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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계약 · 하자·제조물책임(PL) 2026.07.30 조회 8

자동차 급발진 사고, 운전자가 직접 결함을 증명해야 하나요

박경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문 · 서울특별시 서초구

"급발진 사고를 당했는데, 제가 차량 결함을 직접 증명해야 하나요?"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50대 자영업자 A씨는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차량을 주차하려던 중 갑자기 차가 급가속되면서 기둥을 들이받았습니다.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지만 차는 멈추지 않았고, A씨는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직후 제조사 측은 "EDR(사고기록장치) 분석 결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기록이 없다"며 운전자 과실을 주장했습니다.

A씨처럼 급발진 사고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내가 이걸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운전자가 차량의 전자제어장치 결함을 기술적으로 완벽히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제조물책임법상 입증 책임의 구조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 외에 제조물책임법(PL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조물책임법 제3조에 따르면,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업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집니다.

여기서 핵심은 '결함'의 입증입니다. 2017년 개정된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에서는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완화하는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 (결함 등의 추정)

아래 사실이 모두 증명되면 제조물의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1. 해당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한 사실

2. 그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된 사실

3. 그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인 사실

즉, 운전자가 전자제어장치의 구체적 결함 메커니즘까지 규명할 필요는 없으며, 위 세 가지 요건을 입증하면 '결함의 추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급발진 입증이 어려운 이유

법 조문만 보면 피해자에게 유리한 것 같지만, 실제 소송에서는 상당한 난관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제조물의 결함 추정 규정이 있더라도, 피해자 측이 제시하는 간접사실들이 충분히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쟁점이 되는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EDR 데이터의 해석 문제
EDR은 사고 직전 약 5초간의 차량 데이터를 기록합니다. 제조사 측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는 EDR 기록을 근거로 운전자 과실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EDR이 기록하는 것은 브레이크 스위치의 on/off 신호이며, 실제 페달을 밟았는지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됩니다.
2
블랙박스 및 CCTV 영상의 중요성
브레이크등 점등 여부, 사고 당시 차량 속도 변화, 운전자의 반응 등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영상 증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실무에서는 블랙박스 영상에 브레이크등이 켜진 상태에서 차량이 가속된 장면이 확인되면, 운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3
차량 보전 및 감정 신청
사고 차량이 수리되거나 폐차되면 결정적 증거가 사라집니다. 사고 즉시 차량을 현 상태 그대로 보전하고, 법원에 증거보전 신청이나 전문기관 감정을 요청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등에서 감정을 시행합니다.
4
운전자의 신체적 조건
제조사 측에서는 운전자의 나이, 운전 경력, 지병(특히 하지 관련 질환) 등을 들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을 혼동한 이른바 '페달 오조작' 가능성을 주장합니다. 이에 대응하려면 운전 경력 증명, 건강진단서 등의 반증 자료가 필요합니다.

급발진 사고 발생 시 운전자가 해야 할 일

상담 현장에서 보면, 사고 직후 대응이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을 정리합니다.

사고 직후 대응 체크사항

1. 차량을 수리하거나 폐차하지 말고 현 상태 그대로 보전할 것

2. 블랙박스 영상(전방/후방/실내)을 즉시 별도 저장할 것

3. 주변 CCTV 확보를 경찰에 요청할 것

4. 사고 당시 상황을 시간순으로 상세히 메모할 것

5. 교통사고 조사기록 열람을 통해 EDR 분석 여부를 확인할 것

6. 한국교통안전공단(1588-0198)에 급발진 의심 신고를 할 것

특히 EDR 데이터는 제조사만 판독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독립적 감정이 이루어지도록 법원에 감정촉탁을 신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EDR 데이터를 독자적으로 분석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최근 판례 경향과 실무적 시사점

과거에는 급발진 소송에서 운전자 측이 패소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2017년 제조물책임법 개정 이후 결함 추정 규정이 도입되면서, 법원의 판단 기준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하급심에서는 블랙박스 영상, 목격자 진술, 운전자의 운전 경력, 사고 정황 등 간접사실을 종합하여 결함을 추정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EDR 기록과 블랙박스 영상이 부재하거나 차량이 이미 수리된 경우에는 여전히 입증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무적 시사점 정리

- 급발진 입증은 '기술적 결함의 규명'이 아니라, '운전자의 오조작이 아니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 소송 전략상 민사소송과 함께 제조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병행하되, 증거 확보가 최우선 과제입니다.

- 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제조물을 공급한 날로부터 10년입니다.

급발진 사고는 운전자 입장에서 억울한 측면이 큰 유형의 사건입니다. 제조물책임법상 결함 추정 규정이 존재하지만, 실무에서는 사고 직후의 증거 확보와 체계적인 소송 준비가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사고 차량의 보전, 영상 증거 확보, 전문기관 감정 신청 등 초기 대응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박경수
박경수 변호사의 코멘트
법무법인 세문 · 서울특별시 서초구
급발진 사건을 다루면서 느끼는 점은, 사고 직후 차량 보전 여부가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수리나 폐차가 이루어지면 핵심 증거가 영구히 소멸되므로, 차량 현 상태 유지와 EDR 데이터 확보를 최우선으로 진행하셔야 합니다. 급발진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빨리 제조물책임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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