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 판결문을 넘어선 종합적 문제 해결을 추구합니다
최근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사업자분들을 상담하다 보면, 믿고 함께 일을 시작했다가 상대방이 핵심 아이디어나 고객 정보를 빼가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하시는 경우를 자주 만납니다. 특히 NDA(비밀유지계약서) 없이 구두로만 협력을 시작한 뒤 영업비밀이 유출된 상황이라면, 많은 분들이 "서면 계약이 없으니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깊이 낙담하십니다.
충분히 걱정되실 만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NDA가 없더라도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열려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능성과 현실적인 대응 방법을 차분히 짚어보겠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특허청 등의 조사에서도 기술 탈취나 영업비밀 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스타트업의 비중이 상당히 높게 나타납니다. 특히 초기 단계의 협력에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계약서 작성을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먼저 시작하고, 계약서는 나중에 쓰자"
이 한마디가 나중에 가장 큰 분쟁의 씨앗이 되곤 합니다. 함께 일하던 업체가 공동으로 개발하던 레시피, 설계 도면, 고객 명단, 가격 정책 등을 가지고 나가 경쟁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 피해는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서면 계약이 없으면 보호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은 별도의 NDA 체결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 요건을 갖춘 정보를 영업비밀로 보호합니다. 즉,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법의 보호 밖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법상 영업비밀로 인정되려면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이 세 요건을 충족한다면, NDA가 없어도 상대방의 유출 행위를 영업비밀 침해로 다툴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세 번째 비밀관리성입니다. 아무런 관리 노력 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다면,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영업비밀 요건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포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여러 법적 근거를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물 도용(이른바 '성과 모용') 규정입니다.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만든 성과를 공정한 거래 질서에 어긋나게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규제합니다. 영업비밀 요건에 다소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 조항으로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둘째, 신의칙상 비밀유지의무입니다. 서면 계약이 없더라도, 협력 과정의 성격이나 정보 전달의 경위에 비추어 상대방에게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셋째, 기술 탈취가 심각한 경우 업무상 배임 등 형사적 책임을 검토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형사 절차는 요건이 엄격하므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이 분야 사건을 다루면서 늘 강조드리는 점은, 결국 승패를 가르는 것은 증거라는 사실입니다. NDA가 없는 상황일수록 오히려 증거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협력 당시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전달했는지를 입증할 자료를 최대한 모아두셔야 합니다.
- 카카오톡·이메일 등 협력 논의 과정의 대화 기록
- 자료를 전달한 파일 전송 내역, 전달 일시
- 비밀 유지를 전제로 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대외비입니다" 등)
- 상대방이 유출된 정보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
특히 앞서 말씀드린 비밀관리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파일에 '대외비' 표시가 있었는지, 접근 권한이 제한되어 있었는지 등을 꼼꼼히 정리해두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 겪고 계신 어려움은 분명 힘드시겠지만, 적절한 근거를 찾아 대응하면 손해배상이나 사용금지 등 구제받을 길이 있습니다. 동시에 앞으로의 협력을 위해 한 가지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협력을 시작하기 전, 간단한 NDA라도 서면으로 남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보호 장치라는 점입니다. 한두 장짜리 간결한 비밀유지 조항만 있어도, 분쟁이 생겼을 때 입증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신뢰로 시작한 관계라도, 서면 약속은 그 신뢰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줍니다.
이미 유출이 발생한 상황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가 사라지고 피해가 확대될 수 있으므로 가능한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대응 방향을 잡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