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칼럼 ›형사범죄 ›수사·형사재판 절차(고소·수사·구속/보석)
형사범죄 · 수사·형사재판 절차(고소·수사·구속/보석) 2026.09.05 조회 49

형사 판결 확정 후 재심, 어떤 경우에 다시 열릴 수 있을까요

박경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문 · 서울특별시 서초구

한 번 확정된 형사 판결을 다시 뒤집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억울하게 유죄를 선고받고 오랜 세월을 견뎌오신 분들, 혹은 그 가족분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찾는 제도가 바로 재심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사건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로 바로잡히는 사례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우리 사건도 다시 열 수 있지 않을까" 문의하시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오늘은 형사 판결 확정 후 재심 청구가 어떤 경우에 가능한지, 그 요건과 현실을 차분히 짚어드리려 합니다. 막연한 기대나 반대로 지나친 체념 대신, 정확한 기준을 아시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심은 왜 이렇게 문턱이 높을까요

확정 판결은 법적 안정성이라는 큰 원칙 위에 서 있습니다. 판결이 확정되면 그 사건은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는 것(기판력)이 우리 사법제도의 기본 전제입니다. 만약 확정된 판결을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도 재판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재심은 이 원칙을 예외적으로 허무는 제도입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무죄를 받은 사람을 다시 유죄로 만들기 위한 재심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점이 재심을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재심이 가능한 사유는 정해져 있습니다

재심은 "그냥 억울하다"는 사정만으로는 열리지 않습니다. 법이 정한 사유(재심사유)에 해당해야 하며, 실무에서 가장 많이 문제 되는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증거의 위조·변조
유죄의 근거가 된 증거가 위조되거나 변조된 것으로 증명된 경우입니다. 이는 확정판결 등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2
허위 증언·감정
증인의 위증이나 감정인의 허위 감정이 유죄의 결정적 근거였던 경우입니다.
3
새로운 명백한 증거의 발견
실무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사유입니다. 무죄를 인정할 만한, 재판 당시에는 없던 새롭고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경우를 말합니다.
4
수사기관의 직무범죄
수사나 재판에 관여한 공무원이 그 직무와 관련해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된 경우입니다. 과거 가혹행위(고문) 사건들이 여기에 해당해 재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열쇠: '새롭고 명백한 증거'

세 번째 사유인 신규 증거는 두 가지 조건을 함께 갖춰야 합니다. 하나는 재판 확정 전에는 제출할 수 없었던 '새로운' 증거일 것, 다른 하나는 그것만으로 결론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명백한' 증거일 것입니다. 이미 재판에서 판단받은 자료를 다시 제출하는 것은 새로운 증거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과거사 사건과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재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른바 과거사 재심입니다. 권위주의 시절 불법 구금이나 가혹행위로 만들어진 자백에 기초한 유죄 판결들이,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와 수사관들의 직무범죄가 확인되면서 재심을 통해 바로잡혀 왔습니다.

또 하나 알아두실 것은, 유죄의 근거가 된 법률 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된 경우입니다. 위헌 결정으로 그 처벌 근거 자체가 사라졌다면,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사실관계를 다시 다투는 것이 아니라 처벌 근거의 소멸을 이유로 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재심의 두 단계 구조

재심은 곧바로 무죄가 되는 절차가 아닙니다. 먼저 재심사유가 있는지 심리하는 재심개시 단계를 거쳐, 법원이 개시 결정을 내려야 비로소 사건을 다시 심리하는 본안 단계로 넘어갑니다. 개시 결정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사실상 가장 중요합니다.

청구할 수 있는 사람과 시기

재심은 유죄를 선고받은 본인은 물론, 본인이 이미 사망한 경우 배우자나 직계친족, 형제자매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명예 회복을 위해 유족이 청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행히 재심 청구에는 별도의 기간 제한이 없습니다. 형이 이미 집행이 끝났거나, 심지어 본인이 사망한 뒤라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재심사유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보하고 정리하는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워지므로, 사유가 될 만한 사정이 드러났다면 되도록 이른 시점에 준비를 시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유념하실 점

재심은 감정이 아니라 자료로 설득하는 절차입니다. 억울함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재심사유의 틀에 맞춰 입증하지 못하면 개시 결정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심의 판결문과 수사기록, 당시 증거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이 먼저입니다.

특히 위증이나 직무범죄를 사유로 삼으려면 그 사실이 별도로 확정되거나 증명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관련 사건의 경과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방향 설정과 자료 정리 단계에서부터 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것이, 소중한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경수
박경수 변호사의 코멘트
법무법인 세문 · 서울특별시 서초구
재심 사건을 다루면서 느끼는 점은, 억울함의 크기보다 그것을 재심사유의 틀에 맞춰 입증할 수 있느냐가 결과를 가른다는 것입니다. 특히 '새롭고 명백한 증거'의 요건 판단이 까다로우니, 원심 기록 검토 단계부터 전문가와 함께 방향을 잡으시길 권합니다.
이 글의 변호사
박경수 프로필 사진
법무법인 세문
박경수 변호사 빠른응답

말은 줄이고 결과로 입증합니다.

가족·이혼·상속 부동산 민사·계약
#형사 재심 청구 #재심 요건 #확정판결 재심 #재심사유 새로운 증거 #재심 청구 방법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적인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2026 알법(albu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