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법률정보는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하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나 조언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광주고등법원(제주) 2021. 6. 23. 선고 2020노114 판결]
피고인
검사
이준희(기소), 박영준(공판)
법무법인 정법, 담당변호사 정이훈
제주지방법원 2020. 12. 10. 선고 2020고합89 판결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1. 항소이유의 요지(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해자의 진술 등에 의하면, 이 사건 당시 피해자는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고, 피고인은 그러한 상태를 인식하면서 준강간의 고의로 피해자를 간음하였음이 충분히 인정됨에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2. 이 사건 공소사실
피고인은 2019. 9. 14. 04:00경부터 05:00경 사이에 제주시 (주소 생략)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피해자 공소외인(가명, 여, 22세) 소유의 엑센트 승용차 안 조수석에 앉아있던 중, 운전석에 앉은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이르자 피해자의 이름을 서너 번 불러 피해자가 잠이 든 사실을 확인한 후 손으로 피해자의 상의 위로 가슴을 만지고 피해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피해자의 바지 단추를 풀고 손을 집어넣어 피해자의 음부를 만지다가,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힌 후 피해자를 양손으로 들어 올려 뒷좌석으로 옮기고 피고인도 차에서 내려 뒷좌석에 다시 탑승한 후 피해자의 바지와 속옷을 모두 벗기고 손으로 피해자의 성기를 만지다가 손가락을 피해자의 음부에 집어넣고, 차에서 재차 내려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입하여 온 후 피해자의 음부에 피고인의 성기를 삽입하여 간음하려 하였으나, 피고인의 움직임과 동영상 촬영음을 듣고 정신을 차린 피해자가 거부하며 항의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거나, 피고인이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점(준강간의 고의)에 관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 피해자가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 피고인과 자동차에 타게 된 경위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 상황을 비교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 사건 당시 피해자는 피고인의 핸드폰을 조작하여 촬영된 동영상 및 카드 결제 알림의 금액을 확인하고 이를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있는 상태였다.
○ 피고인과 피해자가 앉아있던 자동차는 소형 자동차로서 조수석에 앉아있던 피고인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피해자를 아무런 도움 없이 운전석에서 뒷자리로 옮기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해자가 당시 벌어지고 있던 피고인의 삽입행위에 대하여 항의한 것이 아니고 그 이전의 동영상 촬영행위에 대해서만 항의를 하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같은 날 오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의 내용은 피해자가 성관계는 동의하였으나 동영상 촬영에만 항의하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에 더 부합한다.
○ 피해자의 피로도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 의식을 지닌 상태에서 행동하였음에도 블랙아웃 증상으로 인하여 피고인과의 성관계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였거나, 피고인이 피해자의 블랙아웃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 이 법원의 판단
가. 관련 법리
1) 준강간죄의 객관적 및 주관적 구성요건
형법 제299조에서 말하는 준강간죄는 사람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서, 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로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로서 피고인에게 위와 같은 피해자의 상태에 대한 인식 및 이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고의도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9도2001 판결 등 참조).
2) 항거불능 상태의 판단기준
음주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에 대하여 준강간을 하였음을 이유로 기소된 피고인이 ‘피해자가 범행 당시 의식상실 상태가 아니었고 그 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라는 취지에서 알코올 블랙아웃을 주장하는 경우, 법원은 피해자의 범행 당시 음주량과 음주 속도, 경과한 시간, 피해자의 평소 주량, 피해자가 평소 음주 후 기억장애를 경험하였는지 여부 등 피해자의 신체 및 의식상태가 범행 당시 알코올 블랙아웃인지 아니면 패싱아웃 또는 행위통제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사정들과 더불어 CCTV나 목격자를 통하여 확인되는 당시 피해자의 상태, 언동, 피고인과의 평소 관계, 만나게 된 경위, 성적 접촉이 이루어진 장소와 방식, 그 계기와 정황, 피해자의 연령·경험 등 특성, 성에 대한 인식 정도, 심리적·정서적 상태, 피해자와 성적 관계를 맺게 된 경위에 대한 피고인의 진술 내용의 합리성, 사건 이후 피고인과 피해자의 반응을 비롯한 제반 사정을 면밀하게 살펴 범행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3) 준강간 고의의 증명방법
준강간의 고의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는 것과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말한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피고인이 범죄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인 고의를 부인하는 경우, 그 범의 자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사물의 성질상 범의와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이를 증명할 수밖에 없다. 이때 무엇이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으로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대법원 2006. 2. 23. 선고 2005도8645 판결 등 참조).
나. 인정사실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 피고인은 피해자와 같은 대학교의 선배로서, 피해자는 2019년 초경 학생회의 동생으로부터 피고인을 소개받아 알게 되었다. 피해자는 2019. 3.경 또는 4.경 후배들을 동반하여 피고인과 함께 한차례 술을 마셨고, 이후 카카오톡 메시지나 인스타그램의 DM(Direct Message)으로 한 두 차례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
○ 피해자는 2019. 9. 13. 약 10시간 동안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다음 같은 날 23시경 같은 과 후배를 만나서 ‘○○비어’에서 만나서 소주(한라산 17도) 2병을 나눠 마셨는데(1차 음주), 그곳에서 자신의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피고인을 만나 서로 안부를 물어보고 함께 담배를 피우기도 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친구와 함께 ‘△△ 맥주집’으로 이동하여 술을 마셨고, 피해자는 후배와 함께 2019. 9. 14. 02:05경 ‘□□□’로 이동한 다음 각자 술을 마시다가 피고인에게 후배와 같이 술을 마실 것을 제안하여 피고인은 친구가 귀가한 다음 같은 날 02:40경 위 □□□로 와서 피해자, 피해자의 후배와 함께 소주(한라산 21도) 2병을 나눠 마셨으며(2차 음주), 03:20경 피해자의 후배가 귀가하자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근처 편의점에 가서 술을 더 마시자고 제안하여 피해자와 피고인은 근처에 있는 ◇◇ 편의점에서 맥주와 과자를 사서 ☆☆ 편의점에 설치된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게 되었는데(3차 음주), 피해자는 맥주 몇 모금을 마셨다.
○ 이후 같은 날 04:00경 피해자가 위 편의점에서 도보 2~3분 근처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하자 피고인도 피해자를 따라갔고, 피해자는 운전석에, 피고인은 조수석에 탑승하였다.
○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름을 서너 번 부르고, 피해자의 벌린 입에 손가락을 넣고 입술을 만져 보고는 피해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상의 위로 가슴을 만지다가 피해자의 바지 단추를 풀고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피해자의 음부를 만지다가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힌 후 피해자의 등과 다리를 양손으로 받치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뒷좌석으로 옮긴 다음 조수석 차문을 열고 내려 운전석 뒤쪽 차문으로 다시 탑승한 다음 피해자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피해자의 음부를 만지거나 음부에 손가락을 집어넣다가 차에서 다시 내려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입하여 온 다음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려고 하였는데, 피해자가 동영상 촬영 등에 대하여 항의하는 바람에 삽입은 하지 못하였다. 이때는 같은 날 약 05:00경이었다.
○ 한편 피고인은 위와 같은 성적인 접촉 과정에서 피해자의 음부 등을 동영상으로 2~3회 촬영하였는데, 위와 같은 피해자의 항의를 받고 피해자의 확인 하에 그 동영상을 삭제하였다.
○ 피고인은 같은 날 06:00경 피해자의 차량에서 나와 집으로 귀가하였고, 같은 날 피고인과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괄호 안은 시각에 해당한다).
피고인(06:13): 조심히 들어가랑피해자(10:14): 아침에 들어와보림. ㅋㅋㅋㅋ피고인(13:50): 이제야 일어나보림. ㅌㅋㅋㅌㅋ피해자(16:58): ㅋㅋㅋㅋ 에후. 오빠 영상 앨범에만 있던거맞지?피고인(17:38): 당욘. 바다 재밌나피해자(17:43): 재밌었지~피고인(18:03): 갔다 온거였네 ㅋㅋ. 숙취 개심ㅁ. 해장국 먹으로 가야될 듯
○ 피해자는 2019. 9. 19. 피고인을 준강간죄, 준강제추행죄,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등으로 고소하였고, 피고인은 2019. 10. 16.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를 받기 전 같은 날 새벽에 피해자와 다음과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피고인: 공소외인아. 나 정말 이틀 동안 하루종일 일하는데 이 생각밖에 안 나고 너무 힘든 것 같아... 물론 너가 더 힘들거 같지만 좀만 잘 생각해 주면 안 될까?? 모든게 다 후회되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기만 하다. 이번 3일 동안 잠 10시간도 못 잘 정도로 반성 많이 하고 있어. 스스로도 너무 화가 나고 부끄럽고 부모님 보기도 힘들고 내일 이 수술도 받아야 하는데 잠은 제대로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제야 알바 끝나고 카톡하는 거야. 우선 시험 잘 봤음 해피해자: 내가 조사 끝나고 다시 연락하던가 하라고 했지 솔직히 지금 시험 기간이라 안 그래도 예민한데 연락온 거 오히려 신경 쓰였으면 신경 쓰였지 별로 반갑지도 않고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좋게 보이지는 않아 그리고 내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서 합의 같은 거 하면 형량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고소 취소는 안 된다더라 그러니까 그냥 일단 조사받을 거 다 받고나서 연락하던가 해 제발 나 시험 기간까지도 이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오빠는 3일 동안 잠깐 힘든 거 가지고 나한테 이렇게 얘기하는 거겠지만 나는 그일 있고 나서 오빠가 나한테 전화로는 그동안 후회하고 있었다 했어도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거 인스타스토리 올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던 오빠보면서 나는 한 달 가까이 스트레스 엄청 받았어 그러니까 3일 그런 거 가지고 엄살부리지 마 나는 한 달동안 오빠가 지금 힘들어 하던 것보다 더 힘들었으니까 오늘 조사라고 했지? 진짜 나한테 미안하면 제발 거짓말칠 생각 단 한 개도 하지말고 제대로 사실대...(이하 생략)
다. 판단
1)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
원심이 설시한 여러 사정들에다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보태여 보면,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 피해자는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 평소 자신의 주량을 소주 한 병 반에서 두병 반 정도라고 진술하였는데, 위 인정사실에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는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한 2019. 9. 13. 23시경부터 이 사건 당시인 2019. 9. 14. 04:00경까지 약 5시간 동안 소주 2병을 마신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피해자의 음주량과 음주 속도, 경과한 시간, 평소 주량, 이 사건 당시 시각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상당히 술에 취하였고, 피곤하여 어느 정도 사리분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저하된 상태에 놓여 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 그러나 기록상 당시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 측정 자료 또는 CCTV 등 피해사실 전후의 객관적 정황상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이 의심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고, 평소 피해자가 이 사건과 같은 정도의 음주량, 음주 속도, 경과 시간만으로도 의식을 잃거나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경향이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피해자의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해자는 피고인의 도움 없이 헤매지 않고 공영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자신의 차량을 바로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 또한 피해자의 수사기관, 원심 및 이 법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는 피고인과 자동차에 타게 된 경위, 피고인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키스를 하였으며 가슴을 만지고 음부를 만지는 과정, 자신이 운전석에서 뒷좌석으로 옮겨진 과정과 피고인이 자신을 옮긴 방법, 이후 피고인이 조수석 차문을 열고 내린 다음 운전석 뒷좌석으로 탄 사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음부에 손가락을 넣은 사실, 피고인이 편의점에 가서 콘돔을 사가지고 왔고, 그 콘돔을 이용하여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려다가 피해자가 항의하여 그만 둔 사실 등 이 사건에 관한 대부분의 과정을 비교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는 음량이 그리 크지 않고 특색이 있다고도 보기 어려운 "띵"하는 동영상 촬영음만을 듣고도 동영상 촬영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고, 피고인이 콘돔을 사러 편의점으로 다녀온 약 4~5분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비교적 어두운 새벽 시간 차 안에 있던 피고인의 핸드폰 위치를 바로 확인하여 카메라 앨범에서 자신의 음부 등을 촬영한 동영상의 개수와 그 내용 등을 확인하였고, 피고인이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매한 결제내역에 관한 메시지를 확인하기도 하였으며, 그 결제금액이 4,900원이라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는바, 이는 의식이 없거나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행하기 어려운 행동이고, 그와 같은 의식 상태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는 피고인이 콘돔을 사가지고 와서 성기 삽입을 시도하는 상황에서는 의식적으로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를 하는 방식으로 피고인이 성기를 삽입하지 못하게 하였고, 피고인이 성기를 삽입하려는 직전에는 일어나서 적극적으로 항의하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확인 하에 피고인이 촬영한 동영상을 삭제하게 하기도 하였는바, 적어도 피고인이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한 때에는 피해자의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이 사건 이후 피해자는 차량에서 약 4시간 정도 잠을 자다가 09:00경 바닷가에 가기로 한 친구의 전화를 받고 큰 어려움 없이 일어나서 집에 가서 준비를 한 다음 바닷가에 놀러 갔다 온 것으로 보이는바, 만일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을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면 위와 같이 짧은 시간만을 자고도 전화를 받고 바로 일어나서 예정된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2) 피고인에게 준강간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한 때에는 최소한 미필적이나마 피해자가 잠이 든 상태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 피고인은 피해자가 1차 음주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2차 음주 시에는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였으며, 3차 음주 시에는 맥주를 몇 모금밖에 안 마신 상태에서 "술을 더 이상 못 마시겠고, 차에 가서 잠을 자야겠다."라는 피해자의 말을 듣고 피해자를 따라 피해자의 차량에 함께 탔으므로,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상당히 술에 취하였고, 피곤한 상태였던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름을 3~4회 불러 보았고, 피해자의 벌린 입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보기도 하였는데, 이는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때 피해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피고인은 피해자의 입술에 키스를 하면서 성적 접촉을 시작하였다.
○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피해자와 어떠한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은 물론 피해자가 눈을 뜨는지 등 잠에서 깼음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바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피고인은 피해자가 키스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응해주었으므로,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나, 피고인이 주장하는 당시 피해자의 반응과정과 내용은 의식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그와 같이 적극적으로 키스에 응해 준 피해자가 그 이후 항의를 할 때까지 피고인의 성적 접촉행위에 대하여 별다른 반응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더욱이 피고인은 피해자의 음부 등을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였다가 피해자가 항의하자 바로 그 동영상을 삭제하였는바, 이러한 피고인의 행동을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의식이 없는 것으로 알고 동영상 촬영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는 남녀 사이에서는 동의 없이 동영상 촬영을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동영상 촬영을 하였다는 사실만으로 피고인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고 있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해자가 피고인의 성적 행위에 대하여 명시적은 물론 묵시적으로도 동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 특히 운전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가 뒷좌석으로 옮겨진 과정과 방법에 대하여, 피고인과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치하여 피고인이 한쪽 팔은 피해자의 등 부분을 받치고, 다른 쪽 팔은 피해자의 다리 부분을 받쳐 이른바 ‘공주 안아들기’의 방법으로 피해자를 옮겼다고 진술하고 있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체격 차이(신장은 피고인이 약 20cm 이상 크고, 체중도 피고인이 약 20kg 이상 무겁다), 이동 거리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다소 어렵거나 힘들기는 해도 피해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피해자를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일 피고인이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피해자에게 스스로 뒷좌석으로 이동할 것을 요청하는 등 보다 용이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위와 같이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였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3) 피고인이, 자신의 피해자에 대한 성적 행위에 대하여, 피해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정황이 존재하였는지 여부
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성적 행위에 대한 명시적 동의를 구한 바 없고, 피해자가 그와 같은 명시적 동의를 한 바도 없음은 명백하다.
나) 이 사건 직전까지 및 직후에 있었던 다음과 같은 정황들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성적 행위를 원하였다거나 이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① 피해자는 이 사건 이전에 후배들을 동반하여 한 차례 피고인과 술을 마신 적이 있을 뿐 단둘이 술을 마시거나 만난 적이 없던 것은 물론 자주 연락을 하던 사이도 아니었다. ② 피해자는 평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고, 이 사건 무렵 피고인과 술을 마시면서 피고인으로부터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남자친구 있는 여자와는 술을 안 마신다."라는 말을 들어 자신은 두 가지 사항에 모두 해당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별히 피해자가 이전에 피고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이 사건 무렵 호감을 나타내는 언행을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 ③ 이 사건 이전에 피해자와 피고인은 일상적인 내용의 대화를 하였을 뿐 교제와 관련된 이야기나 성적인 대화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④ 이 사건 당시 피해자는 남자친구와 교제 중이었는데, 그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은 없어 보인다. ⑤ 피해자로서는 제3자에게 목격되거나 CCTV에 촬영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영주차장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 안에서 일출시각에 가까운 늦은 새벽 시간에 피고인과의 성관계를 결심하거나 이를 실행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⑥ 이 사건 직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인 반응에 관하여, 피해자는 "왜 동영상을 찍었나며 항의하였다."라고 진술하였고, 피고인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오빠가 차에서 나갔다 왔을 때 술이 다 깼다. 오빠가 여자가 고파서 이런거는 이해하는데 영상은 왜 찍은 거냐고, 그나마 얼굴은 안 찍었네’라고 말하였다."라고 진술하였는바, 이러한 피해자의 말의 내용, 경위, 태도 등에 비추어 보면, 이는 상대방의 성적 행위에 동의한 사람의 태도로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성적 행위에 대해서 항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⑦ 또한 피고인이 2019. 10. 16. 피해자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의 전송경위, 내용 등에 의하면,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피고인에게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피해자에게 고소취소를 요청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고려하더라도, 위 메시지는 합의 하에 성적 행위를 한 사람이 보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4) 소결론
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려운 이상 준강간죄의 장애미수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나) 다만,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로 피해자에 대한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하였으나,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경우에는, 피고인이 준강간의 실행에 착수하였으나 범죄가 기수에 이르지 못한 것이고, 피고인의 위와 같은 당시의 인식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할 수 있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로 피해자에 대한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하였으나, 피해자가 실제로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준강간죄의 불능미수로 의율할 수는 있다고 보여진다.
다) 한편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는 경우에는 공소사실과 기본적 사실이 동일한 범위 내에서 법원이 공소장변경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다르게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불고불리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11. 6. 30. 선고 2011도1651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할 수 있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는 기본적 사실관계를 달리하는 것이어서 공소장변경절차를 거지치 아니하고 다르게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 따라서 이 법원으로서는 불고불리의 원칙에 따라 검사의 공소장변경이 없는 이상 준강간죄 불능미수의 공소사실을 직권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라) 나아가 법원이 검사에게 공소장변경을 요구할 것인지 여부는 법원의 재량에 속하므로(대법원 2007. 8. 23. 선고 2006도9488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에 검사에 대한 공소장변경요구의무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마) 결국 준강간의 고의에 대한 증명이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항거불능 상태에 대한 증명이 없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5.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왕정옥(재판장) 김기춘 박형렬
* 본 법률정보는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합니다.
[광주고등법원(제주) 2021. 6. 23. 선고 2020노114 판결]
피고인
검사
이준희(기소), 박영준(공판)
법무법인 정법, 담당변호사 정이훈
제주지방법원 2020. 12. 10. 선고 2020고합89 판결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1. 항소이유의 요지(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해자의 진술 등에 의하면, 이 사건 당시 피해자는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고, 피고인은 그러한 상태를 인식하면서 준강간의 고의로 피해자를 간음하였음이 충분히 인정됨에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2. 이 사건 공소사실
피고인은 2019. 9. 14. 04:00경부터 05:00경 사이에 제주시 (주소 생략)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피해자 공소외인(가명, 여, 22세) 소유의 엑센트 승용차 안 조수석에 앉아있던 중, 운전석에 앉은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이르자 피해자의 이름을 서너 번 불러 피해자가 잠이 든 사실을 확인한 후 손으로 피해자의 상의 위로 가슴을 만지고 피해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피해자의 바지 단추를 풀고 손을 집어넣어 피해자의 음부를 만지다가,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힌 후 피해자를 양손으로 들어 올려 뒷좌석으로 옮기고 피고인도 차에서 내려 뒷좌석에 다시 탑승한 후 피해자의 바지와 속옷을 모두 벗기고 손으로 피해자의 성기를 만지다가 손가락을 피해자의 음부에 집어넣고, 차에서 재차 내려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입하여 온 후 피해자의 음부에 피고인의 성기를 삽입하여 간음하려 하였으나, 피고인의 움직임과 동영상 촬영음을 듣고 정신을 차린 피해자가 거부하며 항의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거나, 피고인이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점(준강간의 고의)에 관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 피해자가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 피고인과 자동차에 타게 된 경위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 상황을 비교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 사건 당시 피해자는 피고인의 핸드폰을 조작하여 촬영된 동영상 및 카드 결제 알림의 금액을 확인하고 이를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있는 상태였다.
○ 피고인과 피해자가 앉아있던 자동차는 소형 자동차로서 조수석에 앉아있던 피고인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피해자를 아무런 도움 없이 운전석에서 뒷자리로 옮기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해자가 당시 벌어지고 있던 피고인의 삽입행위에 대하여 항의한 것이 아니고 그 이전의 동영상 촬영행위에 대해서만 항의를 하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같은 날 오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의 내용은 피해자가 성관계는 동의하였으나 동영상 촬영에만 항의하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에 더 부합한다.
○ 피해자의 피로도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 의식을 지닌 상태에서 행동하였음에도 블랙아웃 증상으로 인하여 피고인과의 성관계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였거나, 피고인이 피해자의 블랙아웃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 이 법원의 판단
가. 관련 법리
1) 준강간죄의 객관적 및 주관적 구성요건
형법 제299조에서 말하는 준강간죄는 사람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서, 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로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로서 피고인에게 위와 같은 피해자의 상태에 대한 인식 및 이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고의도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9도2001 판결 등 참조).
2) 항거불능 상태의 판단기준
음주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에 대하여 준강간을 하였음을 이유로 기소된 피고인이 ‘피해자가 범행 당시 의식상실 상태가 아니었고 그 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라는 취지에서 알코올 블랙아웃을 주장하는 경우, 법원은 피해자의 범행 당시 음주량과 음주 속도, 경과한 시간, 피해자의 평소 주량, 피해자가 평소 음주 후 기억장애를 경험하였는지 여부 등 피해자의 신체 및 의식상태가 범행 당시 알코올 블랙아웃인지 아니면 패싱아웃 또는 행위통제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사정들과 더불어 CCTV나 목격자를 통하여 확인되는 당시 피해자의 상태, 언동, 피고인과의 평소 관계, 만나게 된 경위, 성적 접촉이 이루어진 장소와 방식, 그 계기와 정황, 피해자의 연령·경험 등 특성, 성에 대한 인식 정도, 심리적·정서적 상태, 피해자와 성적 관계를 맺게 된 경위에 대한 피고인의 진술 내용의 합리성, 사건 이후 피고인과 피해자의 반응을 비롯한 제반 사정을 면밀하게 살펴 범행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3) 준강간 고의의 증명방법
준강간의 고의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는 것과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말한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피고인이 범죄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인 고의를 부인하는 경우, 그 범의 자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사물의 성질상 범의와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이를 증명할 수밖에 없다. 이때 무엇이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으로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대법원 2006. 2. 23. 선고 2005도8645 판결 등 참조).
나. 인정사실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 피고인은 피해자와 같은 대학교의 선배로서, 피해자는 2019년 초경 학생회의 동생으로부터 피고인을 소개받아 알게 되었다. 피해자는 2019. 3.경 또는 4.경 후배들을 동반하여 피고인과 함께 한차례 술을 마셨고, 이후 카카오톡 메시지나 인스타그램의 DM(Direct Message)으로 한 두 차례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
○ 피해자는 2019. 9. 13. 약 10시간 동안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다음 같은 날 23시경 같은 과 후배를 만나서 ‘○○비어’에서 만나서 소주(한라산 17도) 2병을 나눠 마셨는데(1차 음주), 그곳에서 자신의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피고인을 만나 서로 안부를 물어보고 함께 담배를 피우기도 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친구와 함께 ‘△△ 맥주집’으로 이동하여 술을 마셨고, 피해자는 후배와 함께 2019. 9. 14. 02:05경 ‘□□□’로 이동한 다음 각자 술을 마시다가 피고인에게 후배와 같이 술을 마실 것을 제안하여 피고인은 친구가 귀가한 다음 같은 날 02:40경 위 □□□로 와서 피해자, 피해자의 후배와 함께 소주(한라산 21도) 2병을 나눠 마셨으며(2차 음주), 03:20경 피해자의 후배가 귀가하자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근처 편의점에 가서 술을 더 마시자고 제안하여 피해자와 피고인은 근처에 있는 ◇◇ 편의점에서 맥주와 과자를 사서 ☆☆ 편의점에 설치된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게 되었는데(3차 음주), 피해자는 맥주 몇 모금을 마셨다.
○ 이후 같은 날 04:00경 피해자가 위 편의점에서 도보 2~3분 근처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하자 피고인도 피해자를 따라갔고, 피해자는 운전석에, 피고인은 조수석에 탑승하였다.
○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름을 서너 번 부르고, 피해자의 벌린 입에 손가락을 넣고 입술을 만져 보고는 피해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상의 위로 가슴을 만지다가 피해자의 바지 단추를 풀고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피해자의 음부를 만지다가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힌 후 피해자의 등과 다리를 양손으로 받치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뒷좌석으로 옮긴 다음 조수석 차문을 열고 내려 운전석 뒤쪽 차문으로 다시 탑승한 다음 피해자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피해자의 음부를 만지거나 음부에 손가락을 집어넣다가 차에서 다시 내려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입하여 온 다음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려고 하였는데, 피해자가 동영상 촬영 등에 대하여 항의하는 바람에 삽입은 하지 못하였다. 이때는 같은 날 약 05:00경이었다.
○ 한편 피고인은 위와 같은 성적인 접촉 과정에서 피해자의 음부 등을 동영상으로 2~3회 촬영하였는데, 위와 같은 피해자의 항의를 받고 피해자의 확인 하에 그 동영상을 삭제하였다.
○ 피고인은 같은 날 06:00경 피해자의 차량에서 나와 집으로 귀가하였고, 같은 날 피고인과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괄호 안은 시각에 해당한다).
피고인(06:13): 조심히 들어가랑피해자(10:14): 아침에 들어와보림. ㅋㅋㅋㅋ피고인(13:50): 이제야 일어나보림. ㅌㅋㅋㅌㅋ피해자(16:58): ㅋㅋㅋㅋ 에후. 오빠 영상 앨범에만 있던거맞지?피고인(17:38): 당욘. 바다 재밌나피해자(17:43): 재밌었지~피고인(18:03): 갔다 온거였네 ㅋㅋ. 숙취 개심ㅁ. 해장국 먹으로 가야될 듯
○ 피해자는 2019. 9. 19. 피고인을 준강간죄, 준강제추행죄,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등으로 고소하였고, 피고인은 2019. 10. 16.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를 받기 전 같은 날 새벽에 피해자와 다음과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피고인: 공소외인아. 나 정말 이틀 동안 하루종일 일하는데 이 생각밖에 안 나고 너무 힘든 것 같아... 물론 너가 더 힘들거 같지만 좀만 잘 생각해 주면 안 될까?? 모든게 다 후회되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기만 하다. 이번 3일 동안 잠 10시간도 못 잘 정도로 반성 많이 하고 있어. 스스로도 너무 화가 나고 부끄럽고 부모님 보기도 힘들고 내일 이 수술도 받아야 하는데 잠은 제대로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제야 알바 끝나고 카톡하는 거야. 우선 시험 잘 봤음 해피해자: 내가 조사 끝나고 다시 연락하던가 하라고 했지 솔직히 지금 시험 기간이라 안 그래도 예민한데 연락온 거 오히려 신경 쓰였으면 신경 쓰였지 별로 반갑지도 않고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좋게 보이지는 않아 그리고 내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서 합의 같은 거 하면 형량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고소 취소는 안 된다더라 그러니까 그냥 일단 조사받을 거 다 받고나서 연락하던가 해 제발 나 시험 기간까지도 이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오빠는 3일 동안 잠깐 힘든 거 가지고 나한테 이렇게 얘기하는 거겠지만 나는 그일 있고 나서 오빠가 나한테 전화로는 그동안 후회하고 있었다 했어도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거 인스타스토리 올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던 오빠보면서 나는 한 달 가까이 스트레스 엄청 받았어 그러니까 3일 그런 거 가지고 엄살부리지 마 나는 한 달동안 오빠가 지금 힘들어 하던 것보다 더 힘들었으니까 오늘 조사라고 했지? 진짜 나한테 미안하면 제발 거짓말칠 생각 단 한 개도 하지말고 제대로 사실대...(이하 생략)
다. 판단
1)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
원심이 설시한 여러 사정들에다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보태여 보면,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 피해자는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 평소 자신의 주량을 소주 한 병 반에서 두병 반 정도라고 진술하였는데, 위 인정사실에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는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한 2019. 9. 13. 23시경부터 이 사건 당시인 2019. 9. 14. 04:00경까지 약 5시간 동안 소주 2병을 마신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피해자의 음주량과 음주 속도, 경과한 시간, 평소 주량, 이 사건 당시 시각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상당히 술에 취하였고, 피곤하여 어느 정도 사리분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저하된 상태에 놓여 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 그러나 기록상 당시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 측정 자료 또는 CCTV 등 피해사실 전후의 객관적 정황상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이 의심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고, 평소 피해자가 이 사건과 같은 정도의 음주량, 음주 속도, 경과 시간만으로도 의식을 잃거나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경향이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피해자의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해자는 피고인의 도움 없이 헤매지 않고 공영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자신의 차량을 바로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 또한 피해자의 수사기관, 원심 및 이 법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는 피고인과 자동차에 타게 된 경위, 피고인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키스를 하였으며 가슴을 만지고 음부를 만지는 과정, 자신이 운전석에서 뒷좌석으로 옮겨진 과정과 피고인이 자신을 옮긴 방법, 이후 피고인이 조수석 차문을 열고 내린 다음 운전석 뒷좌석으로 탄 사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음부에 손가락을 넣은 사실, 피고인이 편의점에 가서 콘돔을 사가지고 왔고, 그 콘돔을 이용하여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려다가 피해자가 항의하여 그만 둔 사실 등 이 사건에 관한 대부분의 과정을 비교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는 음량이 그리 크지 않고 특색이 있다고도 보기 어려운 "띵"하는 동영상 촬영음만을 듣고도 동영상 촬영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고, 피고인이 콘돔을 사러 편의점으로 다녀온 약 4~5분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비교적 어두운 새벽 시간 차 안에 있던 피고인의 핸드폰 위치를 바로 확인하여 카메라 앨범에서 자신의 음부 등을 촬영한 동영상의 개수와 그 내용 등을 확인하였고, 피고인이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매한 결제내역에 관한 메시지를 확인하기도 하였으며, 그 결제금액이 4,900원이라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는바, 이는 의식이 없거나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행하기 어려운 행동이고, 그와 같은 의식 상태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는 피고인이 콘돔을 사가지고 와서 성기 삽입을 시도하는 상황에서는 의식적으로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를 하는 방식으로 피고인이 성기를 삽입하지 못하게 하였고, 피고인이 성기를 삽입하려는 직전에는 일어나서 적극적으로 항의하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확인 하에 피고인이 촬영한 동영상을 삭제하게 하기도 하였는바, 적어도 피고인이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한 때에는 피해자의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이 사건 이후 피해자는 차량에서 약 4시간 정도 잠을 자다가 09:00경 바닷가에 가기로 한 친구의 전화를 받고 큰 어려움 없이 일어나서 집에 가서 준비를 한 다음 바닷가에 놀러 갔다 온 것으로 보이는바, 만일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을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면 위와 같이 짧은 시간만을 자고도 전화를 받고 바로 일어나서 예정된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2) 피고인에게 준강간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한 때에는 최소한 미필적이나마 피해자가 잠이 든 상태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 피고인은 피해자가 1차 음주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2차 음주 시에는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였으며, 3차 음주 시에는 맥주를 몇 모금밖에 안 마신 상태에서 "술을 더 이상 못 마시겠고, 차에 가서 잠을 자야겠다."라는 피해자의 말을 듣고 피해자를 따라 피해자의 차량에 함께 탔으므로,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상당히 술에 취하였고, 피곤한 상태였던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름을 3~4회 불러 보았고, 피해자의 벌린 입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보기도 하였는데, 이는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때 피해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피고인은 피해자의 입술에 키스를 하면서 성적 접촉을 시작하였다.
○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피해자와 어떠한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은 물론 피해자가 눈을 뜨는지 등 잠에서 깼음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바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피고인은 피해자가 키스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응해주었으므로,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나, 피고인이 주장하는 당시 피해자의 반응과정과 내용은 의식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그와 같이 적극적으로 키스에 응해 준 피해자가 그 이후 항의를 할 때까지 피고인의 성적 접촉행위에 대하여 별다른 반응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더욱이 피고인은 피해자의 음부 등을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였다가 피해자가 항의하자 바로 그 동영상을 삭제하였는바, 이러한 피고인의 행동을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의식이 없는 것으로 알고 동영상 촬영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는 남녀 사이에서는 동의 없이 동영상 촬영을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동영상 촬영을 하였다는 사실만으로 피고인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고 있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해자가 피고인의 성적 행위에 대하여 명시적은 물론 묵시적으로도 동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 특히 운전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가 뒷좌석으로 옮겨진 과정과 방법에 대하여, 피고인과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치하여 피고인이 한쪽 팔은 피해자의 등 부분을 받치고, 다른 쪽 팔은 피해자의 다리 부분을 받쳐 이른바 ‘공주 안아들기’의 방법으로 피해자를 옮겼다고 진술하고 있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체격 차이(신장은 피고인이 약 20cm 이상 크고, 체중도 피고인이 약 20kg 이상 무겁다), 이동 거리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다소 어렵거나 힘들기는 해도 피해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피해자를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일 피고인이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피해자에게 스스로 뒷좌석으로 이동할 것을 요청하는 등 보다 용이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위와 같이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였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3) 피고인이, 자신의 피해자에 대한 성적 행위에 대하여, 피해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정황이 존재하였는지 여부
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성적 행위에 대한 명시적 동의를 구한 바 없고, 피해자가 그와 같은 명시적 동의를 한 바도 없음은 명백하다.
나) 이 사건 직전까지 및 직후에 있었던 다음과 같은 정황들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성적 행위를 원하였다거나 이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① 피해자는 이 사건 이전에 후배들을 동반하여 한 차례 피고인과 술을 마신 적이 있을 뿐 단둘이 술을 마시거나 만난 적이 없던 것은 물론 자주 연락을 하던 사이도 아니었다. ② 피해자는 평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고, 이 사건 무렵 피고인과 술을 마시면서 피고인으로부터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남자친구 있는 여자와는 술을 안 마신다."라는 말을 들어 자신은 두 가지 사항에 모두 해당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별히 피해자가 이전에 피고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이 사건 무렵 호감을 나타내는 언행을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 ③ 이 사건 이전에 피해자와 피고인은 일상적인 내용의 대화를 하였을 뿐 교제와 관련된 이야기나 성적인 대화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④ 이 사건 당시 피해자는 남자친구와 교제 중이었는데, 그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은 없어 보인다. ⑤ 피해자로서는 제3자에게 목격되거나 CCTV에 촬영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영주차장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 안에서 일출시각에 가까운 늦은 새벽 시간에 피고인과의 성관계를 결심하거나 이를 실행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⑥ 이 사건 직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인 반응에 관하여, 피해자는 "왜 동영상을 찍었나며 항의하였다."라고 진술하였고, 피고인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오빠가 차에서 나갔다 왔을 때 술이 다 깼다. 오빠가 여자가 고파서 이런거는 이해하는데 영상은 왜 찍은 거냐고, 그나마 얼굴은 안 찍었네’라고 말하였다."라고 진술하였는바, 이러한 피해자의 말의 내용, 경위, 태도 등에 비추어 보면, 이는 상대방의 성적 행위에 동의한 사람의 태도로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성적 행위에 대해서 항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⑦ 또한 피고인이 2019. 10. 16. 피해자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의 전송경위, 내용 등에 의하면,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피고인에게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피해자에게 고소취소를 요청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고려하더라도, 위 메시지는 합의 하에 성적 행위를 한 사람이 보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4) 소결론
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려운 이상 준강간죄의 장애미수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나) 다만,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로 피해자에 대한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하였으나,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경우에는, 피고인이 준강간의 실행에 착수하였으나 범죄가 기수에 이르지 못한 것이고, 피고인의 위와 같은 당시의 인식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할 수 있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로 피해자에 대한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하였으나, 피해자가 실제로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준강간죄의 불능미수로 의율할 수는 있다고 보여진다.
다) 한편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는 경우에는 공소사실과 기본적 사실이 동일한 범위 내에서 법원이 공소장변경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다르게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불고불리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11. 6. 30. 선고 2011도1651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할 수 있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는 기본적 사실관계를 달리하는 것이어서 공소장변경절차를 거지치 아니하고 다르게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 따라서 이 법원으로서는 불고불리의 원칙에 따라 검사의 공소장변경이 없는 이상 준강간죄 불능미수의 공소사실을 직권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라) 나아가 법원이 검사에게 공소장변경을 요구할 것인지 여부는 법원의 재량에 속하므로(대법원 2007. 8. 23. 선고 2006도9488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에 검사에 대한 공소장변경요구의무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마) 결국 준강간의 고의에 대한 증명이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항거불능 상태에 대한 증명이 없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5.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왕정옥(재판장) 김기춘 박형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