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무역회사를 다니던 40대 초반의 김민서 씨는 미국 국적의 남편과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습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던 어느 날, 남편이 방학을 이유로 아이를 데리고 미국 부모님 댁에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별생각 없이 아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귀국일이 지나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남편은 “아이는 미국에서 키우겠다”는 통보만 남긴 채 연락을 끊었습니다.
이처럼 부모 중 한 사람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자녀를 해외로 데려가거나 돌려보내지 않는 것을 국제 자녀 탈취라고 합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이 상황에 놓인 부모님들은 대부분 “내 아이를 데려간 것도 범죄가 되는지”부터 궁금해하십니다. 오늘은 김 씨의 사례를 따라가며 국제 자녀 탈취에 대한 형사고소와 아이를 되찾는 절차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친부모가 자기 자식을 데려간 것인데 무슨 죄냐”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형법은 이를 명백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288조 제3항은 국외에 이송할 목적으로 사람을 약취(略取, 강제로 데려감)하거나 매매한 자를 처벌하며, 실제로 국외로 이송한 경우까지 포함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물리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다른 한쪽 부모의 보호양육권을 침해하고 아이를 자신의 사실적 지배 아래 두는 행위’ 자체가 약취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김 씨의 남편처럼 “방학 여행”을 명목으로 아이를 데려간 뒤 돌려보내지 않고 미국에 정착시키려 한 행위는, 김 씨의 양육권을 침해한 국외이송약취에 해당할 여지가 큽니다. 판례 역시 부부 공동양육 상태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아이를 국외로 데려가 지배하는 행위를 약취로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김 씨가 가장 절실하게 원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아이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사고소는 어디까지나 가해 부모를 처벌하는 절차일 뿐, 그 자체로 아이의 반환을 강제하지는 못합니다.
아이를 실제로 데려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정식 명칭: 국제적 아동탈취의 민사적 측면에 관한 협약)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모두 이 협약의 당사국입니다. 협약에 가입한 국가 사이에서는, 만 16세 미만의 아동이 상거소(常居所, 아이가 평소 생활하던 나라)에서 불법적으로 이동되거나 억류된 경우 원칙적으로 신속하게 원래의 나라로 반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김 씨의 아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생활해 왔으므로 상거소는 한국으로 볼 여지가 큽니다. 이 경우 김 씨는 법원행정처(중앙당국)를 통해 미국 측에 아동반환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형사고소와 헤이그 반환신청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절차상 출국금지나 지명수배가 걸리면 상대방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헤이그 절차는 아이의 실질적 반환을 담보하기 때문입니다.
김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를 데려가기 전후의 정황을 증거로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국제 자녀 탈취 사건에서 초기 증거 확보는 사건의 향방을 크게 좌우합니다.
첫째, 아이가 한국에서 생활해 왔다는 사실(상거소가 한국임을 뒷받침하는 자료)이 필요합니다. 어린이집·유치원 재원 기록, 소아과 진료기록, 예방접종 내역, 거주지 임대차계약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아이를 “여행 목적으로만” 보냈다는 정황입니다. 남편이 “방학 동안만 다녀오겠다”고 한 카카오톡 대화, 왕복 항공권 예약 내역, 귀국 후 계획을 언급한 메시지 등이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셋째, 이후 남편이 반환을 거부한 정황입니다. “미국에서 키우겠다”는 통보 메시지, 연락 두절 상황 등을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김 씨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국외이송약취 혐의로 형사고소를 제기하는 동시에, 중앙당국을 통해 헤이그 아동반환 신청을 접수했습니다. 형사절차에서 남편에 대한 지명수배가 이루어지자, 미국 현지에서 활동에 제약을 느낀 남편은 결국 반환 협의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국제 자녀 탈취 사건은 형법, 국제협약, 상대국의 법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초기 대응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정착했다는 이유로 반환이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발생 초기의 신속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