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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협상이 깨졌다고 해서 손해배상을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법은 계약 전 협상 단계에서도 일정한 책임을 인정합니다. 이를 실무에서는 '계약체결상의 과실' 또는 신뢰이익 손해배상(계약이 성립될 것이라 믿고 지출한 비용에 대한 배상)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모든 협상 결렬이 배상 대상은 아닙니다. 협상은 원래 깨질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정당한 협상 중단이고, 어디서부터가 책임 있는 행위인지 선을 긋는 것이 관건입니다. 아래 8가지 항목으로 직접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핵심 조건(가격, 수량, 납기 등)이 대부분 합의되어 '사실상 계약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길 정도였는지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가격을 몇 번 물어본 정도라면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곧 계약서 보내겠다", "이대로 진행합시다" 같은 적극적 표현으로 신뢰를 유발했는지 확인하세요. 상대가 신뢰를 부당하게 조성해 놓고 번복한 경우 책임 인정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상대방의 변심, 더 좋은 조건의 제3자와 계약, 일방적 기준 변경 등 납득할 만한 사정 없이 돌연 결렬된 경우가 핵심입니다. 반대로 내가 조건을 바꿨거나 자금이 어려워 깨진 것이라면 상대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신뢰이익 손해배상의 대상은 '쓴 돈'입니다. 계약이 될 줄 알고 들인 실측 비용, 설계·감정 비용, 다른 거래를 포기해 생긴 손해, 출장비 등이 해당합니다. 지출 증빙이 있어야 청구가 가능합니다.
그 지출이 '이 협상 때문에' 발생한 것이어야 합니다. 협상과 무관하게 어차피 들였을 비용은 배상 대상이 아닙니다. 지출 시점과 협상 진행 상황을 연결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카카오톡·문자·이메일, 협상 과정에서 오간 가계약서나 양해각서(MOU), 견적서, 회의록 등이 결정적입니다. 실무에서 보면 '말로만 다 됐었다'는 주장은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 매우 어렵습니다.
협상 단계 배상은 원칙적으로 신뢰이익(계약을 믿고 쓴 비용)에 한정됩니다. '계약이 됐으면 벌었을 이익'인 이행이익까지 받기는 어렵습니다. 청구 범위를 혼동하면 전체 주장이 약해집니다.
손해배상 청구권은 시간이 지나면 행사하기 어려워집니다. 결렬 사실을 안 뒤 지나치게 시간을 끌면 입증도, 권리 행사도 불리해집니다. 결렬 직후 증거부터 정리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정리하면, 손해배상이 인정되려면 (1) 계약 성립이 확실시될 만큼 협상이 진전됐고, (2) 상대가 정당한 이유 없이 신뢰를 깨뜨렸으며, (3) 그 신뢰 때문에 실제 비용을 지출했고, (4) 이를 증거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 가지가 맞물릴 때 신뢰이익 배상의 길이 열립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협상이 깨진 직후의 대응이 승패를 가릅니다. 첫째, 오간 메시지와 문서를 전부 캡처·저장해 시간순으로 정리하세요. 둘째, 그동안 지출한 비용의 영수증과 계약서(다른 거래 포기분 포함)를 모으세요. 셋째, 상대에게 결렬 사유를 서면이나 메시지로 확인받아 두면 '정당한 이유 없는 번복'을 입증하기 쉬워집니다.
반대로 협상을 진행하는 입장이라면, 아직 확정 전이라는 점을 서면에 명시해 불필요한 신뢰 유발을 피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가계약서나 양해각서를 쓸 때 '구속력 없음'을 분명히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분쟁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