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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가 결함을 인지하고 리콜(제품 회수·수리 조치)을 발표한 이후에도 사고가 발생하는 사례가 실무에서 적지 않게 확인됩니다. 이 경우 제조사는 "이미 리콜을 공지했으므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리콜 발표만으로 제조물책임(PL)이 당연히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가상의 사례를 통해 리콜 이후 사고에서 제조사의 책임 범위를 차분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례
인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41세)는 2년 전 국내 B가전사가 제조한 업소용 커피머신을 380만 원에 구입했습니다. 구입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B사는 "특정 모델의 온수 밸브 결함으로 화상 위험이 있다"며 무상 점검 리콜을 홈페이지에 공지했습니다. A씨는 이 공지를 인지하지 못한 채 기계를 계속 사용했고, 그로부터 3개월 뒤 밸브 파열로 끓는 물이 튀어 손목에 2도 화상을 입고 4주간 치료를 받았습니다. B사는 "리콜을 이미 안내했으므로 사용자가 조치를 받지 않은 책임"이라며 배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제조사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을 집니다. 핵심은 결함의 존재 여부이지, 리콜 안내 여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리콜은 오히려 제조사 스스로가 제품에 결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정황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A씨 사례에서 B사의 리콜 공지는 "온수 밸브에 화상 위험을 초래하는 결함이 있다"는 점을 제조사가 자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큽니다. 따라서 리콜 발표는 면책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결함 입증에 유리한 자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리콜은 결함 인정의 정황일 뿐, 책임을 면제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유리한 증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조사가 결함을 인지한 뒤 충분하고 실효적인 회수·시정 노력을 다했는지는 책임 범위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홈페이지 구석에 공지 하나를 올려두는 방식과, 구매자에게 개별 연락·문자·우편으로 회수를 안내하고 위험을 명확히 경고하는 방식은 법적 평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A씨의 경우, B사가 업소용 제품을 판매하면서 구매자 연락처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개별 통지 없이 홈페이지 공지에만 그쳤다면, 이는 고지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살핍니다.
한편 소비자 측에도 일정한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리콜 사실이 문자·우편 등으로 개별 전달되었음에도 소비자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사용했다면, 손해액 산정 시 과실상계(피해자 과실만큼 배상액을 감액하는 것)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A씨처럼 리콜 공지를 실제로 인지하지 못했고, 제조사가 개별 통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라면 소비자에게 과실을 크게 묻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리콜 고지가 얼마나 실효적으로 전달되었는가가 과실 비율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됩니다.
리콜 이후 사고를 당한 소비자라면, 다음 자료를 신속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제조사의 리콜 공지 내용과 게시 시점을 캡처해 둡니다. 둘째, 제품 구입 영수증·계약서 및 사고 당시 사진, 진단서·치료비 영수증을 정리합니다. 셋째, 제조사로부터 개별 통지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문자·우편 등) 확인하고, 받지 못했다면 그 점을 명확히 해 둡니다.
반대로 제조사 입장에서는 리콜 발표만으로 안심할 수 없으며, 구매자에 대한 개별 통지와 위험 경고를 어떻게 이행했는지가 책임 판단의 관건이 됩니다. 결함, 인과관계, 손해라는 제조물책임의 기본 요건과 함께 리콜 고지의 실효성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정확한 책임 범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