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법률정보는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하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나 조언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동일해 보이는 상황이라도 사실관계나 시점 등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변호사와 상담을 권장합니다.
【판시사항】
장애인의 접근권이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인지 여부(적극) 및 장애인의 접근권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접근을 보장할 수 있는 특정 시설과 설비를 설치할 것을 국가나 사인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구체화되기 위한 요건과 국가의 의무 /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한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그 행정입법 부작위는 위법한지 여부(적극) /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 /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된 경우, 그로 인하여 장애인이 입게 되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의무가 있는지 여부(적극) 및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하여 개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위자료 지급의무를 인정하기 위해 고려하여야 할 요소 / 법원이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위자료 액수를 산정할 때 고려하여야 할 요소
【판결요지】
[다수의견] (가) 장애인의 접근권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장애인에게도 동등하게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가 되는 권리로서, 비록 헌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헌법 규정들로부터 도출되는 기본권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다만 장애인의 접근권이 접근에 대한 방해의 금지를 구하는 소극적·방어적인 수준을 넘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접근을 보장할 수 있는 특정 시설과 설비를 설치할 것을 국가나 사인(사인)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 할 것이고, 국가는 제한된 재정 능력과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 등을 고려하여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이 적절히 보장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헌법상 보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회는 1997. 4. 10.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여 이를 1998. 4. 11. 시행하였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같은 법 제1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할 권리, 즉 접근권을 가진다고 명시하였으며(같은 법 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할 의무를 규정하였다(같은 법 제6조).
국회는 더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 한다)을 2007. 4. 10. 제정하였고, 2008. 4. 11.부터 시행하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의 실현을 통하여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데(같은 법 제1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금지되는 차별의 범위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이하 ‘정당한 편의제공’이라 한다)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도 포함된다(같은 법 제4조 제1항 제3호, 제2항, 이와 같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는 의무를 이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라고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모든 차별을 방지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할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다(같은 법 제8조).
이와 더불어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증진·보호 및 보장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통된 노력과 합의를 반영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하 ‘장애인권리협약’이라 한다)이 2009. 1. 10. 국내에 발효되었다. 장애인권리협약 제4조 제1항은 당사국에 대하여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 없이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보장하고 촉진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협약 제9조 제1항은 대중에게 개방 또는 제공된 시설에 대하여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당사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국회가 법률로 행정청에 특정한 사항을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권력분립의 원칙과 법치국가 또는 법치행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위법함과 동시에 위헌적인 것이 되고, 이는 행정청이 법률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받은 사항을 전혀 입법하지 않은 경우는 물론 그 법률이 위임한 사항을 불충분하게 규정함으로써 법률이 위임한 행정입법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라 한다) 제7조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였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 한다) 제18조 제4항 또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는 의무(이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라 한다)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단계적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그 위임에 따라 제정된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는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대상을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에 해당하는 대상시설 중 2009. 4. 11. 이후에 신축·증축·개축된 시설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범위 또한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제정되는 대통령령에 규정된 범위로 한정되었다.
장애인의 접근권은 장애인이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초석이 되는 헌법상 기본권의 일종이고,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은 피고에게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거듭하여 부과하였다. 따라서 행정청이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행정입법을 통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정할 재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량은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4조 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평등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의 접근권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실현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구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의 (1)이 정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 및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러한 규정은 법률이 보장하고자 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하거나, 장애인의 접근권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아가고자 한 모법의 위임 취지를 도외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행정청에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강제되는 대상시설을 확대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형태로 해당 행정입법을 개정할 구체적인 의무가 발생한다고 할 것이고,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행정입법 부작위는 위법하다고 할 것이다.
(다) 행정청에 의한 작위 또는 부작위가 사후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그것만으로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그로 말미암아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 때 국가배상법 제2조가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는지는 행위의 양태와 목적, 피해자의 관여 여부와 정도, 침해된 이익의 종류와 손해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되,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가 부담할 만한 실질적 이유가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한편 법률이 행정청에 대하여 행정입법을 할 재량을 부여하였다 하더라도, 그 재량을 부여한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행정청이 행정입법의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한 것이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경우에는 그 부작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고,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정한 공무원의 과실도 인정된다.
(라) 국가배상법 제3조 제5항이 생명, 신체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의 지급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 하더라도, 이는 생명, 신체 외의 다른 권리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의 지급의무를 배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된 경우에도 그로 인하여 장애인이 입게 되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의무가 배제되지 않는다.
입법부가 행정청에 행정입법의무를 부과하였음에도 행정청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그 이행을 장기간 지연함으로써 개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로 인해 개인에게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였는지는 법률이 행정입법을 위임한 목적과 취지,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침해된 권리의 헌법상 지위 또는 중요성, 그 침해의 정도와 지속 기간, 행정입법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경위, 행정입법의무가 사후적으로나마 이행되었다면 그 행정입법의무의 뒤늦은 이행으로도 회복되지 않은 정신적 손해가 여전히 남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에 대한 손쉬운 사법적 권리구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 법제에서 국가배상청구가 가장 유효한 규범통제 수단이자 실질적으로 유일한 구제수단으로서의 의의가 있다는 점도 아울러 참작하여야 한다.
(마)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국가배상의 경우 위자료 산정에 고려하여야 할 다음과 같은 특수한 사정이 있다. 즉, 행정입법은 별도의 집행행위가 개입되지 않는 이상 그 자체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권리 침해는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또한 행정입법은 다른 행정행위와 달리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고 전체 국민을 수범자로 하므로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하는 행정행위에 비해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할 직무상 의무 위반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반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 상대방의 인적 범위는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이 위법함을 선언하는 판결을 통해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가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음은 물론 국가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사법통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법원이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에는 위와 같은 특수성을 고려하여 앞서 본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 인정을 위한 참작 요소는 물론 그로 인한 권리 침해가 통상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균질하게 나타나는 성질의 것인지 여부, 국가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와 예방의 필요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으로 위자료 액수를 정하여야 한다.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 노경필의 별개의견] 헌법 제29조 제1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청구권의 기본권적 성질, 헌법 제10조 제2문이 정한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국가원리 및 법령의 통일적인 해석·적용의 요청에 비추어 볼 때, ①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입은 이상 직무를 집행한 공무원의 주관적 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국가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고, ②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함에도, 그 행위의 객관적 정당성이 상실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위법성 판단을 달리하여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참조조문】
헌법 제10조, 제11조, 제34조 제1항, 제5항,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1조, 제4조, 제6조, 제7조, 구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별표] 제2호 (가)목의 (1),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조, 제4조 제1항 제3호, 제2항, 제8조, 제18조 제4항,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1조,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4조 제1항, 제9조 제1항,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제3조 제5항
【참조판례】
대법원 1990. 12. 21. 선고 90다6033, 6040, 6057 판결(공1991, 582)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6다3561 판결(공2007하, 2012)
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77795 판결(공2010하, 1879)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6두50907 판결(공2019하, 2259)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7다249219 판결(공2021하, 1356)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공2022하, 1965)
【전 문】
【원고, 상고인】 원고 1 외 2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디엘지 외 6인)
【피고, 피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이산해 외 3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22. 10. 6. 선고 2022나2009024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원고 1, 원고 2의 국가배상청구 부분에 대하여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부분을 각 파기하고, 제1심판결 중 같은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 1, 원고 2의 패소 부분을 각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각 1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8. 11. 3.부터 2024. 12. 19.까지는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원고 1, 원고 2의 나머지 상고 및 원고 3의 상고는 모두 기각한다. 원고 1, 원고 2와 피고 사이에 생긴 소송총비용은 각자 부담하고, 원고 3과 피고 사이에 생긴 상고비용은 원고 3이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안의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라 한다) 제7조는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이동하거나 시설을 이용할 때 편리하게 하기 위한 시설과 설비(이하 ‘편의시설’이라 한다)를 설치할 의무를 부담하는 대상시설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 그 위임에 따라 구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이라 한다)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의 (1)(이하 ‘이 사건 쟁점규정’이라 한다)은 공중이용시설 중 ‘수퍼마켓·일용품(식품·잡화·의류·완구·서적·건축자재·의약품·의료기기 등을 말한다) 등의 소매점’(이하 ‘소규모 소매점’이라 한다)에 대해서 그 바닥면적이 300㎡ 미만인 경우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같은 법 시행령이 1998. 4. 11. 시행된 이래로 이 사건 쟁점규정의 내용은 24년 넘게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 쟁점규정이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장애인의 접근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 무효라는 취지의 제1심판결이 2022. 2. 10. 선고되었고, 피고는 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여 소규모 소매점 중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되는 바닥면적 기준을 기존의 300㎡ 미만에서 50㎡ 미만으로 축소하였다.
2.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한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
가.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행정청이 부담하는 행정입법의무의 내용
1) 장애인의 접근권을 규정한 헌법과 법률 및 조약 내용
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인간의 본질로 간주되는 존귀한 인격 주체성을 의미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자기책임 능력이 있는 인격체로서 스스로 결단하여 그 결단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헌법 제11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니고, 국가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각종 시설과 설비는 대부분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마련되어 있어서 장애인은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이를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스스로 결단하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는 우리 헌법이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인간의 존엄성의 핵심을 구성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에 스스로의 힘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즉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같은 조 제5항은 신체장애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여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배려하고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6두50907 판결 참조).
이처럼 장애인의 접근권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장애인에게도 동등하게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가 되는 권리로서, 비록 헌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앞서 살펴본 헌법 규정들로부터 도출되는 기본권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나) 다만 장애인의 접근권이 접근에 대한 방해의 금지를 구하는 소극적·방어적인 수준을 넘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접근을 보장할 수 있는 특정 시설과 설비를 설치할 것을 국가나 사인(사인)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 할 것이고, 국가는 제한된 재정 능력과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 등을 고려하여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이 적절히 보장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헌법상 보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회는 1997. 4. 10.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을 제정하여 이를 1998. 4. 11. 시행하였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같은 법 제1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할 권리, 즉 접근권을 가진다고 명시하였으며(같은 법 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할 의무를 규정하였다(같은 법 제6조).
라) 국회는 더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 한다)을 2007. 4. 10. 제정하였고, 2008. 4. 11.부터 시행하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의 실현을 통하여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데(같은 법 제1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금지되는 차별의 범위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이하 ‘정당한 편의제공’이라 한다)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도 포함된다(같은 법 제4조 제1항 제3호, 제2항, 이와 같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는 의무를 이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라고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모든 차별을 방지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할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다(같은 법 제8조).
마) 이와 더불어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증진·보호 및 보장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통된 노력과 합의를 반영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하 ‘장애인권리협약’이라 한다)이 2009. 1. 10. 국내에 발효되었다. 장애인권리협약 제4조 제1항은 당사국에 대하여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 없이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보장하고 촉진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협약 제9조 제1항은 대중에게 개방 또는 제공된 시설에 대하여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당사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 설정에 관한 행정청의 재량 및 그 한계
가) 국회가 법률로 행정청에 특정한 사항을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권력분립의 원칙과 법치국가 또는 법치행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위법함과 동시에 위헌적인 것이 되고(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6다3561 판결 참조), 이는 행정청이 법률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받은 사항을 전혀 입법하지 않은 경우는 물론 그 법률이 위임한 사항을 불충분하게 규정함으로써 법률이 위임한 행정입법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였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8조 제4항 또한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단계적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그 위임에 따라 제정된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는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대상을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에 해당하는 대상시설 중 2009. 4. 11. 이후에 신축·증축·개축된 시설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범위 또한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제정되는 대통령령에 규정된 범위로 한정되었다.
다) 장애인의 접근권은 장애인이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초석이 되는 헌법상 기본권의 일종이고,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인권리협약은 피고에게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거듭하여 부과하였다. 따라서 행정청이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행정입법을 통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정할 재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량은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4조 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평등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의 접근권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실현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
라) 따라서 이 사건 쟁점규정이 정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 및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러한 규정은 법률이 보장하고자 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하거나, 장애인의 접근권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아가고자 한 모법의 위임 취지를 도외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행정청에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강제되는 대상시설을 확대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형태로 해당 행정입법을 개정할 구체적인 의무가 발생한다고 할 것이고,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행정입법 부작위는 위법하다고 할 것이다.
나.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의 위법한 불이행
1) 인정 사실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국가통계포털’에 의하면, 전국 편의점 중 이 사건 쟁점규정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강제되는 바닥면적 300㎡ 이상인 체인화 편의점의 비율은 2006년 기준으로 전체 체인화 편의점 중 0.1%(소수점 한 자릿수 미만 버림, 이하 같다), 2019년 기준으로 1.8%에 불과하였고, 음식료품 및 담배소매점의 경우 2019년 기준으로 전체의 2.2%에 불과하였다.
나) 2016년에 실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일정기준 미만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 사건 쟁점규정이 포함된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 제2호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된 소규모 공중이용시설 중 주출입구에 2cm 이상의 턱 또는 계단이 있어 높이 차이가 있는 시설은 전체의 82.3%, 그중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은 경우는 65%, 경사로를 설치하였어도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경우는 57.1%로 나타났다. 즉, 2016년에도 이 사건 쟁점규정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된 소규모 소매점 중 3분의 2가 넘는 비율의 시설에서 장애인의 접근권이 제한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구체적 판단
가)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처음 시행되었던 1998. 4. 11. 무렵에는 소규모 소매점의 소유자·관리자에 대한 불측의 손해를 방지하고, 급격한 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을 줄이고자 우선은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좁게 정할 정책적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는 있다.
나) 그 후 국회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만으로는 장애인의 접근권과 평등권 보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2008. 4. 11.부터 위 법률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앞서 본 것과 같이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그 시행령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에서 정한 시설로 한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도 이 사건 쟁점규정에서 정한 범위로 제한되었다.
다) 기존의 장애인등편의증진법에서 규정한 장애인의 권리를 한층 더 보호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음에도,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가 여전히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최초로 시행되던 당시 이 사건 쟁점규정에서 정한 범위 내로 제한되었다면, 행정청으로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취지를 고려하여 최소한 이 법이 시행된 2008. 4. 11. 무렵부터는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함으로써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있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확대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행정입법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2008. 4. 11.은 이 사건 쟁점규정이 처음 시행되었던 1998. 4. 11.로부터 10년이 되는 날이었고, 그동안 편의시설 설치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여건이 많이 변화하였음에도 95%가 넘는 소규모 소매점을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고 있던 이 사건 쟁점규정은 여전히 개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피고는 2007. 3. 30. 장애인권리협약에 서명하고, 그 협약이 2009. 1. 10. 국내에 발효됨으로써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을 전후하여 국제법적으로도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에 관한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 이처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2008. 4. 11. 무렵에는 장애인의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이용·접근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행정청으로서는 늦어도 2008. 4. 11.부터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
라) 피고는 이와 같이 개선입법의무를 부담한 무렵부터 개선입법에 실질적으로 소요될 기간을 훨씬 초과하는 1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지 않았다. 물론, 피고가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이 사건 쟁점규정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면제된 소규모 소매점의 자발적인 편의시설 설치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소규모 소매점의 편의시설 설치율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피고로서는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가 개선입법의무의 이행과는 별도로 그에 상응하는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에 관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쳤다는 사정 등은 확인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앞서 본 사정, 즉 2016년 기준으로 3분의 2가 넘는 소규모 소매점이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할 적정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에게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에 관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마)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원고들이 설치를 요구하는 편의시설의 주된 내용은 주출입구의 단차(단차) 제거 또는 경사로 설치이다. 이와 같은 편의시설은 승강기 또는 장애인용 화장실의 설치와 같이 건물 구조의 큰 변경을 요구하거나 별도의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이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데에 어떠한 제한이 초래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설치가 가능하다. 사회·경제적 혼란이나 비용을 고려해 보더라도 피고가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지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유보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바) 결국 피고가 14년이 넘도록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행정입법의무를 불이행한 부작위로 인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내용이 장기간 실현되지 못하였고, 그 불이행의 정도가 매우 커서 법률이 보장하고자 한 지체장애인의 접근권이 유명무실해졌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부작위는 위법하다.
3. 원고 1, 원고 2의 국가배상청구에 관한 판단
가. 객관적 정당성의 상실과 고의·과실
1) 관련 법리
행정청에 의한 작위 또는 부작위가 사후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그것만으로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7다249219 판결 등 참조).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그로 말미암아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 때 국가배상법 제2조가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는지는 행위의 양태와 목적, 피해자의 관여 여부와 정도, 침해된 이익의 종류와 손해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되,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가 부담할 만한 실질적 이유가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한편 법률이 행정청에 대하여 행정입법을 할 재량을 부여하였다 하더라도, 그 재량을 부여한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행정청이 행정입법의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한 것이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경우에는 그 부작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고,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정한 공무원의 과실도 인정된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77795 판결 참조).
2) 이 사건에 대한 판단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해 인정되는 다음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14년 넘게 불이행한 피고의 부작위는 행정입법을 통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정하도록 재량을 부여한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와 목적 및 내용에서 현저하게 벗어나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이 정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한 행위에 해당한다.
가) 이 사건 쟁점규정은 95%가 넘는 대부분의 소규모 소매점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함으로써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내용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사건 쟁점규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소규모 소매점에 대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면제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하더라도 이 사건 쟁점규정이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비교적 명확하였을 것이다.
나) 이 사건 쟁점규정에 관한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의 피해자 측인 장애인 단체들은 이 사건 쟁점규정의 입법 당시부터 이 사건 쟁점규정에서 정한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11조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범위를 이 사건 쟁점규정에서 정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로 한정하자,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목적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이 사건 쟁점규정을 포함한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이 개정되어야 함을 여러 차례 지적하였다.
다)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의 이행 상황 등을 검토하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 10. 29. 우리나라의 건물에 대한 접근성 기준이 건물의 크기, 용적 또는 건축 일자에 의해 제한되는 점을 우려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 12. 14. 보건복지부장관에 대하여 장애인의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을 권고하였다. 그렇다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이 사건 쟁점규정에 관한 국제기구 및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 등을 통해 아무리 늦어도 2010년대 중반에는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한 것이 국가의 장애인 접근권 보장의무의 위법한 불이행을 구성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라) 이처럼 피고가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그 개선입법의무를 장기간 이행하지 않은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피고가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장기간 방기한 결과, 장애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제10조)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제1항) 및 평등권(제11조)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피해를 보았다.
마) 이와 같이 국가가 법률과 조약을 통해 반복적으로 부과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장기간 심하게 저버린 이상 이 사건 쟁점규정에 관한 개선입법의무 불이행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부작위로 인해 장애인이 손해를 입었다면 국가에 그 배상책임을 부담시킴으로써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가 사후적으로나마 이행될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에 부담시킬 실질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나.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의 인정 여부와 범위
1) 위자료의 인정 여부
가) 관련 법리
국가배상법 제3조 제5항이 생명, 신체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의 지급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 하더라도, 이는 생명, 신체 외의 다른 권리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의 지급의무를 배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0. 12. 21. 선고 90다6033, 6040, 6057 판결 등 참조).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된 경우에도 그로 인하여 장애인이 입게 되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의무가 배제되지 않는다.
입법부가 행정청에 행정입법의무를 부과하였음에도 행정청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그 이행을 장기간 지연함으로써 개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로 인해 개인에게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였는지는 법률이 행정입법을 위임한 목적과 취지,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침해된 권리의 헌법상 지위 또는 중요성, 그 침해의 정도와 지속 기간, 행정입법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경위, 행정입법의무가 사후적으로나마 이행되었다면 그 행정입법의무의 뒤늦은 이행으로도 회복되지 않은 정신적 손해가 여전히 남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에 대한 손쉬운 사법적 권리구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 법제에서 국가배상청구가 가장 유효한 규범통제 수단이자 실질적으로 유일한 구제수단으로서의 의의가 있다는 점도 아울러 참작하여야 한다.
나) 구체적 판단
(1) 이 사건 쟁점규정은 95%가 넘는 대부분의 소규모 소매점을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였고, 그 시행일로부터 24년이 넘도록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소규모 소매점은 대다수 시민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생필품을 그때그때 가까운 곳에서 비교적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게 해 주는 공중이용시설로서 시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주요 생필품의 공급자 역할을 통해 시민의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이 제한될 경우, 장애인이 스스로 자유롭게 소규모 소매점을 이용할 수 없는 등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일상적으로 침해받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내하여야 한다.
(2) 피고는 2011. 1. 4. 제정된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장애인이 활동지원사의 이동보조를 받아서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소규모 소매점에 접근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 불이행만으로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애인의 접근권은 스스로 결단하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권리이다. 따라서 장애인이 관계 법령에 따라 활동지원사와 같은 타인의 도움을 통해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장애인 스스로의 힘으로 소규모 소매점에 접근할 수 없다면 장애인의 접근권이 온전히 보장된 것으로 평가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3) 이 사건 쟁점규정이 시행된 후 24년 동안 국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 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 등을 통해 장애인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접근권을 보장하겠다는 의사를 반복적으로 나타냈고, 우리 사회는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국민의 공감대도 보다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제약하는 이 사건 쟁점규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고, 그 결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일상적으로 부정당한 장애인의 고통이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 쟁점규정이 2022. 4. 27. 개정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장애인이 그동안 일상생활에서 겪어왔던 고통이 모두 회복된다거나 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없다.
(4) 국가는 헌법과 법률 및 조약에 따라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보호하고 이들에 대하여 비장애인과 다름없는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물리적 장벽을 제거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언제 어디서나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차별 없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어야 할 모든 국가기관의 책무이기도 하다. 이 사건 쟁점규정에 관한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해 장애인이 겪었을 고통을 위자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라,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국가에 대하여 적시의 적절한 행정입법의무의 이행과 적극적인 장애인 보호정책의 시행을 촉구하는 수단으로서 의의가 있다.
(5) 그러므로 피고는 지체장애인인 원고 1, 원고 2에 대하여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2) 위자료의 인정 범위
가)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국가배상의 경우 위자료 산정에 고려하여야 할 다음과 같은 특수한 사정이 있다. 즉, 행정입법은 별도의 집행행위가 개입되지 않는 이상 그 자체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권리 침해는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또한 행정입법은 다른 행정행위와 달리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고 전체 국민을 수범자로 하므로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하는 행정행위에 비해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할 직무상 의무 위반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반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 상대방의 인적 범위는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이 위법함을 선언하는 판결을 통해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가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음은 물론 국가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사법통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법원이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에는 위와 같은 특수성을 고려하여 앞서 본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 인정을 위한 참작 요소는 물론 그로 인한 권리 침해가 통상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균질하게 나타나는 성질의 것인지 여부, 국가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와 예방의 필요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으로 위자료 액수를 정하여야 한다.
나) 기록에 의하면, 지체장애인인 원고 1, 원고 2가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주된 목적은 이 사건 쟁점규정의 위법성 확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위법한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장애인 접근권 침해의 태양과 정도, 장애인이 겪었을 불편과 고통은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으로 보호받게 될 장애인에게 균질적인 것으로 보이고, 이와 달리 보아야 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이를 고려하면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심이 확정한 사실을 바탕으로 위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의 적정한 액수를 충분히 산정할 수 있다.
다) 위자료의 적정한 액수를 살펴본다.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장기간의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해 지체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함으로써 입은 불이익이 적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그 불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피해자의 범위가 넓고, 피고 스스로도 2022. 4. 27.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한 이래 추가적 개정을 계속해 가는 등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위법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하면,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위법한 개선입법 부작위로 인해 지체장애인인 원고 1, 원고 2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위자료 액수는 각 100,000원이 적정하다.
3) 원심판결의 당부(당부)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피고의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 1, 원고 2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국가배상책임 성립의 전제가 되는 공무원의 고의·과실, 객관적 정당성의 상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 1, 원고 2의 이 부분에 대한 상고이유는 앞서 인정한 범위 내에서 이유가 있다.
4. 원고 1, 원고 2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판단
가. 원고 1, 원고 2는 피고의 부작위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8조에서 정한 국가의 장애인 차별 방지 및 시정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6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도 함께 청구하고 있다.
나. 이에 대해 원심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6조 제1항 본문에 따른 손해배상은 ‘차별행위를 한 자’를 상대로 청구하여야 하는데, 피고가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 등을 통해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을 확대하지 않은 부작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원고 1, 원고 2의 피고에 대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손해배상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 관계 법령 및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6조 제1항에서 정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으므로, 원고 1, 원고 2의 이 부분에 대한 상고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5. 원고 3의 국가배상청구에 관한 판단
가.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그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경우라도 국가는 그러한 직무상 의무 위반과 피해자가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 경우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의 내용이 단순히 공공 일반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사회 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77795 판결 참조).
나. 앞서 본 것처럼 피고의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상 장애인·노인·임산부의 편의증진을 위한 범위에 한하여 인정되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시행을 통해 발생하였으므로, 피고가 부담하는 행정입법의무의 내용 또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피고의 개선입법의무 불이행에 따라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손해는 그 의무가 보호하고자 했던 장애인이 입은 손해에 한정된다.
다. 그런데 원고 3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 3은 영유아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유아차를 끌고 외출하는 경우가 많아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편의점 등을 이용하는 데에 불편을 겪었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을 통해 편의시설 설치가 의무화된 소규모 소매점이 증가할 경우 유아차를 자주 사용하는 원고 3의 편의가 증진된다고 할 것이나, 이는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 이행에 따라 비장애인인 국민이 누리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한 것이어서, 이 사건에서 비장애인인 원고 3이 피고의 위법한 부작위를 이유로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라. 원고 3의 피고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판단은 그 결론에 있어 정당하므로, 원고 3의 상고이유는 이유가 없다.
6.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원고 1, 원고 2의 국가배상청구 부분에 대하여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부분을 각 파기하되, 이 부분 사건은 이 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므로 민사소송법 제437조에 의하여 자판하기로 한다.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국가배상책임으로 각 100,000원 및 이에 대해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인 2018. 11. 3.부터 피고가 이행의무의 존재 여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24. 12. 19.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 부분에 해당하는 제1심판결을 각 취소하고 피고에게 위 각 돈의 지급을 명하며, 원고 1, 원고 2의 나머지 상고 및 원고 3의 상고는 모두 기각한다. 그리고 원고 1, 원고 2와 피고 사이에 생긴 소송총비용은 각자 부담하고, 원고 3과 피고 사이에 생긴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게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국가배상책임의 성질에 관한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 노경필의 별개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오경미, 대법관 신숙희의 보충의견이 있다.
7.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 노경필의 별개의견
가. 별개의견의 요지
1)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오랫동안 이행하지 아니한 피고의 위법한 부작위로 인해 지체장애인인 원고 1, 원고 2의 접근권이 침해되었으므로, 피고가 이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국가배상책임이 있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피고의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이에 더해 담당 공무원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함은 물론 그로 말미암아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 때에 비로소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한 행위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원고 1, 원고 2에 대한 위자료로 각 100,000원을 정하였다.
2) 다수의견은 국가배상책임이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불법행위책임을 국가가 대위해서 부담하는 것(대위책임)임을 전제로 하여,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주관적 책임요소인 고의·과실, 즉 객관적 주의의무의 소홀과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별도의 위법성 판단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하더라도, 담당 공무원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거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3) 그러나 헌법 제29조 제1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청구권의 기본권적 성질, 헌법 제10조 제2문이 정한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국가원리 및 법령의 통일적인 해석·적용의 요청에 비추어 볼 때, ①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입은 이상 직무를 집행한 공무원의 주관적 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국가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고, ②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함에도, 그 행위의 객관적 정당성이 상실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위법성 판단을 달리하여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별개의견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결론에는 다수의견과 입장을 같이 하나 그 근거를 달리한다.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나.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공무원의 주관적 책임에 관하여
1) 국가의 자기책임으로서 국가배상책임
헌법 제29조 제1항이 정한 국가배상책임은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입었을 때 그 위법의 결과를 국가가 스스로 제거하도록 함으로써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국가원리를 구현하고, 국가로 하여금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하여 국민이 입은 손해를 사후적으로나마 회복하도록 함으로써 헌법 제10조 제2문이 정한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배상책임은 단순히 공무원 개인의 민사적 불법행위책임을 국가가 대위하여 부담하는 것을 넘어 국가가 위법한 행위로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기책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가) 국가의 배상책임은 근대의 국가 무책임사상의 지양 및 사회공동체의 통합을 위한 책임윤리, 공무원의 위법행위로부터 기본권적 가치의 보호와 실현을 이념적 기초로 한다. 법치국가원리는 국가에 의한 적법한 공권력 행사를 전제로 하므로, 국가에 대해 위법한 행위의 결과를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제거할 것과 위법하게 행사된 공권력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국민에게 효과적인 손해보전을 행할 것을 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배상책임제도는 법치국가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배상청구권은 이미 사실관계가 완성되어 위법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일차적 권리구제가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에 2차적 권리구제를 보장하는 손해배상이 기능한다는 점에서 헌법상 권리구제제도의 한 부분을 구성하기도 한다(헌법재판소 2015. 4. 30. 선고 2013헌바395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나) 국가배상청구권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부터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국가배상청구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여 왔다. 제헌헌법 제27조는 공무원 개인의 국민에 대한 책임을 먼저 규정하고 이어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대한 국민의 국가배상청구권을 규정하였다. 이처럼 제헌헌법은 공무원 개인의 책임과 국가배상책임을 하나의 조항에서 앞뒤로 규정함으로써 국가배상책임이 공무원 개인의 책임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서 공무원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성립되는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제헌헌법과 달리 공무원 개인의 국민에 대한 책임은 제1장 총강에 있는 헌법 제7조에서 규정하고, 국가배상책임은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한 제2장의 제29조에서 별도로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행 헌법의 체계에 비추어 보면 공무원 개인의 책임과 국가의 책임은 서로 다른 성질의 책임으로서 양자가 서로 독립되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다) 헌법 제29조 제1항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가 있는 경우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헌법과 법령에 규정된 ‘불법행위’가 반드시 민법 제750조에서 정한 개인의 주관적 책임을 전제하는 개념으로 단정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민법 제320조에서 유치권이 성립되지 않는 원인으로 규정한 불법행위로 인한 점유의 ‘불법행위’가 민법 제750조에서 정한 ‘불법행위’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것과 유사하다. 헌법과 법령에 규정된 ‘불법행위’는 그 용어가 사용된 제도마다 그 취지 등을 고려하여 각자 고유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헌법 제29조 제1항에서 정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의 의미 또한 헌법이 정한 국가배상책임제도의 의의와 입법 취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확정되어야 한다.
라) 국가배상책임이란, 국가가 헌법 제10조 제2문에서 정한 국민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위법한 행위로 국민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헌법이 정한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사후적으로나마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배상책임은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국가의 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법치국가의 원리가 국가에 대해 위법한 행위의 결과를 가능한 광범위하게 제거할 것을 명하고 있다는 것은 앞서 본 것과 같다. 따라서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하여 국민이 손해를 입었음에도 공무원 개인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민으로 하여금 그 손해를 감내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무나 법치국가의 원리에 충실한 결과라고 볼 수 없다.
마)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각종 생활관계에는 기능적인 상호의존이 증대하고 있고 이에 따른 새로운 책임논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예컨대 사법(사법) 영역에서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원칙만을 고집해서는 손해 및 희생의 공평한 사회분담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자 위험책임이론이나 무과실책임이론이 등장하게 된 것과 같이, 공법 영역에서도 사회적 공평을 확보할 수 있는 국가책임이 필요하다. 오히려 국가배상책임이 민사책임과는 달리 사회공동체의 배분적 정의의 실현 또는 사회적 공평의 확보에 이념적인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헌법재판소 2015. 4. 30. 선고 2013헌바395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에 비추어 보면,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이론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필요성은 더욱 크다.
바) 헌법 제23조 제3항에 따르면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재산권이 제한된 국민에 대하여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헌법이 정한 국가배상책임을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라 공무원의 민사적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성립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공무원의 민사적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손해를 입은 국민이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국민의 재산권이 제한된 경우에도 정당한 보상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하물며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국민이 손해를 입었음에도 그 배상의무가 면책되는 경우를 폭넓게 예정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 다수의견과 같이 헌법 제29조 제1항이 정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를 전통적 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라 인정되는 공무원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고 해석하게 되면,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였음에도 그 위법한 결과가 제거되지 아니한 채 국민의 권리 침해가 계속 방치됨으로써 헌법의 체계적 해석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러므로 헌법 제29조 제1항이 정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란, 공무원 개인의 고의 또는 과실을 요건으로 국가의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무원의 직무수행을 통해 국가의 불법행위가 실현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즉, 헌법 제29조 제1항은 공무원의 직무수행을 통해 실현되는 국가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국민이 직접 국가를 상대로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적으로 보장한 규정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불법행위책임을 전제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는 규정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2)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고의 또는 과실’의 의미에 관하여
가) 헌법 제29조 제1항은 국가배상청구권을 보장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유보하였다. 이에 따라 제정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헌법 제29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규정하였는데, 이는 헌법 제29조 제1항이 정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인 ‘불법행위’를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헌법재판소 2015. 4. 30. 선고 2013헌바395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나)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헌법상 보장되는 국가배상책임을 국가의 자기책임으로 이해하는 이상 그 하위 법규인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고의 또는 과실’을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책임의 전제가 되는 요건이라고 해석할 경우,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한 국가배상청구권의 범위가 부당하게 제한되므로 이러한 해석은 헌법이 전제하고 있는 국가배상책임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 오히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이 정한 ‘고의 또는 과실’이란 행정 조직이나 운영상의 결함에 따른 공무원의 공적 직무수행상 과실로 해석하는 것이 우리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국가배상청구권을 온전하게 실현하고, 국가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폭넓은 적법성 통제라는 법치국가원리를 구현하는 해석으로서 헌법 제29조 제1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책임의 성격과도 합치된다. 이미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 성립을 위해 개별 공무원의 고의·과실이 인정될 필요는 없고,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고의 또는 과실’이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원칙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개별 국민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라) 이와 달리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고의·중과실에 기한 경우 그 행위를 국가 등에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는 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공무원의 직무집행상의 과실을 주관적 과실만을 의미한다고 판단한 대법원 1987. 9. 22. 선고 87다카1164 판결 등은 모두 변경되어야 한다.
다. 국가배상책임의 위법성 판단기준으로 직무의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에 관하여
1)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의 의의
가)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에 있어서 공무원의 가해행위는 ‘법령을 위반한’ 것이어야 하고, 법령 위반이라 함은 엄격한 의미의 법령 위반뿐만 아니라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의 위반도 포함하여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0다95666 판결 및 대법원 2022. 9. 29. 선고 2018다224408 판결 등 참조). 또한 대법원은 어떠한 행정처분이 항고소송에서 취소되었더라도 곧바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그 행정처분의 담당 공무원이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하여 볼 때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여 그 행정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되어야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대법원 2022. 4. 28. 선고 2017다233061 판결 등 참조).
나) 이처럼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에서의 위법성 판단기준은 국가의 행위에 대한 공법상 위법성 판단기준과는 다르다고 보면서, 그 위법성의 판단기준을 ‘객관적 정당성의 상실’로 보고 있다. 다수의견은 위와 같은 법리를 전제로 하여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행정입법 부작위의 공법상 위법성을 확인하였음에도 이에 더해 그 부작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는지에 대하여 판단한 다음에서야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을 긍정하였다.
2)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이 필요한지
가) 그러나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그 행위가 국가배상법상 위법성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별도의 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공법상 자기책임’이라는 국가배상책임의 법적 성격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계상 혼란을 초래하는 것으로 부당하다. 그 구체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공무원이 엄격한 의미의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만 국가배상책임이 성립된다고 볼 경우 그 위법성의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져 국민의 권리 구제에 미흡할 수 있으므로, 위법성의 인정 범위를 그보다 넓힐 필요는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요건을 들지 않더라도 공법상의 일반원칙에 따라 위법성의 인정 범위가 확대될 여지가 충분하다. 즉, 대법원의 기존 법리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경우로 예시한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의 위반’은 공법상 일반원칙인 평등의 원칙, 비례의 원칙, 성실의무와 권한남용금지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및 부당결부금지의 원칙 등의 적용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위법한 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게다가 2021. 3. 23. 제정된 행정기본법은 위와 같은 공법상 일반원칙을 법률로 성문화하였으므로, 국가의 행정작용이 공법상 일반원칙을 위반한 경우 이는 곧 엄격한 의미의 법령 위반을 구성할 수 있기도 하다.
(2) 국가배상제도는 헌법 제29조 제1항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한 공법상 제도라고 보아야 하고, 단순히 국가가 공무원의 사법(사법)상 불법행위책임을 대신하여 부담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은 앞서 강조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국가배상제도의 공법적 성질에 비추어 보아도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인 위법 또한 마찬가지로 공법상 일반원칙에 따라 판단되는 것으로 충분하고, 별도로 ‘객관적 정당성 상실’과 같은 요건을 둘 필요가 없다. 국가의 행위가 위법한지를 판단하는 공법상 위법성 판단기준이 있는데도 이와 별도로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위법성 판단기준을 두는 것은 동일한 행위에 대한 위법성 판단기준을 복수로 적용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국민의 권리를 필요 이상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3)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란 국가배상법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요건으로 법원이 이를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혼란만 가중된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은 앞서 본 것과 같이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요건을 위법성 판단기준으로 보는 한편, 국·공립대학 교원에 대한 위법한 재임용거부처분을 원인으로 하는 국가배상소송 사건에서는, ‘고의·과실’이 인정되려면 그 재임용거부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대법원 2011. 1. 27. 선고 2009다30946 판결),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이 마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인 것처럼 판시하여 일관된 요건으로 이해하기도 어렵다.
나) 결국 국가배상책임을 공법상 자기책임으로 보는 이상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이나 위법성 판단기준으로서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요건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여야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등은 모두 변경되어야 한다.
라. 위자료의 산정근거와 액수에 관하여
1) 국가배상책임을 위법한 국가의 행위에 대한 국가의 공법상 자기책임으로 이해하는 이상 국가배상책임의 위자료와 민법상 불법행위의 위자료를 산정하는 기준과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배상책임의 주된 기능이 개인의 손해에 대한 민사적 전보보다는 국가의 위법행위 확인 및 그에 대한 제재를 통한 법치국가의 원리 실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위자료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의 정도에 대한 엄격한 평가보다 그 위자료를 인정함으로써 문제 된 국가 행위의 위법성을 공적으로 선언하고 그에 대한 제재를 통해 장래에 유사한 위법을 예방할 필요가 있는지와 같은 규범적 요소에 대한 평가를 우선하여 고려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그 위자료의 액수 또한 이와 같은 규범적인 요소를 반영하여 다소 상징적인 액수로 정할 수 있다.
2) 원심과 제1심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나 직무집행의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였으므로 원고 1, 원고 2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관하여 충분하게 심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국가배상법을 자기책임으로 이해할 경우 위자료의 액수를 정할 때 규범적인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으므로, 법률심인 대법원으로서도 이 부분 사건을 사실심에 파기·환송하지 않고, 원고 1, 원고 2의 정신적 손해를 직접 규범적으로 평가하여 그 위자료를 각 100,000원의 다소 상징적인 액수로 정할 수 있다.
3) 다수의견은 국가배상책임이 공무원 개인의 민사적 책임을 국가가 대위해서 부담하는 것이라는 대위책임설을 따르면서도 원고 1, 원고 2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각 100,000원으로 정하였다. 민사법적으로도 위자료의 규범적 성질이 인정되고, 대법원이 정신적 손해 유무에 대한 추가심리의 필요성이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이상 대위책임설을 취하면서도 위자료의 액수를 직접 정한 다수의견이 논리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배상책임의 성질을 자기책임으로 이해할 경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원고 1, 원고 2에 대한 위자료를 직접 판단한 근거가 보다 설득력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마. 소결론
1)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행정입법 부작위가 공법상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이 정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한 행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원심판결에는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피고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될 수 없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을 부정한 잘못이 있다.
2) 다수의견 또한 피고의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음에도 이에 더하여 그 부작위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고 사회적 타당성이 없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는지를 판단하였다. 이러한 다수의견은 비록 그 결론에 있어 타당하나 국가배상책임의 공법상 자기책임으로서의 성질을 간과한 것으로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혼란을 유지·가중시키는 한계가 있다.
3) 이와 같이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해 원고 1, 원고 2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피고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결론은 다수의견과 같이 하나, 그 구체적인 이유와 논거가 다르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혀둔다.
8.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오경미, 대법관 신숙희의 보충의견
가. ‘1층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모두의 1층’이라는 공익 프로젝트도 있다. 한 사람의 생활사에서 사적이거나 공적인, 크고 작은 만남과 활동의 많은 부분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그곳에 이르기 위한 통로의 시작인 ‘1층’의 공유는 일상성의 동등한 참여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불과 2cm의 턱도 1층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지체장애인에게 턱과 계단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과 같다. 턱과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하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1층을 공유하는 ‘모두’에 합류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는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의 핵심을 구성한다. 이러한 점에서 소규모 소매점 출입구에 설치된 턱이나 계단은 장애인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 인격체로 생활할 수 없게 만드는 차별과 배제를 상징한다.
이 사건은 단순히 장애인이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 할인점 외에 소규모 소매점에서도 물건을 구매할 편의를 추가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턱이나 계단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상생활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누릴 권리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장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는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살피고, 장애인 접근권의 실효적인 보장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다수의견을 보충하기로 한다.
나. 장애의 경험이 없는 대다수의 비장애인은 턱이나 계단이 장애인에게 차별과 배제의 상징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비장애인에게 턱이나 계단은 일상생활에 별다른 지장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얼마간의 효용마저 제공한다. 그 결과 비장애인으로서는 턱이나 계단을 제거하기 위해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당위를 이해하기 어렵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시행된 후 24년이 넘도록 이 사건 쟁점규정이 개정되지 않은 채 방치된 데에는 이와 같은 평범한 무관심이 기여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장애인이 턱이나 계단이 1층 곳곳에 설치된 건물로 가득 찬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은, 비장애인이 투과 능력이 있는 ‘투명인간’의 도시를 방문하여 건물 1층의 출입문이 모두 잠겼거나 아예 출입문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그 도시의 거주자들은 투과 능력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드나드는 수많은 가게와 상점들을 여행자인 비장애인은 들어갈 수가 없다. 호텔을 구할 수 없어서 노숙을 해야만 할 수도 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입장을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일상생활에서 턱이나 계단이 장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장치이자 배제의 장벽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장애인도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전제 아래 그들의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여야만,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무엇을 박탈당한 채 생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인 인간의 존엄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과 경험을 상상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소수자들이 소외되지 않고 정당한 몫을 회복하여 이 사회에서 각자의 개성과 이상을 온전히 좇을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다. 헌법 제27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청구권의 측면에서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는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원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입법과 행정의 영역에서 자신의 정당한 이해관계를 충분히 관철하지 못한 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소수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청구권을 통해 공개된 법정에서 기본적 권리 침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자신의 권익을 적극 옹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또한 중립적 심판기관인 법원은 변론 과정을 통하여 직접 소수자를 대면하고 그들의 문제제기와 주장을 경청함으로써 직접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소수자들의 삶의 객관적 실상, 차별적 처우가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고, 이를 통해 그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합당한 유권적 답변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대법원 2024. 7. 18. 선고 2023두36800 전원합의체 판결 중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오경미의 보충의견 참조).
이 사건의 경우 원고 1, 원고 2는 이 사건 소를 통하여 단 2cm의 턱이나 계단이 지체장애인인 그들에게 어떠한 장벽으로 기능하는지, 우리나라의 소규모 소매점에 장애인의 접근권을 가로막는 장벽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존재하는지,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활동할 자유를 드디어 보장받으리라 얼마나 기대하였는지, 그들의 희망이 장기간에 걸친 피고의 입법 부작위로 어떻게 좌절되었는지에 관하여 공개된 법정에서 적극 주장하였다. 하급심법원은 그들이 처한 차별적 일상생활의 실상에 대하여 경청하고 살필 수 있었다. 특히 제1심법원은 위와 같은 변론 과정을 거친 끝에 이 사건 쟁점규정이 모법의 위임 취지에 반해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장애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법·무효의 규정이라고 보았는데, 이러한 판단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판결 후 약 2개월 만에 피고는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였다. 입법과 행정의 영역에서 오랜 기간 장애인인 자신의 정당한 이해관계를 충분히 개진하지 못한 채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위 원고들이 공개된 재판의 장을 통해 소수자로서 겪는 경험과 고통에 관하여 문제제기하고, 그것이 법원을 통해 합당한 유권적 답변을 받음과 동시에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어 대법원 또한 이 사건 공개변론을 통해 턱과 계단에 관한 장애인의 개인적 경험을 직접 청취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장애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할 기회를 가졌고, 피고의 위법한 부작위가 이어지고 있던 기간 동안 장애인이 받은 정신적 고통의 무게가 국가배상을 통해 위자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보아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
라. 이 사건 쟁점규정을 비롯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 대한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의 개정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기존에 설치된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하여도 접근권 보장이 절실히 필요함에도 이 부분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쟁점규정을 포함한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나)목이 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되었고, 이에 따라 소규모 소매점의 경우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되는 바닥면적 기준이 기존의 300㎡ 미만에서 50㎡ 미만으로 축소되었다. 그 외 휴게음식점, 제과점, 이용원, 미용원, 목욕장, 의원, 한의원 등 위 [별표 1] 제2호 (가)목·(나)목에서 규정한 공중이용시설[이하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이라 한다]에 대하여도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위와 같이 개정된 규정을 이하 ‘이 사건 개정규정’이라 한다). 그런데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부칙(2022. 4. 27.)은 이 사건 개정규정을 2022. 5. 1.부터 시행하도록 하되(제1조), 그 시행 전에 설치된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 관하여는 개정 전의 규정에 따르도록 하였다(제2조 제1항, 이하 ‘이 사건 부칙조항’이라 한다). 그 결과 이 사건 개정규정이 시행되었음에도 기존 소규모 소매점을 비롯한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의 대부분은 개정 전의 규정을 적용받게 되어서 여전히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시행된 후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까지 24년 동안 우리 사회는 급격한 도시화, 현대화의 과정을 겪었고, 새로운 건축기술과 공법을 적용한 견고한 건물이 수없이 신축되었다. 그 건물들의 수명은 상당히 길다. 위와 같이 지어진 수많은 건물들에 설치되어 있던 기존 소규모 소매점 등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는 이 사건 개정규정 및 이 사건 부칙조항 등에 따라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장래에 새로 설치될 예정인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만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할 경우, 아무리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확장하더라도 그 확장의 범위는 매우 제약된다. 대체로 견고한 건물에 설치되어 영업하는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의 특성상 견고한 건물이 존속하는 장기간 동안 기존의 위 시설 대다수는 턱과 계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존하는 건물 대부분이 개축될 장래의 어느 시점이 되어서 새 건물에 들어선 소규모 소매점 등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될 때까지 장애인의 접근권은 제약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시행된 후 2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존 건물에 설치된 수많은 소규모 소매점 등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 대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면제됨으로써 광범위한 제한 상태가 이 사건 부칙조항을 통해 앞으로도 유지된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로 원고들을 비롯한 장애인 단체들은 이 사건 쟁점규정을 비롯한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나)목의 개정 이후에도 편의시설 설치의무의 부담을 지지 않는 기존의 소규모 소매점 등으로 말미암아 접근권 침해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권리협약이 장애인의 접근권이 실현되는 시점을 대부분의 건물이 개축되는 시점의 먼 미래로 유보하였다고는 결코 해석할 수 없다. 피고는 이 사건 개정조항과 이 사건 부칙조항을 개정함으로써 기존에 설치된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하여도 단계적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나아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을 바닥면적 등 규모에 따라 일부로 제한하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의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도 언급하여 둔다.
마.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던 고 소외인은 1984. 9. 19. 유서를 통하여 일상생활 곳곳에서 겪어야 했던 접근권의 제한으로 말미암은 삶의 고통과 소외감을 호소하고, 이를 야기하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차별에 대하여 크게 질타함으로써 경종을 울렸다.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 (중략) 스스로 부딪쳐보지 못하고 피부로 못 느껴본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장애자들은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 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이 호소와 외침은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이 크다. 그것이 이 사건이 직면한 본질적 문제이다.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단지 소매점에서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은 장애인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구매 그 자체를 위해서라면 활동보조인을 통해서 더 값싸고 편의시설도 잘 구비된 대형 할인점에서 구매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도 있고 온라인 쇼핑도 편리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의 문제는 ‘쇼핑’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의 문제이다. 비장애인은 점심시간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 식당이나 커피숍을 가거나, 귀가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서점과 꽃집에 들르고, 갑자기 배가 아파 약국을 이용하거나 동네 의원에 가면서, 내가 그곳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없는지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일상생활 또한 그래야 한다. 계획된 ‘쇼핑’은 대형 할인점과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있지만 우연과 즉자성으로 이루어진 나날의 ‘삶’은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자인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이 1984년에 비해 많이 넓어졌지만 그것이 충분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당사자인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 사회가 또 다른 ‘투명인간의 도시’는 아닌지 항상 되돌아보아야 한다.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은 상대적이다. 사회 안에서 일상의 틀을 구조화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장애와 비장애를 결정한다. ‘투명인간’의 도시에서는 투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장애인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투명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제도와 시스템은 투과 능력의 유무에 따라 장애와 비장애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접근권이 제대로 보장된 사회에서라면 어디나 갈 수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닐 수도 있다.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을 배제한 채 비장애인이 그들 위주로 만든 세상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모든 장애인이 차별 없이 권리를 보장받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바라며 보충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장 조희대(재판장) 대법관 김상환 노태악 이흥구 오경미 오석준 서경환 권영준 엄상필 신숙희 노경필 박영재 이숙연(주심)
(출처 :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2다289051 전원합의체 판결 | 사법정보공개포털 판례)
출처 : 대법원 선고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2다289051 전원합의체 판결 판결 | 사법정보공개포털 판례
* 본 법률정보는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하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나 조언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동일해 보이는 상황이라도 사실관계나 시점 등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변호사와 상담을 권장합니다.
【판시사항】
장애인의 접근권이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인지 여부(적극) 및 장애인의 접근권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접근을 보장할 수 있는 특정 시설과 설비를 설치할 것을 국가나 사인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구체화되기 위한 요건과 국가의 의무 /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한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그 행정입법 부작위는 위법한지 여부(적극) /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 /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된 경우, 그로 인하여 장애인이 입게 되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의무가 있는지 여부(적극) 및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하여 개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위자료 지급의무를 인정하기 위해 고려하여야 할 요소 / 법원이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위자료 액수를 산정할 때 고려하여야 할 요소
【판결요지】
[다수의견] (가) 장애인의 접근권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장애인에게도 동등하게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가 되는 권리로서, 비록 헌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헌법 규정들로부터 도출되는 기본권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다만 장애인의 접근권이 접근에 대한 방해의 금지를 구하는 소극적·방어적인 수준을 넘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접근을 보장할 수 있는 특정 시설과 설비를 설치할 것을 국가나 사인(사인)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 할 것이고, 국가는 제한된 재정 능력과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 등을 고려하여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이 적절히 보장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헌법상 보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회는 1997. 4. 10.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여 이를 1998. 4. 11. 시행하였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같은 법 제1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할 권리, 즉 접근권을 가진다고 명시하였으며(같은 법 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할 의무를 규정하였다(같은 법 제6조).
국회는 더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 한다)을 2007. 4. 10. 제정하였고, 2008. 4. 11.부터 시행하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의 실현을 통하여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데(같은 법 제1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금지되는 차별의 범위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이하 ‘정당한 편의제공’이라 한다)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도 포함된다(같은 법 제4조 제1항 제3호, 제2항, 이와 같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는 의무를 이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라고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모든 차별을 방지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할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다(같은 법 제8조).
이와 더불어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증진·보호 및 보장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통된 노력과 합의를 반영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하 ‘장애인권리협약’이라 한다)이 2009. 1. 10. 국내에 발효되었다. 장애인권리협약 제4조 제1항은 당사국에 대하여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 없이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보장하고 촉진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협약 제9조 제1항은 대중에게 개방 또는 제공된 시설에 대하여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당사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국회가 법률로 행정청에 특정한 사항을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권력분립의 원칙과 법치국가 또는 법치행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위법함과 동시에 위헌적인 것이 되고, 이는 행정청이 법률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받은 사항을 전혀 입법하지 않은 경우는 물론 그 법률이 위임한 사항을 불충분하게 규정함으로써 법률이 위임한 행정입법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라 한다) 제7조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였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 한다) 제18조 제4항 또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는 의무(이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라 한다)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단계적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그 위임에 따라 제정된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는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대상을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에 해당하는 대상시설 중 2009. 4. 11. 이후에 신축·증축·개축된 시설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범위 또한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제정되는 대통령령에 규정된 범위로 한정되었다.
장애인의 접근권은 장애인이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초석이 되는 헌법상 기본권의 일종이고,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은 피고에게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거듭하여 부과하였다. 따라서 행정청이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행정입법을 통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정할 재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량은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4조 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평등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의 접근권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실현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구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의 (1)이 정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 및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러한 규정은 법률이 보장하고자 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하거나, 장애인의 접근권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아가고자 한 모법의 위임 취지를 도외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행정청에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강제되는 대상시설을 확대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형태로 해당 행정입법을 개정할 구체적인 의무가 발생한다고 할 것이고,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행정입법 부작위는 위법하다고 할 것이다.
(다) 행정청에 의한 작위 또는 부작위가 사후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그것만으로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그로 말미암아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 때 국가배상법 제2조가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는지는 행위의 양태와 목적, 피해자의 관여 여부와 정도, 침해된 이익의 종류와 손해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되,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가 부담할 만한 실질적 이유가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한편 법률이 행정청에 대하여 행정입법을 할 재량을 부여하였다 하더라도, 그 재량을 부여한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행정청이 행정입법의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한 것이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경우에는 그 부작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고,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정한 공무원의 과실도 인정된다.
(라) 국가배상법 제3조 제5항이 생명, 신체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의 지급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 하더라도, 이는 생명, 신체 외의 다른 권리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의 지급의무를 배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된 경우에도 그로 인하여 장애인이 입게 되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의무가 배제되지 않는다.
입법부가 행정청에 행정입법의무를 부과하였음에도 행정청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그 이행을 장기간 지연함으로써 개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로 인해 개인에게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였는지는 법률이 행정입법을 위임한 목적과 취지,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침해된 권리의 헌법상 지위 또는 중요성, 그 침해의 정도와 지속 기간, 행정입법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경위, 행정입법의무가 사후적으로나마 이행되었다면 그 행정입법의무의 뒤늦은 이행으로도 회복되지 않은 정신적 손해가 여전히 남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에 대한 손쉬운 사법적 권리구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 법제에서 국가배상청구가 가장 유효한 규범통제 수단이자 실질적으로 유일한 구제수단으로서의 의의가 있다는 점도 아울러 참작하여야 한다.
(마)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국가배상의 경우 위자료 산정에 고려하여야 할 다음과 같은 특수한 사정이 있다. 즉, 행정입법은 별도의 집행행위가 개입되지 않는 이상 그 자체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권리 침해는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또한 행정입법은 다른 행정행위와 달리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고 전체 국민을 수범자로 하므로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하는 행정행위에 비해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할 직무상 의무 위반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반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 상대방의 인적 범위는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이 위법함을 선언하는 판결을 통해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가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음은 물론 국가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사법통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법원이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에는 위와 같은 특수성을 고려하여 앞서 본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 인정을 위한 참작 요소는 물론 그로 인한 권리 침해가 통상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균질하게 나타나는 성질의 것인지 여부, 국가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와 예방의 필요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으로 위자료 액수를 정하여야 한다.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 노경필의 별개의견] 헌법 제29조 제1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청구권의 기본권적 성질, 헌법 제10조 제2문이 정한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국가원리 및 법령의 통일적인 해석·적용의 요청에 비추어 볼 때, ①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입은 이상 직무를 집행한 공무원의 주관적 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국가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고, ②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함에도, 그 행위의 객관적 정당성이 상실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위법성 판단을 달리하여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참조조문】
헌법 제10조, 제11조, 제34조 제1항, 제5항,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1조, 제4조, 제6조, 제7조, 구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별표] 제2호 (가)목의 (1),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조, 제4조 제1항 제3호, 제2항, 제8조, 제18조 제4항,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1조,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4조 제1항, 제9조 제1항,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제3조 제5항
【참조판례】
대법원 1990. 12. 21. 선고 90다6033, 6040, 6057 판결(공1991, 582)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6다3561 판결(공2007하, 2012)
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77795 판결(공2010하, 1879)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6두50907 판결(공2019하, 2259)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7다249219 판결(공2021하, 1356)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공2022하, 1965)
【전 문】
【원고, 상고인】 원고 1 외 2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디엘지 외 6인)
【피고, 피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이산해 외 3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22. 10. 6. 선고 2022나2009024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원고 1, 원고 2의 국가배상청구 부분에 대하여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부분을 각 파기하고, 제1심판결 중 같은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 1, 원고 2의 패소 부분을 각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각 1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8. 11. 3.부터 2024. 12. 19.까지는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원고 1, 원고 2의 나머지 상고 및 원고 3의 상고는 모두 기각한다. 원고 1, 원고 2와 피고 사이에 생긴 소송총비용은 각자 부담하고, 원고 3과 피고 사이에 생긴 상고비용은 원고 3이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안의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라 한다) 제7조는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이동하거나 시설을 이용할 때 편리하게 하기 위한 시설과 설비(이하 ‘편의시설’이라 한다)를 설치할 의무를 부담하는 대상시설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 그 위임에 따라 구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이라 한다)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의 (1)(이하 ‘이 사건 쟁점규정’이라 한다)은 공중이용시설 중 ‘수퍼마켓·일용품(식품·잡화·의류·완구·서적·건축자재·의약품·의료기기 등을 말한다) 등의 소매점’(이하 ‘소규모 소매점’이라 한다)에 대해서 그 바닥면적이 300㎡ 미만인 경우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같은 법 시행령이 1998. 4. 11. 시행된 이래로 이 사건 쟁점규정의 내용은 24년 넘게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 쟁점규정이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장애인의 접근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 무효라는 취지의 제1심판결이 2022. 2. 10. 선고되었고, 피고는 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여 소규모 소매점 중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되는 바닥면적 기준을 기존의 300㎡ 미만에서 50㎡ 미만으로 축소하였다.
2.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한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
가.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행정청이 부담하는 행정입법의무의 내용
1) 장애인의 접근권을 규정한 헌법과 법률 및 조약 내용
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인간의 본질로 간주되는 존귀한 인격 주체성을 의미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자기책임 능력이 있는 인격체로서 스스로 결단하여 그 결단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헌법 제11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니고, 국가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각종 시설과 설비는 대부분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마련되어 있어서 장애인은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이를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스스로 결단하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는 우리 헌법이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인간의 존엄성의 핵심을 구성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에 스스로의 힘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즉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같은 조 제5항은 신체장애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여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배려하고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6두50907 판결 참조).
이처럼 장애인의 접근권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장애인에게도 동등하게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가 되는 권리로서, 비록 헌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앞서 살펴본 헌법 규정들로부터 도출되는 기본권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나) 다만 장애인의 접근권이 접근에 대한 방해의 금지를 구하는 소극적·방어적인 수준을 넘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접근을 보장할 수 있는 특정 시설과 설비를 설치할 것을 국가나 사인(사인)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 할 것이고, 국가는 제한된 재정 능력과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 등을 고려하여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이 적절히 보장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헌법상 보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회는 1997. 4. 10.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을 제정하여 이를 1998. 4. 11. 시행하였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같은 법 제1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할 권리, 즉 접근권을 가진다고 명시하였으며(같은 법 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할 의무를 규정하였다(같은 법 제6조).
라) 국회는 더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 한다)을 2007. 4. 10. 제정하였고, 2008. 4. 11.부터 시행하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의 실현을 통하여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데(같은 법 제1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금지되는 차별의 범위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이하 ‘정당한 편의제공’이라 한다)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도 포함된다(같은 법 제4조 제1항 제3호, 제2항, 이와 같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는 의무를 이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라고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모든 차별을 방지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할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다(같은 법 제8조).
마) 이와 더불어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증진·보호 및 보장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통된 노력과 합의를 반영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하 ‘장애인권리협약’이라 한다)이 2009. 1. 10. 국내에 발효되었다. 장애인권리협약 제4조 제1항은 당사국에 대하여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 없이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보장하고 촉진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협약 제9조 제1항은 대중에게 개방 또는 제공된 시설에 대하여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당사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 설정에 관한 행정청의 재량 및 그 한계
가) 국회가 법률로 행정청에 특정한 사항을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권력분립의 원칙과 법치국가 또는 법치행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위법함과 동시에 위헌적인 것이 되고(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6다3561 판결 참조), 이는 행정청이 법률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받은 사항을 전혀 입법하지 않은 경우는 물론 그 법률이 위임한 사항을 불충분하게 규정함으로써 법률이 위임한 행정입법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였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8조 제4항 또한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단계적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그 위임에 따라 제정된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는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대상을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에 해당하는 대상시설 중 2009. 4. 11. 이후에 신축·증축·개축된 시설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범위 또한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제정되는 대통령령에 규정된 범위로 한정되었다.
다) 장애인의 접근권은 장애인이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초석이 되는 헌법상 기본권의 일종이고,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인권리협약은 피고에게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거듭하여 부과하였다. 따라서 행정청이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의 위임에 따라 행정입법을 통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정할 재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량은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4조 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평등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의 접근권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실현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
라) 따라서 이 사건 쟁점규정이 정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 및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러한 규정은 법률이 보장하고자 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하거나, 장애인의 접근권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아가고자 한 모법의 위임 취지를 도외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행정청에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강제되는 대상시설을 확대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형태로 해당 행정입법을 개정할 구체적인 의무가 발생한다고 할 것이고,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행정입법 부작위는 위법하다고 할 것이다.
나.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의 위법한 불이행
1) 인정 사실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국가통계포털’에 의하면, 전국 편의점 중 이 사건 쟁점규정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강제되는 바닥면적 300㎡ 이상인 체인화 편의점의 비율은 2006년 기준으로 전체 체인화 편의점 중 0.1%(소수점 한 자릿수 미만 버림, 이하 같다), 2019년 기준으로 1.8%에 불과하였고, 음식료품 및 담배소매점의 경우 2019년 기준으로 전체의 2.2%에 불과하였다.
나) 2016년에 실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일정기준 미만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 사건 쟁점규정이 포함된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 제2호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된 소규모 공중이용시설 중 주출입구에 2cm 이상의 턱 또는 계단이 있어 높이 차이가 있는 시설은 전체의 82.3%, 그중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은 경우는 65%, 경사로를 설치하였어도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경우는 57.1%로 나타났다. 즉, 2016년에도 이 사건 쟁점규정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된 소규모 소매점 중 3분의 2가 넘는 비율의 시설에서 장애인의 접근권이 제한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구체적 판단
가)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처음 시행되었던 1998. 4. 11. 무렵에는 소규모 소매점의 소유자·관리자에 대한 불측의 손해를 방지하고, 급격한 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을 줄이고자 우선은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좁게 정할 정책적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는 있다.
나) 그 후 국회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만으로는 장애인의 접근권과 평등권 보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2008. 4. 11.부터 위 법률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앞서 본 것과 같이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그 시행령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제7조에서 정한 시설로 한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도 이 사건 쟁점규정에서 정한 범위로 제한되었다.
다) 기존의 장애인등편의증진법에서 규정한 장애인의 권리를 한층 더 보호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음에도,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가 여전히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최초로 시행되던 당시 이 사건 쟁점규정에서 정한 범위 내로 제한되었다면, 행정청으로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취지를 고려하여 최소한 이 법이 시행된 2008. 4. 11. 무렵부터는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함으로써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있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확대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행정입법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2008. 4. 11.은 이 사건 쟁점규정이 처음 시행되었던 1998. 4. 11.로부터 10년이 되는 날이었고, 그동안 편의시설 설치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여건이 많이 변화하였음에도 95%가 넘는 소규모 소매점을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고 있던 이 사건 쟁점규정은 여전히 개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피고는 2007. 3. 30. 장애인권리협약에 서명하고, 그 협약이 2009. 1. 10. 국내에 발효됨으로써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을 전후하여 국제법적으로도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에 관한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 이처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2008. 4. 11. 무렵에는 장애인의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이용·접근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행정청으로서는 늦어도 2008. 4. 11.부터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
라) 피고는 이와 같이 개선입법의무를 부담한 무렵부터 개선입법에 실질적으로 소요될 기간을 훨씬 초과하는 1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지 않았다. 물론, 피고가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이 사건 쟁점규정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면제된 소규모 소매점의 자발적인 편의시설 설치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소규모 소매점의 편의시설 설치율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피고로서는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가 개선입법의무의 이행과는 별도로 그에 상응하는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에 관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쳤다는 사정 등은 확인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앞서 본 사정, 즉 2016년 기준으로 3분의 2가 넘는 소규모 소매점이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할 적정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에게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에 관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마)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원고들이 설치를 요구하는 편의시설의 주된 내용은 주출입구의 단차(단차) 제거 또는 경사로 설치이다. 이와 같은 편의시설은 승강기 또는 장애인용 화장실의 설치와 같이 건물 구조의 큰 변경을 요구하거나 별도의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이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데에 어떠한 제한이 초래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설치가 가능하다. 사회·경제적 혼란이나 비용을 고려해 보더라도 피고가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지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유보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바) 결국 피고가 14년이 넘도록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행정입법의무를 불이행한 부작위로 인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내용이 장기간 실현되지 못하였고, 그 불이행의 정도가 매우 커서 법률이 보장하고자 한 지체장애인의 접근권이 유명무실해졌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부작위는 위법하다.
3. 원고 1, 원고 2의 국가배상청구에 관한 판단
가. 객관적 정당성의 상실과 고의·과실
1) 관련 법리
행정청에 의한 작위 또는 부작위가 사후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그것만으로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7다249219 판결 등 참조).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그로 말미암아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 때 국가배상법 제2조가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는지는 행위의 양태와 목적, 피해자의 관여 여부와 정도, 침해된 이익의 종류와 손해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되,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가 부담할 만한 실질적 이유가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한편 법률이 행정청에 대하여 행정입법을 할 재량을 부여하였다 하더라도, 그 재량을 부여한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행정청이 행정입법의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한 것이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경우에는 그 부작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고,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정한 공무원의 과실도 인정된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77795 판결 참조).
2) 이 사건에 대한 판단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해 인정되는 다음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14년 넘게 불이행한 피고의 부작위는 행정입법을 통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정하도록 재량을 부여한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와 목적 및 내용에서 현저하게 벗어나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이 정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한 행위에 해당한다.
가) 이 사건 쟁점규정은 95%가 넘는 대부분의 소규모 소매점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함으로써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내용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사건 쟁점규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소규모 소매점에 대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면제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하더라도 이 사건 쟁점규정이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비교적 명확하였을 것이다.
나) 이 사건 쟁점규정에 관한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의 피해자 측인 장애인 단체들은 이 사건 쟁점규정의 입법 당시부터 이 사건 쟁점규정에서 정한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11조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시설물의 범위를 이 사건 쟁점규정에서 정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로 한정하자,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목적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이 사건 쟁점규정을 포함한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이 개정되어야 함을 여러 차례 지적하였다.
다)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의 이행 상황 등을 검토하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 10. 29. 우리나라의 건물에 대한 접근성 기준이 건물의 크기, 용적 또는 건축 일자에 의해 제한되는 점을 우려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 12. 14. 보건복지부장관에 대하여 장애인의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을 권고하였다. 그렇다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이 사건 쟁점규정에 관한 국제기구 및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 등을 통해 아무리 늦어도 2010년대 중반에는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한 것이 국가의 장애인 접근권 보장의무의 위법한 불이행을 구성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라) 이처럼 피고가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그 개선입법의무를 장기간 이행하지 않은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피고가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장기간 방기한 결과, 장애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제10조)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제1항) 및 평등권(제11조)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피해를 보았다.
마) 이와 같이 국가가 법률과 조약을 통해 반복적으로 부과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장기간 심하게 저버린 이상 이 사건 쟁점규정에 관한 개선입법의무 불이행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부작위로 인해 장애인이 손해를 입었다면 국가에 그 배상책임을 부담시킴으로써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가 사후적으로나마 이행될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에 부담시킬 실질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나.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의 인정 여부와 범위
1) 위자료의 인정 여부
가) 관련 법리
국가배상법 제3조 제5항이 생명, 신체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의 지급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 하더라도, 이는 생명, 신체 외의 다른 권리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의 지급의무를 배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0. 12. 21. 선고 90다6033, 6040, 6057 판결 등 참조).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된 경우에도 그로 인하여 장애인이 입게 되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의무가 배제되지 않는다.
입법부가 행정청에 행정입법의무를 부과하였음에도 행정청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그 이행을 장기간 지연함으로써 개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로 인해 개인에게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였는지는 법률이 행정입법을 위임한 목적과 취지,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침해된 권리의 헌법상 지위 또는 중요성, 그 침해의 정도와 지속 기간, 행정입법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경위, 행정입법의무가 사후적으로나마 이행되었다면 그 행정입법의무의 뒤늦은 이행으로도 회복되지 않은 정신적 손해가 여전히 남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에 대한 손쉬운 사법적 권리구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 법제에서 국가배상청구가 가장 유효한 규범통제 수단이자 실질적으로 유일한 구제수단으로서의 의의가 있다는 점도 아울러 참작하여야 한다.
나) 구체적 판단
(1) 이 사건 쟁점규정은 95%가 넘는 대부분의 소규모 소매점을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였고, 그 시행일로부터 24년이 넘도록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소규모 소매점은 대다수 시민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생필품을 그때그때 가까운 곳에서 비교적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게 해 주는 공중이용시설로서 시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주요 생필품의 공급자 역할을 통해 시민의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이 제한될 경우, 장애인이 스스로 자유롭게 소규모 소매점을 이용할 수 없는 등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일상적으로 침해받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내하여야 한다.
(2) 피고는 2011. 1. 4. 제정된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장애인이 활동지원사의 이동보조를 받아서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소규모 소매점에 접근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 불이행만으로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애인의 접근권은 스스로 결단하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권리이다. 따라서 장애인이 관계 법령에 따라 활동지원사와 같은 타인의 도움을 통해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장애인 스스로의 힘으로 소규모 소매점에 접근할 수 없다면 장애인의 접근권이 온전히 보장된 것으로 평가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3) 이 사건 쟁점규정이 시행된 후 24년 동안 국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 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 등을 통해 장애인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접근권을 보장하겠다는 의사를 반복적으로 나타냈고, 우리 사회는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국민의 공감대도 보다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제약하는 이 사건 쟁점규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고, 그 결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일상적으로 부정당한 장애인의 고통이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 쟁점규정이 2022. 4. 27. 개정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장애인이 그동안 일상생활에서 겪어왔던 고통이 모두 회복된다거나 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없다.
(4) 국가는 헌법과 법률 및 조약에 따라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보호하고 이들에 대하여 비장애인과 다름없는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물리적 장벽을 제거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언제 어디서나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차별 없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어야 할 모든 국가기관의 책무이기도 하다. 이 사건 쟁점규정에 관한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해 장애인이 겪었을 고통을 위자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라,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국가에 대하여 적시의 적절한 행정입법의무의 이행과 적극적인 장애인 보호정책의 시행을 촉구하는 수단으로서 의의가 있다.
(5) 그러므로 피고는 지체장애인인 원고 1, 원고 2에 대하여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2) 위자료의 인정 범위
가)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국가배상의 경우 위자료 산정에 고려하여야 할 다음과 같은 특수한 사정이 있다. 즉, 행정입법은 별도의 집행행위가 개입되지 않는 이상 그 자체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권리 침해는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또한 행정입법은 다른 행정행위와 달리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고 전체 국민을 수범자로 하므로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하는 행정행위에 비해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할 직무상 의무 위반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반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 상대방의 인적 범위는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이 위법함을 선언하는 판결을 통해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가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음은 물론 국가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사법통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법원이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에는 위와 같은 특수성을 고려하여 앞서 본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 인정을 위한 참작 요소는 물론 그로 인한 권리 침해가 통상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균질하게 나타나는 성질의 것인지 여부, 국가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와 예방의 필요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으로 위자료 액수를 정하여야 한다.
나) 기록에 의하면, 지체장애인인 원고 1, 원고 2가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주된 목적은 이 사건 쟁점규정의 위법성 확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위법한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장애인 접근권 침해의 태양과 정도, 장애인이 겪었을 불편과 고통은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으로 보호받게 될 장애인에게 균질적인 것으로 보이고, 이와 달리 보아야 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이를 고려하면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심이 확정한 사실을 바탕으로 위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의 적정한 액수를 충분히 산정할 수 있다.
다) 위자료의 적정한 액수를 살펴본다.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장기간의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해 지체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함으로써 입은 불이익이 적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그 불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피해자의 범위가 넓고, 피고 스스로도 2022. 4. 27.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한 이래 추가적 개정을 계속해 가는 등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위법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하면,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위법한 개선입법 부작위로 인해 지체장애인인 원고 1, 원고 2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위자료 액수는 각 100,000원이 적정하다.
3) 원심판결의 당부(당부)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피고의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 1, 원고 2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국가배상책임 성립의 전제가 되는 공무원의 고의·과실, 객관적 정당성의 상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 1, 원고 2의 이 부분에 대한 상고이유는 앞서 인정한 범위 내에서 이유가 있다.
4. 원고 1, 원고 2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판단
가. 원고 1, 원고 2는 피고의 부작위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8조에서 정한 국가의 장애인 차별 방지 및 시정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6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도 함께 청구하고 있다.
나. 이에 대해 원심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6조 제1항 본문에 따른 손해배상은 ‘차별행위를 한 자’를 상대로 청구하여야 하는데, 피고가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 등을 통해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을 확대하지 않은 부작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원고 1, 원고 2의 피고에 대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손해배상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 관계 법령 및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6조 제1항에서 정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으므로, 원고 1, 원고 2의 이 부분에 대한 상고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5. 원고 3의 국가배상청구에 관한 판단
가.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그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경우라도 국가는 그러한 직무상 의무 위반과 피해자가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 경우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의 내용이 단순히 공공 일반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사회 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77795 판결 참조).
나. 앞서 본 것처럼 피고의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상 장애인·노인·임산부의 편의증진을 위한 범위에 한하여 인정되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시행을 통해 발생하였으므로, 피고가 부담하는 행정입법의무의 내용 또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피고의 개선입법의무 불이행에 따라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손해는 그 의무가 보호하고자 했던 장애인이 입은 손해에 한정된다.
다. 그런데 원고 3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 3은 영유아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유아차를 끌고 외출하는 경우가 많아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편의점 등을 이용하는 데에 불편을 겪었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을 통해 편의시설 설치가 의무화된 소규모 소매점이 증가할 경우 유아차를 자주 사용하는 원고 3의 편의가 증진된다고 할 것이나, 이는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 이행에 따라 비장애인인 국민이 누리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한 것이어서, 이 사건에서 비장애인인 원고 3이 피고의 위법한 부작위를 이유로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라. 원고 3의 피고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판단은 그 결론에 있어 정당하므로, 원고 3의 상고이유는 이유가 없다.
6.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원고 1, 원고 2의 국가배상청구 부분에 대하여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부분을 각 파기하되, 이 부분 사건은 이 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므로 민사소송법 제437조에 의하여 자판하기로 한다.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국가배상책임으로 각 100,000원 및 이에 대해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인 2018. 11. 3.부터 피고가 이행의무의 존재 여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24. 12. 19.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 부분에 해당하는 제1심판결을 각 취소하고 피고에게 위 각 돈의 지급을 명하며, 원고 1, 원고 2의 나머지 상고 및 원고 3의 상고는 모두 기각한다. 그리고 원고 1, 원고 2와 피고 사이에 생긴 소송총비용은 각자 부담하고, 원고 3과 피고 사이에 생긴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게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국가배상책임의 성질에 관한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 노경필의 별개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오경미, 대법관 신숙희의 보충의견이 있다.
7.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 노경필의 별개의견
가. 별개의견의 요지
1)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선입법의무를 오랫동안 이행하지 아니한 피고의 위법한 부작위로 인해 지체장애인인 원고 1, 원고 2의 접근권이 침해되었으므로, 피고가 이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국가배상책임이 있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피고의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이에 더해 담당 공무원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함은 물론 그로 말미암아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 때에 비로소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한 행위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원고 1, 원고 2에 대한 위자료로 각 100,000원을 정하였다.
2) 다수의견은 국가배상책임이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불법행위책임을 국가가 대위해서 부담하는 것(대위책임)임을 전제로 하여,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주관적 책임요소인 고의·과실, 즉 객관적 주의의무의 소홀과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별도의 위법성 판단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하더라도, 담당 공무원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거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3) 그러나 헌법 제29조 제1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청구권의 기본권적 성질, 헌법 제10조 제2문이 정한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국가원리 및 법령의 통일적인 해석·적용의 요청에 비추어 볼 때, ①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입은 이상 직무를 집행한 공무원의 주관적 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국가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고, ②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함에도, 그 행위의 객관적 정당성이 상실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위법성 판단을 달리하여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별개의견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결론에는 다수의견과 입장을 같이 하나 그 근거를 달리한다.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나.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공무원의 주관적 책임에 관하여
1) 국가의 자기책임으로서 국가배상책임
헌법 제29조 제1항이 정한 국가배상책임은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입었을 때 그 위법의 결과를 국가가 스스로 제거하도록 함으로써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국가원리를 구현하고, 국가로 하여금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하여 국민이 입은 손해를 사후적으로나마 회복하도록 함으로써 헌법 제10조 제2문이 정한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배상책임은 단순히 공무원 개인의 민사적 불법행위책임을 국가가 대위하여 부담하는 것을 넘어 국가가 위법한 행위로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기책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가) 국가의 배상책임은 근대의 국가 무책임사상의 지양 및 사회공동체의 통합을 위한 책임윤리, 공무원의 위법행위로부터 기본권적 가치의 보호와 실현을 이념적 기초로 한다. 법치국가원리는 국가에 의한 적법한 공권력 행사를 전제로 하므로, 국가에 대해 위법한 행위의 결과를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제거할 것과 위법하게 행사된 공권력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국민에게 효과적인 손해보전을 행할 것을 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배상책임제도는 법치국가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배상청구권은 이미 사실관계가 완성되어 위법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일차적 권리구제가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에 2차적 권리구제를 보장하는 손해배상이 기능한다는 점에서 헌법상 권리구제제도의 한 부분을 구성하기도 한다(헌법재판소 2015. 4. 30. 선고 2013헌바395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나) 국가배상청구권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부터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국가배상청구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여 왔다. 제헌헌법 제27조는 공무원 개인의 국민에 대한 책임을 먼저 규정하고 이어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대한 국민의 국가배상청구권을 규정하였다. 이처럼 제헌헌법은 공무원 개인의 책임과 국가배상책임을 하나의 조항에서 앞뒤로 규정함으로써 국가배상책임이 공무원 개인의 책임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서 공무원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성립되는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제헌헌법과 달리 공무원 개인의 국민에 대한 책임은 제1장 총강에 있는 헌법 제7조에서 규정하고, 국가배상책임은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한 제2장의 제29조에서 별도로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행 헌법의 체계에 비추어 보면 공무원 개인의 책임과 국가의 책임은 서로 다른 성질의 책임으로서 양자가 서로 독립되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다) 헌법 제29조 제1항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가 있는 경우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헌법과 법령에 규정된 ‘불법행위’가 반드시 민법 제750조에서 정한 개인의 주관적 책임을 전제하는 개념으로 단정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민법 제320조에서 유치권이 성립되지 않는 원인으로 규정한 불법행위로 인한 점유의 ‘불법행위’가 민법 제750조에서 정한 ‘불법행위’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것과 유사하다. 헌법과 법령에 규정된 ‘불법행위’는 그 용어가 사용된 제도마다 그 취지 등을 고려하여 각자 고유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헌법 제29조 제1항에서 정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의 의미 또한 헌법이 정한 국가배상책임제도의 의의와 입법 취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확정되어야 한다.
라) 국가배상책임이란, 국가가 헌법 제10조 제2문에서 정한 국민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위법한 행위로 국민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헌법이 정한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사후적으로나마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배상책임은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국가의 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법치국가의 원리가 국가에 대해 위법한 행위의 결과를 가능한 광범위하게 제거할 것을 명하고 있다는 것은 앞서 본 것과 같다. 따라서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하여 국민이 손해를 입었음에도 공무원 개인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민으로 하여금 그 손해를 감내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무나 법치국가의 원리에 충실한 결과라고 볼 수 없다.
마)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각종 생활관계에는 기능적인 상호의존이 증대하고 있고 이에 따른 새로운 책임논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예컨대 사법(사법) 영역에서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원칙만을 고집해서는 손해 및 희생의 공평한 사회분담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자 위험책임이론이나 무과실책임이론이 등장하게 된 것과 같이, 공법 영역에서도 사회적 공평을 확보할 수 있는 국가책임이 필요하다. 오히려 국가배상책임이 민사책임과는 달리 사회공동체의 배분적 정의의 실현 또는 사회적 공평의 확보에 이념적인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헌법재판소 2015. 4. 30. 선고 2013헌바395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에 비추어 보면,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이론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필요성은 더욱 크다.
바) 헌법 제23조 제3항에 따르면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재산권이 제한된 국민에 대하여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헌법이 정한 국가배상책임을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라 공무원의 민사적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성립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공무원의 민사적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손해를 입은 국민이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국민의 재산권이 제한된 경우에도 정당한 보상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하물며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국민이 손해를 입었음에도 그 배상의무가 면책되는 경우를 폭넓게 예정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 다수의견과 같이 헌법 제29조 제1항이 정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를 전통적 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라 인정되는 공무원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고 해석하게 되면,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였음에도 그 위법한 결과가 제거되지 아니한 채 국민의 권리 침해가 계속 방치됨으로써 헌법의 체계적 해석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러므로 헌법 제29조 제1항이 정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란, 공무원 개인의 고의 또는 과실을 요건으로 국가의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무원의 직무수행을 통해 국가의 불법행위가 실현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즉, 헌법 제29조 제1항은 공무원의 직무수행을 통해 실현되는 국가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국민이 직접 국가를 상대로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적으로 보장한 규정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불법행위책임을 전제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는 규정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2)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고의 또는 과실’의 의미에 관하여
가) 헌법 제29조 제1항은 국가배상청구권을 보장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유보하였다. 이에 따라 제정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헌법 제29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규정하였는데, 이는 헌법 제29조 제1항이 정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인 ‘불법행위’를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헌법재판소 2015. 4. 30. 선고 2013헌바395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나)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헌법상 보장되는 국가배상책임을 국가의 자기책임으로 이해하는 이상 그 하위 법규인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고의 또는 과실’을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책임의 전제가 되는 요건이라고 해석할 경우,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한 국가배상청구권의 범위가 부당하게 제한되므로 이러한 해석은 헌법이 전제하고 있는 국가배상책임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 오히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이 정한 ‘고의 또는 과실’이란 행정 조직이나 운영상의 결함에 따른 공무원의 공적 직무수행상 과실로 해석하는 것이 우리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국가배상청구권을 온전하게 실현하고, 국가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폭넓은 적법성 통제라는 법치국가원리를 구현하는 해석으로서 헌법 제29조 제1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책임의 성격과도 합치된다. 이미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 성립을 위해 개별 공무원의 고의·과실이 인정될 필요는 없고,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고의 또는 과실’이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원칙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개별 국민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라) 이와 달리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고의·중과실에 기한 경우 그 행위를 국가 등에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는 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공무원의 직무집행상의 과실을 주관적 과실만을 의미한다고 판단한 대법원 1987. 9. 22. 선고 87다카1164 판결 등은 모두 변경되어야 한다.
다. 국가배상책임의 위법성 판단기준으로 직무의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에 관하여
1)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의 의의
가)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에 있어서 공무원의 가해행위는 ‘법령을 위반한’ 것이어야 하고, 법령 위반이라 함은 엄격한 의미의 법령 위반뿐만 아니라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의 위반도 포함하여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0다95666 판결 및 대법원 2022. 9. 29. 선고 2018다224408 판결 등 참조). 또한 대법원은 어떠한 행정처분이 항고소송에서 취소되었더라도 곧바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그 행정처분의 담당 공무원이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하여 볼 때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여 그 행정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되어야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대법원 2022. 4. 28. 선고 2017다233061 판결 등 참조).
나) 이처럼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에서의 위법성 판단기준은 국가의 행위에 대한 공법상 위법성 판단기준과는 다르다고 보면서, 그 위법성의 판단기준을 ‘객관적 정당성의 상실’로 보고 있다. 다수의견은 위와 같은 법리를 전제로 하여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행정입법 부작위의 공법상 위법성을 확인하였음에도 이에 더해 그 부작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는지에 대하여 판단한 다음에서야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을 긍정하였다.
2)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이 필요한지
가) 그러나 국가의 행위가 공법상 위법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그 행위가 국가배상법상 위법성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별도의 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공법상 자기책임’이라는 국가배상책임의 법적 성격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계상 혼란을 초래하는 것으로 부당하다. 그 구체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공무원이 엄격한 의미의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만 국가배상책임이 성립된다고 볼 경우 그 위법성의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져 국민의 권리 구제에 미흡할 수 있으므로, 위법성의 인정 범위를 그보다 넓힐 필요는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요건을 들지 않더라도 공법상의 일반원칙에 따라 위법성의 인정 범위가 확대될 여지가 충분하다. 즉, 대법원의 기존 법리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경우로 예시한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의 위반’은 공법상 일반원칙인 평등의 원칙, 비례의 원칙, 성실의무와 권한남용금지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및 부당결부금지의 원칙 등의 적용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위법한 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게다가 2021. 3. 23. 제정된 행정기본법은 위와 같은 공법상 일반원칙을 법률로 성문화하였으므로, 국가의 행정작용이 공법상 일반원칙을 위반한 경우 이는 곧 엄격한 의미의 법령 위반을 구성할 수 있기도 하다.
(2) 국가배상제도는 헌법 제29조 제1항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한 공법상 제도라고 보아야 하고, 단순히 국가가 공무원의 사법(사법)상 불법행위책임을 대신하여 부담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은 앞서 강조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국가배상제도의 공법적 성질에 비추어 보아도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인 위법 또한 마찬가지로 공법상 일반원칙에 따라 판단되는 것으로 충분하고, 별도로 ‘객관적 정당성 상실’과 같은 요건을 둘 필요가 없다. 국가의 행위가 위법한지를 판단하는 공법상 위법성 판단기준이 있는데도 이와 별도로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위법성 판단기준을 두는 것은 동일한 행위에 대한 위법성 판단기준을 복수로 적용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국민의 권리를 필요 이상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3)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란 국가배상법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요건으로 법원이 이를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혼란만 가중된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은 앞서 본 것과 같이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요건을 위법성 판단기준으로 보는 한편, 국·공립대학 교원에 대한 위법한 재임용거부처분을 원인으로 하는 국가배상소송 사건에서는, ‘고의·과실’이 인정되려면 그 재임용거부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대법원 2011. 1. 27. 선고 2009다30946 판결),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이 마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인 것처럼 판시하여 일관된 요건으로 이해하기도 어렵다.
나) 결국 국가배상책임을 공법상 자기책임으로 보는 이상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이나 위법성 판단기준으로서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라는 요건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여야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등은 모두 변경되어야 한다.
라. 위자료의 산정근거와 액수에 관하여
1) 국가배상책임을 위법한 국가의 행위에 대한 국가의 공법상 자기책임으로 이해하는 이상 국가배상책임의 위자료와 민법상 불법행위의 위자료를 산정하는 기준과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배상책임의 주된 기능이 개인의 손해에 대한 민사적 전보보다는 국가의 위법행위 확인 및 그에 대한 제재를 통한 법치국가의 원리 실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위자료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의 정도에 대한 엄격한 평가보다 그 위자료를 인정함으로써 문제 된 국가 행위의 위법성을 공적으로 선언하고 그에 대한 제재를 통해 장래에 유사한 위법을 예방할 필요가 있는지와 같은 규범적 요소에 대한 평가를 우선하여 고려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그 위자료의 액수 또한 이와 같은 규범적인 요소를 반영하여 다소 상징적인 액수로 정할 수 있다.
2) 원심과 제1심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나 직무집행의 객관적 정당성 상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였으므로 원고 1, 원고 2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관하여 충분하게 심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국가배상법을 자기책임으로 이해할 경우 위자료의 액수를 정할 때 규범적인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으므로, 법률심인 대법원으로서도 이 부분 사건을 사실심에 파기·환송하지 않고, 원고 1, 원고 2의 정신적 손해를 직접 규범적으로 평가하여 그 위자료를 각 100,000원의 다소 상징적인 액수로 정할 수 있다.
3) 다수의견은 국가배상책임이 공무원 개인의 민사적 책임을 국가가 대위해서 부담하는 것이라는 대위책임설을 따르면서도 원고 1, 원고 2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각 100,000원으로 정하였다. 민사법적으로도 위자료의 규범적 성질이 인정되고, 대법원이 정신적 손해 유무에 대한 추가심리의 필요성이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이상 대위책임설을 취하면서도 위자료의 액수를 직접 정한 다수의견이 논리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배상책임의 성질을 자기책임으로 이해할 경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원고 1, 원고 2에 대한 위자료를 직접 판단한 근거가 보다 설득력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마. 소결론
1)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행정입법 부작위가 공법상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이 정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한 행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원심판결에는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피고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될 수 없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을 부정한 잘못이 있다.
2) 다수의견 또한 피고의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음에도 이에 더하여 그 부작위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고 사회적 타당성이 없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는지를 판단하였다. 이러한 다수의견은 비록 그 결론에 있어 타당하나 국가배상책임의 공법상 자기책임으로서의 성질을 간과한 것으로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혼란을 유지·가중시키는 한계가 있다.
3) 이와 같이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해 원고 1, 원고 2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피고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결론은 다수의견과 같이 하나, 그 구체적인 이유와 논거가 다르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혀둔다.
8.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오경미, 대법관 신숙희의 보충의견
가. ‘1층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모두의 1층’이라는 공익 프로젝트도 있다. 한 사람의 생활사에서 사적이거나 공적인, 크고 작은 만남과 활동의 많은 부분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그곳에 이르기 위한 통로의 시작인 ‘1층’의 공유는 일상성의 동등한 참여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불과 2cm의 턱도 1층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지체장애인에게 턱과 계단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과 같다. 턱과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하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1층을 공유하는 ‘모두’에 합류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는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의 핵심을 구성한다. 이러한 점에서 소규모 소매점 출입구에 설치된 턱이나 계단은 장애인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 인격체로 생활할 수 없게 만드는 차별과 배제를 상징한다.
이 사건은 단순히 장애인이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 할인점 외에 소규모 소매점에서도 물건을 구매할 편의를 추가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턱이나 계단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상생활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누릴 권리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장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는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살피고, 장애인 접근권의 실효적인 보장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다수의견을 보충하기로 한다.
나. 장애의 경험이 없는 대다수의 비장애인은 턱이나 계단이 장애인에게 차별과 배제의 상징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비장애인에게 턱이나 계단은 일상생활에 별다른 지장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얼마간의 효용마저 제공한다. 그 결과 비장애인으로서는 턱이나 계단을 제거하기 위해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당위를 이해하기 어렵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시행된 후 24년이 넘도록 이 사건 쟁점규정이 개정되지 않은 채 방치된 데에는 이와 같은 평범한 무관심이 기여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장애인이 턱이나 계단이 1층 곳곳에 설치된 건물로 가득 찬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은, 비장애인이 투과 능력이 있는 ‘투명인간’의 도시를 방문하여 건물 1층의 출입문이 모두 잠겼거나 아예 출입문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그 도시의 거주자들은 투과 능력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드나드는 수많은 가게와 상점들을 여행자인 비장애인은 들어갈 수가 없다. 호텔을 구할 수 없어서 노숙을 해야만 할 수도 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입장을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일상생활에서 턱이나 계단이 장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장치이자 배제의 장벽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장애인도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전제 아래 그들의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여야만,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무엇을 박탈당한 채 생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인 인간의 존엄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과 경험을 상상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소수자들이 소외되지 않고 정당한 몫을 회복하여 이 사회에서 각자의 개성과 이상을 온전히 좇을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다. 헌법 제27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청구권의 측면에서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는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원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입법과 행정의 영역에서 자신의 정당한 이해관계를 충분히 관철하지 못한 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소수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청구권을 통해 공개된 법정에서 기본적 권리 침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자신의 권익을 적극 옹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또한 중립적 심판기관인 법원은 변론 과정을 통하여 직접 소수자를 대면하고 그들의 문제제기와 주장을 경청함으로써 직접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소수자들의 삶의 객관적 실상, 차별적 처우가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고, 이를 통해 그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합당한 유권적 답변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대법원 2024. 7. 18. 선고 2023두36800 전원합의체 판결 중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오경미의 보충의견 참조).
이 사건의 경우 원고 1, 원고 2는 이 사건 소를 통하여 단 2cm의 턱이나 계단이 지체장애인인 그들에게 어떠한 장벽으로 기능하는지, 우리나라의 소규모 소매점에 장애인의 접근권을 가로막는 장벽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존재하는지,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활동할 자유를 드디어 보장받으리라 얼마나 기대하였는지, 그들의 희망이 장기간에 걸친 피고의 입법 부작위로 어떻게 좌절되었는지에 관하여 공개된 법정에서 적극 주장하였다. 하급심법원은 그들이 처한 차별적 일상생활의 실상에 대하여 경청하고 살필 수 있었다. 특히 제1심법원은 위와 같은 변론 과정을 거친 끝에 이 사건 쟁점규정이 모법의 위임 취지에 반해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장애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법·무효의 규정이라고 보았는데, 이러한 판단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판결 후 약 2개월 만에 피고는 이 사건 쟁점규정을 개정하였다. 입법과 행정의 영역에서 오랜 기간 장애인인 자신의 정당한 이해관계를 충분히 개진하지 못한 채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위 원고들이 공개된 재판의 장을 통해 소수자로서 겪는 경험과 고통에 관하여 문제제기하고, 그것이 법원을 통해 합당한 유권적 답변을 받음과 동시에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어 대법원 또한 이 사건 공개변론을 통해 턱과 계단에 관한 장애인의 개인적 경험을 직접 청취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장애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할 기회를 가졌고, 피고의 위법한 부작위가 이어지고 있던 기간 동안 장애인이 받은 정신적 고통의 무게가 국가배상을 통해 위자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보아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
라. 이 사건 쟁점규정을 비롯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 대한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의 개정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기존에 설치된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하여도 접근권 보장이 절실히 필요함에도 이 부분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쟁점규정을 포함한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나)목이 2022. 4. 27. 대통령령 제32607호로 개정되었고, 이에 따라 소규모 소매점의 경우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되는 바닥면적 기준이 기존의 300㎡ 미만에서 50㎡ 미만으로 축소되었다. 그 외 휴게음식점, 제과점, 이용원, 미용원, 목욕장, 의원, 한의원 등 위 [별표 1] 제2호 (가)목·(나)목에서 규정한 공중이용시설[이하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이라 한다]에 대하여도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위와 같이 개정된 규정을 이하 ‘이 사건 개정규정’이라 한다). 그런데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부칙(2022. 4. 27.)은 이 사건 개정규정을 2022. 5. 1.부터 시행하도록 하되(제1조), 그 시행 전에 설치된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 관하여는 개정 전의 규정에 따르도록 하였다(제2조 제1항, 이하 ‘이 사건 부칙조항’이라 한다). 그 결과 이 사건 개정규정이 시행되었음에도 기존 소규모 소매점을 비롯한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의 대부분은 개정 전의 규정을 적용받게 되어서 여전히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시행된 후 이 사건 쟁점규정의 개정까지 24년 동안 우리 사회는 급격한 도시화, 현대화의 과정을 겪었고, 새로운 건축기술과 공법을 적용한 견고한 건물이 수없이 신축되었다. 그 건물들의 수명은 상당히 길다. 위와 같이 지어진 수많은 건물들에 설치되어 있던 기존 소규모 소매점 등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는 이 사건 개정규정 및 이 사건 부칙조항 등에 따라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장래에 새로 설치될 예정인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만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할 경우, 아무리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의 범위를 확장하더라도 그 확장의 범위는 매우 제약된다. 대체로 견고한 건물에 설치되어 영업하는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의 특성상 견고한 건물이 존속하는 장기간 동안 기존의 위 시설 대다수는 턱과 계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존하는 건물 대부분이 개축될 장래의 어느 시점이 되어서 새 건물에 들어선 소규모 소매점 등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될 때까지 장애인의 접근권은 제약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시행된 후 2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존 건물에 설치된 수많은 소규모 소매점 등 (가)목·(나)목 공중이용시설에 대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면제됨으로써 광범위한 제한 상태가 이 사건 부칙조항을 통해 앞으로도 유지된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로 원고들을 비롯한 장애인 단체들은 이 사건 쟁점규정을 비롯한 구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 제2호 (가)목·(나)목의 개정 이후에도 편의시설 설치의무의 부담을 지지 않는 기존의 소규모 소매점 등으로 말미암아 접근권 침해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권리협약이 장애인의 접근권이 실현되는 시점을 대부분의 건물이 개축되는 시점의 먼 미래로 유보하였다고는 결코 해석할 수 없다. 피고는 이 사건 개정조항과 이 사건 부칙조항을 개정함으로써 기존에 설치된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하여도 단계적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나아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을 바닥면적 등 규모에 따라 일부로 제한하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의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도 언급하여 둔다.
마.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던 고 소외인은 1984. 9. 19. 유서를 통하여 일상생활 곳곳에서 겪어야 했던 접근권의 제한으로 말미암은 삶의 고통과 소외감을 호소하고, 이를 야기하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차별에 대하여 크게 질타함으로써 경종을 울렸다.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 (중략) 스스로 부딪쳐보지 못하고 피부로 못 느껴본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장애자들은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 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이 호소와 외침은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이 크다. 그것이 이 사건이 직면한 본질적 문제이다.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을 단지 소매점에서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은 장애인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구매 그 자체를 위해서라면 활동보조인을 통해서 더 값싸고 편의시설도 잘 구비된 대형 할인점에서 구매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도 있고 온라인 쇼핑도 편리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의 문제는 ‘쇼핑’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의 문제이다. 비장애인은 점심시간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 식당이나 커피숍을 가거나, 귀가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서점과 꽃집에 들르고, 갑자기 배가 아파 약국을 이용하거나 동네 의원에 가면서, 내가 그곳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없는지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일상생활 또한 그래야 한다. 계획된 ‘쇼핑’은 대형 할인점과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있지만 우연과 즉자성으로 이루어진 나날의 ‘삶’은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자인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이 1984년에 비해 많이 넓어졌지만 그것이 충분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당사자인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 사회가 또 다른 ‘투명인간의 도시’는 아닌지 항상 되돌아보아야 한다.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은 상대적이다. 사회 안에서 일상의 틀을 구조화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장애와 비장애를 결정한다. ‘투명인간’의 도시에서는 투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장애인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투명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제도와 시스템은 투과 능력의 유무에 따라 장애와 비장애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접근권이 제대로 보장된 사회에서라면 어디나 갈 수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닐 수도 있다.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을 배제한 채 비장애인이 그들 위주로 만든 세상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모든 장애인이 차별 없이 권리를 보장받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바라며 보충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장 조희대(재판장) 대법관 김상환 노태악 이흥구 오경미 오석준 서경환 권영준 엄상필 신숙희 노경필 박영재 이숙연(주심)
(출처 :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2다289051 전원합의체 판결 | 사법정보공개포털 판례)
출처 : 대법원 선고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2다289051 전원합의체 판결 판결 | 사법정보공개포털 판례