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 판결문을 넘어선 종합적 문제 해결을 추구합니다
얼마 전 한 중소 IT업체 대표님께서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5년간 함께 일하던 핵심 개발자가 퇴사하면서 회사의 소스코드와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통째로 가지고 나가 경쟁사에 합류했다는 사연이었습니다. 대표님의 첫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오늘은 영업비밀 형사고소와 민사 청구 병행이 가능한지, 그리고 실무에서 어떤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형사고소(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절차)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금전 배상을 받는 절차)는 서로 별개의 절차이므로 동시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형사처벌 규정과 민사상 구제수단을 각각 두고 있습니다. 형사는 국가가 가해자를 처벌하는 절차이고, 민사는 피해자가 손해를 회복하는 절차이므로 목적과 성격이 다릅니다.
형사고소 —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최대 10년 이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 벌금까지 가능. 검찰 수사기관이 강제수사(압수수색 등) 권한을 행사
민사 청구 — 침해행위 금지·예방 청구, 손해배상 청구, 신용회복 청구 등이 가능. 피해 금액을 실제로 회수
단순히 '둘 다 할 수 있다'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실제 상담 현장에서 보면, 병행 전략이 결과에 큰 차이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증거 확보에 있습니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의 가장 큰 어려움은, 상대방이 어떤 자료를 어떻게 유출했는지를 피해자가 직접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소스코드나 데이터는 이미 상대방의 컴퓨터, 서버, 이메일 안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형사고소가 확보한 강력한 증거가 민사 손해배상의 승소 가능성을 높이는 구조입니다. 개인이 확보하기 어려운 증거를 국가의 수사력으로 확보한다는 점에서 큰 이점이 있습니다.
다만 병행이 항상 만능은 아닙니다.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영업비밀성 요건을 스스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로 보호받으려면 ①비밀로 관리되고 있을 것(비밀관리성), ②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을 것(비공지성), ③경제적 가치가 있을 것(경제적 유용성)이라는 세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회사가 평소 자료에 접근 통제나 보안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다면, 형사에서 불기소되거나 민사에서 패소할 위험이 있습니다.
둘째, 공소시효와 소멸시효를 확인해야 합니다. 형사는 공소시효가, 민사 손해배상 청구권은 침해 사실과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침해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가 사라지므로 조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셋째, 형사고소가 합의 압박 수단으로만 남용될 경우 무고나 협박으로 역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침해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 자료를 갖춘 뒤 진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앞서 소개한 IT업체 대표님께는 형사고소를 먼저 진행하되, 민사에서 활용할 증거보전 절차(가처분 등)를 함께 준비하도록 조언했습니다. 실무에서는 대개 형사절차로 증거를 먼저 확보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민사 손해배상 청구의 규모와 근거를 정하는 방식이 효율적입니다.
또한 침해가 진행 중이라면 민사상 침해금지 가처분을 신속히 신청해 추가 유출과 사용을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해가 계속 커지는 것을 먼저 차단한 뒤, 형사와 민사 본안을 병행하는 것이 피해 회복에 가장 효과적입니다.
결국 영업비밀 사건은 '무엇을 청구할 수 있는가'보다 '어떤 순서로, 어떤 증거를 확보하며 진행하는가'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사건 초기의 전략 설계가 회수 가능성을 크게 바꾼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