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진단과 분석, 결과로 증명합니다.
얼마 전, 상담실에서 한 중년 여성을 만났습니다. 사기 피해로 수천만 원을 잃고 가해자가 재판을 받고 있는데, 정작 피해자인 자신은 법정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가해자는 반성한다고 말하는데,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더라고요.” 이 말은 형사사법 절차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피해자의 소외감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형사재판은 원칙적으로 국가(검사)와 피고인 사이의 다툼입니다.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이면서도 법적으로는 ‘제3자’에 가까운 위치에 놓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2007년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범죄 피해자 진술권이 실질적으로 확대되면서, 피해자가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넓어졌습니다. 오늘은 이 진술권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실제 상담 현장에서 자주 받는 질문을 바탕으로 짚어보겠습니다.
헌법 제27조 제5항은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입니다. 과거에는 피해자가 사건의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정보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피해자 진술 신청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이는 피해자들이 더 이상 수동적인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양형(형량 결정)과 진실 규명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한다는 신호입니다. 실제로 피해자의 진술은 재판부가 피고인의 반성 정도와 피해 회복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실무에서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각 단계는 성격과 효과가 다르므로 상황에 맞게 선택해야 합니다.
진술권은 권리이지만, 준비 없이 행사하면 효과가 반감됩니다. 실무에서 피해자분들에게 당부드리는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신변 보호를 먼저 점검하세요. 피고인과 대면하는 것이 두렵다면 비디오 중계장치나 차폐시설을 통한 진술, 신뢰관계인 동석 등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둘째, 피해 사실을 구체적 수치로 정리하세요. “힘들었다”는 표현보다 치료 기간, 손해 금액, 일상 변화 등 구체적 사실이 재판부를 설득합니다.
셋째, 신청 시기를 놓치지 마세요. 재판이 종결 단계에 접어들면 진술 기회가 사실상 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2024년을 기준으로 일정 요건을 갖춘 사건의 피해자는 국선변호사(피해자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폭력, 아동학대 등 특정 범죄 피해자에게 우선 적용되지만, 제도의 적용 범위는 점차 넓어지는 추세입니다.
형사사법 제도는 응보에서 회복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처벌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피해를 온전히 인정받고 회복할 권리를 보장받는 방향입니다. 피해자 진술권은 그 출발점입니다.
앞서 소개한 사기 피해 여성은 이후 진술 신청과 의견서 제출을 통해 재판부에 자신의 피해를 충실히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돌아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과를 떠나, 제 이야기를 들어줬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진술권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침묵 속에 묻히던 피해자의 경험이 비로소 법정 안으로 들어오는 것, 그것이 형사절차가 지향해야 할 방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