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드릴 준비,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어머니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해외 어학연수를 위해 여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혼한 전 남편이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는 사연이었습니다. 공동친권자로 정해놓고 보니, 막상 아이의 중요한 결정마다 상대방의 협조가 필요한데 그게 막혀버린 겁니다. 비슷한 상담이 부쩍 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공동친권 상태에서는 친권에 관한 중요 사항을 양육자 혼자 결정할 수 없습니다. 민법 제909조 제2항은 부모가 혼인 중에는 친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도록 하고 있고, 이혼 후 공동친권으로 정한 경우에도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여권 발급, 예금계좌 개설, 부동산 명의 관련 행위, 수술 동의, 전학·유학 등 신분·재산상 중요한 결정은 부모 양쪽의 의사가 모두 있어야 합니다. 양육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결정할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양육권과 친권은 별개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길이 막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은 부모 일방이 협조하지 않거나 친권 행사가 곤란한 경우를 대비해 친권자 변경, 친권 일부 제한, 법원의 결정 갈음 등 여러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사안의 시급성과 갈등의 정도에 따라 세 가지 경로를 고려합니다.
1. 친권자 변경 심판 (민법 제909조 제6항)
공동친권을 단독친권으로 바꾸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상대방의 비협조가 반복적·고질적이고, 자녀 복리를 해치는 수준이라면 가정법원에 친권자 변경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2. 친권 일부 제한 또는 행사 정지 (민법 제924조의2)
친권 자체를 완전히 빼앗지는 않되, 특정 사항(예: 여권 발급 동의권)에 관한 친권 행사를 제한해 양육자가 단독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전부 박탈보다 입증 부담이 가볍습니다.
3. 사전처분 (가사소송법 제62조)
본안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자녀의 수술, 학기 시작 전 전학처럼 급한 사안을 임시로 처리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빠르면 수 주 안에 결정이 나옵니다.
모든 결정에 상대방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일상적인 양육에 관한 사항은 양육자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원 등록, 일반적인 진료, 동네 이사, 의복·식사 같은 사항이 이에 해당합니다.
또한 상대방이 행방불명이거나, 연락이 두절된 채 사실상 친권을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었다면, 법원이 친권 행사 곤란 사유로 보아 친권자 변경을 비교적 수월하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위조 서명이나 도장으로 동의서를 만들어 처리하는 것은 사문서위조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그런 선택을 하셨다가 형사 문제로 이어지는 사례를 종종 봅니다. 정식 절차를 밟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른 길입니다.
증거를 모으세요. 상대방에게 동의를 요청한 카카오톡, 문자, 내용증명 발송 기록은 법원이 "비협조 사실"을 판단하는 핵심 자료가 됩니다. 구두로만 거절당했다면 그 자체로는 입증이 어렵습니다.
자녀 복리 관점에서 정리하세요. 친권자 변경·제한 심판에서 법원이 가장 중시하는 기준은 "자녀에게 무엇이 이로운가"입니다. "상대방이 미워서"가 아니라, 동의 거부로 인해 자녀가 어떤 불이익을 겪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시급한 사안은 사전처분을 활용하세요. 수술, 전학, 출국 등 시기를 놓치면 회복이 어려운 경우 본안 심판과 동시에 사전처분을 신청해야 합니다. 본안만 기다리다 시기를 놓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처음 이혼 합의 때는 "공동친권"이라는 단어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함께 진다는 좋은 의미로 들립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방과의 협의 자체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혀버린 동의 하나 때문에 자녀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 상황을 그대로 두지 말고 법이 마련해둔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