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갑작스럽게 부모님께서 위독해지셨을 때, 마지막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는 일은 가족 모두에게 무거운 순간입니다. 그런데 정성껏 받아 적은 그 유언이 나중에 구수증서 유언 증인 자격 제한에 걸려 무효가 된다면 어떨까요. 안타깝지만 상속 분쟁 현장에서 실제로 자주 접하는 사례입니다.
오늘은 임종을 앞두고 작성된 구수증서 유언이 증인 자격 문제로 무효가 된 가상의 사례를 통해, 어떤 점을 미리 챙겨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계신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천 부평구에 거주하시던 A씨(78세, 자영업)는 지병이 갑작스럽게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의식은 또렷하셨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펜을 쥘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A씨에게는 장남 B씨(52세, 회사원), 차남 C씨(49세, 자영업), 그리고 막내딸 D씨(45세, 주부)가 있었고, 약 12억 원 상당의 부동산과 예금이 있었습니다. A씨는 평소 가업을 함께 이어온 차남 C씨에게 상가건물(시가 약 7억 원)을 남기고 싶다는 뜻을 자주 비치셨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느낀 A씨는 병실에서 차남 C씨, C씨의 배우자, 그리고 평소 친분이 있던 이웃 한 분을 불러 유언을 구술하셨습니다. 차남 C씨가 그 내용을 받아 적었고, 세 사람이 증인으로 서명했습니다. A씨는 그로부터 9일 뒤 별세하셨습니다.
이후 장남 B씨와 막내딸 D씨가 이 유언의 효력을 다투면서 상속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민법 제1070조는 구수증서(口授證書) 유언, 즉 말로 남기는 유언에 대해 엄격한 요건을 두고 있습니다. 질병 등 급박한 사정으로 다른 방식(자필증서·공정증서·녹음·비밀증서)을 따를 수 없을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구수증서 유언의 핵심 요건
①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가 있을 것
② 유언자가 2명 이상의 증인 앞에서 유언 내용을 말로 진술할 것
③ 증인 중 1명이 그 내용을 받아 적고 낭독할 것
④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날인할 것
⑤ 급박한 사유가 종료된 날부터 7일 이내에 가정법원에 검인을 청구할 것
A씨의 사례에서는 검인 청구 자체는 기간 내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증인의 자격이었습니다.
민법 제1072조는 유언 증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을 명확히 정해두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실무에서 가장 흔하게 간과되는 지점입니다.
A씨의 사례를 다시 보면 문제가 보이실 겁니다. 유언으로 상가건물(7억 원)을 받게 된 사람은 차남 C씨입니다. 그런데 증인으로 서명한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바로 C씨 본인과 C씨의 배우자였습니다.
증인 자격 검토 결과
· 차남 C씨 — 유언으로 이익을 받는 사람 → 결격
· C씨의 배우자 — 수익자의 배우자 → 결격
· 이웃 — 결격사유 없음 → 자격 인정
결국 적법한 증인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구수증서 유언은 2명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므로, 이 유언은 형식 요건 자체를 갖추지 못한 것이 됩니다.
법원은 이 유언을 무효로 판단했고, A씨의 12억 원 상당 재산은 법정상속분에 따라 분할되게 되었습니다. 자녀 셋이 각 1/3씩, 약 4억 원 상당을 나누는 결과가 된 것이지요.
A씨가 진심으로 차남에게 상가를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는 점은 가족 모두 알고 있었지만, 형식 요건 하나로 그 뜻은 법적으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가족 사이에 깊은 감정의 골이 남은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보는 안타까운 패턴
· 유언으로 가장 큰 이익을 받게 될 사람이 직접 받아 적는 경우
· 받아 적는 사람의 배우자가 증인으로 같이 서명하는 경우
· 직계혈족(자녀·손자녀)이 증인으로 참여하는 경우
· 검인 청구 7일 기한을 놓치는 경우
물론 임종이 임박한 순간에 법조문을 일일이 따져가며 절차를 챙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음 사항만큼은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첫째, 증인은 반드시 상속이나 유증과 무관한 사람으로 모셔야 합니다. 가족 중 누군가에게 재산을 남기는 내용이라면, 그 가족과 그 배우자, 그 자녀는 모두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이웃, 직장 동료, 종교 공동체 구성원 등 제3자가 적합합니다.
둘째, 가능하다면 받아 적는 사람도 수익자가 아닌 제3자로 정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받아 적는 행위 자체가 적극적 관여로 비치면, 유언의 진정성을 다투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의식이 또렷하시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공정증서 유언을 우선 고려하시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공증인이 직접 작성하므로 형식 다툼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병원에서도 공증인 출장이 가능합니다.
넷째, 구수증서 유언을 했다면 급박한 사유가 종료된 날부터 7일 이내 가정법원 검인 청구를 반드시 챙기셔야 합니다. 이 기한을 놓치면 그 자체로 무효 사유가 됩니다.
가족의 마지막 뜻이 형식 요건 때문에 지켜지지 못하는 일만큼 안타까운 일도 드뭅니다. 미리 한 번 점검해두시면, 남은 가족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