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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계약 · 하자·제조물책임(PL) 2026.11.05 조회 0

ESS 화재 제조물책임, 배터리 결함 입증은 누구 책임일까

박경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문 · 서울특별시 서초구

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충청북도의 한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는 김모(52세)씨는 설비에 연결된 ESS(에너지저장장치,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장치)가 새벽에 갑자기 불이 나면서 설비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배터리 모듈과 주변 설비까지 모두 타버려 피해액은 약 7억 원에 달했습니다.

김씨는 "내가 관리를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막막했습니다. 설치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고, 정기 점검도 꼬박꼬박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ESS 화재는 발전 사업자나 건물주에게 막대한 재산 피해를 안기지만, 정작 책임 소재를 가리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김씨의 사례를 통해 ESS 화재 제조물책임을 둘러싼 법적 쟁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쟁점 1. 배터리 결함,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소비자나 제3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업자가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제조사가 "우리는 실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더라도 제품 자체에 결함이 있었고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배상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ESS 화재의 경우 결함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배터리 셀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하자(제조상 결함), 애초에 발열·발화에 취약하게 설계된 문제(설계상 결함), 그리고 과충전이나 운영 환경 관리에 대한 경고가 부족했던 경우(표시상 결함)입니다.

김씨의 사례처럼 정상적으로 사용·관리한 설비에서 특별한 외부 요인 없이 화재가 발생했다면, 제조물의 결함을 의심할 정황이 상당합니다. 제조물책임법은 피해자가 결함의 과학적 원인까지 정밀하게 밝히지 않더라도, 정상 사용 중 사고가 났고 통상적으로 결함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 손해라는 점을 증명하면 결함을 추정하도록 보완하고 있습니다.

쟁점 2. 입증 책임과 화재 원인 감정의 중요성

문제는 입증입니다. ESS 화재는 발화 지점이 완전히 소실되는 경우가 많아, 사후에 원인을 특정하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김씨 역시 "불이 났는데 다 타버렸으니 무슨 증거가 남겠느냐"며 처음에는 소송을 포기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로 원인을 규명합니다. 화재 직후의 보존 상태가 결과를 좌우하므로, 피해자의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

현장 보존
화재 직후 잔해를 함부로 치우지 않고 소방·전문기관 감식 전까지 그대로 유지

2

원인 감정
국립과학수사연구원·전기안전공사 등의 감식 결과 및 배터리 관리 기록(BMS 데이터) 확보

3

책임 분석
셀 결함·시공 하자·운영 과실 중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 법적 판단

김씨의 경우 다행히 화재 직후 현장을 보존했고, 배터리 관리 시스템에 기록된 이상 전압·온도 데이터가 일부 남아 있었습니다. 이 데이터를 통해 특정 배터리 모듈에서 반복적인 과열 징후가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었고, 이는 셀 자체의 제조상 결함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가 되었습니다.

쟁점 3. 책임 주체가 여럿일 때 누구를 상대해야 하는가

ESS는 배터리 셀 제조사, 배터리 모듈·팩을 조립한 업체, 전력변환장치(PCS) 제조사, 설계·시공사 등 여러 주체가 관여합니다. 화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책임을 물을 상대가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상대를 잘못 특정하면 소송에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결함의 원인이 명확히 특정되지 않은 단계에서 복수의 책임 주체를 공동피고로 삼아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후 감정 결과에 따라 책임 비율을 조정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셀 결함이라면 배터리 제조사가, 시공 과정의 잘못이라면 시공사가 주된 책임을 지게 됩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제조물책임의 소멸시효입니다. 손해와 책임을 질 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제조물이 공급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청구가 어려워집니다. ESS 화재는 원인 규명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피해 발생 직후부터 시효를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 합니다.

김씨는 결국 배터리 셀 제조사와 시공사를 공동피고로 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감정 절차를 거쳐 셀 결함이 주된 원인으로 인정되는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되었습니다. ESS 화재는 "내 관리 잘못"으로 지레 포기하기 쉽지만, 정상 사용 중 발생한 사고라면 제조물책임을 물을 여지가 충분합니다. 화재 직후의 현장 보존과 데이터 확보가 승패를 가르는 만큼, 피해를 입으셨다면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증거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경수
박경수 변호사의 코멘트
법무법인 세문 · 서울특별시 서초구
ESS 화재 사건을 다루면서 느낀 점은, 승패의 8할이 화재 직후 현장 보존과 BMS 데이터 확보에서 갈린다는 것입니다. 잔해를 섣불리 치우면 결함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므로, 사고 직후 전문가의 감식 전까지 현장을 그대로 두시고 가능한 빨리 상담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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