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줄이고 결과로 입증합니다.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공사대금 4,200만 원을 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한 인테리어 업자 김 사장님. 첫 변론기일에 재판부가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겠다"고 말하자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상대가 진심으로 합의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괜히 시간만 끄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재판부의 제안을 거절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조정회부(법원이 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사건을 조정 절차로 보내는 것) 제안을 받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때 조정을 거부하고 본안 진행(정식 재판으로 판결을 받는 절차)으로 갈지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항목들을 정리했습니다.
먼저 큰 오해부터 풀어드리겠습니다. 조정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재판부에 밉보이거나 판결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민사조정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자율적 합의를 전제로 하는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사건은 다시 본안 재판으로 돌아가 판결을 향해 진행됩니다.
다만 조정을 거부하고 본안으로 가는 선택이 항상 유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래 일곱 가지를 하나씩 따져보시길 권합니다.
본안으로 가면 결국 입증 책임(자기 주장을 증거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쪽이 유리합니다. 계약서, 세금계산서, 입금 내역, 문자·카카오톡 대화처럼 명확한 서면 증거가 충분하다면 판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구두 약속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조정으로 일부라도 확보하는 편이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판결에서 이겨도 상대방에게 재산이 없으면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실무에서 적지 않습니다. 상대의 부동산, 사업 상태, 다른 채무 상황을 파악해 두어야 합니다. 변제 능력이 불확실하다면, 받을 수 있을 때 조정으로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 때로는 더 나은 선택입니다.
본안 판결까지는 통상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고, 패소 시 항소로 이어지면 더 길어집니다. 반면 조정은 한두 번의 기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변호사 비용과 정신적 소모도 커진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재판부가 제시하는 조정안은 쌍방이 어느 정도 양보하는 선에서 조율됩니다. 청구 금액의 70~80%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는 조정안이라면 적극 검토할 가치가 있습니다. 반대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제안받는다면, 본안에서 전부 승소를 노리는 것도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조정이 성립되면 작성되는 조정조서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집니다.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별도 소송 없이 바로 강제집행(재산을 압류·처분하는 절차)이 가능합니다. 다만 조정조서의 문구는 매우 신중하게 작성해야 하며, 애매한 표현은 나중에 집행 단계에서 다툼의 빌미가 됩니다.
본안에서 승소하면 원금뿐 아니라 지연손해금(연 12% 수준)과 소송비용 일부를 상대에게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조정에서는 이 부분이 함께 양보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원금만 비교하지 말고, 최종적으로 손에 쥐는 총액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상대가 거래처, 동업자, 친인척처럼 앞으로도 관계를 이어가야 할 사이라면 판결로 끝까지 가는 선택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조정은 양측이 합의한 결과이므로 감정의 골을 덜 남깁니다. 반대로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상대라면 원하는 결과를 끝까지 관철하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조정회부 거부는 재판상 불이익이 없는 정당한 선택입니다. 다만 증거의 강도, 상대의 변제 능력, 조정안 수준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냉정하게 비교한 뒤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김 사장님은 계약서와 세금계산서가 완비돼 있어 결국 본안을 택했고, 전부 승소 판결로 지연손해금까지 받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