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사고에서 제조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운전자의 부주의가 없었음에도 차량 급발진, 브레이크 오작동, 에어백 미작동 등 차량 자체의 문제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제조물책임법(결함 있는 제품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 제조사가 배상하도록 한 법)에 따라 제조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쟁점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가상 사례]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B씨(47세)는 출고 8개월 된 SUV를 운전하던 중, 신호 대기 후 출발하는 과정에서 차량이 갑자기 급가속하며 앞 차량을 추돌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B씨는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차가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이 사고로 전치 10주의 부상과 약 3,200만 원의 차량·치료 손해를 입었습니다. 제조사는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라며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제조물책임을 묻기 위한 핵심은 제품에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조물책임법은 결함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제조상 결함 — 설계와 다르게 잘못 만들어진 경우(부품 조립 불량 등)
설계상 결함 — 설계 자체에 안전성이 결여된 경우
표시상 결함 — 위험성에 대한 설명·경고가 부족한 경우
원칙적으로 결함의 존재는 피해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차량 내부 구조는 일반 소비자가 분석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실무에서는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법리가 적용됩니다. 즉 피해자가 ① 제품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던 중, ② 사고가 제조사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만한 사정이 있고, ③ 다른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증명하면, 결함과 인과관계가 사실상 추정됩니다.
B씨의 사례에서는 출고 8개월의 새 차량이었다는 점,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진술, 블랙박스 영상과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가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특히 EDR(사고 전후 차량 속도·페달 조작 등을 기록하는 장치) 분석은 급발진 사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조사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여러 면책사유를 주장합니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사가 다음을 증명하면 책임을 면하도록 규정합니다.
첫째, 제조사가 제품을 공급하지 않았다는 사실
둘째, 공급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개발위험의 항변)
셋째, 결함이 법령상 기준을 준수하여 발생했다는 사실
그러나 이러한 면책사유는 제조사가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며, 단순히 "운전자 과실로 추정된다"는 주장만으로는 면책되지 않습니다. B씨 사건에서 제조사가 페달 오조작을 주장한다면, 그 사실 자체를 객관적 자료로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EDR 데이터상 브레이크 신호가 입력되었음에도 차량이 가속한 정황이 확인된다면, 제조사의 면책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결함과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피해자는 다음 손해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B씨처럼 전치 10주의 부상을 입고 3,200만 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 치료비와 차량 손해 외에도 자영업 운영 차질로 인한 일실수입을 함께 청구할 수 있습니다. 청구는 제조사를 상대로 한 민사 손해배상 소송으로 진행하며, 소송 전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이나 자동차안전연구원의 결함조사 결과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소멸시효입니다. 제조물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와 제조사를 안 날부터 3년, 제조사가 제품을 공급한 날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권리 자체가 소멸하므로 조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자동차 결함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 직후의 증거 보전입니다. 차량을 함부로 수리하거나 폐차하면 결함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사고 차량을 현상 그대로 보존하고, EDR 데이터·블랙박스·사고 현장 사진을 확보한 뒤 전문적인 감정을 거치는 것이 승패를 좌우합니다. 제조사와 개인 소비자 사이에는 정보와 자원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