신의 유류분(법정상속분의 1/2)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유류분 반환청구는 인지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1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므로, 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A씨처럼 갑작스럽게 혼외자 인지 문제에 부딪힌 분들께 실무적으로 권해드리는 점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가족 안에서 미처 몰랐던 사실이 드러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경험입니다. 하지만 법은 감정의 영역을 넘어 객관적인 기준으로 권리관계를 정리해 줍니다. 사실관계를 차분히 확인하고, 시효를 놓치지 않으며, 가액 정산의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분쟁의 폭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