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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노동 임금체불·수당·퇴직금
노동 · 임금체불·수당·퇴직금 2026.05.20 조회 268

퇴직금 중간정산 받으려는데 회사가 거절했다면

김경진 변호사
법무법인 초원 · 서울특별시 강남구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한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8년째 근무하던 A씨(42세, 생산관리직)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암 진단으로 큰 병원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아둔 돈으로는 부족하다 판단한 A씨는 회사에 퇴직금 중간정산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인사팀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회사 규정상 중간정산은 어렵습니다. 법적으로도 정해진 사유가 아니면 못 해드립니다." A씨는 분명 가족 의료비라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회사가 거절하니 막막했습니다. 정말 회사 말이 맞는 걸까요. 퇴직금 중간정산 사유 법정화가 이루어진 현재, A씨의 사례를 통해 실무 쟁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사건 개요

· 근로자: A씨(42세, 8년 근속, 월 평균임금 약 380만원)

· 사유: 어머니 암 치료비(요양기간 6개월 이상 예상, 본인 부담 약 2,300만원)

· 회사 입장: 취업규칙상 중간정산 조항 없음을 이유로 거절

· A씨 요구: 퇴직금 약 3,000만원 중 일부 중간정산

쟁점 1. 가족 의료비도 법정 중간정산 사유에 해당하는가

2012년 7월부터 시행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제3조는 퇴직금 중간정산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근로자가 원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중간정산이 가능했지만,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퇴직금 본래 취지가 훼손된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사유가 법으로 정해졌습니다(이를 사유 법정화라고 부릅니다).

현재 인정되는 주요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무주택자인 근로자가 본인 명의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 무주택자가 주거 목적으로 전세금·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근속기간 중 1회 한정)
  • 근로자 본인, 배우자, 부양가족이 6개월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질병·부상으로 의료비를 부담하는 경우(연간 임금총액의 12.5% 초과 시)
  • 최근 5년 이내 파산선고 또는 개인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
  • 임금피크제 적용, 소정근로시간 1일 1시간 또는 주 5시간 이상 감소 등
  • 천재지변 등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한 사유

A씨의 경우 어머니(부양가족)가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암 진단을 받았고, 본인 부담 의료비가 A씨 연간 임금총액(약 4,560만원)의 12.5%인 570만원을 명백히 초과합니다. 법정 사유에 해당함이 분명합니다.

쟁점 2. 회사 취업규칙에 조항이 없으면 거절할 수 있는가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오해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우리 회사 규정에 없으니 안 된다"는 답변을 듣고 포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취업규칙에 별도 조항이 없어도 법정 사유에 해당하면 사용자는 신청을 검토할 의무가 있습니다.

핵심 포인트

· 법정 사유 해당 여부는 객관적 요건으로 판단됨

· 사용자는 사유와 증빙이 갖춰지면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수 없음

· 다만 중간정산은 사용자의 의무가 아닌 재량적 성격도 인정되어, 경영상 사정으로 거절 가능성도 존재

여기서 미묘한 지점이 있습니다. 법정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법령상 "사용자는 중간정산하여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어 100% 강제는 아닙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법정 사유가 명확하고 증빙이 충분한데 합리적 이유 없이 거절하면 부당한 거절로 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의료비처럼 절박한 사유는 거절 정당성이 더욱 약해집니다.

쟁점 3. A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 사례를 다루면서 보면, 절차적 대응이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A씨가 취해야 할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증빙서류를 완비합니다. 어머니의 진단서(6개월 이상 요양 명시), 의료비 영수증 또는 예상 진료비 확인서, 가족관계증명서(부양관계 입증), 본인 임금명세서 등을 갖춥니다. 의료비가 연간 임금총액 12.5%를 초과한다는 점이 서류상 드러나야 합니다.

둘째, 서면으로 정식 신청합니다. 구두 요청은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신청서를 작성해 법정 사유와 증빙을 명시하고,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접수증을 받거나 이메일·내용증명으로 발송합니다. 회사가 거절할 경우 거절 사유를 서면으로 요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셋째, 거절 시 노동청에 진정을 검토합니다. 다만 앞서 설명한 대로 중간정산은 재량적 성격이 있어 노동청에서도 강제 명령보다는 행정지도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회사와의 협의가 1차적으로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노무사나 변호사의 의견서를 첨부하면 회사도 부당한 거절의 법적 부담을 인식하게 됩니다.

넷째, 대안도 함께 검토합니다. 회사가 끝내 거부할 경우,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라면 중도인출 제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중도인출 사유도 중간정산과 유사하게 법정화되어 있으며, 운용기관에 직접 신청하는 구조라 회사 거절 변수가 적습니다. A씨 회사가 어떤 제도를 운영 중인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실무에서 놓치기 쉬운 포인트

중간정산을 받게 되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퇴직금 산정 근속기간이 새로 시작됩니다. 즉 8년 근속자가 중간정산을 받으면, 이후에는 정산 시점부터의 근속만 인정됩니다. 당장은 급한 돈을 해결할 수 있지만, 향후 퇴직 시 받을 금액이 줄어든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중간정산 후 회사가 이를 정확히 처리하지 않거나, 정산 영수증을 보관하지 않으면 나중에 퇴직 시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중간정산 관련 서류를 근로자 퇴직 후 5년간 보존할 의무가 있으며, 근로자 본인도 정산 내역서, 입금 증빙, 신청서 사본을 반드시 보관해야 합니다.

A씨의 사례는 결국 회사가 의료비 증빙을 확인한 뒤 중간정산에 응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핵심은 "회사 규정에 없으니 안 된다"는 첫 답변에 물러서지 않고, 법정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객관적 서류로 입증하면서 정식 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김경진
김경진 변호사의 코멘트
법무법인 초원 · 서울특별시 강남구
퇴직금 중간정산은 회사 재량처럼 보이지만, 법정 사유에 해당하고 증빙이 갖춰지면 합리적 이유 없는 거절은 다투어 볼 여지가 큽니다. 특히 의료비 사유는 시급한 만큼 서면 신청과 증빙 확보가 결정적이며, 회사와 협의가 막힐 때는 가능한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정식 대응 절차를 밟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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